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점창파는 침울 그 자체였다.
제자들의 보고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적들이 하오령을 넘었습니다!”
“치, 칠용녀지에 일각 만에 들어왔습니다!”
일각이 지난 후 다시 전령의 보고가 이어졌다.
“세마담까지 들어섰다는 연락입니다!”
“…….”
마지막 관문까지 극일천무신궁의 무리들이 올라왔다.
이제는 막을 장소도, 도망갈 수도 없다.
최후의 결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군요.”
점창사일 소명 도인은 마룡사일검을 고쳐 잡았다.
마지막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은 화려하게 보내는 법이지.’
단호한 눈빛으로 죽음조차 밀어냈다.
그는 옆으로 시선을 돌려 어쩔 줄 몰라 하는 인물을 보았다.
일장로 소호 진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보였다.
“어차피 한 번 왔다가 가는 게 인생 아닙니까. 뭘 두려워하십니까. 그날이 오늘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모든 게 담담할 겁니다.”
“…….”
소호진인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잘난 체하기는…….’
앞으로 나서는 소명을 보았다.
그는 자신보다 한 해 늦게 입문한 사제였다.
어릴 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형이었던 자신보다 뛰어난 무공을 지녀 늘 사범님들에게 칭찬을 독차지할 정도였다.
그는 항상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소호 진인은 그런 그를 능가하기 위해 무공 수련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무리의 깨달음에 다다른 순간 소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늘 그만 보면 열등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고 있었다.
지금 죽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죽음을 깨우친 듯한 말을 한 뒤 지나쳐 갔다.
소호 진인은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더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휴우…… 끝날 시간이 왔군.’
그도 검을 잡고 소명 도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특사대 무망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선 뒤 점창파의 정문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다다다다-
정문 밖으로 달려 나오는 도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점창파에 남아 있는 마지막 도인들.
소명 도인은 장검을 가슴에 안은 채 도인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왔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왔소이까?”
“지옥.”
“농담하는 것이오?”
“농담이 아닌데? 도사 놈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지옥으로 보내줄 사자라고 할까? 크크크…….”
사내의 웃음이 괴기하게 들렸다.
소명 도인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우리를 모두 죽일 수 있다고 보는가?”
“당연히. 근데 실망이었다. 중원 무림의 구대문파라고 해서 기대하고 왔건만, 본 궁의 수련생들보다 실력이 더 떨어지니 싸울 맛이 안 나는군.”
“네놈의 말을 믿는다고 보느냐?”
스윽.
소명 도인은 검을 잡은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내력을 끌어 올리며 검 손잡이를 잡았다.
스르르르응-
마룡사일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뻗은 검신은 두 치의 폭에 일곱 자의 길이였다.
“사일검인가 보군. 겨우 그 정도로 본인을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타앗!
무망은 마치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앞으로 나섰다.
소명 도인은 얼굴이 굳어졌다.
“본인을 무시하는 것이냐?”
“크크큿. 점창을 무시하는 것이지!”
“얼마나 잘났는지 보겠다.”
우우웅-
빛과 함께 한 줄기 백광이 뻗어 나갔다.
사일검법은 쾌(快)와 광(光)의 무공.
무망의 가슴으로 마룡사일검의 검기가 지나갔다.
“……!”
손맛이 완벽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검을 휘둘렀지만, 이번보다 완벽하게 펼친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채 죽어야 할 그는 여전히 땅 위에 서 있었다.
“그럭저럭 쓸 만하군. 아니, 꽤 좋았어. 가슴이 아니라 목을 노렸다면 상처는 입어줄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소명 도인은 상대가 어떻게 검을 맞고도 무사한지 의문이었다.
“놀랄 것 없다. 그 정도 위력으로는 내 몸을 벨 수 없지.”
휙휙휙휙!
소명 도인은 연이어 사일검법을 펼쳤다.
극강이라 불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사일무극의 초식이 뻗어 나갔다.
