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장문인과 도진은 매화태청전으로 들어서는 화산파 제자들을 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진 사형, 저기 오는구려.”
“그렇네.”
두 사람은 정문까지 나가서 돌아오는 화산파의 제자들을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천에서 올라온 소문은 중원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 얼마나 멋진 소식이었는가.
이제 중원무림은 누구도 화산파에 대해 다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현 무림의 천하제일문파는 화산파였다.
장문인 주명진은 화산파의 제자들 한 명 한 명이 자랑스러웠다.
태청전 앞 광장으로 모두 들어선 화산파 제자들은 모두 멈춰 섰다.
진우청은 홀로 서너 걸음 앞으로 나섰다.
척.
그는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장문인께 보고드립니다. 오늘부로 복귀를 신고합니다.”
“허경. 고생이 많았네.”
장문인은 앞으로 나온 뒤 그의 손을 잡았다.
그와 짧게 눈인사를 한 뒤 장문인은 자랑스러운 화산파의 제자들을 보았다.
“모두들 무사히 잘 돌아와서 본 장문인의 마음이 기쁘도다. 고생들이 많았을 테니 각자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하라.”
화산파 제자들의 복귀식은 간단하게 끝이 났다.
장문인은 본래 마교를 물리친 대활약에 거대한 복귀식을 치르고 싶었다.
하지만 무림에는 아직 큰일이 남아 있었다.
이에 장문인과 도진은 화산파 제자들의 복귀식을 간단히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화산파 제자들도 오히려 부담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교는 그들 마음속에 두려움이 사라졌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도진의 시선은 화산파 제자들 사이에 함께 선 고진유에게 향해 있었다.
마교주 천마조차도 고진유에 대한 두려움으로 달아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중원 무림의 역사상 천마에게 두려움을 준 인물은 없었다.
세상에 자신보다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천하제일인이 자신의 사손이었다.
* * *
복귀식을 간략하게 마친 뒤, 매화태청전 앞에서 화산파의 여러 고인들과 축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장문전으로 함께 들어섰다.
“두분은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허허허. 도진 사형, 천하제일인의 절을 받다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장문 사제. 나도 그렇다네.”
두 사람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진유를 대견스럽게 보았다.
“자리에 앉아라.”
“네. 감사합니다.”
고진유는 두 사람 앞으로 자리에 앉았다.
먼저 장문인이 말을 꺼냈다.
“마교의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장절 사숙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후후후.”
겸손한 고진유의 대답이 좋았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고진유를 볼 때마다 대견할 따름이었다.
“무림맹에 바로 복귀할 줄 알았다.”
도진은 아직 무림맹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림맹에 가기 전에 제자가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전 보고에 의하면 특별한 말은 없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 사조님.”
“직접 찾아와서 우리에게 말을 하는 걸 봐서는 중요한 일인가 보지?”
“제 신분에 대해서입니다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단지 제자의 과거를 알았을 뿐입니다.”
“과거라…… 무슨 이야기인지 말해보아라.”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천천히 자신의 신상에 대해 알게 된 모든 내용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망혼대법을 해야만 했던 사정과 그 일로 인해 사부를 만나고, 화산파 제자가 되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허허허…… 하늘의 뜻이로구나. 장문 사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맞소이다. 호정이 본 문의 제자가 된 건 화산파와 인연이 이어져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소이까?”
고진유의 신분은 극일천주의 숨겨진 아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극일천주도 대단한 사람이외다. 어떻게 어린 자식을 중원의 망망대해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놓을 수가 있단 말인지.”
“그 아들에 그 아버지가 아니겠나. 그 보물을 허진, 그 녀석이 주웠던 것이지.”
“우린 허진에게 항상 고마움을 가질 수밖에 없겠군요.”
도진 양군경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진유의 앞으로 다가섰다.
“모든 것을 알려줘서 고맙다. 넌 항상 나의 사손이며 화산파의 제자이니라.”
“아닙니다. 사손인 제가 늘 고맙습니다. 돌아가신 사부께 아버지의 정을 느꼈고 사조님과 본 문을 통해 가족이란 정을 알았습니다.”
