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봉시진을 펼치며 달리는 화산파 도사들의 모습은 마치 허공을 가르는 화살과 같았다.
천마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화산파의 도사들은 검영마군을 무너뜨린 후 갑자기 방향을 좌측으로 틀었다.
마교 진영의 약점이 좌측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한 듯, 좌측으로 움직이자 통과하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천마는 그들이 진영의 후방으로 빠져나가도록 가만히 둘지, 아니면 막아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저들을 막는다는 것은 무림맹과 바로 부딪친다는 것.’
천마 임조학이 원했던 계획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화산파의 앞을 막는다면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 맞닿은 전면전.
중원 무림과 끝까지 간다면, 둘 중 한 곳이 전멸을 당해야만 싸움이 멈추는 것이었다.
‘그냥…… 붙는 시늉만 한 뒤 물러나고자 했건만…….’
하지만 무림맹은 끝장을 보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물러나는 수밖에…….’
그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화산파가 후방을 막아서기 전에 물러나야 했다.
“모두 후퇴……!”
천마 임조학의 목소리가 순간 멈칫했다.
‘벌써 저기까지?’
물러나고자 했지만 그것조차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화산파는 이미 마교 진영의 좌측을 뚫은 뒤였다.
“화산파는 노곽협문을 막아서라!!”
고진유의 명에 화산파 도사들은 협곡의 입구로 빠르게 움직였다.
척척척.
고진유의 곁으로 여섯 명의 사형제들이 모여들었다.
“팔방매화검진(八方梅花劍陣)!”
“팔방매화검진을 펼쳐라!!”
고진유의 명에 장두총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화산파의 도사들은 사방(四方)과 사우(四隅)로 빠르게 움직였다.
팔방매화검진의 중앙에 선 고진유는 달려오는 마교도를 기다렸다.
‘지금이다.’
고진유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건방장사(乾方長蛇).
마교도들이 달려오는 소음에도 고진유의 명은 화산파의 도사들에게 똑바로 들렸다.
차르르르-
건방(乾方)에 자리 잡은 화산파의 도사들이 일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혁자영은 마교도를 막는 동안 원을 그렸며 돌아선 화산파 도사들과 마교의 측면을 공격했다.
“아아악……!”
“옆을 막아라!!”
마교도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측면에서 검들이 쏟아지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의 선두가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고진유가 다시 소리쳤다.
“손방무곡(巽方舞曲)!”
이번에는 손방에 있던 곽우와 화산파 도사들이 뛰쳐나가며 흐트러진 마교도들을 베기 시작했다.
“커어어억…….”
“아아악.”
무작정 달려오던 마교도들은 검진을 펼친 화산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저 화산파 도사 놈이……!! 비켜라!”
장혈신마는 수하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기를 터뜨렸다.
슈우우우욱-
그는 앞에 보이는 감방(坎方)으로 달려들면서 선두에 있던 화산파 도사를 향해 천옥혈마장을 십이 성 쏟아냈다.
“죽어라, 이놈!!”
“죽긴 누가 죽는다고.”
콰아아아앙-!!
장두총의 류화검에서 펼쳐진 뇌전화검의 일격은 천옥혈마장을 뚫고 장혈신마를 향했다.
십이성을 이룬 류화검의 검신은 이미 투명하게 변한 상태에서 강한 뇌전만이 흐르고 있었다.
장혈신마는 불에 타는 충격을 받으며 뒤로 밀려났다.
‘우욱.’
그의 가슴에 시커멓게 탄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 새끼들이……!!”
그의 얼굴은 이미 붉게 타올랐다.
* * *
제갈양은 전방을 주시했다.
봉시전을 유지한 채 마교를 뚫고 가는 화산파의 기세는 대단했다.
‘뚫었다.’
펄럭!
제갈양이 곧바로 백색의 무림기를 치켜올렸다.
둥! 둥! 둥!
