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금의위 남진무사 이정소는 무림맹에 들어서면서 충격을 받았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스쳐 지나간 무인들의 신형에서 흐르던 기가 대단했다.
그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무사님, 이들의 무력은 보통이 아닙니다.”
“여긴 무림맹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
이정소는 당연하게 말을 했지만 수하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륵.
문이 열리며 매화도의를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화산도협…….’
무림맹주 화산도협에 관한 소문은 수없이 들었다.
‘젊다고 했지만…….’
천하제일인.
이십 대의 나이에 중원 최고의 무림인이 된 그였다.
고진유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름을 밝혔다.
“반갑소이다. 본도가 무림맹주입니다. 황성에서 왔다고 들었소이다.”
고진유의 신형에서 내력이 잔잔하게 흘렀다.
“금의위 남진무사 이정소라 합니다. 무림맹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멀리서 오셨군요. 그대가 본도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까?”
점점 무거워지는 주변의 기에 그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이런. 본도가 내력을 완전히 거둔다고 했는데도…… 힘듭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내력을 거둔 상태에서도 흐르는 기조차 상대하기 버거웠다.
‘이것이 내력을 거둔 상태라고? 대체…… 진정한 내력을 뿜어낸다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무림맹주가 왜 천하제일인이라고 하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여러분께서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맹주를 비밀리에 뵙고 싶다고 하셨소이다.”
그는 혼자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께서 본도를 말이오? 음.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소이까?”
“…….”
“보아하니 없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혹시 이유도 모르겠지요?”
이정소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고진유의 질문처럼 이유를 알지 못했다.
도독의 명을 받은 후 곧바로 무림맹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만나야 하는 이유도 모르는데 본도가 황제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따라 나설 것으로 생각했소?”
“…….”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림맹주의 말뜻은 거절이었다.
금마지에서 쓰러졌을 때 알게 되었다.
무림인들은 황제의 명과는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맹주님, 황제께서…….”
“돌아가서 전하시오. 황제의 명이라도 본도를 만나고 싶다면 정확하게 이유를 알고 싶다고. 그 전에는 본도가 황제를 만날 이유가 없소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
“그 말 외에 다른 볼일이 있소이까?”
“없…… 습니다.”
“그럼 본도와는 할 이야기가 없군요. 지금 가셔도 되고 잠시 쉬고 가셔도 됩니다. 그럼 본도는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스윽.
고진유는 짧게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이정소는 가만히 선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력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빨리 도독께 보고를 해야겠어.’
그는 쉴 시간이 없었다. 수하들과 함께 빠르게 무림맹을 떠났다.
* * *
스으윽.
맹주전으로 들어서는 기척.
하지만 맹주전의 주변 호위를 선 누구도 기척의 존재를 알아내지 못했다.
맹주의 침실로 내려선 그는 움직이지 않은 채 침상을 주시했다.
“숙부, 오셨군요.”
“공자님을 뵙습니다.”
천영령은 고진유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릴 적 극일천주였던 아버지 외에 유일하게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 또한 고진유와 고화유를 보면서 조카처럼 대해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찾았습니다만,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영산에 계속 있었습니다. 주군께서 명하신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살피던 중이었습니다.”
“극일천이 사라진 이상 위험하지 않습니까?”
“직접 싸우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로 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걱정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숙부께서 직접 찾아오실 정도이면 중요한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오늘 금의위가 다녀간 걸 알고 있습니다.”
“그와 연관된 내용입니까?”
“금의위라면 황제가 보낸 듯합니다.”
“네, 맞습니다.”
천영령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황제가 그들을 왜 보냈는지 모르겠으나 신궁에서 명친왕부와 서신을 주고받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명친왕부라면…… 삼황숙을 말하는 건가요?”
“삼황숙이 맞습니다.”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주군께서도 다른 일은 관여하지 않았지만 황성과 관련된 일만큼은 절대로 금했던 일입니다.”
고진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극일천무신궁을 세운 그들이 조용하게 지낸 이유를 알 듯했다.
‘딴 짓을 하고 있었군.’
그는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이 황성인 모양이었다.
‘금의위가 온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군.’
그들이 움직였다면 황제 또한 수상한 느낌을 받은 것일 터다.
“휴우……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천문전주는 이유 없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모든 움직임에는 계획이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황성의 수백 대군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개인의 병사들은 무림인에 비해 너무나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수백만의 대군으로 모인 군대와 무림이 전면적으로 붙는다면 단번에 무림맹을 밀어낼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황제라…….’
말을 끝낸 천영령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누나를 만나보고 가지 않습니까?”
“…….”
사실 그는 하루 전날 무림맹에 왔었다.
고화유의 곁에서 몰래 지켜보았다.
많은 사람과 환하게 웃는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함께 있는 사내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오로지 그녀만을 향해 향하는 것을 보면서 알았다.
그녀 또한 그를 정답게 대하는 모습을 보았다.
‘잘됐어. 공녀님의 곁에 필요한 사람은…….’
자신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비천…… 이놈들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아닙니다. 공녀님의 행복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숙부. 몸조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공자님께서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스르륵.
천영령의 신형이 사라졌다.
고진유는 여전히 침상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황제가 금의위를 보낸 이유는 명친왕부와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신궁주 나하중. 정말로 간 큰 짓을 하고 있군.”
관과 무림이 서로 부딪치게 된다면 끝내 사라지는 곳이 무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무림이 일시적으로 군대를 이길 수 있으나 나라 전체와 싸울 수는 없는 일.
