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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15화 (315/425)

315화

살명전의 실패.

‘그 녀석 때문이군.’

신궁주 나하중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확히 반각 전에 올라온 보고서를 받은 직후였다.

예전까지만 해도 없던 편두통이 수시로 밀려왔다.

딸깍.

손에 든 푸른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옥상자를 열었다.

안에 담긴 환단들.

그는 신무신단을 잠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망할 놈…….”

신무신단을 볼 때마다 철갑에 들어 있던 제조법이 아쉬웠다.

현 중원에서 완벽한 신무신단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유일했던 그를 죽인 게 실수였다.

나하중은 신무신단을 하나 꺼내어 입에 넣었다.

복용한 후 중독이 지속되면서 정상적으로 지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더구나 신경을 많이 쓰는 경우가 생기면 고통이 나타나는 시간이 더욱더 짧아졌다.

“휴우…….”

신무신단의 기운 탓인지 조금씩 머리가 맑아져 갔다.

앞으로 신무신단 없이 제대로 생활하는 것도 힘들지 몰랐다.

읽다가 던져놓았던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명친왕부에 보냈던 살명전이 실패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삼황숙 명친왕이 역모에 의해 목숨이 사라졌다는 소식도 함께했다.

“무림맹주.”

그는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살명전이 실패한 원인은 무림맹주 때문이 아니었다.

극일천무신궁에 존재하는 한 명의 인물 때문이었다.

‘그를 빨리 치워야 하거늘.’

황궁의 일은 극비에 해당했다.

그가 황궁에 나타나서 방해를 한 건 신궁에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신궁주 나하중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천영령…… 이자가 범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보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수곡자입니다.”

그 또한 황궁에서의 내려온 소식을 듣고 곧바로 신궁주 나하중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수곡자는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인가?”

“…….”

수곡자는 마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았다.

“보…… 고드릴 게 있사옵니다.”

“황궁의 일이라면 알고 있다.”

“괜찮으신지요?”

“본좌가 어떻게 있어야 하지? 그놈에게 어이없이 당했다고 해서 울어야 하나?”

“아닙니다.”

“또 그놈이 우릴 완벽하게 속였더군. 제대로 속아 넘어갔어.”

“……송구하옵니다.”

“자네가 죄송할 건 없다. 우리가 실수한 건 신궁에서 그들의 눈을 치우지 못했다는 것이지.”

수곡자도 그 부분에 대해 잘 알았다. 이번 황궁의 사건에 무림맹주가 나타난 것은 신궁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신궁에서 움직일 때 신중하지 않는다면 이번 경우처럼 반복되겠지.”

“알겠습니다.”

수곡자는 허리를 숙였다.

“궁주님, 황궁의 일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수곡자, 자네가 궁주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소신은 그저 궁주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수곡자는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후후후. 당연한 대답을 하는군. 맞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될 뿐이다. 당분간은 황궁은 그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별 볼 일 없는 자들이지만 건드렸다가 중간에 그놈들이 다시 나선다면 피곤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궁주님의 예상이 맞을 듯합니다. 황궁을 정리하는 건 무림을 먼저 정리한 후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본좌의 생각이 틀릴 수 없다.”

“…….”

“참…… 저번에 이야기했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우리도 이번 일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기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한 곳을 정했겠지?”

“네, 그렇습니다. 운남의 점창파입니다.”

“그곳을 정한 이유가 있는가?”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구대문파 중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구대문파의 하나라…… 두 번째는?”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성세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구대문파와 비교해서입니다. 가볍게 움직여서 멸문을 시키기에 적당합니다.”

“세 번째는?”

“하남에서 먼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사전에 알려졌다고 해도 그들이 막기에는 먼 곳입니다.”

“후후후. 점창파라면 중원 무림에 적당히 체면치레는 한 것이군.”

“이 일로 인해 무림맹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것입니다. 본 신궁을 건드리면 정파에서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극일천무신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두려움을 줘야 합니다.”