팟팟팟팟팟-
마룡사일검에서 펼쳐진 수십 개의 백광이 서로 교차하며 무망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내는 듯 난도질했다.
하지만 무망의 전신은 마치 물을 베어내는 듯 검이 지나간 뒤 원상태로 다시 복구되었다.
“사술…… 사술인가?”
“하여튼 중원 놈들은 모르면 무조건 사술이라고 한단 말이야.”
“…….”
“이건 유고술(柔盬術)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구경하기 힘들 테니 똑바로 봐라.”
처음 들어보았다.
중원 무림에 이런 무공이 있을 줄은 몰랐다.
검을 수십 번이나 휘둘렀지만 그의 몸에 상처 하나조차 낼 수 없었다.
점점 그의 힘이 빠져나갔다.
“크윽……!!”
“쯔쯔., 겨우 이 정도에 힘이 빠져서야. 재미도 없고 해서 그만 점창파를 지울까 싶군.”
휘익!
무망은 명령을 기다리던 수하들을 향해 손을 앞으로 가리켰다.
“점창파의 도사 놈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인다.”
“존명!”
오백여 명의 특사대들이 점창파를 향해 달렸다.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가는 듯했다.
점창파 장문인은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폭풍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다.
슈우우우욱.
뜨거운 열기가 불어오면서 뒤로 빠져나갔다.
점창파의 제자들은 이미 목숨을 내려놓았다.
오직 상대를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희망일 뿐이었다.
“으으으으아아아악!!”
비명은 끊임없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털썩.
소명 도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면서 정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소…… 호…….’
그의 앞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호 진인을 보였다.
소명 도인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살고 싶은가?’
자신을 보는 그의 눈동자에서 여전히 살고 싶다는 눈빛을 보았다.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 상황에서도 그는 살고자 했다.
‘살고 싶다면…….’
소명 도인은 앞으로 쓰러지면서 그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마지막 남아 있던 한 가닥의 의식이 끊어지면서 숨을 거두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죽음의 혈향만이 시체들 사이에 있을 뿐이었다.
콰아아앙!
하늘 위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잠시 뒤, 폭우가 점창산 아래로 쏟아졌다.
폭우는 점창산의 혈향을 씻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붉은 피와 함께 아래로, 아래로 흘러갔다.
꿈틀.
수많은 시체 사이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다.
“커억…….”
숨을 거칠게 내쉬며 시신을 밀어낸 그가 얼굴을 밖으로 드러냈다.
붉은 피가 묻은 얼굴이 폭우에 씻겨 내려가며 본 모습이 나타났다.
일장로 소호 진인.
그는 하늘을 보며 떨어지는 폭우를 그대로 맞았다.
주르륵.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보지 않아도 그는 알았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살아남았다.
그것도 지금까지 싫어했던 한 사람에 의해.
그는 마지막으로 죽기 전 자신의 혈을 누른 뒤 감쌌다.
‘큭…… 내가 그의 눈에 구차하게 살고 싶어 했던 모양이지?’
점창파는 망했다.
그는 망한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갈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없이 죽은 채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소호진인은 힘들게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
점창파의 동료들과 제자들이 차가운 시신으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죽은 시신들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도 없었다.
소호 진인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 때문일까?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점창파 본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들은 건물들에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오직 점창파의 제자들만 죽였을 뿐.
경내에도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듯했다.
경내에서 일하는 일반 사람들까지 모두 죽어 있었다.
‘저들까지…….’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자 살심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소호 진인은 힘들게 경내를 지나치며 본관 대전으로 들어섰다.
“장문…… 인.”
기둥에 기댄 채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인물.
이곳으로 오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죽었어. 큭…… 크하하하……!!”
그의 웃음은 고통의 외침이었다.
털썩.
혹시나 살아남은 자가 있지 않을까 희망했지만,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 있었다.
장문인 옆에 기대어 대전을 보았다.