무림이 이기기 위해서는 전국의 모든 사람을 죽여야만 가능하다.
결국, 언젠가는 무림이 사라질 수밖에 없을 터.
‘움직일 수밖에 없군. 언젠가는 누군가 황성을 건드릴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신궁일 줄은 몰랐네.’
고진유는 침상에서 일어난 뒤 창문을 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음을 잘 알았다.
‘이번 일은 신궁에서 전혀 모르게 움직여야 해.’
신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 * *
조용했던 중원 무림에 천둥이 울렸다.
무림맹에서 들려온 소식.
사파의 이패천 철혈궁의 정체가 무림 전체에 밝혀졌다.
그들은 극일천무신궁의 명을 따르는 휘하의 문파라 했다.
곧바로 무림맹에서 움직인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웃긴 녀석들이군.”
신궁주 나하중은 중원 무림에서 들려온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무림맹에서 철혈궁을 칠 것이라 했다.
“증거도 없이 과연 사파에서 가만히 있을까?”
“녹림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고 합니다. 철혈궁의 일에 대해서는 사파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입니다.”
“…….”
나하중의 살형기가 순간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녹림은 여전히 사파연합의 수장이었다.
“녹림은 무림맹주와 사이가 좋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을지 모르나 사파의 수장이라는 녀석이 무림맹주의 말을 따른다는 것인가?”
“궁주님. 현 무림은 비공식적으로 신궁에 대항하기 위해 반연합으로 뭉쳐 있습니다.”
“정말로 웃긴 놈들이군. 정사의 연합이라?”
“그렇습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그놈들이 연합하든 하나로 뭉쳐 있든 상관없어. 어차피 모두 죽여 버릴 놈들이다.”
“어떻게 하심이…….”
“…….”
나하중은 가만히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극일천무신궁과 연관이 되었다고 알려진 이상 철혈궁이 무너지도록 볼 수 없었다.
다른 곳도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자네가 알아서 원군을 보내.”
“알겠습니다.”
수곡자는 곧바로 물러났다.
“쳇. 그놈도 조용히 있을 줄 알았는데 딴짓을 생각하고 있었군…… 네놈들 뜻대로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 * *
금의위 남진무사 이정소는 빠르게 달렸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불가침의 관계라 해도 황제의 명이 아닌가.
하지만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도독께 어떻게 보고를 하지?’
두두두두-
그때, 전방에서 먼지를 휘날리며 기마 무리가 다가왔다.
“멈춰라.”
이정소는 손을 들어 뒤에 따르는 수하들을 멈추었다.
금의위천기가 기마 무리들 위로 보였다.
“누구지?”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금의위가 틀림없었다.
금의무복을 입은 금의위의 오십 기 정도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북진무사?”
선두에서 달려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북진무사 회무원.
도독을 모시는 두 명의 진무사 중 한 명이었다.
‘도독께서 보내셨나?’
하남으로 달려오는 그들이라면 분명 도독이 보낸 것이라 여겼다.
빠르게 달려오던 북진무사와 금의위가 속도를 죽이며 멈췄다.
다각다각.
북진무사가 홀로 말을 몰며 앞으로 나왔다.
그가 건들거리며 이정소를 보고 손을 들었다.
“이 형, 안녕하신가?”
“북진무사. 여기에는 무슨 일인가?”
“볼일이 있어 왔네. 근데 자네는 하남 땅에 무슨 일인가?”
“나도 볼일이 있었네.”
“그렇구만.”
“도독께서 자네를 보내셨나?”
“…….”
이정소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주시했다.
말문은 북진무사 회무원이 열었다.
“혹시 무림맹주를 만나고 왔는가?”
“내가 먼저 한 물음에 답을 하시게.”
“무슨 답을 하라는 말인가?”
“누가 보내서 왔는지 묻고 있네.”
“일단 도독이 보낸 건 아니네.”
채애애앵!
남진무사 이정소는 재빨리 검을 뽑았다. 동시에 수하들도 검을 뽑은 뒤 앞을 겨누었다.
“허허허, 이 형께서는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가?”
“…….”
“그만 검을 내려놓는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네.”
회무원은 씨익 웃으며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회무원, 금의위의 신분에 도독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니 역모를 꾸미는 것이더냐?”
“이 형,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고자 할 때는 힘 있는 자에게 줄을 서는 것이다. 그대도 우리와 같이 잘살아볼 생각이 없는가?”
“회무원, 이노오옴!! 감히 불충을 하겠다는 것이더냐?”
“쩝, 예전부터 말이 안 통하는 친구인 줄 알았지. 어쩔 수 없군. 뜻이 맞지 않는다면 사라질 수밖에.”
회무원은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타아앗!
오십여 명의 금의위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이정소는 목소리를 내지르며 다가오는 금의위를 막았다.
“저놈들을 막아라!!”
채애앵.
금의위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정소와 회무원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공격할 기회를 기다렸다.
하지만 수적 차이에 의해 시간이 지나자 남진무사가 이끈 금의위들이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콰아앙-!!!
강하게 뻗어낸 회무원의 일검을 받았지만 내기에 의해 몸속의 내부가 뒤엉켜 버렸다.
“우욱…….”
“이 형, 이제 그만 가시게나.”
그가 검을 든 채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서 다가온 무형의 기.
회무원은 사내를 보면서 몸이 굳어졌다.
“누구……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