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장개지는 살고 싶었다.
바로 거짓말이 나왔다.
“아니오, 난……!”
퍽.!
금의위가 그의 복부를 내리찍었다.
“커어억!”
장개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야비한 자로군. 내가 모를 줄 알고?”
금의위는 바닥에 쓰러진 그를 잡은 뒤 포박했다.
한청은 수하에 의해 질질 끌려오는 인물을 보았다.
‘훗…… 저자를 잡았군.’
명친왕부의 인물들 중에서 필히 잡아야 할 인물이 장개지였다.
한청은 앞으로 끌고 온 그를 내려다보았다.
“장 선생,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
“평소에는 말이 많던 인물이 왜 조용한지 모르겠군. 할 말이 없는가?”
“사, 살…… 려주십시오…….”
“하하, 겨우 한다는 말이 살려달라는 것이군.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서 살아날 수 없어.”
스르릉.
한청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이런 놈은 시간을 주면 줄수록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종류의 인물이다.
“네놈의 혓바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아났는지 아느냐? 하지만 이제는 두 번 다시 못하겠지. 황명의 뜻으로 네놈의 생명을 거두어주겠다.”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그만 죽어라.”
한청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스걱.
날카로운 검기가 그의 목을 지나갔다.
붉은 피가 그의 가슴 아래로 흘러내렸다.
* * *
명친왕은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난 그의 표정에서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드륵.
그의 등 뒤로 문이 열렸다.
그를 돌아서 황제가 앞으로 다가왔다.
“…….”
명친왕은 앞자리에 앉은 황제를 끝까지 쳐다보았다.
황제와 명친왕은 말없이 서로를 볼 뿐이었다.
“숙부, 황제의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났습니까?”
“넌…… 싫더냐?”
“싫은 건 아니지만 좋은 자리도 아닙니다.”
황제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외로운 자리입니다. 황위에 앉아 있다 보면 세상에 오직 혼자밖에 없음을 알게 되지요.”
“…….”
“굳이 이런 자리를 왜 목숨을 걸고 가지고자 했습니까?”
“내 자리이니까. 그 자리는 오래전부터 내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내 자리를 찾아 앉고 싶었을 뿐이다.”
황제는 그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많은 대신들이 숙부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알고 있다. 역모에 실패하면 죽음이지 않는가.”
명친왕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조정에서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을 필히 죽이고자 할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나를 살리고 싶은데 그들의 뜻을 따라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후후. 너도 나를 죽이고자 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됐다. 네가 다른 놈들의 말을 듣고 나를 죽이고자 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
“넌…… 황제의 자리에 올라설 자격이 충분하다.”
“고맙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무엇입니까?”
“내 가족과 네 사촌들을 살려줄 수 있겠느냐? 그들은 항상 내 일에 반대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황제가 최선을 다하겠다면 믿을 수 있겠지. 그만 끝내도록 하자. 피곤하구나.”
명친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이야기는 모두 했다. 더는 황제와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문 앞에 선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좋은 황제가 되어라.”
문을 열었다.
밖에 금의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자.”
명친왕은 금의위들과 함께 대전을 나섰다.
황제는 그의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잘 가십시오.’
* * *
황궁의 모든 일이 끝났다.
이후 황제는 역모 사건을 막아준 네 사람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황궁에서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도독 한청은 황제에게 한 장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고진유가 쓴 서신이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황제가 되었으면 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 시각, 네 명은 유천정에 도착해 있었다.
“허허허. 황제에게 말도 없이 나오셨단 말입니까?”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서신 한 장을 쓴 뒤 나왔습니다.”
“황제가 많이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보아하니 딴 뜻도 있는 듯하더군요.”
“알고 있습니다. 원래 잘난 사람의 운명이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기 저 녀석도 가주께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더군요.”
고진유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앉은 채 자신을 보는 적소청과 시선이 마주쳤다.
“가주께서는 당연히 관심이 없겠지요?”
“큰일 날 일입니다. 겨우 두 명의 여인도 간신히 허락을 받았지요.”
“허허허! 천하의 가주께서도 무서운 분이 있는 모양이외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노신도 얼른 주모님들을 만나 뵙고 싶군요.”
“다음에 시간이 나면 한번 같이 오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기대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황궁의 일이 아닌 무림으로 대화를 돌렸다.
“가주께서는 극일천무신궁을 세운 천문전주가 비천의 인물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일월가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적소운의 입에서 나온 일월가(日月家).
고진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주 오래전 원시무림의 시절, 중원을 양분했던 두 가문이 존재했다.
일월가와 극일가.
서로 불가침의 조약을 맺은 그들은 각각 중원을 남북으로 양분하며 지배했다.
하지만 세상은 한 땅에 두 명의 절대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두 가문은 서로를 적대하며 싸웠다.
그리고 원시무림의 종말과 함께 일월가는 사라졌다.
“설마 그들이 일월가와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다만 극일천무신궁의 비천이 일월가의 잔당들이 아닐까 생각되어 예전부터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고진유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의 뒤에 조용히 함께한 세 사람도 마치 할아버지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집중하며 들었다.
“극일천의 인물들이 극일천주이신 전대 가주님께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천주이신 가주님께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이지요. 비천이 아무리 강한다고 한들 그들이 전부였다면 가주님께서는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겝니다.”
“…….”
고진유는 의문이 풀렸다.
