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천주궁에서 내려온 두 사람은 중객궁으로 들어섰다.
극일천무신궁의 개파식에 초대된 모든 문파의 인물들은 정해진 장소에서 쉬고 있었다.
무림맹주 고진유의 영향인지 정파와 사파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리 서로 편안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화유는 먼저 무림맹이 쉬고 있는 방으로 갔고, 고진유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는 정사를 구분하지 않고 일일이 그들이 쉬고 있는 방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는…….’
방문 앞에 임시로 이름이 적힌 듯한 문패가 걸려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고진유입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 안에 있던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의 사내가 고진유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부님.”
“강천 제자, 오랜만이군요.”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중원상국의 이공자 조강천이 그 자리에서 절을 했다.
“일어나세요.”
“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일어선 그의 몸을 살폈다. 예전과 달리 한눈에 보기에도 강해 보였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했군요.”
“천하제일인이신 사부님의 제자로서 어찌 수련을 게을리하겠습니까.”
“잘했소이다. 나중에 한번 보도록 하죠.”
고진유는 그와 함께 온 일공자 조천항, 수한과도 인사를 했다.
“일공자와 수한 선생을 뵙습니다.”
“맹주의 소식에 대해서는 항상 듣고 있었소이다. 정말로 천하제일인으로 올라설 줄은…… 몰랐소만.”
“본도가 한 말은 항상 지키고자 합니다.”
“그런 것 같군요 직접 만난 뒤 축하의 말을 전해 주고 싶었소이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이 안 계시는 것을 보니 일공자께서 중원상국의 대표로 오신 것 같군요.”
“최소한 성의는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본인이 수한 선생과 함께 왔소이다.”
고진유는 옆에 선 수한과도 짧게 인사를 했다.
“이곳으로 오시는 길에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괜찮았소이다. 이곳에 오면 맹주를 만날 수 있다고 이공자가 기대를 하고 있었소이다.”
“한번 찾아간다고 했지만 잘 안 되더군요.”
“세상에서 제일 바쁘신 분이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국주님께서 대신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셨소이다.”
“돌아가시거든 고맙다고 전해주시지요.”
고진유는 그들과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아직 만날 사람들이 많았다.
“죄송하지만 먼저 나가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고진유는 밖으로 나가려는 도중 두 사람과 함께 가만히 선 조강천을 보았다.
“제자는 본 문의 사형들께 인사를 하셨나요?”
“아직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제자는 따라오세요. 화산파의 제자이니 인사를 드려야지요.”
“넵. 알겠습니다.”
조강천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얼른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둥둥둥!
극일천무신궁의 대연무장 위로 개파식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무희들이 나와서 개파식의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개파식 행사가 반시진 정도 지났을 때.
모든 음악 소리가 사라졌다.
스으윽.
연단 위로 황금 도포를 두른 채 오른 인물.
나하중이 연단에 올라섰다.
처억.
그는 중원인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포권을 했다.
“본 신궁의 개파식을 맞이하여 축하하기 위해 모여주신 무림 동도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이오.”
나하중의 목소리가 연단 아래로 퍼져 나갔다.
“본좌가 이 자리를 빌려 중원 무림에 고하겠소이다. 극일천무신궁을 개파한 목적은 단 하나이외다. 중원 무림의 모든 문파를 극일천무신궁의 이름으로 통일시키고자 하는 바이오.”
연단 아래 그의 연설에 개파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하중은 명확하게 한 번 더 극일천무신궁의 뜻을 밝혔다.
“한 번 더 밝히겠소이다. 정사마의 구분 없이 오로지 극일천무신궁의 이름으로 무림일통 시키겠소이다. 만일 여러분들이 본좌와 함께 무림일통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환영하는 바이오. 하지만 본 신궁과 뜻을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문파는 결국 멸문을 당하게 될 것이외다.”
나하중의 연설이 끝났다.
연무장 전체가 적막감에 휩싸였다.
‘이런 개파식이라니…….’
‘중원 무림에 대한 도전이 아닌가……!’
개파식은 축하를 받기 위한 자리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 중원 무림에 선전포고를 위해 그 많은 문파들을 초청했다.
주위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때,
휘익.
