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문친왕부에 갔던 황제가 환궁했다.
아직 소식은 황궁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편전으로 들어선 황제는 곧바로 장인태감 화진과 제독동창 부형을 부른 뒤 도독 한청과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도찰원 수좌 좌도어사 심문종이 야밤에 불러왔다.
한청은 그곳에 일어났던 일을 세 명에게 설명했다.
“뭣이오? 그놈들이……! 폐하를 시해하고자 했다는 말이오? 이건 역모가 아닌가?”
화진은 호들갑처럼 느껴질 정도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소리쳤다.
“장인태감, 그렇습니다.”
부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역모…….’
심문종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다른 사건도 아닌 역모라면 그 어떠한 국법이라도 무시할 수 있었다.
그가 상황을 유추하기에 살수와 연관이 가장 많은 명친왕의 의도가 가장 수상했다.
심문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분명…… 이 일은 국론으로 다스려야 할 커다란 사건이옵니다만…….”
“좌도어사는 무슨 문제라도 있다고 보는가?”
“폐하. 송구하옵니다만 당장 명친왕에게 역모에 대한 죄를 묻고자 하신다면 대장군이자 병조상서께서 그대로 받아들일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대는 짐이 그가 무서워 이 일을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보는가?”
“황송하옵니다. 소신은 단지 걱정이 되어서 드리는 말입니다.”
“그대가 어떠한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네. 하나 만일 명친왕과 대장군의 사이가 사라진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
심문종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퇴궐하기 전 한림학사의 방문을 받았다.
둘은 유천정에서 함께 공부한 친우였다.
“이것을 보게나.”
“뭔가?”
“한 번 읽어보게.”
심문종은 그가 내민 장계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점점 얼굴이 붉어지면서 굳어져 갔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자네가 본 것 그대로이네.”
“대장군의 탄핵안이라…….”
적한영이 그에 대한 탄핵안을 올릴 줄은 몰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대장군 독중기와 관련된 인물들까지 모두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보게, 자네. 이것들이 거짓인 것 같나?”
물론 거짓이 아니었다.
도찰원의 수좌가 그 아니었던가.
가만히 있어도 대장군에 대한 불만과 불법적인 행동들이 하루에 수십 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들을 그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만일 그대로 황제께 보고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우인 적한영의 목숨이 걱정되었다.
“거짓은 아니지만…….”
“내일 탄핵안을 올릴 걸세. 자네가 나서서 맞다고 확인해 주면 되네. 나머지는 다른 인물이 대장군을 확실하게 처리할 것이고.”
“그는 군부의 수장이라네. 누군지는 모르나 대장군을 건드렸다가 군부가 일어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군부가 나서기 전에 대장군의 손발을 모두 잘라 버릴 걸세.”
“어떻게……?”
“그건 나중에 알려주겠네. 자네는 사실대로만 이야기하면 될 뿐이지 않은가.”
“혹시…… 유천정의 스승님께서도 알고 계시는가?”
“후후. 그분께서 먼저 부탁하신 일이야.”
“정말인가? 스승님께서도 이번 일에 관련이 되었다는 것인가?”
적한영은 미소를 지었다.
“알…… 겠네. 자네를 믿겠네.”
그리고 지금, 그는 황제를 포함하여 함께 모인 네 명의 인물들을 보면서 알았다.
그는 내일 편전에서 대장군 독중기의 탄핵안에 대한 유죄를 확인하는 역할로 정해졌다.
‘폐하는 대장군을 잡고자 하신 게 아니다.’
적한영이 찾아와서 대장군을 잡겠다고 했을 때는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유추했을 때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명친왕을 치고자 하신다.’
황궁의 주인은 황제였지만 실질적으로 나라의 힘을 가진 인물은 군부를 장악한 명친왕이었다.
“소신은 도찰원의 수좌로서 임무를 다하는 게 폐하게 충성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하, 고맙군. 그대가 방금 한 말대로 한다면 짐의 마음이 놓일 것이다.”
“황공하옵니다.”
심문종은 허리를 숙였다.
* * *
아침이 밝았다.
이른 시간부터 문무의 고하와 관계없이 조정의 대소신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태화전에 모였다.
신하들은 황궁으로 들어오면서 문친왕부에서 일어난 살수 습격 사건을 들었다.
황제를 죽이고자 한 사건은 단 한마디로 역모였다.
