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대전은 적막감에 잠겼다.
황제의 부름에 나온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금의위에게 끌려갔다.
타악!
황제는 장계의 책자를 덮고 대전을 둘러보았다.
황제와 시선을 마주치는 대신들은 없었다.
조정의 실권이 전혀 없다고 여겼던 황제가 단번에 대장군을 잡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신 신료들은 두려웠다.
하지만 황제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태상대군께서는 저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황제, 국법대로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들의 죄질에 따라 형량을 주면 될 것이외다.”
“알겠습니다.”
황제는 대신들 사이에서 형조시랑 손호연을 찾았다.
“형조시랑은 앞으로 나오게.”
“소신 형조시랑입니다.”
“태상대군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 보네.”
“넵, 똑바로 들었사옵니다.”
“이번 일은 그대가 맡아주시겠소?”
“소신, 최선을 다해 처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손호연은 허리를 숙였다.
대전에서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이제 문제는 군부였다.
대장군 독중기를 금의위에서 끌고 간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군부에서 그의 부장들이 어떻게 나설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도독부 주요 자리의 인선은 독중기가 올린 거야. 현재 군부의 오호도독부를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은 황궁에 없어.’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의 인물까지 단번에 모두 제거해야 했다.
고진유는 빠르게 움직여 금의위를 이끌고 오호도독부의 정문에 도착했다
먼저 오호도독부를 살피던 금의위가 다가왔다.
“대장군을 따르던 모든 인물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잘됐군요.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겠군.”
고진유는 앞장을 서며 안으로 들어섰다.
후다다닥!
황금빛 관복을 입은 금의위의 앞을 병사들이 달려들면서 막아섰다.
“금의위가 이곳에 무슨 일이오?”
“물러나라! 황제를 시해하려던 역적을 잡으러 왔다!”
우우우우웅-
고진유의 사자후에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고진유의 손짓에 한 걸음 뒤에 있던 인양과 녹림야검이 앞으로 나오면서 병사들을 옆으로 치웠다.
도독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인양, 문을 열어라.”
“넵.”
우우우웅-
인양은 오른손에 내력을 끌어 올려 문을 향해 권강을 쏟아냈다.
콰아아앙!!!
두 자의 두께로 된 도독부의 문이 부서져 내리고, 폭음과 함께 건물 안이 드러났다.
도독부 안에 모여 있던 장수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서진 문을 바라보았다.
이건 금의위가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채애애앵!
그들은 허리에서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모두 검을 버려라!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
도독부에 모인 장수들은 어떻게 할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훗. 폐하의 명이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니 역모를 작당한 게 맞군. 금의위는 이놈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알겠습니다!”
금의위들이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금의위가 감히 군부에 와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그들도 금의위에 잡혀가는 순간 끝임을 알았다.
“반항하면 이자들을 죽여도 좋다.”
고진유의 명과 함께 인양과 녹림야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파아앙!
스걱-
그들은 두 사람의 공격을 받아낼 수 없었다.
“아아악!!”
“커억.”
인양과 녹림야검이 펼치는 무공을 보면서 보통 금의위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다.
거의 반죽음 상태로 바닥에 쓰러진 두 명을 본 그들은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저들의 단전을 모두 거둔 뒤 제압하라.”
인양과 녹림야검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점혈을 했다.
그 뒤로 금의위들이 나서며 금줄로 전부 포박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주요 인물들을 잡아들이자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뇌진이 사라졌다.
고진유는 그들을 건물 밖으로 끌고 나왔다.
수백 명의 병사가 모여 있었다.
“모두 보았는가? 이들은 황명을 어긴 죄인들이다. 지금부터 군부는 당분간 금의위 도독께서 맡을 것이다. 이들 외에 수장은 앞으로 나와라!”
병사들 사이에서 한 명의 인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대는 누구인가?”
“경력사 강문입니다.”
“그대는 지금부터 황명을 대신하여 본인이 직접 도독첨사에 임명하겠다.”
척.
강문은 황명이란 말에 부복을 했다.
“소신 강문. 황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금의위 도독의 명 없이는 절대로 군을 움직여선 안 된다. 만일 누군가 그대를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황숙이나 군왕이라도 신분과는 상관없이 죽여도 좋다는 황명이시다. 알아들었는가?”
“소신, 목숨을 걸고 황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좋다. 이번 일만 정리가 된다면 그대의 충정에 대해 황제께서 필히 치하하실 것이다.”
강문은 인생에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았다.
그동안 능력이 있었지만 대장군의 인물이 아니라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동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세월을 한탄하며 보내고 있던 차였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제 동료들도 함께했으면 합니다. 모두 능력이 뛰어납니다.”
고진유는 적극적으로 나선 그가 마음에 들었다.
“좋다. 그대에게 도독동지의 자리에 임하겠다. 그대의 동료들에 대해서 그대가 각각 첨사의 자리에 명하라.”
“고맙습니다.”
강문은 단번에 도독동지까지 오르게 되면서 동료들까지 첨사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린 이들을 끌고 간 뒤 죄를 묻고자 할 것이니 군부를 부탁하겠다.”
금의위들은 고진유의 손짓에 이십여 명의 인물들을 끌고 나갔다.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군부를 장악하는 일은 시간을 끌면 안 되는 일이었다.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처리하는 게 정석이었다.
조금 후 군부에서의 일이 명친왕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었다.
‘후후후.’
고진유는 미소가 나왔다.
‘명친왕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데.’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을 끊었으니 어떻게 나올지 대응이 기다려졌다.
* * *
장인태감 화진은 군부를 장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굳었던 얼굴의 안색이 밝아졌다.
