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07화 (307/425)

307화

고진유는 금의위 복장으로 변복을 한 뒤 도독 한청과 함께 건청궁으로 향했다.

곧바로 건청문에 도착하자 정문을 지키는 금의위가 고개를 숙이며 한청을 맞이했다.

“도독님을 뵙습니다.”

“별일 없는가?”

“장인태감과 제독동창께서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도독 한청은 출발하기 전 그들에게 건청궁에서 만나자는 전언을 보냈다.

“알았다. 지금부터는 누구라도 안에 들여보내지 마라.”

“넵, 알겠습니다.”

한청과 고진유는 건청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고진유는 그의 뒤를 따르면서 건청궁 주위를 보았다.

‘황제의 집이라…….’

중원 최고의 인물이 사는 곳이었다.

그 외에 딱히 다른 느낌은 없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황궁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흥분되거나 몸이 떨렸을 것이지만 고진유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황궁의 압박감은 고진유에게 전혀 영향이 없었다.

건청궁으로 한 걸음씩 계단을 따라 올랐다.

붉은 기둥 사이의 문을 통해 들어서자 정대광명(正大光明)의 현판 아래 황제의 옥좌가 보였다.

옥좌에는 황금빛의 황포를 입은 황제가 앉아 있었다.

‘휴우…….’

옥좌의 왼편에 장인태감과 제독동창 부형이 허리를 숙인 채 서 있었다.

한청은 두 사람을 지나 황제의 앞으로 다가섰다.

“신 도독 한청.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한 도독, 어서 오시오. 고개를 드시오.”

“황공하옵니다.”

황제는 그와 인사를 나눈 후 서너 걸음 뒤에 멈춘 사내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든 채 황제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제독동창 부형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무엄하도다! 폐하께 고하지 못하겠는가?”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부형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본도는 무림인이외다. 그대들과 다르게 일반인의 예로 본도를 압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슈우우욱-!!

고진유의 신형에서 거대한 기가 솟구치며 부형의 전신을 압박했다.

동창의 수장으로 그 또한 황궁 무공을 극성으로 펼친 인물.

‘우욱.’

무형기만으로 단숨에 자신을 제압한 그의 무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그가 옥좌 앞으로 다가서는 한 걸음마다 무형기의 파동에 의해 건청궁이 울렸다.

‘거인…… 이다.’

부형은 단번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의 말대로 일반인이 아니었다.

중원 무림에서 그를 왜 천하제일인이라고 부르는지 알 듯했다.

고진유는 옥좌 앞에 멈추고는 황제를 향해 포권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본도는 고진유라 합니다.”

황제는 옥좌에서 일어난 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고진유의 앞에 다가선 황제는 미소를 띠며 반갑게 맞이했다.

“반갑소이다. 보시다시피 본인이 황제이외다. 중원 무림의 황제 맹주 천하제일인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저 또한 폐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폐하를 만나 뵙게 되어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황제는 천하제일인 고진유에 대해 많은 소문을 들었다.

약관의 나이에 중원 무림의 최고에 올라선 무림인이었다.

중원인들에게 황제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바로 천하제일인 고진유였다.

‘소문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다.’

전신에서 흐르는 기품은 황제인 자신보다 뛰어난 듯 보였다.

‘이런 청년이 내 사람이라면…….’

황제는 고진유를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진유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라고 하지만 무림인이 아닌 이상 일반인일 거라 생각했다.

‘황제는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는 말이 맞군.’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직접 황제를 마주치자 감탄이 나왔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 서로에게 공감대가 생겼다.

한편 세 명의 인물들은 황제와 고진유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폐하께서…….’

장인태감 화진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놀라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황제가 옥좌에서 내려와 손님을 맞이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동등하게 대한다는 의미였다.

“장인태감, 우리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는가? 편안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알겠사옵니다.”

* * *

부형의 안내로 자리를 옮겨 황제의 서전으로 들어섰다.

황제와 고진유는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세 사람은 황제와 동석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 걸음 물러선 채 서 있었다.

“본인이 그대를 어떻게 부르면 되겠소이까?”

“폐하께서 무림맹주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편하게 맹주라 하시면 됩니다.”

