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13화 (313/425)

313화

녹림야검의 눈동자가 빛났다.

명친왕부를 빠르게 빠져나가는 신형.

‘분명 명친왕부에서 외부로 전령을 보낼 거라 하셨지.’

고진유의 예상이 맞았다.

녹림야검은 전령의 움직임을 쳐다보면서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

사내는 말을 재촉하며 남쪽으로 달렸다.

최대한 일찍 도착해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동안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쉬이이익!

순간,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예기가 날아갔다.

퍼어억!

달리는 말의 목에 비수가 박혔다.

기마는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크억!”

그와 동시에 말을 탔던 전령이 바닥을 굴렀다.

전령은 재빨리 일어나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살폈다.

“웬 놈이냐? 어서 나오지 못할까?”

툭툭.

탓!

전령의 반사 신경도 빨랐다.

뒤에서 등을 가볍게 두드리자 전령은 앞으로 튀어나가며 재빨리 돌아섰다.

하지만,

‘어디냐?’

전령은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인기척이 확실했다.

거친 신음을 내는 말의 목에는 비수가 박혀 있었다.

채애앵!

전령은 검을 빠르게 뽑은 뒤 주위를 살피기 위해 천천히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헉.’

그때, 눈앞에 나타난 인물을 보며 전령의 눈이 커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목을 지나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전령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자, 무슨 내용인지 한번 볼까?”

녹림야검은 전령의 몸을 살폈다. 그의 품 안에서 붉은색 천에 싸여 있는 전서를 찾았다.

하남성부에 전해지는 명친왕부의 친필로 적힌 전서가 분명했다.

“대단한 인물이군. 혹시나 만약을 위해 다른 곳에도 안배를 해놓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자님께는 안 돼. 이미 네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계시거든.”

녹림야검은 전령의 시체와 말을 정리한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평소 조용하던 금옥에 수십 명의 인물들이 한꺼번에 갇혔다.

간수장 임승문은 금옥에 갇힌 인물들을 보면서 과연 문제가 안 될지 두려울 정도였다.

금옥에 끌려온 인물들의 신분들은 대단했다.

‘대장군…….’

두꺼운 철문 안을 살필 수 있는 작은 구멍으로 그를 볼 수 있었다.

기운이 빠진 채 철갑에 묶여 있는 인물은 대장군 독중기였다.

‘허어. 이런 거물을 잡아오다니…….’

대장군을 잡은 인물은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옆에는 조정 대신들이 하나씩 감방을 차지했다.

‘아이고…… 난 모르겠다.’

같은 금의위 소속이라 하나 금옥에만 있던 그는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괜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그게 더 편했다.

자신이 맡은 일만 하면 될 뿐 오지랖 넓게 궁금증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간수장 임승문은 까치발로 고개를 들어 안을 슬그머니 보았다.

‘잘 있군.’

난리 칠 것이라 여겼지만 오히려 그는 다른 인물들보다 조용했다.

척척척.

그때, 금옥으로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금옥으로 앞서 내려온 인물.

간수장이 도독 한청을 보며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도독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군.”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자네가 금옥으로 발령을 받은 지 일 년이 넘었지?”

“일 년하고 삼 개월입니다.”

“그렇군. 올라올 시간이 되었어. 며칠 뒤에 인사이동이 있을 테니 그렇게 알고 있게.”

“고맙습니다.”

임승문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보직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임승문은 곧바로 한청 뒤에 나타난 사내를 보았다.

백의무복으로 가벼운 경장 차림을 한 사내.

금의위 사이에서 이미 그의 정체가 알려졌지만 그는 사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한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인들은 잘 지내고 있는가?”

“시끄럽지만 않으면 잘 지내는 편입니다.”

“훗. 그렇겠지.”

“대장군은 어디에 있나?”

“저기 보이는 철문 뒤에 있습니다.”

임승문은 철문을 얼른 가리켰다.

“문을 열어라.”

“알겠습니다.”

그는 허리에 찬 열쇠를 꺼내어 철문을 열었다.

철컥.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철갑에 묶여 있는 독중기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청…….”

독중기는 이를 갈며 앞에 나타난 두 명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역적은 입을 다무시오.”