“그러하더냐.”
양군경은 두 팔을 뻗어 고진유를 안았다.
사부에게 아버지의 정을 느꼈다는 말에 천주궁에서 십오 년의 세월을 고진유가 얼마나 혹독하게 지냈는지 알 듯했다.
‘하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극일천을 상대로 이길 수 없었겠지. 극일천주의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으니.’
“극일천주에 대해 원망을 지니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분도 최선을 다한 것임을 압니다. 그때는 당연히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을 보면서 그분께서도 결코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을 겁니다.”
“맞다.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다.”
도진과 고진유는 떨어진 뒤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중원 무림에 폭풍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암중에 가려져 있던 극일천의 존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극일천무신궁(極一天武神宮).
황강의 영산,
드디어 그들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존재는 중원 무림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영산으로 들어서지 못한 이유가 밝혀졌다.
그곳으로 올라가고자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전부 행방불명이 되거나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관에서도 수상히 여겨 영산을 조사하고자 군대를 보냈지만 모두 마찬가지.
영산에 오른 뒤 하루가 지나가기도 전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곤 했다.
그 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더는 영산에 접근하지 않았다.
황강의 일대 주민들은 영산을 가리키기를 죽음의 산, 혈영산이라 불렀다.
* * *
텅 빈 대전.
백의노인은 대전 중앙에 위치한 가장 높은 상석으로 올라섰다.
신궁옥좌를 보며 앉기 전에 잠시 내려다본 그가 백의 자락을 펄럭이며 돌아앉았다.
몸을 푹신하게 받쳐주는 느낌이 좋았다.
세상 위에 앉는 느낌.
“좋군.”
백색의 긴 수염을 아래로 쓰다듬었다.
나하중은 신궁옥좌에 앉아 팔을 걸친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만간 수많은 인물들이 대전을 가득 채울 것이었다.
슥슥슥.
대전의 끝 정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신궁옥좌 아래까지 다가온 중년 사내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신궁주님을 뵙습니다.”
“허허허, 아직까지 신궁주란 말이 어색하군.”
“앞으로는 익숙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
극일천무신궁의 주인은 극일천주가 아니었다.
극일천이 중원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극일천무신궁으로 새롭게 이름을 바꾸었다.
천무전주였던 나하중이 신궁의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그와 동시에 수백 년을 이어온 극일천은 사라졌다.
수십 년 전부터 중원 무림으로 나서기 위해 준비했다.
극일천주의 허락이 없이는 천무전주 나하중이 마음대로 신궁을 세울 수 없었지만, 극일천주는 그에게 신궁을 세우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다만 이제 극일천주는 더는 극일천과 함께하지 않았다.
신궁의 태상장로로 천주궁에서 지내기만 할 뿐, 모든 것은 신궁주인 나하중이 맡을 것이었다.
“훗. 이젠 여긴 나의 것이다.”
“맞습니다. 신궁을 만드신 신궁주의 세상이 바로 이곳입니다.”
수곡자는 한 번 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신궁주께서 명하신 것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줘보게.”
수곡자는 옥단을 올라선 뒤 보고서를 내밀었다.
“중원 무림에 뿌릴 초청장 명단입니다.”
“수고했네.”
나하중은 초청장 명단을 받은 뒤 위에서부터 아래로 살폈다.
수많은 무림의 대소방파가 포함되어 적혀 있었다.
‘화산파는…….’
그는 가장 먼저 화산파를 찾았다.
붉게 쓴 문파들의 수는 얼마 있지 않았다.
“홍색의 문파는?”
“특별히 모셔야 할 문파입니다.”
“화산파가 가장 위에 있군.”
“천하제일문파가 아니겠습니까.”
“후후후. 그건 당분간이겠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조만간 천하제일문파는 본 궁이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잘해보세나.”
“알겠습니다.”
나하중은 여전히 명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확인한 뒤 의문이 들었다.
분명 있어야 할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무림맹은 왜 안 보이지?”
“초청장 명단은 수하들을 시켜 보내는 것입니다. 무림맹은 그에게 제가 직접 방문할 생각입니다.”
