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10화 (310/425)

310화

명친왕의 눈빛에 살기가 순간 뻗어 나왔다.

검무를 추며 황제에게 다가서는 그를 보면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타앗!

그의 양손에 들린 쌍검이 마치 학이 날개를 치켜세우듯 펼쳐진 뒤 황제를 향해 검기가 쏟아냈다.

스걱-

황제 앞으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황제가 뒤로 넘어졌다.

순간 정적이 연회장 전체에 흘렀다.

황제를 암습한 사내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명친왕이 벌떡 일어나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저놈이……! 저놈이 황제를 죽였다!! 금의위는 뭣들 하느냐? 저놈을 잡도록 해라!”

휙! 휙!

명친왕의 명에 금의위들이 여형교를 포위하며 에워쌌다.

‘이거 참…… 어이가 없군.’

여형교는 고함을 지르는 명친왕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장단에 맞춰주지.’

그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크크크. 황제를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네놈의 수하인 척했지. 기회를 주어 고맙소이다.”

“네놈이…… 감히 본왕을 속인 것이더냐? 감히 누가 이런 짓을 하도록 시켰지?”

“크하하하! 그건 비밀이지.”

‘됐어. 제법 연기를 잘하는군.’

명친왕은 그를 보면서 만족했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금의위는 뭣들 하느냐? 황제를 죽인 저놈을 잡지 않고!”

그는 금의위까지 모두 그의 손에 죽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잠깐!”

도독 한청은 금의위를 향해 소리쳤다.

“금의위들은 돌아와서 폐하를 보호하라!”

‘뭣이?’

명친왕은 고개를 돌려 힘들게 일어서는 황제를 보았다.

길게 찢겨 나간 황포 안에 갑의가 보였다.

황제가 죽지 않은 것을 본 금의위들은 황제를 감싸며 보호했다.

‘멍청한 새끼가……!!’

황제가 살아난 게 믿기지 않았다.

명친왕의 시선이 여형교를 향했다.

그 또한 당황했다.

‘분명 베었다고 확신했는데……?’

황제가 어떻게 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운이 좋았군. 이번에는 확실히 죽여주지!”

그는 쌍검을 고쳐 잡을 때였다.

다다다다-

명친왕부 소속의 호위군사들과 동친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연회장으로 몰려 왔다.

“불나방 같은 놈들!”

군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살명전 앞에서는 귀찮은 존재들일 뿐.

“저놈들을 모두 죽여라!”

여형교의 목소리가 울리자 연회장 주변에 있던 살명전의 살수들이 군사들을 막아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스걱.

콰아아앙!!

날카롭게 잘려 나가는 소리.

그리고 거대한 내력의 굉음이 터졌다.

“으아아악!”

곧바로 비명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비명은 군사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금의위?’

믿기지 않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수하들이 두 명의 금의위에 의해 처참하게 당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콰아아앙-!!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권강이 폭발했다.

‘금의위가 권기도 아닌 권강을 폭발시킨다고?!’

그들의 무공은 황궁의 무공이 아니었다.

겨우 두 명에 의해 수하들이 밀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군. 무리를 하더라도……!’

그에게 급한 건 수하들의 생명이 아니었다.

여형교는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타앗!

쌍검을 펼치며 황제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쌍익천공(雙翼天空)의 최후초식.

하늘을 덮은 백광의 날갯짓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검기가 황제를 향해 쏟아졌다.

“물러나시오!”

황제의 한마디에 앞을 막아섰던 금의위들이 그들도 모르게 물러났다.

그들 사이에 도독 한청도 수하들과 함께했다.

번쩍!

황제의 손에 언제 검이 들렸는지 그는 보지 못했다.

섬광이 터지면서 아래로 떨어지던 검기가 사라졌다.

단번에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무공.

‘천무…… 공?’

극일천무신궁의 인물이라면 극일천주 황야의 무공을 모를 리 없었다.

당황한 목소리가 나왔다.

“다, 당신은 누구요?”

스으윽.

황제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

“내가 누구인지 알겠소?”

“화산…… 도협.”

“맞소. 본도가 화산도협이외다.”

그는 황제가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명친왕은 어떻게 된 일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황포를 입은 사내의 정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천하제일인 화산도협이 그였다.

