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01화 (301/425)

301화

사내의 눈빛은 마치 범 같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모든 털이 쭈뼛 섰다.

북진무사 회무원은 침을 삼키며 다가오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기 원한다면 물러가시오.”

“…….”

“죽고 싶다면 그대로 있던지.”

“우린…… 금의위다.”

“보아하니 물러갈 생각이 없군요. 당신들에겐 미안하게 됐소.”

휘익.

사내의 검이 움직였다.

회무원은 사내의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피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뭐지?’

목을 지나가는 차가운 기.

‘피…….’

목을 만진 손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털썩.

북진무사 회무원은 숨이 끊어지면서 두 눈을 뜬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죽음으로 주위 일대가 단숨에 정적에 잠겼다.

“죽기 싫으면 물러가라.”

사내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갔다.

북진무사와 함께 왔던 금의위들은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서며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물러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본인의 검을 무시하는 모양이군.”

번쩍.

검광이 쏟아지는 동시에 사내와 가장 가까웠던 금의위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팟팟팟-

연이어 섬광이 폭발하듯 터지면서 금의위의 목과 가슴이 잘려 나갔다.

단번에 십여 명의 금의위가 바닥에 쓰러졌다.

“사, 살인귀……!!”

북진무사의 부관은 몸이 떨렸다.

사내를 상대로 이길 수 없었다.

한 가지 선택만이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

“모두 물러나라!!”

곧바로 금의위들은 사라졌다.

혈향이 주위에 퍼져 나갔다.

이정소는 갑자기 나타난 사내를 보았다.

가공한 살인 무공을 보면서 그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은 괜찮소?”

바로 전까지 살기가 강했던 목소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정소는 사내에게 포권을 했다.

“은공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잠깐 손을 줘보시오.”

“…….”

타인에게 함부로 손을 건네는 일은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사내가 아니었다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 아닌가.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흐음…….’

잡힌 손을 통해 사내의 내력이 혈맥을 따라 들어오면서 흐트러진 내기가 진정이 되어갔다.

척.

이정소는 다시 한 번 더 포권을 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은공께서는 누구신지요?”

스윽.

사내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헉…….’

짧은 순간 무림맹주 고진유의 얼굴이 나타났다.

금의위들 중 오직 그 혼자만 얼굴을 보았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께서 직접 사람을 보냈는데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소이다.”

고진유가 재차 천면변화공을 펼치자 낯선 사내의 얼굴로 돌아갔다.

“조용하게 황제를 뵙도록 하지요.”

“아,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죽은 시신들을 가리켰다.

“이들도 금의위가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건……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전 단지 도독의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이들을 보낸 인물은 그가 아니군요. 도독이 아니라면 그대가 하남성에 온 사실을 아는 인물이 있소이까?”

“도독께서 특별히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다. 황제께서 뵙고 싶다는 말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금의위에 몰래 숨어든 쥐새끼가 있는 모양이외다.”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이정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조심해서 올라가는 게 좋겠군요.”

그의 말대로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당장 급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황성에 무사히 도착하는 일이었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

이정소는 금의위를 재정비한 후 성도를 향해 달렸다.

* * *

타아앙!!

중년 사내가 탁자를 내리쳤다.

남진무사를 죽이기 위해 보냈던 금의위의 무인들이 돌아왔다.

북진무사의 죽음과 함께 돌아온 그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중년 사내의 목소리는 가늘며 날카로웠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부, 북진무사가 그들을 죽이려고 할 때 갑자기 젊은 사내가 나타났습니다.”

“그놈이 누구란 말이더냐?”

“그건…….”

부관은 서창의 수장 유기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더는 그에게 물을 게 없었다.

“쯔쯔, 물러나라.”

유기는 금의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한 놈들. 괜히 저놈들에게 시켰어.”

이번 일의 원인은 따로 있었다.

“한청, 이놈이……!”

금의위 도독 한청이 남진무사에게 임무를 내린 것을 뒤늦게 알았다.