“그런 뜻이었군. 난 일부러 빼놓았다고 오해했어.”
“아닙니다.”
스윽.
나하중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옥단을 내려섰다.
빈 대전의 중앙으로 지나 대전의 입구까지 걸었다.
“열어라.”
스르르르르-
그의 한마디에 대전 밖으로 나가는 문 전체가 열렸다.
혈영산 아래가 훤하게 내려다보였다.
“좋은 경관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의 뒤에 바짝 따라붙은 수곡자가 바로 대답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지금처럼 무림을 아래로 내려다볼 것이라네.”
“신궁주님께서는 가능하십니다.”
“후후후. 당연히 가능하지. 중원에 초청장을 띄우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곡자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 * *
극일천무신궁의 초청장이 중원에 퍼져 나갔다.
화산파는 물론 중원 무림의 대문파와 제법 강한 지역의 군소방파까지 초청장이 날아갔다.
중원 무림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중원 무림의 적이 아닌가.
간자를 심어 놓았던 곳에서 다시 초청장을 보낸 상황이 우스웠다.
제갈양은 그들의 소식을 들은 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중원 무림에 나올 것이라 하더니…….’
고진유의 예측이 맞았다.
극일천이 아닌 새로운 이름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했다.
“가장 많이 알고 있으니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군.”
제갈양은 그의 존재만으로 든든했다.
“음…… 그런데 우리에게는 초청장이 도착을 안 한 이유를 모르겠네.”
제갈양이 알기로 분명 다른 문파들은 그들의 초청장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무림맹 앞으로 극일천무신궁의 초청장은 오지 않았다.
“신궁에서 일부러 우리를 따돌리기 위해서 초청을 안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똑똑.
집무실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군사님. 정문에서 신궁의 사자라는 인물이 찾아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다른 문파와 달리 신궁에서 특별히 직접 온 모양이군. 그가 뭐라고 하던가?”
“맹주님께 직접 전할 물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맹주에게 직접?’
초청장을 직접 전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신궁에서도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혹시 그가 누구라고 하던가?”
“신궁호원주 수곡자라고 했습니다.”
“수곡자라…… 그를 금천당으로 모시게.”
“알겠습니다.”
수하가 다시 밖으로 나간 뒤 제갈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극일천의 주요 인물에 대해서 고진유가 적어준 명부가 있었다.
분명 그 안에 수곡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궁호원주가 찾아올 정도이면 거의 최측근의 인물이겠군.’
제갈양은 군사전에 나온 뒤 맹주전으로 향했다.
* * *
고진유가 화산파를 내려온 뒤 무림맹의 복귀한 지 보름이 지났다.
맹주전에서 보름을 지내는 동안 친협인 인양과 묵경, 그리고 무혼신녀도 비슷하게 복귀를 했다.
맹주전에 가까이 다가서자 무공을 펼치는 소리가 진동했다.
펑펑펑-
기의 울림을 들으면 누가 무공을 수련하는지 알았다.
“인양이군.”
제갈양의 예상이 맞았다.
맹주전 정문에 다가서자 호위무사가 그를 맞이했다.
“군사님, 오셨습니까?”
“수련을 하는 모양이군.”
“넵. 맹주님께서 의제이신 권협님의 수련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수고하게나.”
제갈양은 정문으로 들어섰다. 어떻게 수련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호위무사가 했던 말처럼 두 사람은 대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결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고진유와 인양은 일보를 둔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노려보았다.
묵경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제갈양을 보았다.
“어, 왔어?”
“밖에선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만.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제갈양은 그의 말대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인양의 호흡이 편하게 돌아왔다.
“형님, 됐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해 볼까?”
“넵. 알겠습니다.”
휘이익!
인양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형의 일권이 고진유를 향해 쏟아졌다.
‘허?’
제갈양은 깜짝 놀랐다.
인양의 나이 또한 겨우 약관밖에 되지 않았다.
‘저 나이에 무형기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니…….’
일 장의 거리에서 쏟아진 무형권강을 피하거나 받아낼 수 있는 무인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무림맹주 고진유.
퍼어어엉-!!
고진유의 눈앞에서 무형권강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