백기에 맞춰 진격의 북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싸울 시간이었다.
“전군은 마교의 뒤를 쫓아라!”
“와아아아아-!!”
무림맹과 사천 무림의 무인들은 학익진을 유지하면서 마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천마 임조학은 후방에서 밀려오는 중원 무림을 보았다.
‘당…… 한 것인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완벽한 함정에 빠졌다.
“제기랄…….”
이미 후방에서 빠르게 넘어오지 못한 수하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마교도들은 학익진에 갇혀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전방과 후방에서 화산파와 무림맹의 무인들을 동시에 막을 수는 없었다.
“물러나기 위해서는 화산파가 밀어내고 빠져나가야 하는가?”
문제는 화산파의 선봉에는 무림맹주 화산도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내가 막을 수밖에.’
천마 임조학은 화산파의 팔방매화검진 앞에 내려서 동시에 천마장을 내뿜었다.
세상이 오직 암흑으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스거거거걱-
암흑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줏빛이 암흑을 가르기 시작했다.
암흑장력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깨끗하게 들렸다.
사의검의 자줏빛 검강이 천마의 암흑장력을 부숴 버렸다.
“무림맹주…….”
“천마, 그대의 상대는 본도이외다.”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흔들거리자 천마의 앞에 나타났다.
‘큭…… 왜 이리 빨라?’
보통 인물이라면 당황할 만큼 빠른 신법이었지만 천마 또한 천하제일인에 도전할 수 있는 무공.
파앗!
천마군림보을 시전하며 수십 명의 천마환영을 만들어냈다.
고진유는 주위에 가득한 천마환영에 둘러싸였다.
고진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애들 장난을 하는군요. 한 번에 사라지게 만들어 주죠.”
번쩍!
사의검에서 광천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팟팟팟팟팟팟.
천마환영이 단숨에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
천마 임조학의 몸이 떨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심이 아니었다.
“대체…… 당신은 누구요?”
“본도가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겁니까?”
“…….”
천마 임조학은 세상에서 단 한 명만을 두려워했다.
“천마, 살고 싶소?”
“살…… 고 싶소이다.”
“약속을 어긴 것은 한 번이면 족하오. 무슨 말인지 아시오?”
“……알고 있소.”
“그렇다면 두 번은 없을 것이오.”
“……!!”
그의 눈이 커졌다.
중원 무림에 나오지 않겠다는 그와의 약속을 어긴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분이 왔다면 천마, 그대는 죽었을 것이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대로 물러가시오.”
“……고맙소이다.”
고진유는 돌아서며 소리쳤다.
“모두 검을 거두고 옆으로 물러나라!”
고진유의 명에 화산파의 도사들은 마교도들이 빠져나가도록 물러났다.
천마 임조학은 수하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고진유를 보고 있었다.
“다음에 개인적으로 찾아뵈어도 되겠소이까?”
“혼자 오는 건 상관없소.”
“알겠소.”
“아 참. 그리고 마교는 영원히 화산파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오. 그대를 살려주는 대가이외다. 물론 약속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대답이나 해보시오.”
“그렇게 하겠소이다.”
“멀리 안 갈 테니 잘 돌아가시오.”
휘익.
천마의 신형이 사라지면서 마교의 중원 침략은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
멀리서 승리의 함성이 들렸다.
중원 무림인의 싸움은 일반 군사들의 전쟁과는 달랐다.
한 명의 무인이 만 명의 일반 병사들을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중원 무림.
군대의 전쟁은 땅을 차지하고 점령하는 게 목적이지만 무림 문파의 싸움은 달랐다.
문파의 관할은 부수적인 것이며 나중의 일일 뿐, 문파의 전쟁이 끝이 나기 위해서는 수장의 항복을 받거나 모든 문파의 제자들을 죽여야 끝이 났다.
마교는 물러났다.
문파의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문파의 명성.