북진무사와 금의위를 보내 그들을 잡고자 한 것이다.

일단 그들을 잡은 뒤 추궁하면 얼마든지 죄는 만들 수 있을 터.

그의 목표는 도독 한청에게 죄를 묻는 것이었다.

근데…… 쉬울 것 같았건만 일이 틀어졌다.

‘무림맹에 남진무사만을 보낸 것이 아니었어.’

그의 곁에 뛰어난 무인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금의위에서 북진무사를 죽일 수 있는 무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체…… 무림맹이 아니라면 어떤 놈이 그를 도와주는 것이지?”

정보에 의하면 무림맹에 들렀던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나는 도중이었다고 했다.

북진무사와 금의위를 단번에 죽일 정도의 실력이라면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금의위가 안 된다면 할 수 없이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인가?’

그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 있느냐?”

드륵.

문을 열고 환관이 빠르게 들어섰다.

“독주님, 부르셨사옵니까?”

“지금 당장 광요대를 풀어 남진무사를 잡아오도록 해라. 그들은 황성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넵, 알겠사옵니다.”

환관은 허리를 숙인 뒤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

유기는 생각에 잠겼다.

‘금의위가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다면…… 황제가 말없이 따로 움직인다는 뜻이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가 움직였다면 그에 맞게 새롭게 대응해야 했다.

그가 서창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음…… 이것들 봐라.’

멀리서 서창을 지켜보는 시선.

서창 독주 유기가 사라진 방향을 보던 감시자의 눈동자가 빛났다.

‘빨리 보고를 해야겠군.’

인영은 곧바로 동창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제독 동창 부형에게 서창에서 일어난 사항을 보고했다.

부형은 수하의 보고를 받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태감께 얼른 보고해야겠군. 황제와 연관된 문제라면 그분도 당연히 알아야 하겠지.’

금의위와 서창에서 일어난 사항은 긴급하게 보고해야 할 큰 문제가 확실했다.

제독동창 부형이 사례감으로 향했다.

똑똑.

환관이 안으로 보고를 하였다.

“태감님, 동창의 부형 제독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오도록 해라.”

부형은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크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장인태감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게나. 어서 자리에 앉도록 하게.”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부형은 그와 마주 보며 앉자 장인태감 화진은 그의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한잔 마시겠는가?”

“감사합니다.”

부형의 옆으로 다가온 환관이 술을 따라 주었다.

술잔 위로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화진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요즘 날씨가 춥지 않던가?”

“갑자기 추워진 듯합니다.”

“술이 따뜻하니 좋을 거야. 마시게나.”

그는 술잔을 들어 단번에 술을 비웠다. 목 안으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내려갔다.

“좋은 술인 것 같습니다.”

“후훗. 다행이구만.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있어 들어왔는가?”

“금의위와 서창의 문제로 찾아뵈었습니다.”

“흐음. 서창이라면 모를까. 금의위라…… 한 도독이 무슨 잘못이라도 지었단 것이오?”

그가 보기에 한청은 엉뚱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금의위에서 무림맹에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화진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는 부형에게 다시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로군. 언제 그들을 보냈다는 말인지?”

“며칠 전인 것 같습니다.”

“한 도독이 독단적으로 보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렇지 않은가?”

금의위를 보낸 인물은 화진이 생각하기에 황제였다.

황제의 명 없이 금의위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금의위를 몰래 보내다니.’

황제가 무림맹에 금의위를 보낸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한 도독 문제는 알겠네. 그럼 서창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서창에서 금의위 소속의 북진무사를 보내 한 도독이 보낸 남진무사들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

화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금의위도 서로 파가 나누어져 있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그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기들끼리 몰래 암중에서 재미를 보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실패한 모양입니다. 북진무사가 금의위를 끌고 갔는데…… 도중에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무림맹의 짓인가?”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남진무사는 무림맹에 들른 후 아무 성과 없이 물러났다고 했습니다.”

“무림맹도 제법 똑똑한 녀석들이군. 관에 대해서 불가침이란 사실을 잘 알아.”

