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쏴아아아-
부서진 무형권강은 햇빛을 받은 물방울처럼 퍼져 나갔다.
“저걸 어떻게…….”
제갈양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옆으로 어느새 무혼신녀가 다가와 중얼거렸다.
“무공이 저런 수준이니 천마가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 게지.”
“으아앗, 계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소손이 보지 못했습니다.”
“아까부터 있었다. 네놈이 못 봐서 그렇지.”
“아이고, 저기 두 사람을 보느라 미처 못 봤습니다.”
“됐다.”
무혼신녀도 두 사람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파아아아앙-!!
퍼어어어엉!!
연이어 두 번의 공방이 이어졌다.
고진유는 의지만으로 무형권강을 펼치는 인양이 대견스러웠다.
“잘했어. 그동안 아주 강해졌어.”
“고맙습니다. 형님께서 많이 도움을 주신 덕분입니다.”
“그렇긴 하지. 내가 있으니 좀 더 빨리 익힐 수 있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형님의 말을 듣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좋아. 남들이 강하다고 해서 강한 게 아닌 걸 항상 잊으면 안 된다. 네가 나를 이기는 순간까지 항상 열심히 수련을 해야 해. 알겠지?”
“넵. 형님의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형님의 위명에 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그런 정신이면 좀 더 강해질 수 있다.”
대련 수련을 마친 고진유가 일행 앞으로 다가섰다.
“제갈 군사님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아, 맞다. 순간 까먹었군.”
제갈양은 비무 때문인지 맹주전으로 찾아온 이유를 잊고 있었다.
“신궁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극일천무신궁을 말하는 건가요?”
“맞다. 이름을 밝히기를 수곡자라고 하더군. 맹주를 직접 만나서 초청장을 줄 생각인 것 같아.”
“수곡자라면 극일천에서 이름깨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금천당에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 * *
고진유는 그를 만나기 위해 금천당으로 들어섰다.
‘훗…… 오랜만이군.’
어릴 적 천주궁에 찾아왔던 그를 몰래 본 적이 있었다.
금천당 호위는 다가온 고진유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습니다.”
고진유는 인사를 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밖에서 난 소리를 들었는지 수곡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흠칫.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선 사내를 본 수곡자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믿기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고진유의 얼굴은 분명 그와 닮았다.
‘그러면…… 천주의 무공을 펼칠 수 있다.’
모든 의문의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풀렸다.
고진유가 강했던 이유.
‘천주의 아들이라면…….’
“극일천무신궁에서 오셨다고 들었소이다. 본도가 무림맹주라 하외다.”
“……무림맹주를 뵙소이다. 수곡자라고 하외다.”
수곡사는 인사를 하면서도 고진유의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흠. 본도의 얼굴에 무엇이 묻었소이까? 왜 계속 쳐다보는 건지 모르겠소이다.”
“첫 만남에 실례를 했습니다. 근데…… 맹주께서는 본인이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았소이다.”
“누구를 닮았다는 말입니까?”
“……이름을 말해도 모를 것이외다.”
수곡사는 굳이 신궁의 일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만두셔도 됩니다.”
“…….”
고진유는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곡자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물을 수도 없었다.
“극일천무신궁이라 했소이까?”
“맞소이다.”
“개파를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신궁주님께서 직접 드리는 초청장입니다.”
수곡자는 손에 든 초청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다른 문파들처럼 사람을 보내면 될 것을 굳이 힘들게 오신 것입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무림맹주께 어떻게 사람을 시켜 초청장을 보내겠습니까?”
“본도를 초대해 준다고 하니 고맙소이다.”
“무림맹주께서 꼭 참석을 해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합니다.”
“음…… 한번 봅시다. 그 날짜에 약속이 잡혀 있는지 확인을 해야겠소이다.”
“…….”
극일천무신궁의 개파식이 열리는 날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었다.
“일단 알겠소이다. 본도가 특별히 바쁘거나 급한 일이 아니면 참석하도록 해보겠소이다.”