“누가 역적이라는 말이더냐? 난 나라를 위해……!”

“명친왕과 역적질을 계획한 그대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소이다.”

“뭣이?”

“본인이 모를 것이라 여겼소이까?”

“…….”

독중기는 말문이 막혔다. 상대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필요했다.

그는 당장 우길 수밖에 없었다.

“한 도독.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윽.

한청의 앞으로 고진유가 나섰다.

“우리에게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대체…… 넌 누구지?”

대전에서 자신을 잡았던 금의위였다.

한데 지금 앞에 있는 모습은 금의위가 아니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면 대답을 똑바로 하면 됩니다.”

휙!

고진유는 그의 앞으로 서신들을 던졌다.

“이게 뭔지 아시겠소이까?”

‘헉…… 이것들은…….’

그동안 명친왕과 주고받았던 서신들이었다.

“이것들이 황제 폐하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

“황궁에서 가장 큰 죄질이 역모죄라고 하더이다. 당신이 역모죄를 받게 되면 당신의 가족들, 그대의 부인, 그리고 자식들이 어떻게 될지 잘 알겠죠.”

독중기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사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의미를 알아내야 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뭔가?”

“본인이 원하는 게 있다고 보시오?”

독중기는 가만히 있는 고진유를 보며 마음이 급해졌다.

“무엇이든지 하라는 대로 하겠소이다. 가족들만 살려준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소!”

“본인이 당신을 신뢰할 수 있겠소?”

“…….”

독중기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알겠소. 일국의 대장군이었던 당신의 말을 믿겠소.”

“……고맙습니다.”

“본인이 그대에게 원하는 것은 간단하오. 탄핵안에 대해 모든 것을 인정한 후 공직에서 물러나시오.”

“그…… 것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가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탄핵안의 내용을 인정하면 될 뿐.

그렇게 된다면 가족들에게는 전혀 피해가 없을 것이었다.

“어떻소? 인정하겠소이까?”

“……알겠습니다. 모두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모든 죄를 인정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면 그대의 가족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외다.”

“고맙습니다.”

독중기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 * *

황제의 주제하에 탄핵안에 대한 죄인들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황제의 앞에 죄인들이 모두 끌려 나왔다.

시작부터 힘들 것 같았던 대장군 독중기의 탄핵안은 본인 스스로가 인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가장 먼저 심문을 받은 독중기가 인정을 해버리자 뒤에 남아 있던 죄인들은 모함이라고 우길 수 없었다.

그들도 모든 죄를 인정하며 금옥에 다시 갇힌 뒤 판결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시진 후, 황명이 내려왔다.

대장군 독중기의 판결은 간단했다.

대장군 독중기를 모든 공직에서 파면하며 그의 집에서 일 년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근신을 명한다.

황제는 비록 그가 높은 지위에서 부정부패를 저질렀지만 그동안 나라를 위한 공로가 많아 이를 참작했다고 밝혔다.

사형까지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주위의 인물들은 황제의 가벼운 벌에 놀랐다.

당사자인 독중기도 마찬가지였다.

목숨도 살려준 것도 있지만 그의 명예를 최대한 지켜준 황제가 고마웠다.

그는 금옥에서 황궁을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만일 황제가 명친왕이었다면 자신이 살아날 수 있었을까 생각되었다.

덧붙여 그는 하남성부에 사람을 보내 절대로 근무지를 이탈하지 말도록 했다.

군부는 대장군 독중기에 대한 소문과 그의 명으로 처음과 달리 안정이 되어갔다.

* * *

황제는 단둘이 마주 앉은 고진유를 보았다.

이번 일에 대해 처리하는 그를 보면서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았다.

황제는 감사의 술잔을 내밀었다.

“맹주, 고맙소이다. 아직 멀었지만 본인이 술 한잔 올리겠소이다.”

“감사합니다.”

고진유의 황제의 술을 받았다.

중원에서 황제와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고진유밖에 없을 듯했다.

“대부께서 나서주실 줄은 몰랐소이다.”

황제가 말한 대부는 유천정의 적소운이었다.

