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정남장군 신야는 거용관을 보았다.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관은 확인하기 위해 수하를 보냈다.
잠시 뒤 수하가 돌아왔다.
“그를 찾았습니다. 금의위 남진무사 이정소가 나타났습니다.”
“그를 잡아라!”
신야는 간단명료하게 명령을 내렸다.
두두두-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정남군이 거용관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부장군 방원의 육중한 몸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퍼져 나갔다.
“모두 멈춰라!!”
그의 목소리에 의해 거용관의 주위 일대가 조용해졌다.
시만교가 그의 앞으로 나와 금의복장을 한 인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장군, 저자가 금의위 이정소입니다!”
“왜 안 잡고 있지?”
“그게…….”
그는 관문 앞에 선 사내를 가리켰다.
방원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기 한 명 때문에 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
방원은 사내를 자세히 보았다.
그는 평범한 몸매에 건장한 체격이 아니었다.
한 치수보다 큰 갈의무복을 입은 탓인지 어리숙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놈,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물러가지 못할까?”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이까? 하지만 물러나는 건 본인이 아니라 그대들이오. 함부로 군을 동원해서 백성들을 괴롭히다니!”
“말로는 안 될 인물이군.”
방원은 검을 뽑으며 고진유에게 겨누었다.
“이자를 당장 포박하라!!”
병사들이 무리를 지으며 고진유를 감쌌다.
창과 검을 겨누며 병사들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큰일인데…….’
이정소는 고진유의 뒤편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황을 보았다.
그가 걱정하는 대상은 고진유가 아니었다.
그의 염려대로 일은 벌어졌다.
콰아아앙-!!
고진유에게 다가섰던 병사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뒤로 쓰러졌다.
휙휙휙.
그의 움직임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병사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아악!!”
“커어억…….”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정신을 잃거나 바닥에 쓰러졌다.
방원의 눈이 커졌다.
“고…… 수……?”
사내는 무림고수였다.
그는 목소리가 떨린 채 소리쳤다.
“전부…… 한꺼번에 달려들어라……!!”
수백 명의 병사가 고진유를 에워싸며 달려들었다.
스르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으며 달려든 병사들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앙!!
병사들의 앞에서 무형검강이 폭발했다.
“아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들리면서 한 번의 움직임에 수십 명의 병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번쩍.
이번에는 검광이었다.
검광이 쏟아져 나가자 병사들은 제대로 앞도 쳐다보지 못했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두 번의 공격에 백 명이나 되던 수하들이 부상을 입었다.
‘대체…… 누구지?’
방원은 검을 든 사내를 보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일반 무림인이 아니었다.
그는 무림의 절대고수가 틀림없었다.
스윽.
사내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느낌보다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 듯했다.
전혀 사내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질책하는 듯한 표정까지 지었다.
“분명 경고를 하지 않았소이까. 어째 말을 듣지 않소.”
쿠웅!
방원은 눈앞에서 새하얀 빛을 보았다.
사내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그는 십여 장 날아간 뒤 바닥에 떨어졌다.
부장군의 처참한 모습까지 본 정남군의 사기는 무너져 내렸다.
정남장군 신야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무림인들이 강한 줄은 알았지만…….’
그가 본 사내는 일반 무림인이 아니었다.
“궁수대, 준비하라!”
신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철저하게 군대로서 싸워야 했다.
척척척척!
신야의 명에 궁수대가 앞으로 나오며 활을 겨누었다.
“발사!”
피우우웅-
허공을 가르며 수백 발의 화살들이 날아갔다.
고진유는 고개를 들어 해를 가릴 정도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았다.
‘너무하는군.’
주위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병사들이 많았다.
퍽퍽퍽퍽퍽-!!
수백 발의 화살들이 끊임없이 날아왔다.
그 모습을 본 신야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훗.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했다.
“그자의 시신을 찾아라.”
병사들이 화살이 떨어진 방향으로 달려가서 사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없…… 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뭣이?”
신야는 황급히 주위를 살피며 사내를 찾기 시작했다.
화살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자신의 병사들만 궁수대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그것으로 본인을 죽일 수 있다고 여겼나?”
“……!!”
신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 뒤에서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가 차갑게 목을 겨누고 있었다.
“누…… 구시오?”
“어차피 죽을 사람이 알 필요가 있을까?”
“목숨…… 만…….”
“난 지금까지 나를 죽이고자 했던 적을 살려준 적은 없소이다.”
신야는 여전히 뒤를 돌아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나를 죽인…… 다면…… 그대는 나라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이오.”
“상관없다.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겠지. 잘 가시오.”
스걱.
신야의 목이 잘려 나갔다.
너무나 간단하게 정남군 수장의 목이 떨어졌다.
그 순간 거용관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구경하던 백성들조차 입을 틀어막으며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 올려 정남군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싸울 의지가 있다고 보겠다. 감히 황제의 친위 금의위를 죽이고자 한 죄를 이 자리에서 물을 것이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정남군 병사들에게 똑바로 울렸다.
툭. 툭.
병사들은 하나둘씩 손에 들고 있던 검과 창, 그리고 활을 버렸다.
정남군을 홀로 싸워 이겼다.
이정소는 점점 그의 힘에 익숙해져 갔다.
‘천하제일인이니까…….’
그의 무공을 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갑시다.”
“……아, 네에.”
