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화산파에 찾아오게 된 고진유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운대봉이라…….
“허허허! 정말로 우연이구나. 무옥천지라고 부르는 곳이 운대봉에 있었다니…….”
양군경은 오래전 일을 기억했다.
본래 화산파가 조사께서 개파를 하고자 했던 장소는 서봉인 연화봉이 아니었다.
그분은 원래 북봉인 운대봉에서 화산파를 개파를 원하셨다고 했다.
강한 무맥이 느껴지는 곳.
하지만 갑자기 하루 만에 운대봉에서 연화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제야 이유를 알 듯했다.
‘극일가의 무옥천지가 있는 운대봉은 당연히 조사께서 개파를 열 수 없었겠지.’
어쩌면 화산이 개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곳이 극일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느냐?”
“운이 좋아서 다행히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됐구나.”
무옥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부분만을 이야기했을 뿐 상세하게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지 한 시진이 지났다.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늘 아쉬운 시간은 빨리 흩어졌다.
“사조님, 그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돌아가다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나.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니 항상 몸조심하도록 해라.”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양군경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진유를 안았다.
“계속해서 네가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이것 또한 제 운명이며 천명이지 않습니까. 천명을 따라서 끝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천명을 따르겠다는 말에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자신의 사손은 세상의 그 어떠한 인물보다 훌륭했다.
사라진 고진유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극일가의 가주이지만 그는 여전히 화산파의 제자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찾아왔다는 건 자신을 그만큼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양군경의 시선의 끝은 어둠에 가려진 운대봉을 향해 있었다.
* * *
하남성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갑자기 중원에 퍼진 소문을 들었다.
“무슨 소리지?”
“그러게요.”
극일천무신궁에서 산동악가를 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묵경은 걱정이 되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쉽게 막아내기 힘들었다.
“진유 아우. 어쩔까? 산동악가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
“글쎄요.”
고진유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제 생각은 소문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산동악가가 아니라고?”
“우선 무림맹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봐야겠어요. 소문만으로 판단을 내리기에 힘들지 않겠어요? 녹검 씨가 무림맹에 연락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빠르게 객잔에서 나갔다.
객잔은 여전히 극일천무신궁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묵경이 물었다.
“여하튼 그들이 움직이는 건 맞는 것 같군.”
“아마 그럴 겁니다. 지금쯤이면 황궁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 테니까요. 그리고 철혈궁도 당했으니 그냥 넘어가지 않겠죠.”
“음…… 걱정이네. 우린 어디를 공격할지 모르잖아.”
“어쩔 수 없죠. 그들이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알 수 없을 겁니다.”
“피곤한 일이야. 어디라도 공격이 성공한다면 무림맹의 움직임에 제약을 걸 수 있어.”
“…….”
고진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했다.
극일천무신궁에서 철혈궁이 무너진 이유로 무림 문파 중 한 곳을 보복성으로 반격한다면, 무림맹의 차후 행보에 남아 있는 무림문파들이 문제를 삼을 게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인양이 물었다.
“만일 그들이 움직인다면 알아낼 수 있지 않나요?”
“신궁에서 공식적으로 움직였다면 발견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작정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움직인다면 눈에 띄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될 때는 이미 그곳에 도착했을 수도 있을 거야.”
“아하…… 어쩔 수 없이 한 곳은 당하겠네요.”
고진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림맹으로 중원의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될 수 있는 한 함께 가고자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 수 없군요. 버릴 건 버리고 가는 수밖에.”
“무슨 말이야? 뭘 버릴 건데?”
“예전부터 말했지만 중원 무림에서 제 뜻을 따르고 믿지 않는다면 억지로 도움을 주지 않을 겁니다. 무림맹주의 명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거부하며 나를 따르지 않을 문파도 있겠지요. 저도 그런 문파는 필요 없습니다.”
“…….”
“극일천무신궁과 싸우기 위해서는 똑바로 체계가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당할 것입니다.”
“어…… 그게…… 구대문파나 십대무가에서도?”
“당연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휘익.
무림맹에 연락을 보냈던 녹림야검이 돌아왔다.