‘그렇다면 황제는? 황제는 어디에 있지?’

문득 황제가 연회장에서 보이지 않았을 때가 생각났다.

‘젠장…… 그때였어. 망할 놈, 알고 있었군!’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오히려 함정에 빠질 뻔했다.

만일 황제가 죽은 줄 알고 앞으로 나섰다면 큰일 날 뻔했다.

그는 뒤로 물러나 조용히 일이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휘리릭!

고진유는 호충신법을 펼쳤다.

그의 신형은 눈으로 좇을 수 있는 빠르기를 넘어섰다.

여형교은 등 뒤에서 땀이 수차례 흘러내렸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신형이 사라진 고진유의 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딜 보는 거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여형교는 빠르게 몸을 돌리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슈우우우욱-

그 방향에는 이미 화산도협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부터 내기의 진동이 느껴지면서 올라왔다.

온몸에서 기분 나쁜 전율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

피하고자 했지만 그건 마음뿐이었다.

퍼어어억!!

복부에 부딪힌 장력에 의해 내장이 폭발하는 충격을 받았다.

오장육부가 제자리에서 벗어나면서 온몸이 꼬였다.

“커어억!!”

거친 신음과 함께 선혈을 토해냈다.

울컥.

붉은 핏덩어리를 쏟아내며 몸이 휘청거렸다.

차라리 넘어졌다면 더 좋았을지도 몰랐다.

스걱.

자줏빛 검광이 여형교의 머리에서 똑바로 아래까지 길게 이어졌다.

쿠우우우웅!

그는 몸이 굳어진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여형교의 죽음을 본 살명전의 살수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상대는 그냥 황궁의 금의위가 아니었다.

천하제일인 무림맹주가 강렬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후퇴…… 한다.”

그들 중 누군가 용기를 내어 소리치면서 연회장을 빠져나가자, 모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썰물처럼 물러났다.

살명전주의 죽음으로 연회에서 일어난 소란은 정리가 되었다.

도독 한청은 정신이 없었다.

황제 대신에 고진유가 황포를 입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안전하십니다. 저기 오시는군요.”

고진유가 가리킨 방향에서 묵경과 함께 황제가 다가왔다.

“도독님, 환궁하겠습니다.”

“아……! 그렇지요. 알겠소이다!”

한청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금의위는 당장 준비하라! 황제 폐하와 함께 환궁한다!”

“넵, 알겠습니다!”

금의위들이 황제를 감싸며 왕부로 나가기 위해 길을 확보했다.

문친왕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화, 황제, 괜찮소이까?”

“괜찮습니다. 일황숙의 잘못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아…… 정말…… 황공할 따름이네.”

문친왕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자신의 연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조정의 대신들이 안다면 당장에라도 들고일어날 게 확실했다.

다행히도 황제가 괜찮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이번에는 명친왕이 황제의 곁으로 다가섰다.

“황제, 그들은…….”

“살수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으니 괜찮습니다.”

“알…….”

그가 말을 이어갈 때였다.

스윽.

명친왕의 앞으로 고진유가 들어오면서 두 사람의 시야를 막아섰다.

“폐하,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지요.”

“아, 고맙소이다.”

고진유는 황제의 곁에 바짝 붙어서면서 황제를 보지 못하도록 명친왕의 시야를 차단해 버렸다.

“…….”

그들이 왕부의 정문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명친왕은 노기가 올라왔다.

정문을 나온 황제는 마차에 올라탔다.

“맹주, 고맙소이다. 본인의 목숨을 구해준 은공이외다.”

“아직 감사의 인사를 받을 시기는 아닙니다. 지금부터 마음을 굳건히 잡아야 할 것입니다.”

“알겠소이다.”

고진유는 마차의 문을 닫았다.

“한 도독님, 출발하시지요.”

한청이 황궁을 향해 앞장을 섰고, 고진유는 다가온 세 사람을 보았다.

“녹검 씨는 인양과 함께 지금 바로 명친왕부에 가서 극일천무신궁의 인물들이 지냈던 곳에서 일하던 인물을 찾아오세요.”

“넵. 알겠습니다.”

“형, 바로 다녀오겠어요.”

