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황성으로 가는 길.
고진유는 금의위와 함께 움직였다.
‘하아…….’
이정소는 하루 종일 답답했다는 듯 한숨이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황성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연락을 띄우지도 못했다.
이제는 금의위도 믿을 수 없는 판국이었으니까.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당연히 빨리 가야만 했다.
하지만 저 사내는 느릿하게 걸어갔다.
말을 타고 가도 되건만 걷는 게 편안하다고 했다.
수하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어…… 남진무사님. 저기 청년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은공이시다.”
“그건 알겠습니다만…… 같이 가는 이유가 있습니까?”
금의위 수하들은 천천히 걷는 고진유를 보면서 답답했다.
말을 타고 달렸으면 이미 황성에 도착했을 것 같았다.
“북진무사를 간단히 이긴 무인이시다. 그들이 다시 우리를 죽이기 위해 안 올 것 같은가?”
“…….”
금의위들은 바로 대답을 못 했다.
남진무사의 말처럼 그가 없었다면 지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었다.
“저분께서도 다급한 사정을 알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움직이는 건 무슨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다. 조용히 따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금의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가 중천에 올랐다.
앞서가던 고진유가 뒤를 돌아섰다.
이정소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가섰다.
“무슨 일이시라도?”
“시간을 보니 밥 때가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아…… 네에. 객잔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굳이 찾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만 더 가면 객잔이 나올 겁니다. 내가 예전에 여기를 지나다녀서 압니다.”
“그렇군요…….”
이정소는 먼저 나서는 고진유의 뒷모습을 보았다.
가볍게 뛰는 듯한 발걸음을 보니 그가 무림맹주가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떄, 한참 앞서가던 그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무슨 일이지?’
이정소는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전방을 보았다.
“역시 그대들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
“조만간 모습이 보일 겁니다.”
‘어디……?’
여전히 전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척.
고진유는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아직 멀지만 조금 뒤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
무림맹주의 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았다.
“어떻게 하겠소? 그들이 만나기 전에 피할 수 있소이다.”
고진유는 피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에게 물었다.
“그대로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소.”
이정소는 그를 믿기로 했다.
천하제일인과 함께 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나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우선 그들이 누구인지 만나볼까요?”
* * *
‘이런.’
객잔에 들어선 고진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서 싸늘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점소이는 이정소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금…… 의위다.’
금의 복장을 보며 상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나으리, 어서 오십시오.”
“자리가 되겠는가?”
이정소는 허리에서 은원보 하나를 건네주었다.
점소이는 은원보를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연히 있습니다요. 이 층으로 가시면 단체석이 있습니다.”
“안내하게.”
점소이는 앞장서며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이 층 객잔은 일 층보다 좁지만 단체로 있기에 충분했다.
“간단하게 요기할 것만 가지고 오게.”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음…….’
일 층 객잔에 특별한 인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있소. 저기에.”
“누구인지…… 잘 안 보입니다.”
“저기 끝에 있소.”
객잔의 창가 끝에 모여 있는 네 명의 인물.
“특이한 내공을 지닌 듯하군요.”
“…….”
이정소는 고진유가 가리킨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저들은…….’
환관 특유의 동작이 있다.
음식들을 먹는 모습에서 사내이지만 여인처럼 섬세한 움직임이 조금씩 보였다.
“아하. 환관들입니다.”
“환관이라…….”
황궁무공의 결정체라 부를 수 있는 무인이었다.
고진유는 그들의 무공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조만간 움직이겠군요. 기다려 보죠.”
“알겠습니다.”
급한 건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급할 뿐.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기다리면 되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고 올라왔다.
‘이거 참…….’
식탁에 차례대로 놓은 음식들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예?”
이정소는 은침을 꺼내어 올라온 음식들을 확인했다.
은침의 색은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독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독은 독이지만 독이 아닌 게 있지 않소?”
“아…… 하…… 산공독…….”
고진유의 말에 금의위들은 젓가락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꿀꺽.
점소이의 목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이 층을 울리는 듯했다.
“이것을 누가 만든 거요?”
쉬익.
점소이가 소매를 움직이려는 순간.
척.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진유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허. 그러다가 손이 잘릴지도 모르는데.”
“…….”
고진유는 손은 여전히 식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놈의 검은…….’
점소이의 시선이 식탁 아래로 내려갔다.
‘쳇. 네놈이 아무리 빨라도 나보다 빠를 수는 없지.’
그는 생각과 동시에 소매에서 비폭침을 발사하고자 했다.
쉬이익!
하지만,
‘크윽, 이렇게 빠르다고?!’
스걱.
점소이는 자신의 몸에서 날카롭게 잘려 나간 소리를 들었다.
“아아악!”
피가 솟구치면서 비명을 질렀다.
퍼억.
고진유는 손이 잘린 점소이를 그대로 일 층 아래로 차버렸다.
콰아아앙!!
환관들이 있는 식탁 위로 점소이가 떨어졌다.
타아앗!
“저놈을 죽여라!!”
모여 있던 환관들이 일 층 객잔에서 이 층으로 신형을 날리며 올라왔다.
고진유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디를 올라오는 것이냐? 물러나라!”
번쩍.
검광이 폭발하자 이 층으로 날아오르던 환관들은 충격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광요대주 호축경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상대의 가공할 무위를 보면서 순간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북진무사가 실력이 약해서 진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너무나 강한 것이었다.