그동안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의문.
묻고 싶어도 그 부분에 대해 시원하게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왜 비천을 정리하지 못했을까?
무리하더라도 아버지라면 가능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상대하고자 했다.
‘일월가의 존재 때문이었나.’
비천의 뒤에 일월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비천 자체가 일월가인지 당장 알지 못했기에 두고 봤던 것이었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월가가 중원에 스스로 나오지 않는 이상 잡을 수가 없었소이다.”
“그 말씀은 그들을 유인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일월가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비천을 잡아야 하겠지요.”
또 한 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극일천무신궁 뒤에 비천이 끝이라고 여겼건만, 또 다른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가주님, 걱정되십니까?”
“…….”
주름이 많은 늙은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은 그는 평온하게 보였다.
그에 비해 일월가 때문인지, 자신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가주님, 그들이 숨어 있다는 건 여전히 본 가를 이길 자신이 없다는 뜻이라 여겨집니다만…….”
적소운은 미소를 지었다.
극일천무신궁의 뒤에 비천이 아닌 일월가가 있다고 한들 극일가의 힘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가주께서는 본 가가 극일천을 세운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본 가의 힘이 무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조님의 유언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본 가의 힘이 아니라 극일천이란 새로운 세력을 만들었습니다. 본 가에서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함이었지요.”
“…….”
그의 말처럼 극일천은 중원 무림에서 수백 년 동안 보이지 않게 많은 일에 관여했다.
“가주께서는 극일천의 진짜 목적이 암중에서 무림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적소운의 물음에 고진유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제대로 들은 게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월가를 끌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현 무림을 예전처럼 하나의 무림, 원시무림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문전주가 주장하던 무림 말살 계획이 일월가가 원하는 원시무림으로 돌아가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극일천무신궁, 즉 일월가가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고진유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천문전주 나하중이 그동안 무림의 말살을 주장한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렇군. 이유는 일월가였어.’
극일천을 세운 목적.
중원 무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사라지지 않고 숨어 있던 일월가를 끌어내려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완벽한 극일가를 상대로 그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택한 것이다.
빈틈을 만들자.
그들이 극일가를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극일천을 만들면, 분명히 움직일 것이라고.
“일월가를 끌어내기 위해 극일천을 만들어서 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주었지요.”
“그들이 비천이겠군요.”
“네, 맞습니다. 일월가는 극일천을 무너뜨린다면 극일가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극일천이 무너졌지만 극일가에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극일천과 극일가는 전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때가 되면 가주님을 찾아뵙고자 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가주님, 일월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무옥천지에 다녀오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무옥천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곳은 화산에 있습니다.”
“……화산이라 하심은?”
“네. 가주께서 생각하시는 그곳이 맞습니다.”
적소운의 대답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극일가의 무옥천지가 화산에 있다니.
화산파 제자인 고진유가 화산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가주님께서 당연히 놀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하늘의 운명이지 않습니까? 극일가의 가주께서 화산파의 제자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
운명은 천명에 의해 따른다고 했는가.
화산파의 제자가 된 고진유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준 천명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화산에 올라가시면…….”
적소운은 무옥천지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곳이 무옥천지였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였다.
“고맙습니다. 무옥천지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지주께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도움이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곧 알게 될 비밀이었소이다.”
“좋은 말을 듣고 갑니다.”
“가주께서 언제든지 노신을 부르신다면 당장에라도 달려가겠소이다.”
적소운은 두 손을 가볍게 얼굴 높이까지 올려 고개를 숙였다.
* * *
무량삼천지의 세 장소가 밝혀졌다.
첫 번째 귀주금천지는 이미 암흑금상으로 변한 뒤 귀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 유천지는 유천적가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무량삼천지 무옥천지는 화산에 있었다.
황궁에서 나온 네 사람은 변장을 한 뒤 빠르게 화산으로 움직였다.
“진유 아우, 정말로 무량삼천지 중 무옥천지가 화산에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 말은 화산파가 무옥천지란 말은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음…….”
묵경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바로 알게 될 겁니다.”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금 알려주면 안 될까?”
“후후, 그곳은 운대봉에 있습니다.”
“운대봉? 화산의 북봉을 말하는 것인가?”
화산은 하늘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하늘로 우뚝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화산파는 서봉 연화봉에 있었다.
“네. 맞습니다. 북봉인 운대봉에 있습니다.”
“그곳에도 화산파가 있어?”
“음…… 화산파라고 하기에 애매하긴 합니다만…… 정확히 말을 한다면 도경을 공부하는 도사들이 있습니다. 본 문에서 운대도천(云臺道天)이라 부르는 장소입니다.”
고진유의 말처럼 도경을 공부하는 도사들이라면 무공도사가 아닌 학도(學道)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극일가의 삼대가신가.
유천지와 귀주금천지 또한 무공과는 멀었다.
마지막으로 무옥천지도 결국 무공과는 관계가 없는 곳일 듯했다.
이번에는 한참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인양이 물었다.
“진유 형, 운대도천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인양아. 왜 무옥천지(武玉天地)라 부를까?”
“모르겠습니다.”
“음,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에 그곳에 가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 하셨지.”
“아하…… 그렇군요.”
고진유는 세 사람을 보았다.
“우리가 갈 곳을 알았으니 빨리 움직여 볼까요?”
“좋았어. 가자.”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쏜살같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세 명의 인영이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