그들은 황궁으로 들어오면서 한마디 말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오호도독 대장군 독중기도 무관 맨 앞줄에 서 있었다.
대소신료들은 황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대전으로 천천히 백의노인이 들어섰다.
술렁.
대전이 순간 웅성거리며 백의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유천정의 주인이며 유림의 대스승.
내각대학사의 자리가 빈 관계로 대신 대학사의 신분을 지닌 한림원 수좌 적한영이 임시로 앞으로 나섰다.
“태상군께서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적 학사, 어제 황궁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네.”
“그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굳이 소식을 알려주니 안 들을 수 있겠나? 그래서 황제나 잠시 뵈려고 왔다네.”
그는 마치 아랫사람을 보러 온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대전에 모인 문무의 대신 신료들은 태상군의 말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했다.
그는 황제의 대부이기에 어떠한 말을 하여도 상관없다는 황명이 내려왔다.
적한영은 얼른 의자를 준비한 뒤 내려놓았다.
“고맙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앞으로 대장군 독중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초, 오랜만이네.”
하초(河初)는 독중기의 자(字)였다.
스윽.
독중기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태상군께서는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허허허. 하루하루가 다르다네. 언제 갈지 모르는 나이이지.”
그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 참…… 대장군은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군.”
“…….”
“흐음. 표정을 보니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일세.”
“태상군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려. 조금 뒤에 알게 될 것이네.”
그는 옆에 바짝 붙어선 아들 적한영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대전으로 수십 명의 금의위들이 들어서면서 대신 신료들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보통의 경우에도 대전에 금의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대전을 가득 메울 정도는 처음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납시오!”
문무의 대신들은 태감의 목소리에 똑바로 정렬했다.
그들은 옥좌로 향하는 황제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평소와 다르게 황제의 신위에서 빛이 났다.
임시 내각대학사 적한영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했다.
“소신, 적한영. 폐하께 인사 올리옵나이다.”
“고맙소이다.”
황제는 간단히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아래에 앉아 있는 대부 태상군을 내려다보았다.
“태상대군께서 오셨습니까?”
“어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네. 옥체는 괜찮은가?”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로소이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시선을 돌려 무관 대신들 앞에 선 독중기를 향했다.
“대장군께서는 어제 어디에 계셨소이까?”
척.
독중기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소신은 항상 유사시를 대비해 군사들과 함께 훈련을 했사옵니다.”
“그렇소이까? 역시 대장군이군요. 요즘은 어떠한 훈련을 하는지 궁금하외다.”
“그건…….”
황제가 세밀하게 물을 줄은 몰랐다.
“황성의 방어 훈련이었습니다. 적의 침입으로 인해…….”
“음. 꼭 필요한 훈련이라 보이는군요. 짐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대장군이 고맙소이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황제의 질문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가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근데…… 어제 듣기로 훈련 도중 명친왕부에 갔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
독중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황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몰랐다.
“누이가……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봐야지요. 대장군께서도 이해하시구려. 어제는 민감한 상황이라서 말들이 나온 모양이외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오해를 빨리 풀어서 다행입니다.”
다행히 문제없이 넘어가는 듯했다.
“짐이 여러 신료를 모이도록 한 이유는 문친왕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문친왕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자 부른 것이외다.”
스윽.
독중기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폐하. 소신이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말하시오.”
“폐하께서 넘어가시고자 하시지만 이건 역모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그래서요?”
“당연히 문친왕을 조사해 보심이 좋을 듯 아뢰옵니다.”
“음…… 짐을 살해하려고 했던 살수는 명친왕의 수하이었소이다. 순서라면 명친왕부터 먼저가 아니겠소?”
“명친왕께서도 의심스럽지만 살수가 직접 말하기를 상관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군요. 대장군께서는 살수의 말을 믿는 모양이군요.”
“폐하께서는 소신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하십니다.”
대장군 독중기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린 듯 조금 커졌다.
탁탁.
태상대군은 의자에 앉은 채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허허, 이보시게. 폐하의 면전에서 소리가 높네.”
“…….”
“폐하가 그냥 물어보는 것이거늘. 대장군은 어찌 앞서나가시는가.”
“태상대군께서도 앞서는 듯하외다.”
“클클클. 이거……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 독성유, 그 양반도 나에게는 말대꾸하지 못했거늘. 그놈의 아들이라는 녀석이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노려보는구나.”