그를 대부로 모신다고 해서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섰다.

“대부께서 맹주께서 부탁했기에 나섰다고 말씀하셨소이다.”

“맞습니다.”

“그분과 어떤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본 가의 가신이외다.”

“…….”

황제는 살짝 당황한 눈빛이 나왔다.

그가 중원 제일 유가의 주인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맹주는 화산파의 제자라고 들었소이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본도의 가문은 따로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몰랐소이다.”

무림 최고의 무림인이며 유천적가를 가신으로 둔 사내.

어쩌면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본도는 전혀 황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 가에서 유천적가를 세운 이유는 관과 무림이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일도 명친왕이 극일천무신궁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무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에 황제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다.

명친왕이 그들만으로 역모를 꾀했다면 그를 막지 못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게 확실했다.

명친왕은 오히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것이었다.

“맹주의 도움에 고마울 따름이외다.”

“명친왕에 대한 일은 황제께서 처리하시면 될 겁니다. 무림인을 끌어들여 황제를 시해하려고 했던 증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고민이외다. 이미 힘이 빠진 그를 굳이 역모죄로 다스린다는 게…….”

“그건 황제께서 알아서 처리하시면 됩니다. 그를 용서한다고 해도 본도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그가 훗날에 황제의 뒤에서 다시금 검을 겨눌지도 모르지요.”

“…….”

“본도는 무림이 관여하지 않은 이상 황궁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고진유는 단호하게 말했다.

명친왕을 살려준 뒤 오히려 그에게 위험을 당하게 되더라도 그냥 보고만 있겠다는 뜻이었다.

“알겠소이다.”

“존경받는 주군이란 자신의 사람을 보살피고 살려야 합니다. 어설픈 측은지심은 자신의 사람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황제는 기운이 빠진 듯 어깨가 축 늘어졌다.

숙부를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자 했다.

고진유도 마찬가지였다.

살려주는 게 어떤지 물었지만 그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대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황제.”

고진유는 내력을 실어 그를 불렀다.

황제는 흠칫 놀라 눈이 커졌다.

“모든 결정의 책임은 본인이외다. 남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는 말은 우유부단함을 남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수하들이 그런 주군을 마음속 깊이 따르겠습니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참고를 할 뿐 주군이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황제의 운명이며 숙명입니다. 그것이 싫다면 내려오시지요.”

“…….”

고진유는 단호하게 야단을 치듯 말을 했다.

황제는 마치 어른에게 충고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알겠소이다. 남이 아닌 본인의 뜻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소이다.”

* * *

황명이 떨어졌다.

수백 명의 금의위군이 명친왕부로 쳐들어갔다.

명친왕부를 지키던 사병들은 금의위군의 기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황제가 하루 만에 움직일 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명친왕이 앞으로 내려서면서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한청, 이노오오옴!! 여기가 어디라고 금의위를 끌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더냐?!”

도독 한청은 황명신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역모를 꾀한 죄인을 잡고자 한다. 그대는 당장 무릎을 꿇고 포박을 받아라.”

“누가 역모를 했다는 것이더냐? 황제가 본 왕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죽이고자 하는 것임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대가 억울하다면 황제 폐하께 말하라. 모두 밝혀질 것이다.”

한청은 황명신검을 든 손을 번쩍 들었다.

“저자를 잡아라.”

“넵!!”

금의위들이 앞으로 나서며 명친왕을 잡고자 앞으로 나섰다.

채애앵.

명친왕은 옆에 선 부하의 검을 뽑은 뒤 금의위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휘둘렀다.

하지만 금의위들은 그를 간단히 제압한 뒤 금줄로 포박했다.

“놔아아아라!! 이놈들아, 감히 누구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더냐? 뭣들 하느냐, 이놈들을 죽여라!”

그는 금줄에 묶이는 동안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멀리서 숨은 채 그 장면을 보는 인물.

‘끝…… 났어.’

장개지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았다.

그를 도와 황제에 오르게 한 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서고자 했다.

이젠 한낱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런 쥐새끼가 있나?”

“……!!”

“네놈이 장개지가 맞겠지?”

장개지는 뒤에서 노려보는 금의위와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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