“맹주에게 압박을 줘서 서로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신궁주 나하중은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점창파를 치기 위해선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신궁의 움직임을 숨겨야 했다.

“우리가 점창파로 움직인다면 바로 알게 될지 않을까?”

“맹주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아하. 성동격서.”

“그렇습니다. 산동악가를 공격하는 척 시선을 돌릴 것입니다.”

“크하하하!!”

나하중은 오랜만에 대소를 터뜨렸다.

그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일은 꼭 성공하기를 빈다.”

“걱정 마십시오. 절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수곡자는 자신이 있었다.

점창파를 치기 위해 이미 그곳으로 오백 명의 극일천무신궁의 무인들이 흩어진 채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나하중조차 알지 못했다.

궁주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극일천무신궁을 떠나지 않은 한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난…… 최선을 다할 뿐이다.’

* * *

고진유와 함께 세 명은 섬서성 화산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서봉이 아닌 북봉을 향해 올라섰다.

묵경은 화산의 북봉인 운대봉으로 오르는 게 처음이었다.

“여긴 창룡령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드디어 구경을 하는군.”

“묵경 형, 창룡령이 뭔가요?”

“북봉의 산마루 모양이 마치 칼 모양처럼 길게 연결된 것인데 멀리서 보며 꿈틀거리는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창룡이라 하더라고.”

“멋지겠는데요?”

“그리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곳은 용맥이 흐르는 곳이라 해.”

앞서 가던 고진유는 뒤를 돌아보았다.

“묵경 형, 용맥이라고 하셨어요?”

“어…… 그러던데? 나도 들은 말이야. 근데 왜?”

“……그냥요.”

고진유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다.

운대봉에 위치한 극일가의 무옥천지.

화산파에서 공부하는 도사들이 모여 있는 운대도천은 다른 이름으로 창룡령에 세워진 도룡묘의 사원이었다.

‘용맥이라…….’

아버지에게 듣기에 극일가의 자손은 용의 가문이라고 들었다.

용맥과 극일가의 관계.

필히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인양과 녹림야검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올려다보는 운대봉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구름 사이로 창룡령이 보였다.

“와아…… 정말로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이건 여태까진 본 것 중 최고인 것 같다. 나도 산속에서 꽤 오래 지냈는데 이런 장관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

네 사람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바람에 따라 출렁거리는 창룡을 바라보았다.

‘여기인가?’

창룡령으로 가까이 올라서자 멀리 사원이 보였다.

붉은 글씨로 도룡묘라는 세 글자가 나타났다.

“도착한 모양이네요.”

고진유는 앞장을 서며 올라섰다.

‘음…….’

도룡묘 앞으로 열 명의 도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

고진유는 황궁을 떠난 뒤부터 얼굴을 변용한 상태였다.

“본도가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군요.”

“얼굴이 달라지신다고 해서 가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소신들은 천무공을 알아볼 수 있지요.”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천무공을 알아보셨다면 극일가의 사람이 맞군요.”

“소신은 서한생입니다. 도명으론 공강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신도 가주님께서 찾아오셔서 고맙습니다. 안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공강은 도룡묘의 옆을 지나 안으로 먼저 들어가며 안내를 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장이 세워져 있었다.

“창룡산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가주님, 앉으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고진유와 함께 세 명은 산장에 들어 선 뒤 창가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저 멀리 서봉인 연화봉이 멀리 보였다.

“여기서 보니 연화봉의 상궁이 보이는군요.”

“그렇습니다. 화산파가 보입니다.”

공강은 여전히 선 채로 대답을 했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고진유는 맞은편에 앉은 그를 유심히 보았다.

“혹시……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지 아셨습니까?”

“얼마 전까지 몰랐습니다. 가주님의 신분을 알게 된 것은 태북천 님께서 알려주신 후입니다.”

“그렇군요.”