수백 년의 역사가 사라지고 있었다.
‘점창도…… 여기에서 끝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수십 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그때였다.
스르르-
무엇인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이건…….’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문인의 검을 잡았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스스슥.
소리가 들린 장소는 연단 아래.
소호 진인은 연단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이곳에…… 비상문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찾을 수 없었다.
“안에…… 누구 있소?”
“…….”
방금까지 들렸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분명 안에서 기척이 들렸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일장로 소호라고 한다.”
드르르륵!
문이 다급히 열렸다.
안에서 앳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일장로님……!”
“너희들은 누구냐?”
연단 아래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숨어 있었다.
“저희들은 점창삼문의 수련 제자들…… 입니다.”
“……!”
점창삼문이라면 수련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다고 알려진 삼대제자들이 수련하는 곳이었다.
“자, 장문인님께서…… 저희들도 싸우고자 했지만 절대로 이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이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모두 나오너라.”
소호진인은 한 명씩 밖으로 올렸다.
총 열두 명의 어린 제자들.
장문인은 마지막까지 점창파가 사라지지 않도록 어린 제자들을 숨겨 놓은 것이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온 뒤 장문인의 시신을 보았다.
“장문인님께서…….”
“지금부터 너희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점창파의 제자로서. 알겠느냐?”
밖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 어린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일장로님…….”
“말해보아라.”
“저희들…… 밖에…… 살아난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다. 두려우냐?”
“네에…….”
두렵지 않다면 그건 거짓이었다.
스윽.
그는 손을 뻗어 어린 제자를 안았다.
소호 진인은 평소에 삼대제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귀찮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도 삼대제자들을 마주한 적도 없었다.
“나도 두렵다. 당연히 너희들도 두렵겠지.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야지 않겠느냐?”
“네에…… 알겠습니다.”
소호 진인은 어린 제자들과 함께 밖으로 다가섰다.
짙은 혈향과 함께 많은 시신들이 그들의 눈앞에 보였다.
“보았느냐?”
“…….”
“너희들이…… 결정해야 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내려가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열심히 수련해서 이와 같은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만들 것인지.”
“……일장로님. 앞으로…… 어느 누구도…… 본 문에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소호 진인은 자신의 바지를 꽉 잡은 채 말을 하는 어린 제자를 보았다.
“우리의 형제들이 편히 갈 수 있도록 하자꾸나.”
“네…….”
소호 진인과 열두 명의 어린 제자들은 시신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시작했다.
* * *
점창파의 멸문에 대한 소문이 중원에 퍼져 나갔다.
극일천무신궁의 기습에 의해 장문인까지 모두 죽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점창파에 올라간 사람들은 수백 개의 비문이 적힌 무덤을 보았다.
누가 그들을 묻어주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굳게 닫힌 정문에는 봉문이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극일천무신궁에서 중원 무림에 던진 여덟 글자.
이안환안(以眼還眼)
이아환아(以牙還牙)
고진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 웃긴 사람들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군요.”
“웃긴 말이 아니잖아. 이건 완전히 무림맹을 향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문이야.”
염려했던 일이었다.
무림맹이 아닌 고진유의 발을 묶어놓으려는 그들의 뜻이 분명했다.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우리가 더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서로 치고받는다면 누가 많이 잃느냐 아니냐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이건 무림맹이 불리한 싸움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진유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난 잃을 게 없는데. 안 그래요? 한번 해볼까요?”
“…….”
세 사람은 바로 대답을 못 했다. 잃은 게 없다고 말한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고진유의 성향을 묵경은 잘 알았다.
무림맹이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간에 신경 안 쓰겠다는 의미였다.
“진유 아우야 신경을 안 쓰겠지만 무림맹의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군.”
“생각들이 있는 분이시니 곧바로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 문제는 우리끼리 말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 우선 무림맹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그렇게 하지.”
휘이익!
네 명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