“군부를 잡았어. 역시…….”
금의위를 이끌고 간 고진유의 능력에 감탄이 나왔다.
이젠 서창의 차례였다.
“부형, 우리도 그놈들은 잡아와야겠지?”
“알겠습니다. 당장 서창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 좀 해주시게.”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제독 동창 부형은 돌아섰다. 그의 뒤로 동창 소속의 환관들이 단호한 표정으로 정렬해 있었다.
부형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서창을 접수한다.”
“넵.”
파아앗!
동창의 환관들은 서창으로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부형도 수하들의 뒤를 바로 따랐다.
동창에서 서창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각이면 충분했다.
선두에서 움직이던 동창 소속의 환관들은 서창에 내려서 곧바로 호위를 선 서창의 호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앙!!
서창 소속의 환관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들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았다. 군부가 황제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상황은 종료가 된 듯했다.
우르르르-
뒤에서 동창 소속의 환관들이 쏟아져 들어섰다. 그대로 밀어붙이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서창 독주 유기 또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수하들과 싸우는 동창의 전체 인원은 평소와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버티고 싶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스르륵.
뒤에서 앞으로 나오는 신형이 보였다.
제독 동창 부형이었다.
“유 독주, 그만 항복을 하시구려.”
“동창…… 에서 왜 그러는 것이오? 만일 황제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만히 계실 것 같소?”
“폐하께서 허락하신 일이네. 그대 또한 탄핵안의 이름에 적혀 있지.”
“누, 누가…… 내 이름을…… 이건 모함이오!!”
“독주, 그대가 모함이라고 주장한다면 모든 사실을 조사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유기는 이들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동창에 의해 잡혀간다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부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거부한다는 건 죄를 인정하는 의미였다.
“어떻게 하시겠소?”
“장인태감을 뵙게 해주게!”
“그분을?”
“그렇네. 제발 한 번만 그분을 뵙도록 도와주게.”
부형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를 왜 만나고 하려는지 잘 알았다.
장인태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였다.
“……알겠네. 금의위에 가기 전에 그분을 만나보도록 하지.”
부형은 나머지 서창의 인물들을 정리한 후 유기와 함께 사례감으로 들어갔다.
“장인태감께 아뢰시오.”
그를 모시는 환관이 다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드륵.
‘왔구나!’
문밖에서 부형의 목소리를 들은 그가 문을 열고 직접 맞이하려는 순간,
‘어어엉?’
장인태감은 뒤에 따라온 인물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저자를 왜 데리고 왔는가?”
털썩.
유기는 그대로 몸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태감, 소인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것인가? 난 모르는 일이네.”
휙휙휙.
그는 부복한 채로 앞으로 기어 나오며 그의 바지를 잡았다.
“태감……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소인이 충정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화진은 하의 가랑이를 잡은 채 절박하게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과 마주했다.
“알겠네. 일단…… 알았으니 손을 놓게. 옷이 벗겨지겠군.”
“정말이십니까?”
“허어. 그렇다니깐. 내가 최대한 자네의 이야기는 잘하겠네.”
“고, 고맙습니다.”
장인태감이 약속을 했다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일단 제독동창과 함께 가 있도록 하게나. 난 황제 폐하를 뵙고 난 뒤 금의위로 들어가겠네.”
“알…… 겠습니다.”
유기가 손을 뗀 뒤 부형을 따라 밖으로 나설 때였다.
후다다닥!
십이감의 공공들이 사례감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부형은 옆으로 물러나 앞을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흐음, 갑자기 똥줄이 타는 모양이지?’
그동안 명친왕을 믿고 장인태감을 무시했던 그들이었다.
그는 뒤에 따르는 유기가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렸다.
“멍청한 사람들이군.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 쯔쯔.”
* * *
장개지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황궁에서 전해진 소식을 들었다.
‘대장군이 금의위에 끌려가다니……!’
그는 다급히 명친왕을 찾았다.
명친왕은 안으로 들어선 그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왕야, 큰일 났습니다. 대장군께서 탄핵을 받아 금의위에 잡혔다고 합니다.”
“뭣이?”
명친왕의 모든 동작이 멈췄다.
“대체 누가 탄핵을 했단 말이오?”
“중원의 유생들이 상소문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유생들이? 한두 번인가? 원래 그놈들은 예전부터 그런 짓들을 하지 않았더냐? 겨우 유생들이 올린 상소문에?”
“그게…… 유생들의 상소문을 도찰원에서 인증했습니다.”
“허어……!”
명친왕은 어이가 없었다.
겨우 상소문 하나에 도찰원에서 인증을 선 자체도 믿기지 않았다.
그때 명친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설마…… 유천정에서 나선 것이오?”
“소신이 보기에 그분이 나선 게 맞는 듯합니다. 한림원 학사였던 그가 이번에 대학사로 제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망할 놈들…….”
분명 유천정에서 나선 게 틀림없었다.
그들이 아니고서야 유생들을 이용해서 상소문을 올릴 수 없었을 터
“왕야, 큰일이옵니다. 군부와의 연줄이 완전히 끊어진다면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쯧, 가까운 하남성 도지휘사 무용장군에게 연락을 빨리 취하라.”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을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그에게 당장 군사들을 데리고 하북으로 올라오도록 적게.”
장개지는 한시가 급했다.
황제가 군사를 보낸다면 현재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덜덜.
그는 떨리는 손을 보았다.
‘두렵다는 것인가?’
하루아침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들을 부른 게 잘못이었나?’
황제를 시해하기 위해 무림과 거래를 했다.
‘실수했다. 무림과는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후회가 밀려 왔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