소설리스트

화산대도-319화 (319/425)

319화

정주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림인들은 물론 상인들,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가득 거리를 메웠다.

웅성웅성.

무림맹으로 가는 길 한복판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가보죠.”

사람들로 둘러싸인 아래로 사내아이가 앉아 있었다.

열서너 살 정도의 소년.

입은 옷을 봐서는 제법 산다는 집안 출신처럼 보였다.

사내아이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무림맹은 점창파에 대해 책임을 져라!

‘훗…… 무림맹 앞에서 시위를 하다니 제법 강단이 있는 녀석이군.’

고진유는 홀로 시위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앞에 선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저 아이는 왜 저러고 있습니까?”

“개봉 운남표국의 자식이라네. 이번에 점창파가 극일천무신궁에 멸문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겠나. 그런데 무림맹에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저러고 있다네.”

“무림맹에서 원군을 보내기에 멀지 않았습니까?”

“무림맹주라면 보통 분과 달라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더군.”

“……운남표국이 점창파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스윽.

중년 사내는 뒤를 돌아보며 고진유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자네는 정주에 있으면서 그것도 모르는가? 운남표국의 국주가 점창파 장문인의 속가제자가 아닌가.”

“아하……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뒤로 물러났다.

묵경 또한 중년 사내의 말을 들어서 어떤 일인지 알았다.

“웃긴 놈이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애들은 그게 아니잖아요. 당연히 뭐라도 할 수 있었을 거라 믿었던 모양인가 봐요. 사실…… 나도 좋은 방법을 찾고자 했다면 찾을 수도 있었겠지요.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건 맞지만.”

“……가능할 수도 있었단 말이지?”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고진유는 상관없다고 결정한 일에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녀석이 강단이 있네요. 어른들도 안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봐서는요.”

“어떻게 할까?”

“그대로 두죠. 저러다가 돌아가겠죠.”

사내아이의 행동을 말릴 이유도 없었다.

“우린 그만 가요.”

“알겠다.”

네 사람이 시위 현장을 두고 떠나려고 할 때였다.

“이노오오옴!”

화가 난 사내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고진유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사내아이의 앞에 선 중년 사내의 노여움이 느껴졌다.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싫습니다.”

“네놈이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

“네. 잘 압니다. 무림맹주님을 만나 뵙고자 합니다.”

“허어…… 이놈이…….”

중년 사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창파가 무너진 게 어찌 맹주님의 잘못이더냐? 넌 하루아침에 어찌 운남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느냐?”

“맹주님이시라면 가능합니다!”

사내아이는 똑바로 그를 보면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래서 맹주님을 만나 뵙고 어떻게 하려는 게야?”

“왜 점창파를 도와주지 않았는지 여쭈어볼 것입니다.”

“지금 네가 정녕 본 표국을 망치려고 하는 것이더냐?”

“아버지. 겨우 그걸 묻는다고 표국이 망합니까?”

중년 사내는 운남표국의 국주 홍규였다.

“뭣들 하느냐? 어서 이 녀석을 끌고 가지 않고!”

“네, 알겠습니다.”

국주 홍규 뒤로 두 명의 표두가 빠르게 나오며 사내아이를 잡았다.

“이거 놔! 아버지!”

사내아이는 발버둥을 쳤지만 어른 두 명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도저히 힘으로 벗어날 수 없었는지 사내아이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납치법이……!”

“가만히 못 있을까? 저놈의 입을 막아라.”

“사람 살……! 욱욱!”

두 명의 표두 중 한 명이 사내아이의 입을 얼른 막았다.

“으앗!”

갑자기 표두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았다.

손을 깨물린 표두는 사내아이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후다다닥!

사내아이는 무작정 빠르게 달렸다.

터억!

오로지 바닥만 보고 달리다가 사람과 부딪혔다.

“으악!”

사내아이의 몸이 튕겨 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할 때, 손이 다가오면서 가볍게 한 손으로 몸을 감싸 안았다.

“고, 고맙습니다.”