이정소는 거용관을 넘어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 * *
거용관에서 일어난 사건은 황성의 모든 정보기관에 알려졌다.
정남군을 홀로 싸워 이긴 무인.
금의위 남진무사와 함께 황성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황성으로 향한 길에 모든 시선이 그들을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금의위 도독 한청도 방금 수하의 보고를 받았다.
‘천하제일인…… 무림맹주가 확실하다.’
사내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건 없지만 홀로 정남군을 쓸어버릴 무공을 지닌 무림인이라면 그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행히 성공했다.’
한청은 마음이 놓였다.
이정소를 그에게 보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현 무림의 상황도 소문에 의하면 상당히 복잡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에 그를 보냈다. 다행히 함께 올라오는 것을 보니 황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오는 듯했다.
‘그들도 분명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거용관에서 일어난 소문은 황성 전체에 퍼져 나갔다.
서창은 물론 명친왕부까지 소문이 들어갔을 게 분명했다.
이제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아직 모른다는 것이었다.
먼저 움직여야 할지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대항을 할지 결정해야 했다.
집무실 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독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들어오도록.”
금의위 당두 현궁민이 안으로 들어섰다.
척.
그는 절도 있게 포권을 했다.
“남진무사께서 복귀하셨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군!”
한청의 표정이 밝아졌다.
남진무사가 금의위에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혼자 들어왔습니다.”
“……혼자?”
“그렇습니다.”
한청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그를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물어보고자 했다.
“남진무사는 어디에 있지?”
“바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가 도착하면 혼자 들여보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현궁민은 포권을 한 뒤 집무실 밖을 나섰다.
“이거…… 참. 이정소와 함께 오는 것이 아니었던가?”
일각 뒤.
무림맹으로 내려갔던 이정소가 들어섰다.
“도독님, 이정소입니다.”
“들어오게.”
한청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무사히 복귀한 게 천운임을 잘 알았다.
“정소,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한청은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정남군을 부순 소문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함께 온 인물이 누구인가?”
“그가 맞습니다.”
“그렇군. 정말로 그가 도움을 주겠다고 하던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부르시는데 거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음…… 그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이정소의 말대로 도움을 주겠다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의 부름에 왔다는 것은 긍정적이었다.
한청은 다시 물었다.
“함께 들어올 줄 알았네. 그는 어디에 있는가?”
“황성에 들어오기 전 잠시 볼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볼일이라고? 황성에 그가 무슨 볼일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군.”
“내일 도독님을 찾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일?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정소의 말대로라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기다리라고 한다면 기다려야지.”
“도독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의 무공을 직접 봤습니다. 왜 중원에서 천하제일인이라 칭송하는지 알았습니다.”
“그 정도인가?”
“그가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알겠네. 나도 얼른 그를 만나보고 싶군.”
똑똑.
집무실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도독은 안에 있소이까?”
“…….”
한청을 찾는 목소리.
제독동창 부형이 금의위에 직접 찾아왔다.
장인태감에게 사정을 듣지 못한 듯 보였다.
“들어오시지요.”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부형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정소를 본 뒤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청은 일어난 뒤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지요.”
“흐음…….”
부형의 시선은 여전히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공공께서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도독과 차 한잔을 마시고자 왔소이다. 어떻게 바쁘지 않소이까?”
“괜찮소이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부형은 자리에 앉으면서 옆에 선 이정소를 가리켰다.
“소문을 들으니 남진무사는 멀리 다녀온 모양이더군.”
“네. 하남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이정소는 사실대로 말을 했다. 이미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남이라면 어디를 다녀왔는가?”
“본인의 명으로 무림맹에 다녀오던 길이었소이다.”
한청이 대신 대답을 했다.
“무림맹이라…… 금의위에서 무림맹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이까?”
“그건…… 죄송하지만 말할 수 없소이다.”
“흐음. 그렇소이까? 도독께서 말을 할 수 없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수하가 들어오면서 두 사람 앞으로 차를 내려놓았다.
“근데 조금 섭섭하외다. 본인도 황제 폐하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인데 말이오.”
“미안합니다.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나중에 따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소이다.”
부형은 차를 마시면서 이정소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참. 거용관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네.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혼자서 정남군을 완전히 박살 냈다고 하더군. 직접 만나보고 싶은데 그는 어디에 있는가?”
“황성에 들어오면서 헤어졌습니다.”
“…….”
부형은 시선을 돌려 한청을 보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도독, 너무하는군.”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본인도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남진무사 혼자 금의위에 왔다고 했습니다.”
“정말이오?”
“본인이 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허허. 그럼…… 그에 대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겠소?”
“그입니다.”
“그라니…… 누구를 말하는…….”
부형도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정말로 그가 왔다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천하제일인 화산도협 고진유에 대해서는 동창에서도 오래전부터 조사한 인물이었다.
“엄청난 인물이 왔군.”
부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약 무림맹주가 도움을 주기 위해 온 것이라면 황제의 힘을 무시하지 못할 게 확실했다.
부형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게 있었다.
‘왜…… 무림인을 불러들이는지 모르겠군. 사람이 필요하면 금의위나 동창에 부탁하면 될 것을…….’
무림이 필요할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해야 할 적이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이라…… 설마…….’
부형은 한 명의 이름을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황제에게 가장 강한 위험을 줄 수 있는 인물.
‘삼황숙이었어. 모든 군권을 쥐고 있는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 황제가 승부패를 던진 것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