“알겠습니다. 꼭 참석하셨으면 합니다.”
“사람이 약속하다가도 본의 아니게 어기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참석한다고 했다가 못하면 괜히 안 좋은 소리 듣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외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당연히 이해합니다. 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수곡자께서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참석해 보도록 하겠소이다.”
“고맙습니다.”
“그럼 본도는 바쁜 일이 있어서 가보도록 하지요.”
“…….”
“여기 제갈 군사께서 상세한 이야기를 하실 겁니다. 그럼 이야기 나누시지요.”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금천당에서 밖으로 나섰다.
수곡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건방진 녀석…….’
스윽.
그의 곁으로 제갈양이 다가와 씩 웃었다.
“반갑소이다. 무림맹에서 군사를 맡은 제갈양이라 하외다.”
* * *
극일천무신궁의 개파식에 초청받은 문파는 정확히 오십 곳이었다.
그리고 개인으로 천하이십절대무인들도 초청을 했다.
그들에게 초청받은 오십 문파는 정파와 사파, 상계와 두 곳의 문파.
정파에서는 구파일방과 십대세가를 포함하여 열 개의 정파를 더 합한 뒤 서른 개의 문파가 초청을 받았다.
사파 무림에서는 녹림을 위주로 열다섯 문파가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마도에서는 단 한 곳도 초청장을 받은 곳이 없었다.
그 외에 상계의 두 곳과 천검궁과 무구천에서도 초청장이 들어갔다.
마지막 한 곳은 수곡자가 직접 찾아온 무림맹이었다.
초청장을 받은 문파들은 처음에는 극일천이기에 참석하지 않고자 했지만 중원 최고의 문파들에게만 참석하도록 초청장이 갔다는 사실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에게 초청장을 받은 문파는 중원 최고의 문파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극일천무신궁의 개파식까지 보름의 시간.
거리가 먼 곳에 있는 문파들은 벌써 영산으로 출발했다.
시월의 끝자락. 저녁이 되면 이제 바람이 조금씩 차가웠다.
따뜻한 설향차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무혼신녀는 찻잔을 두 손을 감싼 뒤 향을 맡았다.
“설향의 향이 좋군.”
고진유는 차를 마시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누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다. 가고 싶기는 한데…… 꼴 보기 싫은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마음 편하실 대로 하세요.”
“그렇지.”
극일천무신궁의 신궁주가 나하중이라는 말을 들은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천문전주란 인물이 갑자기 극일천무신궁의 신궁주가 되었다.
‘참으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극일천주가 살아 있는데 그가 어떻게 신궁주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극일천주는 극일천에 완전히 뜻을 접은 모양이지? 그래도 수백 년을 유지하면서 이어져 내려온 곳이 아니더냐.”
“본뜻을 잃지 않았다면 그대로 유지했겠지요. 그분께서는 이미 마음이 떠났습니다.”
“많이 아까울 텐데…… 극일천의 세력을 모두 빼앗기는 게 아니냐.”
무혼신녀는 여전히 극일천주의 뜻이 이해가 안 되었다.
“잘 되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무림을 스스로 유지하도록 놓아준 것입니다. 그리고 딱히 잃은 것도 없으니까요.”
“나하중, 그 인간을 막아야 해. 무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무림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께서 극일천을 버리신 것입니다.”
“나 또한 무구천이기에 극일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극일천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구먼.”
“당연합니다. 그분의 진정한 모습은 저조차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대단하긴 해. 혼자서 극일천과 싸웠던 것이니.”
무혼신녀는 극일천주가 극일천의 비밀 세력들과 싸웠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님, 무구천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흐음.”
무구천의 역사 또한 오래되었기에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극일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력으로 그녀 또한 무구천에서 무공을 배웠다.
그동안 그녀는 한 번도 누가 무구천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은 알고 있는 모양이지?”
“믿을지 모르겠지만 무구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
“중원 무림에서 극일천의 독단을 제어하기 위해 전대 극일천주께서 비밀리에 조직한 세력입니다.”