“수고했어요. 혹시 다른 말은 없던가요?”
“무림맹이 요즘 어떠한지 물었습니다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조만간 신궁에서 움직인다면 어떻게 할지 연락드리겠다고도요.”
“기다려 보죠.”
* * *
두두두두.
정주로 향하는 그들 앞으로 기마전령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우리에게 오는 모양입니다.”
녹림야검은 얼른 그를 맞이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휘익.
그는 바닥에 내려선 후 허리를 숙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군요.”
“제갈 군사께서 맹주님께 드리는 서신입니다.”
고진유는 그가 내민 전서를 받았다.
“…….”
예상이 맞았다.
극일천무신궁은 이미 움직인 뒤였다. 그리고 산동악가를 칠 것이라 소문을 냈다.
“그대로 우리를 따라 하다니 재밌는 곳이야.”
“뭐가 재밌다는 거야?”
고진유는 전서를 묵경에게 보여주었다.
운남의 점창산으로 다가서는 무리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무림맹에서 도움을 주고 싶어도 하루 만에 점창파에 갈 수 없었다.
“똑같이 성동격서를 쓴 모양이군.”
“흐음…….”
고진유는 점창파를 도와줄 방법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시끄럽겠군.’
앞으로 귀찮은 일들과 함께 머리 아픈 일이 많을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이미 결심한 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으로 빨리 돌아가도록 하죠.”
“진짜 방법이 없어?”
“완전히 노림수에 당했어요. 조금이라도 방어를 할 수 있다면 방법이라도 생각해 볼 텐데…… 신궁에서 점창파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들의 의지가 확실하다는 겁니다.”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묵경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휴우…… 조용히 넘어가야 할 텐데.’
그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고진유가 무림맹을 버리게 되는 되는 것이었다.
만일 고진유가 무림맹을 그만둔다면 중원에서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번 일로 말들이 많겠지?”
“후훗. 형, 당연히 많겠지요. 무림맹주 직을 그만둘 생각은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들을 상대로 무림맹의 이름 아래에서 싸울 것이니까요.”
고진유는 묵경의 표정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무옥을 얻은 그날 이후부터 사람과 마주치면 무슨 생각을 하려고 하는지 눈과 표정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제가 누굽니까? 천상천하제일인입니다.”
“이젠 천상까지?”
“천하제일인은 이미 되었으니 좀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해야지 않겠습니까.”
“하하, 뭐 당연한가. 진유 아우라면 천상까지 포함하는 게 맞아.”
묵경은 환하게 웃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 * *
후다다닥!
도당으로 들어서는 도사의 발걸음이 다급했다.
“장문인, 장문인.”
도사는 굳은 얼굴로 장문인을 계속해서 부르기만 할 뿐이었다.
덜컹!
다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도당에는 이미 점창파의 많은 고수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호현, 어떻게 되었는가?”
“적들이…… 본 산으로 다가오는 게 확실합니다.”
“그들의 수는 얼마나 되던가?”
“정찰을 나간 제자에 의하면 오백 명 정도의 인원이라고 합니다.”
“오백 명이라 했는가?”
“네, 그렇습니다.”
장문인 옆에 선 노도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장로회의 수장인 일장로로, 도명은 소호였다.
“오백 명밖에 안 되는군. 그 정도면 본 문의 제자들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소호진인은 막상 적의 수를 확인하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점창사일 소명 도인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적의 강함은 인원수와는 상관없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안일하게 생각하는 그를 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적의 수가 오백 명이라고 한다면 다르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상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소명, 지금 본 문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더냐? 우린 이길 수 있다. 맹주가 그들을 막아냈다면 우리라고 못 할 게 없다.”
“…….”
소명 도인은 그가 발끈하며 무림맹주와 비교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반박하지 않았다.
점창파에서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장문인조차 일장로의 눈치를 볼 정도이었다.
“그렇다면 일장로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산문에서 일천의 점창파 제자들로 그들을 맞이하여 전멸시킬 것이다.”