“소신도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소신은 전대 가주님의 자식이 공녀님밖에 계시지 않다고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직접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가주님께서도 짐작하셨을 것이라 보입니다. 무옥천지는 극일가의 맥. 용맥을 진정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곳입니다.”

“…….”

“만일 그분의 자식에게 사내가 없었다면 용맥은 끊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단 한 번도 용맥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쌍둥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후후후. 아버지께서 정말로 모두를 제대로 속였군요.”

“그렇습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아니, 두 분…… 모두. 망혼대법을 펼칠 생각을 하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공강은 망혼대법을 펼쳤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모든 것을 잊은 뒤 화산파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용맥의 전인은 스스로 찾아온다는 전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공강은 멀리 서봉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천명은 대단합니다. 가주님께서 화산파의 제자가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본 가의 무량삼천지 중 무옥천지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 몰랐거든요. 이상하게 가끔 여기 운대봉을 보면서 낯선 느낌이 아니라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지요.”

“가주님께서는 정확히 무옥천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굳이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 가주님께서 무옥천지에 가시면 알 게 될 것입니다. 그게 더 빠르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알겠소이다. 무옥천지에 들어가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공강은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께서 다급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급하게 보인 모양이군요.”

“가주님께서는 아니라도 하셔도 남이 그렇게 보인다면 한 번 정도는 길게 호흡을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잠시 쉬고 계시지요.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공강은 일어난 뒤 창룡산장을 나섰다.

그의 발바닥은 마치 허공을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네 사람은 편하게 몸을 움직였다.

묵강은 인양을 보며 물었다.

“인양아, 방금 나간 저분의 내력을 읽을 수 있어?”

“아니……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그렇지? 녹검 씨는?”

“저도 인양과 같았습니다…….”

묵경도 두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공강의 내력을 읽을 수 없다는 건 그들보다 내력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저분은 단전이 없어요.”

“엉? 무슨 말이야? 내력을 익히지 않았다고?”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내력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미세한 기운이 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방금 나가는 모습은 신법이 아닌가?”

“극일가의 류공신법일 겁니다.”

“……뭐야? 무공을 펼칠 수 있잖아. 그런데도 내력이 없다고?”

“저분은 특이한 분이십니다. 공공천심법이 맞을 겁니다. 그분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단전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

“온몸이 텅 비어 있는 단전입니다. 필요한 순간에 대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며 사용하는 것이지요.”

세 사람은 고진유가 말한 것을 알았다.

“와…… 엄청난 분이네. 대자연의 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면 내력은 엄청나겠는데?”

“어쩌면 저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죠.”

“그럼…… 진유 아우보다 강하다는 거야?”

“가끔씩 잊고들 계시네요. 내력이 당연히 높고 많으면 좋죠. 하지만 무공은 내력이 높다고 해서 강한 게 아니잖아요.”

세 사람은 고진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가진 내력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오로지 내력이 높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죠.”

“알겠어. 가끔씩 기본을 잊는다니깐.”

“저도…….”

고진유는 창문 밖을 통해 창룡령의 끝을 보았다.

“아. 잠시 쉬고 계세요.”

“어딜 가려고?”

“다녀올 곳이 있을 것 같아서요.”

“알았어. 다녀와.”

고진유는 산장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한번 가볼까?”

* * *

창룡령으로 들어섰다.

거의 절벽 옆으로 길을 걷는 듯했다.

‘아찔하군.’

무림인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올라왔다가는 위험한 길이었다.

하지만 고진유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창룡령을 따라 점점 위로 향했다.

휘이이이-

방금까지만 해도 불지 않았던 바람이 불어왔다.

구름이 바람에 휘날리며 봉우리 아래로 지나가면서 오색의 빛을 날리는 듯했다.

‘오운봉인가?’

화산에서 수련을 받을 때 오운봉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저곳이군.”

오색빛이 여전히 구름 안에서 비추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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