휘익!
이 층에 있던 사내가 일 층 객잔으로 내려왔다.
“네놈들은 어디 소속이지?”
“…….”
“그럴 줄 알았다.”
고진유는 명령을 내린 인물. 호축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순순히 말하는 걸 원하진 않았어.”
호축경은 검을 휘둘렀다.
휙휙휙!
서창 광요대의 수장으로 무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중원 무림의 무인과 싸워도 절대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한데,
‘젠장……!’
상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은 자신이 펼친 검보다 훨씬 빨랐다.
갈수록 빨라지는 그의 움직임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게 끝이오?”
“크윽!”
“황궁의 무공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아쉽소이다.”
호축경은 흠칫거렸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무공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도망…… 을…….’
주위를 둘러보며 밖으로 빠져나갈 길을 찾았지만.
“뭐요? 도망갈 생각이오?”
쉬이이익-
스걱.
아래에서 다가오는 차가운 검기에 재빨리 몸을 띄워 피하고자 했지만 검기가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아아악!”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호축경이 쓰러지자 주위에 남아 있던 그의 수하들이 달려들었다.
“모두 멈추지 않으면 여기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자는 없다.”
무형의 살기가 환관들을 향해 뻗어 나갔지만 환관들은 고진유의 말을 무시했다.
쉬이이익-
슈우우우욱!!
수십 개의 검이 고진유를 향해 떨어졌다.
“하여튼…… 죽을 놈들은 원래 말을 안 듣는 편이지.”
번쩍!
콰아아앙-!!
섬광폭이 터지며 동시에 울렸다.
수십 명의 광요대의 환관들은 사의검에서 펼쳐진 섬광폭에 목이 잘리고 팔이 잘려 나갔다.
한 번의 초식에 객잔은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덜덜덜.
호축경은 몸이 떨렸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장면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살…… 인귀…… 살성…… 이다……!!’
중원 무림에 이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가 생각했던 무림은 단순히 검과 검으로 싸워 이기는 곳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또 하겠소?”
“…….”
남은 수하들은 이미 그처럼 정신이 빠져 있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을 한다. 아니면 바로 죽는다. 당신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인물은 당신 말고도 많이 남아 있거든.”
이정소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맙소사…… 이것이 정녕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이란 말인가?’
천하제일인의 무공이 어떠한지 보았다.
‘관과 무림이 불가침을 맺은 건 무림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들이 정녕으로 군대를 상대하지 않고 황성으로 쳐들어온다면 막아낼 수 있을까?’
이정소는 가슴이 무거워지면서 두려움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황성은 절대로 무림과 척을 두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정소는 살아 있는 환관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환관들은 이미 넋이 빠져 있었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사실대로 불 수밖에 없었다.
고진유는 주위를 살핀 후 의자를 주웠다.
“우리 이제 제대로 시작해 봅시다.”
“…….”
“앉아서 서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까요.”
고진유는 의자를 내려놓은 뒤 호축경을 앉히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디부터 물어볼까…… 음,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호…… 축경…… 입니다.”
“그렇군요. 소속은?”
“서창…… 입니다.”
“아하, 서창이군요.”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우리를 죽이고자 왔소이까?”
“그, 그렇습니다.”
“호오. 여기까지는 좋군요. 마음에 듭니다. 당신을 보낸 사람은 서창의 수장이겠군요.”
“맞습니다. 독주께서…….”
“서창 독주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유기…… 님입니다.”
“서창 독주인 유기라는 인물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 당신을 보냈다는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고진유는 일단 한 가지 정리를 마쳤다.
“잘하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들보다 앞서 북진무사를 보낸 인물도 유기라는 인물이 맞소?”
“그렇습니다.”
“이런…… 서창의 독주가 대단한 인물이군요. 금의위의 도독이 분명 있거늘 함부로 명령을 내리다니.”
“…….”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 않소?”
고진유의 살기에 그는 깜짝 놀랐다.
“아! 아, 네에…… 그게…… 북진무사를 사전에…… 매수했습니다.”
“그를 매수를 했다라? 이해가 되지 않는군. 도독이라면 모를까, 겨우 북진무사를?”
“도독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황제의 사람이기에…….”
“흐응.”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듣고자 싶은 이야기가 나왔다.
“황제의 사람이라고 했소?”
“…….”
호축경은 순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스걱.
사의검이 지나가며 호축경의 목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크, 어억…….”
“본인의 검에는 인정이 없다. 다음에는 네놈의 목이 잘리게 될 것이다.”
“…….”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네놈에게는 확인차 물을 뿐이니까.”
호축경은 상대가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을 열면 그놈들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내 손에 죽는 건 두렵지 않은 모양이지?”
“…….”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죽는다면 나중에 죽는 게 나았다.
“사실대로 말하고 살 기회를 찾아. 그게 최선의 방법인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
“알…… 겠사옵니다.”
“이제부터서는 멈추면 안 된다. 황제의 사람이 아닌 자가 누구지?”
“서창의 독주입니다.”
“그건 알고 있다. 독주가 미치지 않고서 황제와 싸울 일이 없지. 그 뒤에 누가 있소?”
“대장군 독중기가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중요한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후후. 아직 나올 사람이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