휘익.

녹림야검과 인양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는?”

“형은 힘들겠지만 지금부터 황제의 곁에서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어 주세요.”

“알았다. 황제는 내가 책임지고 지켜주지.”

“우리도 황궁으로 가죠.”

* * *

대장군 독중기는 황궁 밖에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다는 훈련 명목으로 오만의 병사를 모았다.

대부분의 병사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몰랐다.

훈련이라 생각하며 황성의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을 뿐.

‘늦는데?’

독중기는 황제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바로 오만의 병력으로 황궁을 단번에 접수할 계획이었다.

‘무슨 일이지?’

분명 지금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와야 했다.

‘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군.’

독중기는 하는 수 없이 부관 장수를 문친왕부에 보냈다.

날은 이미 어둠에 잠긴 뒤 오래되었다.

두두두-

문친왕부에 보냈던 부관 장수가 어둠 속에서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느냐?”

“그게…….”

그는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 부관,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지?”

“황제께서 환궁하셨다고 합니다.”

“……!”

황제가 돌아갔다는 건 계획이 틀어졌다는 뜻이었다.

‘뭐지? 왜 틀어진 거지?’

그가 급하게 다시 물었다.

“명친왕께서는 어디에 계신다고 하던가?”

“소장이 도착하기 전에 왕부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알겠다.”

독중기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도 명친왕부에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을 해봐야 했다.

“현 장군에게 훈련은 끝났다고 전해라.”

“넵. 알겠습니다.”

잠시 뒤, 군영 전체로 북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대장군 독중기는 빠르게 군영을 빠져나갔다.

* * *

“체엣! 무림인이면 이렇게 어질러 놔도 되는 거야?”

동유는 별관을 청소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는 웬만하면 짜증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이틀도 되지 않았는데 그들이 나간 방은 몇 년을 청소하지 않은 듯 더러웠다.

“극, 극일…… 뭐라고 했더라?”

“극일천무신궁?”

“맞다. 극일천무신궁이라고 했지. 근데 누구…….”

동유는 갑자기 공간에서 툭 튀어나온 두 명의 인물을 보았다.

“극일천무신궁의 인물들이 이곳에 있었소?”

“……!!”

그는 명친왕부에서 일하는 하인이었다.

동유는 입을 꼭 다물었다.

하인이 함부로 주인집의 흉을 봤다가는 결국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 목이 두 개는 아니겠지?”

그 전에 죽을 수 있었다.

“…….”

“굳이 당신 아니라도 사실대로 말을 해줄 사람은 많아.”

눈빛에 녹아 있는 살성의 기가 그를 강하게 압박했다.

살기와는 달랐다.

상대의 기를 해치는 살기가 아니라 살성의 기는 마음속에서부터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죽고 싶다면 입을 열지 않아도 되오. 한 명 더 죽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으니깐.”

이번에는 강한 살기가 녹림야검의 시선에서 흘렀다.

동유는 정신은 하나도 없고 등 뒤에 흐르던 땀은 이마에서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그들이 여기에서 지냈습니다.”

“정말인가?”

“네…… 맞습니다. 소인이 직접 그들을 대접했습니다요…….”

“말뿐이라면 나중에 엉뚱한 소리 할 수도 있잖아. 그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나중에 없었다고 말을 바꾸면 곤란하지 않나?”

“어…… 음…… 그럼 혹시 이것이라면…….”

동유는 가슴 안에서 검은색의 주머니를 꺼냈다.

“누군가 방에 떨어뜨리고 간 모양이더라고요…….”

인양이 주머니 안에서 신패를 꺼냈다.

“녹검 형, 이건 그들의 신분패인 것 같아요.”

“오, 됐다. 증거와 증인을 찾았군. 이자를 데리고 가자.”

“예? 예에에?!”

“알겠어요.”

툭!

인양은 그를 한 번에 점혈을 시킨 뒤 등에 업었다.

“그들이 돌아오는 모양입니다.”

왕부 밖에서 무리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이군. 제때 이놈을 잡았어.”

“그러게요. 그만 가죠.”

휘이익!

인양과 녹림야검은 나타날 때처럼 흔적도 없이 명친왕부에서 사라졌다.

한 명의 하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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