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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06화 (306/425)

306화

비전당(秘傳黨)의 당주 정금양이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궁주님께 아룁니다.”

“무슨 일이더냐?”

“철혈궁에서 올라온 소식입니다. 그들의 일선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누가 철혈궁에 쳐들어갔다는 것이지?”

나하중은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무림맹주가 비밀리에 기습했다고 했습니다.”

“……!”

무림맹에서 사라졌던 고진유가 갑자기 철혈궁에 나타나 공격을 감행했다니.

기습을 위해 무림맹에서 친협들은 한 명도 동행하지 않았다.

“화산도협이 확실한가?”

“철혈궁의 부궁주를 상대로 펼친 무공이 천무공이었습니다.”

“천무공이라면…… 그가 맞군. 맹주란 놈이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나하중은 짜증이 났다.

‘쯧, 하나 오히려 행방을 찾아내서 다행일지 모르겠군.’

그가 무림맹에서 사라졌다고 했을 때는 순간, 혹시나 그가 황성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주님, 철혈궁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놔둬라. 이미 무림에 알려진 이상 함께할 가치가 없다.”

“……알겠습니다.”

철혈궁을 버리겠다는 궁주를 보면서 당주 정금양은 마음이 찹찹했다.

만일 극일천주였다면 도움을 줬을 것이었다.

예전부터 천문전주의 단호한 성격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수장이 아니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극일천무신궁의 궁주는 그가 아닌가.’

수장이라면 수하들을 도구가 아닌 가족으로 여겨야 했다.

비록 하찮은 수하들이라도 위험에 처한 자신의 가족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신궁은 극일천과 같을 줄 알았거늘…….’

나하중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만 물러가라.”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정금양은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대전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수곡자의 눈빛도 그와 비슷했다.

“수곡자.”

“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맹주가 철혈궁을 공격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개중 쉽게 칠 수 있었겠지. 생각보다 대범하지 못한 성격이지 않은가?”

“…….”

“겨우 몰래 철혈궁을 기습하다니…… 실망이야. 후후후. 이 정도의 그릇이라면 앞으로 신경을 안 써도 되겠어.”

“궁주님, 정말로 철혈궁을 그대로 두실 것입니까?”

“방금 본좌의 말을 듣지 않았나? 어차피 철혈궁을 도울 수 없다. 원군을 보낸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 철혈궁의 일선이 무너졌다면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철혈궁주는 끝날 것이다.”

“…….”

나하중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장은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행동을 다른 인물들을 위해서 보여줘야 했다.

“그 녀석이 다른 곳에 있는 동안 우린 황궁을 차지한다.”

나하중의 계획은 간단했다.

황궁을 장악한 군대의 힘으로 무림을 밀어버릴 생각이었다.

“후후후. 수곡자, 군대와 중원 무림이 싸운다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서로 피 터지게 싸우면서 서로 망하게 되겠지?”

무림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백만의 대군을 상대로 싸운다면 양쪽 진영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얻을 게 확실했다.

“쉽게 싸울 수 없을 것입니다. 무림과 싸운다면 나라의 존망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상관없다. 누가 왕조를 새롭게 세워도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왕이면 우리에게 호의적인 북쪽의 그들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 더 좋겠지.”

“…….”

수곡자는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천하멸살계(天下滅殺計).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중원 무림의 말살 말이다.

* * *

휘익!

황궁의 지붕 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영.

‘여기가 금의위군 같은데?’

고진유는 유천지에서 나온 후 곧장 황궁으로 들어섰다.

삼엄한 감시를 피하면서 금의위군으로 향했지만 고진유의 기를 알아차리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금의위군 또한 마찬가지.

툭툭.

금의위 백종의 등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쳤다.

“유치하게 또 장난이냐?”

하지만 돌아서자 처음 보는 사내가 앞에 서 있었다.

“누……!!”

소리를 치기도 전에 상대의 손이 아혈을 눌렀다.

“남진무사를 만나러 왔소이다.”

“…….”

“그에게 안내를 해주시오. 아혈을 풀어주겠소이다.”

백종은 아혈이 풀리자 고진유를 보며 답했다.

“따라…… 오십시오.”

상대가 만일 죽이고자 했다면 자신은 바로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게 틀림없었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 동쪽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남진무사의 집무실은 안으로 들어서 바로 오른편에 있었다.

“남진무사님. 백종입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

순간 이정소의 목소리가 아니라 후다닥 빠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덜컹!

‘헉……!’

다급하게 문이 열리자 백종은 놀라 한두 걸음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이정소는 그의 뒤에 함께 온 고진유를 보며 표정이 밝아졌다.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는 고진유를 얼른 집무실로 모셨다.

“자네는 그만 돌아가도 된다.”

“네. 알겠습니다.”

타악.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음…… 누구지? 평범한 인물은 절대 아닐 테고텐데…….’

남진무사라면 무공으로 봤을 때 도독 아래의 직책.

그런 그가 존대를 하며 공손하게 모시는 인물이라면…….

‘그가……?’

거용관에서 일어난 일을 동료에게 들었다.

홀로 정남군을 쓸어버렸다는 그 인물이 분명했다.

백종은 그의 신분이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정소는 고진유의 앞에 섰다.