“후후후.”

“……?”

사내아이는 그를 감싼 팔을 풀고 빠져나가고자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저어, 놓아주세요!”

“글쎄…….”

“이놈아! 어디를 가려고?”

고진유는 사내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이름이 뭐야?”

“네? 호, 홍강풍입니다.”

“강한 바람이라…… 이름처럼 행동도 재빠른데.”

“어서 놔주세요……!”

홍강풍은 다급하게 말을 했지만 이미 앞에 두 명의 표두와 아버지 홍규가 다가왔다.

홍규가 고진유에게 잡혀 있는 아들 홍강풍을 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아이를 잡아줘서 고맙네.”

홍규가 강풍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강풍을 돌려주고자 잡은 게 아닙니다.”

“젊은 친구, 지금 무슨 말인가? 그 아이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

“다칠 수가 있다네.”

홍규의 옆으로 두 명의 표두가 검을 잡은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풍은 본도를 만나고자 왔습니다. 당연히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본도가 고진유라고 합니다.”

홍규의 눈이 커졌다.

설마 아들의 잡아준 젊은 청년이 천하제일인 고진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무림맹주를 보면서 그는 여전히 어떻게 말할지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휘이이익!

무림맹에서 십여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호위전주 독전호가 빠르게 고진유의 앞에 내려섰다.

“맹주님, 오셨습니까?”

“독 전주가 직접 오셨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주에 들어오셨다는 위호당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소신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고진유는 홍규를 보며 물었다.

“무림맹으로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 네에…….”

그는 무림맹주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고진유는 이번에는 홍강풍을 보며 물었다.

“같이 들어가겠느냐?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네. 들어가겠습니다!”

홍강풍은 고개를 들어 고진유를 올려다보았다.

천하제일인…….

중원 최고의 무림인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무림맹에 찾아온 목적을 상기시켰다.

‘진짜로…… 따질 거야!’

* * *

무림맹주의 복귀가 알려졌다.

철혈궁으로 갔던 인물이 무림맹주가 아니었다는 소문과 함께 황궁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소문은 나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았다.

무림맹의 인물들은 무림맹주가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철혈궁 사건과 그로 인해 생긴 점창파의 멸문 때문이었다.

무림맹의 의견 없이 독단적인 철혈궁 공격으로 구대문파인 점창파가 극일천무신궁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맹주가 움직일 것이라면 최소한 사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들이었다.

고진유는 무림맹에 들어선 뒤 군사전을 먼저 찾았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군사전 호위들이 들어서는 고진유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군사님은 계십니까?”

“넵.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고진유는 군사전으로 들어서 군사의 집무실로 곧장 올라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오.”

고진유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갈양은 일어난 뒤 반갑게 맞아주었다.

“드디어 온 것인가? 이번에는 황궁에서 또 한바탕 사고를 친 듯하더군.”

“알고 계셨습니까?”

“후후후. 조정에는 본 가와 관련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든.”

“그 사실은 몰랐습니다.”

“앉도록 하시게.”

고진유와 제갈양은 탁자에 마주 보며 앉았다.

“다른 곳에 잠시 들렀다가 오는 모양이지? 황궁에서 떠난 지 꽤 지났다고 들었네.”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늦었습니다.”

“잘 처리한 모양이군. 얼굴이 예전에 비해 조금 바뀐 것 같아.”

“그게 눈에 보입니까?”

“음…… 뭐랄까? 예전에도 워낙 뛰어나서 더는 좋아질 게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어딘지는 모르지만 느낌이 또 달라졌다고 할까?”

“대단하시네요. 묵경 형은 잘 모르던데…….”

“그 녀석은 둔하잖아. 두리뭉실한 게 요즘 살이 너무 많이 쪘어. 안 그러냐?”

“뭐, 나잇살이라 하시던데요. 조금 찌긴 했습니다만, 제갈 형은 너무 섬세하게 보시는 게 아닙니까?”