“그렇구려. 본인이 잊고 있었소이다. 맹주께서 본인의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게 생각하는 바이오.”

“실은 폐하의 부탁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폐하께서 부르신 이유와 연관이 있기에 온 것입니다.”

황제는 머리가 뛰어났다. 단번에 고진유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혹시 삼황숙과 관련이 된 일이오?”

“그렇습니다. 명친왕부에서 무림과 서신을 주고받은 사실 때문입니다.”

“그게 맹주에게는 큰 문제가 되는 모양이구려.”

“무림은 불문율로 관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들이 황궁의 일에 관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오. 왜 그런 불문율이 생겼소?”

“그건 서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관과 무림이 싸운다면 공생이 아니라 공멸입니다. 무림과 관의 토대가 되는 건 일반 백성들, 두 곳이 싸운다면 백성들이 죽을 것이며 백성들이 죽는다면 무림과 관도 죽을 것입니다.”

“오호, 그렇군요. 맹주의 뜻이 맞소이다.”

황제도 고진유의 말에 찬성했다.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말에 점점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혹시 명친왕부와 관련된 문파가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겠소?”

“폐하께서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황궁에서 그들을 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강하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들을 상대하는 건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해결해야지요. 폐하께서는 명친왕부를 상대하시면 됩니다.”

“음…… 알겠소이다. 맹주께서 그들을 상대하겠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도독 한청과 제독 동창 부형은 대충 그곳이 어디를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고진유가 황제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극일천무신궁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중원 무림에서 무림맹의 가장 큰 적이라 알려진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한청을 보았다.

한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폐하, 맹주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소신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하게.”

한청은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말을 했다.

일각이 지나자, 뒤에서 듣고 있던 화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동안 황제를 압박하던 대장군 독중기를 잡을 기회였다.

게다가 십이감의 환관 중에서도 대장군을 믿고 기어오르고자 하는 놈들이 있었다.

‘후후. 잘됐어. 그만 몰아낼 수 있다면 그놈들은 자동적으로 내 손에 죽을 것이야.’

장인태감 화진은 고진유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맹주, 정말로 유천정의 그분께서 탄핵을 진행하시겠다고 했소이까?”

“기다려 보시지요. 조만간 그와 관련된 모든 인물에 대해서 탄핵 상소가 올라온다면 그때 동창과 금의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될 것입니다.”

화진은 옆에선 부형과 한청을 보며 당부를 했다.

“맹주께서 하신 말씀을 잘 들었는가? 똑바로 처리하도록 하시게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진은 이번 기회에 서창의 문제도 해결하고자 했다.

황제의 친위인 창위는 독립된 부서이기에 황제의 명 없이는 서로 건드릴 수 없었다.

“폐하. 서창도 이번 일에 관련이 되었사옵니다.”

“태감의 뜻대로 하시게. 그들과 관련되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않겠는가.”

“황송하옵니다. 폐하의 황명을 따르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제의 명을 받았다.

‘훗. 유기…… 이놈. 드디어 잡았다.’

* * *

황제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명군왕의 말대로 만나기를 잘했군. 얼마나 맹주를 칭찬하는지 정말로 만나보고 싶었소이다.”

“그분이 큰일도 아니었는데 너무 과하게 칭찬을 한 것 같습니다.”

“하하, 겸손까지…… 만일 본인에게 출가하지 않은 여식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소개하고 싶구려.”

황제는 농담처럼 말을 건넸지만, 그의 마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화진이 황제의 옆으로 다가서며 허리를 숙였다.

“폐하, 순비께 영화 옹주마마가 계시지 않습니까.”

“아…… 순비…… 그렇구나. 태감, 고맙소이다. 영화를 잊고 있었구려.”

황제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다른 황제들처럼 많은 여인을 들이지 않았지만, 한 명의 황후와 두 명의 황귀비, 그리고 세 명의 귀비와 두 명의 비를 합쳐 여덟 명의 부인이 있었다.

영화옹주는 그중 순비와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다.

다른 비빈에 비해 아들도 없는 그녀이기에 황궁에서 잊혔던 여인이기도 했다.

“영화, 그 아이를 본 지 오래되었구먼.”