“볼일은 모두 보셨습니까?”

“대충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하고 왔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후후후. 도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소이다.”

“지금 바로 그분을 만나보시겠습니까?”

“난 상관없소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이정소는 앞으로 나서며 안내하기 시작했다.

* * *

금의위 도독 한청은 앞에 앉은 사내를 보았다.

바로 마주 앉은 자리에서 새로운 얼굴로 변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무림맹주 화산도협에 대한 소문은 지겹도록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금의위 도독 한청이라 합니다. 무림의 영웅이신 무림맹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도는 고진유라 하외다.”

서로 가볍게 인사부터 나누었다.

“진무사에게 듣기로 황성에 볼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일 때문에 만나볼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번 일 때문에?’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그것보다 황성에 무림맹주와 연관이 있을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혹시……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유천정에 다녀오던 길이었소이다.”

“…….”

방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는 고진유에게 되물었다.

“혹시…… 유천정이라고 했소이까?”

“맞습니다만.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었소이까?”

“아닙니다. 그건 아니지만…… 유천정에는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한청이 놀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그곳을 지키는 무인의 무공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동창의 고수로 알려진 첩형 경문요가 무작정 유천정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중간에 막혀 일 초 만에 기절한 사건이 있었으니까.

두 번째는 유천정의 주인.

그는 중원 유림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아래에서 공부한 뒤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선대 황제의 태사이며, 그의 아들 적한영은 한림원의 수장인 학사 신분이었다.

더구나 적한영은 내각의 수장인 대학사의 지위를 맡을 수 있는 인물이라 알려져 있었다.

한청은 고진유가 그를 만났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맹주께서는 그분을 잘 아십니까?”

“하하.”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도독 한청은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본도를 부른 이유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한청은 곧바로 사과를 했다. 그의 말처럼 황궁에 부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서 부르신 이유를 말씀드리겠소이다.”

“경청하지요.”

“혹시 삼황숙인 명친왕을 아십니까?”

“알고 있소이다.”

“사실 선대의 황제는 그가 가장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황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지요?”

“그의 성정이 급한 것도 있지만 욕심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너무 독단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신에 다른 인물을 황제로 세웠군요.”

“네. 맞습니다.”

“그것까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황의 붕어 후 대장군인 독중기를 왜 그대로 두었소이까?”

“그때는 이미 군권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했소이다.”

“게다가 몇 년 전, 병조에 오른 삼황숙을 따르던 자들의 입김이 워낙 강했습니다.”

“대장군에 병조까지 맡았다면 군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걱정이 되어 늘 그들을 경계하기 위해 주위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 도중 최근에 그들이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친한 사이이니 그냥 만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단순히 만나는 사이라면 야밤에 몰래 만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군요.”

“그들이 처남매부의 관계이지만 남들 몰래 자주 만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삼황숙과 대장군 독중기의 관계는 이미 들어서 알았다.

삼황숙이 그와 함께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역모를 할 수 있는 상황이 확실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명분이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칠 준비는 되어 있겠군.’

고진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만으로 충분히 역모가 가능했다.

‘근데…… 왜 그들과 서신을 주고받았을까?’

극일천무신궁과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삼의 인물들이 아닌가.

‘좀 더 알아봐야겠어.’

그들이 어떠한 역할일지는 좀 더 확인해 보는 게 좋을 듯했다.

도독 한청은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고진유는 그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 참. 그분을 잘 아는지 물어보셨지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는 사이인지는 알려줄 수는 없지만 그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우선 그분이 이번 사건에 대해 도움을 주기로 했소이다.”

“도움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도독께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건…… 군부를 먼저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삼황숙의 힘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군부입니다. 그들에게 군부의 힘이 없다면 지금처럼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을 테지요.”

“게다가…… 무림인들까지 끌어모을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군요.”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금의위와 동창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무림맹에 도움을 청했던 것이었다.

“도독께서 만일 군부를 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한청은 군부를 정리해야 한다는 상각을 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대답을 못 했다.

그를 대신해서 고진유가 말했다.

“탄핵입니다.”

“탄…… 핵을……!”

한청도 생각 안 해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탄핵하고자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누가 탄핵의 말을 꺼낼 것이며, 탄핵하기 위해 누가 동조해 줄 것인지 명확하게 정하기 어려웠다.

근데 고진유가 탄핵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분이 대장군의 탄핵을 맡아주기로 했소이다.”

“아…… 하아……!”

한청은 눈이 커지면서 놀랐다.

“정말로…… 그분께서 탄핵을 시도하시겠다고……?”

“맞소이다. 탄핵 건이 올라온다면 나머지는 금의위에서 맡아서 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대장군 독중기에 대한 탄핵안이 올라온다면 금의위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서창도 관련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 남진무사에게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장인태감께 의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창의 일은 동창에서 해결하는 것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서창 독주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소이다. 장인태감께서 움직인다면 잘 처리할 것입니다. 이 소식을 황제 폐하께 당장 전해 드려야겠습니다. 맹주께서는 함께 들어가시지요.”

“좋습니다.”

한청은 가슴을 짓눌렀던 무거운 걱정이 사라지면서 몸이 가벼워졌다.

‘폐하께서 좋아하시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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