“그렇긴 하지만 북진무사를 죽인 건 무림인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서창 유기의 성격으로 봐서 가만히 있지 않겠군.”

“남진무사를 잡기 위해 서창에서 움직였습니다.”

“음…….”

화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린 구경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지 않은가?”

“화진 님께 오는 길에 이미 동창을 보냈습니다. 우선 서창에서 그들을 잡아가지 못하도록 지켜보다가 움직이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후후후. 잘했군.”

화진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창의 독주 유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인가 말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반기를 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서창, 이 녀석들이 똑바로 하도록 정신 차리게 해줄 필요가 있겠어.”

“알겠습니다.”

화진은 이번 기회에 서창과 내창까지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지 몰랐다.

“흠흠. 황제 폐하를 한 번 가서 만나 뵈어야겠군.”

“태감께서는 한 도독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은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지. 딱히 우리와 사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 않나. 자네는 당분간 서창에 대해 조사를 해보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화진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삶의 재미를 찾은 듯했다.

“이번 일은 재미있지 않겠나? 바로 폐하께 가봐야겠군.”

“소인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네. 자네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똑바로 신경 쓰게.”

“알겠습니다.”

부형은 일어선 뒤 허리를 숙였다.

* * *

장인태감 화진은 보폭이 좁은 발걸음으로 금의위군으로 향했다.

바로 건청궁으로 가려고 하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궁내를 지나가는 그의 주위로 환관들이 허리를 숙였다.

화진이 금의위군으로 들어서자 금의위들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태감께서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도독께 안내하라.”

“네, 알겠사옵니다.”

금의위 무사는 앞장을 서며 도독 한청에게로 곧장 안내를 했다.

“도독 나으리. 장인태감께서 도착했사옵니다.”

“안으로 들라 해라.”

한청의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

드륵.

화진이 안으로 들어서자 한청이 그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한청…….’

금의위 도독 한청의 얼굴과 마주쳤다.

한청은 얼른 앞으로 나오며 두 손을 올렸다.

척.

“장인태감을 뵙습니다.”

“한 도독께서는 잘 지내고 계시오?”

“그렇습니다.”

그는 뜬금없이 찾아온 화진을 보면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태감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후후. 꼭 일이 있어야만 오는 것이오? 잠시 지나가다가 시간이 나서 인사나 하고자 들렀소.”

“고맙습니다.”

“굳이 고맙다고 인사를 받고자 온 것은 아니네. 우린 황제 폐하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동료가 아닌가.”

“…….”

그는 두 손을 얼굴까지 올리며 대답을 했다.

한청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금의위군은 지나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 들어와야 할 막다른 장소였다.

화진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말문은 화진이 먼저 열었다.

“방금 동창의 정보에 의하면…….”

화진은 말을 하면서 한청의 눈치를 살폈다.

“무림맹에 다녀오던 금의위가 또 다른 금의위에게 급습을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네.”

“…….”

한청은 여전히 말문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서창에서 뜬금없이 움직인다고 하더군.”

“장인태감님, 그게 정말입니까?”

한청은 서창에서 움직였다는 말에 바로 반응을 보였다.

“동창의 정보가 맞다면…… 그런 것 같네.”

서창에서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은 건 따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북진무사가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은 후 걱정을 하던 찰나였다.

“이보시게. 한 도독. 북진무사가 도독의 명이 없이 움직일 수 있는가?”

“……없습니다.”

“흐음…… 이거 참. 무슨 일인가 모르겠구만. 도독의 명도 없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그들이 누군가에 당한 뒤 이번에는 서창에서 움직인다고 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 줄 모르겠군.”

“…….”

남진무사가 산 채로 잡힌다면 상당히 껄끄러운 사건이 일어날 게 확실했다.

황제께서 무림맹주와 독대를 원한다는 말에 관해서 물을 게 틀림없었다.

‘흐음…… 어떻게 하지?’

다행인 것은 아직 남진무사 이정소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화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한청을 보며 미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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