“소신이 순비께 연락을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태감께서 알아서 하시구려.”

황제와 화진은 마음이 맞았는지 서로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했다.

고진유는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흐음…… 맹주, 미안하오. 우리가 설레발을 친 듯 아닌가 싶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진유는 황궁에서의 일이 끝난 후 조용히 사라지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맹주께서는 어디에서 지내시는 것이오?”

“명친왕부에서 무림인을 불러들인다면 좋지 않은 일을 할지도 모릅니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암습을 한다면 금의위에서는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궁 주위는 수천의 병사들과 금의위들이 지키고 있소이다.”

“폐하. 일단 병사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금의위도 북진무사의 경우처럼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

한청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분간 금의위의 신분으로 황제의 곁에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맹주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황제의 목숨을 지켜야 할 금의위에서 배신자가 나타났다는 건 수장으로서 한청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지금부터 여기 계신 세 분들 외에는 수하들에게 제 존재에 대해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본도가 누구인지 비밀로 해야 합니다.”

고진유의 부탁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백여 명의 무인들이 철혈궁의 정문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다급한 것은 없었다.

무림맹의 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정체는 극일가의 무인들이었다.

선두에 선 인물.

고진유의 얼굴이 확실했다.

하나 그 또한 천면변화공으로 변용을 고화유였다.

극일천무신궁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철혈궁을 치기로 한 것이다.

고화유는 동생의 얼굴로 바꾼 뒤 무림맹이 나서는 것처럼 꾸며 철혈궁으로 내려왔다.

그들의 무공은 강했다.

철혈궁의 사파인들은 그들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와아아아-!!

“저놈들을 죽여라!!”

철혈사존이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수백 명의 철혈궁 사파인들이 목숨을 던지며 달려들었다.

그들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보다 싸우다가 죽는 것을 선택했다.

수적으로 철혈궁이 절대로 유리했다지만 수로도 되지 않은 게 있었다.

무공의 실력 차이가 그들 사이에 너무나 명백했다.

“아아악!!”

비명 소리가 철혈궁을 울히고, 철혈궁의 수하들은 바닥에 차가운 시체로 쓰러져 갔다.

‘제기랄…… 무림맹이 저렇게 강했단 말인가?’

휘이익!

철혈사존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맹주에게 생사결을 신청하겠소이다!”

“훗. 그래도 수하들을 살리고 싶은 모양이군.”

고화유는 앞으로 나선 그를 쳐다보았다.

“공녀님.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다. 맹주라면 당연히 받아들였겠지.”

그녀의 말처럼 맹주라면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스르르륵.

고화유는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섰다.

철혈궁이 조용해졌다.

무림맹주와 철혈사존의 생사결이었다.

“그대가 무림맹주요?”

“맞소이다.”

고화유는 목소리도 고진유와 닮았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무엇이 비겁하다는 말인지 모르겠소.”

“본궁을 기습하지 않았소이까!”

“사전에 공격할 것이라 알렸소. 그리고 당신들이 방어할 시간을 충분히 준 것을 아는데?”

“…….”

“그것이 기습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비겁한 싸움이 아닌 건 없겠군요.”

철혈사존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여전히 그가 철혈궁에 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왜…… 본 궁을 공격한 것이오? 우린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이다.”

“극일천무신궁을 따르고 있지 않소?”

“그것이 무림맹에서 쳐들어온 이유가 되는 것이오?”

“그대는 본인이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것이오?”

“무림맹주가 아니오?”

“이런…… 정말로 모르고 있군.”

“………”

“본도의 무공을 보면 대충이라도 알아볼 텐데.”

번쩍.

고화유의 검에서 섬광이 퍼져 나갔다.

‘윽…….’

철혈사존은 고개를 돌린 채 섬광을 뿌려낸 그의 무공을 알아보았다.

“천무…… 공?”

“잘 알고 있군요. 이제 본도가 왜 철혈궁을 치고자 하는지 알겠소이까?”

“…….”

“오늘부로 극일천무신궁을 따르는 철혈궁은 사라지게 될 것이외다. 시작해 볼까요?”

파앗!

고화유가 먼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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