독중기는 순간 흠칫거렸다.
오래전 그의 부친 독성유가 한 말이 생각났다.
“조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인물은 유천적가의 인물이니라. 중원에 수없이 나라들이 세워졌지만 유림의 도움 없이는 나라를 끌고 갈 수 없느니라.”
“힘으로 굴복시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차라리 네가 아무것도 몰랐으면 한다.”
“…….”
“잘 들어라. 유천적가는 유림이며 유림무천이니라. 나 또한 한때 네놈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서 죽일 생각까지 했지.”
“실패하셨습니까?”
“왜 내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된 줄 아느냐?”
“설마…… 그가?”
“여기 목을 봐라.”
그는 목을 들어 가느다란 검흔을 보여주었다.
“난 그의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그가 말하기를 한 번만 더 앞에 나타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하더군.”
“…….”
“그의 가문. 우린 유림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들은 유림무천의 가문이다. 그러기에 나라를 세운 황제들조차 어찌할 수 없었지.”
독중기는 흥분해서 그가 누구인지 잊었다.
스윽.
적한영이 앞으로 나서면서 대장군을 보았다.
독중기는 온몸을 파고드는 태상군의 살기에 피가 바짝 말라 섰다.
적한영은 시선을 돌렸다.
“소신, 폐하께 아룁니다.”
“적 학사, 무슨 일이시오?”
“전국의 유생들이 상소문을 계속해서 황궁에 올리고 있사옵니다.”
“유생들이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상소문의 내용이 무엇이란 말이오?”
적한영은 상소문을 장인태감에게 전해주었다.
황제가 상소문을 받은 뒤 읽는 사이, 적한영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상소문의 내용은 대장군 독중기의 부정부패에 관한 글이옵니다.”
웅성.
대신들 사이에서 순간 울렁거리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독중기는 갑자기 자신이 이름이 나오자 눈에 힘을 주며 적한영을 노려보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본장의 부정부패라고 했소?”
“독 장군. 흥분하지 마시오. 폐하께서 계시거늘.”
독중기는 앞으로 나오며 황제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폐하, 그 상소문들은 모함이옵니다. 소신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개인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 욕심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적한영이 다시 나섰다.
“폐하, 소신도 처음에는 상소문을 읽어본 뒤 모함이라 여겼사옵니다. 대장군의 모함을 풀기 위해 조사를 했사옵니다. 근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부정부패들을 발견했사옵니다. 그와 관련된 인물들까지 모두 여기 적어놓았습니다.”
“그렇소이까?”
“이 모든 것은 도찰원의 좌도어사의 공증도 확인했사옵니다.”
스윽.
대신들 사이에서 심문종이 앞으로 나섰다.
“한림원 학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도찰원에서도 예전부터 오호도독 대장군이자 병조상서의 부정부패에 관해 조사를 해왔습니다. 이번에 심증과 함께 물증까지 완벽하게 찾아냈습니다.”
“이놈들이…… 어디서 망발을 하는 것이더냐?”
독중기는 노기가 솟구치며 당장에라도 무력을 끌어 올려 두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장인태감 화진이 그를 보며 소리쳤다.
“무엄하다. 어디서 함부로 말을 하시는 것이오?”
“크으…… 화…….”
그는 화진을 보며 죽일 듯 노려보았다.
황제는 독중기의 부정부패에 적은 장계를 보면서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황명을 내렸다.
“금의위는 당장 저자를 체포하라.”
척척.
황제의 명이 떨어졌다.
금의위로 변장한 고진유가 앞으로 나섰다.
“독중기, 다치기 싫으면 반항하지 말고 손을 내밀어라.”
“이놈이…… 금의위 따위가!! 감히 본장이 누구인 줄 아느냐?”
“죄인이지 않소이까?”
푹푹푹.
고진유의 손이 움직이면서 혈을 눌렀다. 독중기의 온몸에 내력이 사라지며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휙휙휙.
고진유는 허리에 찬 금줄로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감은 뒤 바닥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단번에 죄인을 만든 금의위의 무공을 본 신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조용해졌다.
황제는 장계를 보면서 한 명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태사 변자량. 이조상서 임지난. 형조상서 지연문. 공조시랑 평홍. 좌도동지 천원혁, 서창독주 유기…….”
휘익!
황제가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금의위들이 그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