연단 위로 올라가는 인영이 보였다.
“무림맹주이시다!”
누군가 연단으로 내려선 인영을 알아보며 소리쳤다.
일제히 모든 시선이 연단 위 고진유를 향했다.
고진유는 내려선 뒤 나하중을 보았다.
스윽.
그리고 신궁주 나하중의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려 하자,
척척척.
신궁의 호위들이 급히 나오며 나하중의 앞을 막아섰다.
“……신궁주, 실망이외다. 무림을 일통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소리친 분이 지금 무엇이 두려워 호위의 뒤에 숨어 있소이까?”
“…….”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실망스럽군요.”
나하중의 인상이 굳어지며 앞을 막아선 호위들을 향해 살형기를 뻗어냈다.
“우우욱.”
“커어어억…….”
신궁 호위들은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단번에 쓰러졌다.
“네놈들이 죽고 싶은 것이더냐? 본좌의 명이 없이 누가 함부로 앞을 막아서라고 했지? 물러나지 못할까?”
“…….”
호위들은 두려움에 옆으로 물러났다.
“역시 신궁주이외다. 단호하군요. 하긴 이런 분일 줄은 사전에 알고 있었소만. 극일천주를 천주궁에 가둔 뒤 무림을 멸살하겠다고 중원 무림에 간자들을 심어놓은 당사자가 아닙니까.”
“…….”
“축하합니다. 드디어 그를 몰아내고 극일천무신궁의 개파를 선언하며 원하던 신궁주가 되었군요.”
고진유는 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저…… 녀석이…….’
작게 고개를 숙이는 고진유와 나하중의 시선이 마주쳤다.
고진유의 말에 극일천이 했던 모든 일의 배후는 나하중이 되었다.
게다가 극일천주를 몰아낸 역모자가 되었다.
“무림을 극일천무신궁으로 일통하겠다고 말했소이까?”
“…….”
“얼마든지 도전을 하시지요. 중원 무림은 강자존의 세상이지 않소이까. 극일천무신궁의 당당한 포부에 대해 응원을 보내겠소이다.”
고진유는 한 번 더 포권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림맹과 중원 무림은 언제든지 귀 문을 상대로 싸울 것이외다.”
고진유의 말에 중원 무림인들은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휘익.
아래에 있던 무혼신녀도 연단으로 올라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겁주는 건 여전하네요.”
“…….”
나하중은 그녀를 보면서 점점 더 표정이 굳어져 갔다.
“어째 사람이 나이를 먹었으면 대범해져야 하는데. 좀생이가 되었어요.”
“말이 심하군.”
“발끈하시네. 나이가 들어도 성격은 정말로 변하지 않는 모양인가 봐요.”
“…….”
“당신은 무림맹주의 말처럼 자신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중원 무림과 차지해 보세요. 정당하게 무림과 싸워 일통한다면 누구도 당신을 욕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일통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정정당당하다면 중원인들은 오히려 존경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극일천에 대한 무림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모든 문파에 간자들을 숨겨 놓았던 게 이번에 완전히 밝혀졌다.
고진유는 명단을 그대로 중원 무림에 뿌렸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 문파들에서도 온 중원이 알 수 있도록 퍼뜨렸다.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가면서 명부에 대해서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하중도 그 사실을 들었다.
“화산도협…… 본좌를 욕하는 놈이 있다면 한 놈도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살려주든 말든 그 일은 알아서 하시지요. 본도는 막을 뿐이니.”
두 사람의 팽팽한 기 싸움을 하는 듯 서로를 노려보았다.
무혼신녀가 중간에 나섰다.
“아우, 그만 가야겠어.”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아래로 내려서기 전에 한 번 더 포권을 했다.
“여하튼 개파를 축하하외다.”
“…….”
휘익.
고진유과 무혼신녀는 연단을 내려간 후 고진유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개파식이 끝난 모양이니 본도는 이곳을 내려갈 생각이외다.”
고진유의 말을 들은 그들도 신궁에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맹주, 본인들도 내려가겠소이다.”
우르르르-
고진유와 함께 개파식에 모인 중원 무림의 인영들이 영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영산을 내려온 뒤.