“……설마…….”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무구천의 초대 천주가 그분의 수하였습니다.”
그녀에게 고진유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무구천의 시작이 극일천에서 나왔다니.
하지만 거짓이 아닐 것이었다.
거짓인들 사실인들 달라지는 건 없기에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두 곳의 무공이 비슷한 것이었군. 무구천까지 세운 걸로 봐서 그분은 최선을 다해 극일천이 하고자 하는 뜻을 막고 있었던 게 맞아. 한데 이리 개파를 하고 말았구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의 뜻대로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간 것입니다.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예전과 다를 것임을 분명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음…… 모든 게 드러났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봐야겠죠.”
그녀도 고진유의 생각이 바르다고 여겼다.
세력이 아무리 강한들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준 상대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살짝 바뀌었다.
신궁에 올라가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그의 잘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제 출발하면 개파식이 열릴 때까지는 충분히 여유가 있겠구나.”
“내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냐.”
“누님도 내일 함께 가실 모양입니다.”
“아니…… 생각만 해보는 거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녀가 함께 떠날 것을 잘 알았다.
극일천무신궁의 개파식에 갈 인원을 정하기는 어려웠다.
적의 소굴에 무림맹주가 함부로 갔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제갈양은 최대한 많은 인원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고진유는 최소의 인원을 정했다.
화산파 대표로 우종성과 다섯 사형제들만 영산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은 고진유와 함께 인양, 묵경, 무혼신녀만이 함께 떠나기로 했다.
녹림야검은 녹림의 대표로 녹림대존과 함께 오기로 했다.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지옥혈림에서도 함부로 많은 인원이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열한 명의 일행은 아침 일찍 무림맹에서 길을 떠났다.
* * *
‘하아…….’
유랑검협 곡경인은 한숨을 쉬었다.
영산으로 가는 일행을 보면서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중원 최고의 인물들이라 소문을 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실력임을 단번에 알았다.
툭.
누군가 등을 건드렸다.
뒤를 돌아 누군지 보자,
“…….”
여인이었다.
‘맹주의 누님.’
무림맹에서 초면에 바로 말을 놓는 그녀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그녀는 모든 인물에게 반말했다.
그 후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맹주의 친누님이 아니고, 나이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젊은 놈이 한숨을 왜 쉬고 있어?”
“…….”
곡경인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다.
“그게…….”
“무공이 밀리는 것 같아서?”
‘어떻게 내 생각을 읽었지?’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읽었다.
무혼신녀는 한 번 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하지 않았나. 세상의 이치가 원래 그런 법이다.”
“아…… 네에.”
세상의 이치라는 그녀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세상이 그렇다면…… 나도 순응하는 수밖에.’
곡경인은 앞서가는 고진유와 그의 사형제들을 보았다.
그리고 맹주전에서 그의 의제와 의형을 만났다.
한 번씩 무공을 견주어 보았다.
세상에 괴물은 혼자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 눈앞에 괴물들이 열 명이나 있었다.
‘징그러운 놈들…….’
호북성을 넘어선 지 오 일째.
영산에 도착하기 하루 전이었다.
마을의 초입에 들어선 일행이 멈칫했다.
“허어…… 이건 장난이 아닌데요.”
많은 무림인들이 초청장을 받지 못했지만 혹시나 해서 영산으로 몰려들었다.
마을 안에서 객잔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형, 제가 빨리 가서 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됐다.”
고진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곳을 쳐다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젊은 여인이 다가왔다.
“어어…….”
인양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고진유를 보았다.
“맞아. 쌍둥이 누나야.”
“아하…….”
인양은 얼른 그녀를 보며 인사를 했다.
“누님, 안녕하세요.”
“호오. 네가 인양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인양은 중원 무림에서 오미화와 중원십봉의 여인들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고화유는 그녀들과 다르게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인양만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다.
일행 모두 인양과 같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저를 따라오세요.”
고화유는 앞장을 서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