“일천이라면 본 문의 과반수가 넘습니다. 산문에서 일천의 제자로 싸울 거라면 차라리 전 인원을 동원해 그들을 상대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당연히 전 인원을 산문에 쏟아부으면 좋지. 하나 적이 소수의 인원을 따로 운용한다면, 본 문을 지킬 수 있는 제자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일천 명의 제자들이라면 적들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터.”
“…….”
소명은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답답했다.
‘젠장…… 전부 일장로의 말을 믿고 있다.’
더는 이야기를 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일장로의 뜻대로 산문에서 제대로 막아내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 * *
두두두두-
한 무리가 점창산의 산문으로 빠르게 다가섰다.
“훗. 드디어 도착했다. 오늘 재미있게 놀아봐야겠군.”
극일천무신궁의 오백 명이 점창산 산문에 도착했다.
산문을 둘러싼 채 점창파의 도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소이다. 본인은 극일천무신궁의 특수대 무망이라 하외다!”
무망의 목소리가 울렸다.
“…….”
“지금이라도 항복을 한다면 목숨만이라고 건질 수 있을 것이니라!”
무망은 이름을 밝힌 뒤 내력과 함께 사자후를 터뜨렸다.
현 점창의 무인들 중 그와 일대일로 생사결을 하여 제대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무망은 검을 뽑았다.
“지금부터 본인의 손속에 인정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분명히 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으니 원망하지 마라.”
“…….”
“전원 이놈들을 죽여라!”
무망의 외침에 오백 명의 특수대들이 점창파의 도사들을 향해 달렸다.
산문에서는 점창파 도사들이 다가오는 적을 향해 검을 펼쳤다.
콰아아앙-!!
파아아앙!!
한 명이 아닌 수백 명의 대인원이 한 번에 부딪히는 소리가 점창산을 울렸다.
“아아악!”
“커어어어억.”
한 번의 부딪힘에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일천 명의 점창파 도사들은 뒤로 밀려났다.
“크하하하! 지금 애들 장난하는 것인가?”
무망은 상대가 이 정도로 약한 줄은 몰랐다.
“삼백 명으로도 이길 수 있겠군.”
점창파의 도사들의 수준을 알았다. 조심스럽게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타아앗!
그는 앞으로 튀어나가면서 점창파 도사들을 베기 시작했다.
일천 명의 대인원으로 적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기까지는 반각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일장로 소호의 명에 소진 도인은 당당하게 내려왔다.
“으으악!”
사방에서 비명이 퍼져 나갔다.
소진 도인은 다급하게 물러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모두 물러나라!”
다급하게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점창파의 도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산 위로 살기 위해 달렸다.
“크크크크. 얼마든지 도망가라. 어차피 죽게 될 것을…….”
무망은 후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괴소를 흘렸다.
* * *
산문에서의 대패.
점창파 장문인은 산문에서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일천의 제자들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것이라 확신했었다.
점창사일 소명은 괜히 화가 났다.
자신 있게 말하던 일장로 소호의 얼굴에서 전혀 미안한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어허, 적의 무공이 상당히 강한 모양이외다.”
“지금 상대가 강하다고 말하신 것입니까? 어떻게 남의 일처럼 말하시는 것이오?”
소호의 눈에서 노여움이 솟아났다.
“소명, 지금 이게 내 잘못이라는 것이더냐?”
“……!”
소명은 어이가 없었다.
누가 화를 낼 상황인지 그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일장로님,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겠소이다. 차라리 가만히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소명, 이놈! 네가 나를 무시하는 건가? 하긴 점창사일이 되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인가? 잘났군.”
타앙!
그때 누군가 바닥을 세게 내리찍었다.
“일장로, 그만하시구려.”
“장문인…… 지금 본인에게 화를 내시는 모양이구려.”
“그렇소이다.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도 파악이 안 됩니까? 어떻게 그런 말까지 할 수 있소이까?”
“…….”
일장로 소호 진인은 장문인이 화를 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질투하시는 겁니까? 일장로께서 장문인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건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결코 장문인이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
일장로 소호 진인은 얼굴이 점점 붉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