“아하핫! 성격이 그럴지도. 그래서 내가 살이 안 찌는 것일지도 모르지.”

제갈양은 그를 자세히 보았다.

전과 달리 그에게서 어떠한 생각도 읽어내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점창파가 멸문되면서 전부 걱정이 한가득하잖아.”

“겨우 점창파 하나에 겁을 먹었단 말이군요. 그들은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제갈 형을 보니 아닌 모양인가 봅니다.”

“가문의 존폐가 달린 문제니까.”

고진유는 말없이 등을 뒤로 기대었다.

“가문의 존폐라…… 그렇게 말하면 두려울 만도 하지요.”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 하늘을 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면 극일천무신궁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

제갈양은 대답을 못 했다.

극일천무신궁이 개파하면서 무림에 도전장을 분명히 내민 사실을 알고 있다.

당연히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창파의 멸문이라는 충격을 받은 뒤 그 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좋습니다. 당분간 가만히 있어 보이도록 하죠.”

“정말인가?”

“나도 극일천무신궁에서 조용히 지내준다면야 좋죠.”

“…….”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참을성이 없습니다. 조만간 이번처럼 움직일 것입니다.”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막을 수 없을까?”

“그들이 이번 경우처럼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막기에 부족할 겁니다.”

“큰일이군.”

제갈양은 걱정이 앞섰다.

극일천무신궁을 상대로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곳은 중원 무림에 몇 곳밖에 되지 않았다.

그 외 중원 무림 문파들은 점창파의 경우처럼 상대가 되지 않을 게 확실했다.

“극일천무신궁에서 공격을 해 온다면 그들이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방법이 있는가?”

“제갈 형도 알지 않습니까. 본진을 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제갈양도 그가 말한 방법이 최선임을 알고 있었다.

“사람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건물이 중요합니까?”

“그거야…… 사람이 중요하겠지.”

“당연한 겁니다. 건물은 부서지면 새롭게 지으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죽으면 끝이지 않습니까?”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살아 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재건할 수 있다.

그들이 공격한다면 피해를 적게 볼 수 있는 방법이 확실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중원의 무림 문파에서 그럴 수 있을까요?”

“힘들겠지. 아마도.”

“제가 그 말을 한다면 무림에서 받아들일까요? 욕이라도 안 들으면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안타까운 건, 사람은 꼭 극한의 상황에 가지 않으면 생각이 잘 안 변하더군요.”

“맞다. 그게…… 사람이지.”

제갈양은 그의 말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경우처럼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아야만 바꿀 수 있는 게 사실이었다.

‘허 참. 겨우 나이가 약관을 넘어섰을 뿐인데…… 말하는 건 고승처럼 말을 하는군.’

“진유 아우, 개인적으로 물어봐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진짜 나이가 어떻게 되지? 나한텐 사실대로 말해도 돼.”

“형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진짜 제 나이가 맞습니다.”

“그래? 말하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 같은데.”

“그건 공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공유? 무슨 말이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러 가지 경험들이 마치 제가 겪었던 경험처럼 느껴집니다. 아마도…… 용맥, 제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허어, 용맥이라…… 그 용맥……?”

제갈양은 제갈세가의 서고에서 용맥에 대한 사료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무림의 전설이라고 흘려버렸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용맥의 전인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신족일 수도 있겠군.’

용의 기운을 가진 신의 가문.

원시무림의 지배자인 두 가문 중 한 곳.

명부의 왕.

명왕의 하계인 명족을 이룬 가문에 대항한 용의 부족인 용맥의 가문.

원시무림 두 가문의 싸움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을 읽고 실제라고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제갈양의 눈이 커졌다.

용맥의 극일가가 존재한다면 명족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그때,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갈 형님, 감당할 수 없는 건 때로는 모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그렇지. 굳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제갈양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읽었음을 알았다.

‘역시 변했어.’

스윽.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맹주전에 가서 푹 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맹주전에 가더라도 놀라지 마.”

“무슨 일이라도…….”

“흐흥, 가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

제갈양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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