남궁무명은 조용한 곳에서 고진유와 마주했다.
남궁무명은 극일천무신궁에서 그를 만났을 때 단번에 알았다.
창천황신공을 대성하더라도 그를 이길 수 없다.
그는 바다와 같았다.
수많은 강물이 바다에 흘러들어도 바다는 변함이 없다.
화산도협 고진유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비무조차 의미가 없었다.
“맹주, 소문은 들었소이다.”
“무슨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까?”
“극일천주의 아들이라 하더군요.”
극일천이 사라지고 극일천무신궁이 개파된 이상 신분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맞습니다. 그동안 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난 그 말을 듣고 다행이라 생각했소이다. 원래부터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외다.”
“내가 무슨 괴물이라도 된다는 것입니까?”
“차라리 괴물이라면 도전이라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후후후.”
고진유는 웃음이 나왔다.
그는 다시 물었다.
“저들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생각이오?”
“중원 무림에 공식적으로 선포를 한 자들입니다. 중원 어디를 치고 들어가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남궁무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이곳을 치면 되지 않겠소?”
“저들의 힘은 지금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숨겨져 있는 힘이 이곳보다 서너 배는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너 배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힘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모든 힘을 수면 위로 보여준다면 모를까.”
고진유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너 배의 가공할 무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이 정도로 강하다면 반대로 단번에 무림을 밀어붙이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겁니다. 분명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도 한 곳의 힘을 두려워합니다. 그러기에 그들도 전력을 내보이기 어려워하는 것이지요.”
“무구천…… 이라는 곳이오?”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곳을 두려워했지만, 도중에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곳이 있군.”
“그들이 두려워하는 곳은 본 가입니다.”
“본 가? 맹주에게 가문이라면 극일천이 아니오?”
“극일천은 극일가의 가주께서 잠시 놀이 삼아 중원에 만드신 세력이었습니다. 본 가는 극일가로…….”
“…….”
극일가에 대한 고진유의 설명이 끝났다.
“맹주, 극일가에 대해서 알겠소이다. 그렇다면 저들을 상대하기 위해 극일가가 나설 수 없소이까?”
“극일가의 삼대수호신가가 어디인 줄 아십니까?”
“……?”
“극일가의 다른 이름은 중원무림신가입니다.”
남궁무명의 눈이 커졌다.
그는 창천황신공을 깨우치기 위해 남궁밀동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천황신공의 무공은 중원무림신가의 수호무공이라는 것.
그곳의 수호신가는 남궁세가뿐만 아니라 두 곳이 더 있다고 했다.
고진유는 극일가주의 신패를 보여주었다.
남궁무명은 그대로 몸을 숙이고자 했지만, 고진유에 의해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은 굳이 알릴 필요는 없잖아요.”
“알…… 겠습니다.”
“저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들고 있는 패를 절대로 보여줄 수 없어요.”
끄덕.
남궁무명은 고개를 움직였다.
“우린 힘을 아껴야 합니다. 저들이 완전한 힘을 쏟아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워야 하지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힘을 키우도록 하세요. 자금이 필요하다면 암흑금상에서 얼마든지 부탁하면 줄 겁니다.”
“암흑금상은 제가 알기에 무림과는 거래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암흑금상은 본 가의 삼신가에서 관리하는 무량삼천지 중 한 곳입니다.”
“…….”
극일천무신궁이 두려워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 것 같았다.
남궁무명은 갑자기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대충 이야기를 한 것 같군요.”
“최선을 다해 가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 * *
나하중은 대전에 들어섰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옥좌만이 그의 시야에 보였다.
저벅저벅.
그는 입가에 미소를 건 채 옥좌를 향해 걸었다.
극일천의 천문전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무림최고의 인물이 되고자 했지만 늘 자신의 위에 한 명의 인물이 버티고 있었다.
그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무림최고의 인물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 무구천의 인물에게까지 무공을 전해주었다.
그가 지닌 극일천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비천을 자신의 편으로 돌려놓았다.
거의 완벽한 계획이라 확신했다.
실패하는 자체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여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듯하면서도, 아닌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됐어. 어차피 지난 일. 화산도협, 본좌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겠지? 후후후…… 그사이에 하나씩 부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