무인이란 명성에 살고 명성에 죽는다는 말이 있듯 무공을 수련하고 익히는 것은 명성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번 결전으로 화산파와 무림맹의 명성은 또다시 중원 무림으로 퍼져 나갈 터였다.
* * *
사천성에서 마교와의 대전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났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중원 무림은 조용했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고진유는 무림맹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맹주, 화산파에 들른다고 했는가?”
“사조님과 장문인께 직접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화산파에 들른 뒤 곧바로 맹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다급한 일은 없는 듯하니 맹에서 보도록 하겠네.”
“조심해서 가십시오.”
무림맹이 떠난 후 고진유는 화산파의 도사들과 함께 섬서성의 회음으로 방향을 돌렸다.
화산파로 복귀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화산을 내려올 때와 달리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화산천하제일문이란 말에 누구도 반박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하핫! 곡 숙부, 정말인가요?”
“그렇다니깐. 난 협박만 할 줄 알았는데 진짜 자를 줄은 몰랐어. 무서운 놈이야.”
곡경인은 당우희, 연자련과 친해졌는지, 함께 길을 걸으면서 화유색마가 당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장두총은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들은 뒤 고진유 곁으로 다가섰다.
“진짜 그걸 잘랐다고?”
“그게 제일 방법 같아서요. 앞으로 그런 놈들이 걸리면 전부 잘라 버리려고요.”
“하아…… 너도 대단하다. 그, 차라리 죽이는 게 더 인도적이지 않아?”
“그런 놈들에겐 인도적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앞으로 여인들을 괴롭히는 놈들이 있으면 만나는 놈들마다 잘라 버릴 겁니다.”
“허어. 앞으로 사제에게 걸렸다가는 사내구실 못할 놈들이 많아지겠어.”
스윽.
이번에는 우종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고맙다.”
“그놈 물건을 자른 일이요?”
“…….”
“아, 아닌가요? 그럼 뭔지는 모르지만 고맙다고 하시니 잘된 것 같습니다.”
“혼원태극심공이 아니었다면 공무천마와 싸워 이기지 못했을 거다. 모든 게 사제 덕분이야.”
그는 고진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제가 도움을 준 건 맞지만 사형께서 열심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도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사제가 전해 주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할 수 없었던 일이지.”
“그런가요? 조금 더 수련하시면 완벽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고맙다.”
우종성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었다.
“사제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무림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지문전이 깨진 이상 지금까지 해왔던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움직이면 어떠하냐. 사제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으니.”
“네. 알고 있습니다.”
우종성이 묻는 말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극일천의 본진을 안다면 중원 무림이 먼저 공격을 하면 안 되냐는 뜻이었다.
“저번에도 말을 했지만 그들은 강합니다. 그들은 제가 아직 누구인지 모르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원 무림이 극일천에 쳐들어갈 수 없습니다. 극일천의 힘은 무림인들이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그…… 정도인가?”
“그들과 전면전을 붙을 수 있을 때까지 실력을 올려야 합니다. 그사이에 차근차근히 상대해서 그들의 세력을 하나씩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렇군. 결국 우리의 실력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극일천을 이기는 방법은 무림이 강해져야 합니다.”
우종성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무공을 가르쳐 주는 이유는 극일천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극일천을 이기기 위해서는 중원 무림이 뭉쳐야 한다는 것이군.”
“네.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흐음…….’
과연 중원 무림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지 우종성은 염려가 되었다.
“사형,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도 이젠 예전처럼 무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들이 나오다니 무슨 말이냐?”
“이미 중원 무림에 극일천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극일천이 숨어 있거나 밖으로 나와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말로 사제의 말처럼 중원에 나오게 된다면 중원 무림의 협공에 노출이 되지 않느냐?”
“그들은 강하니 신경을 안 쓰는 것이겠지요. 만약에 정말로 나오게 된다면 본격적으로 무림을 접수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무림맹에서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막아야 합니다. 무림이 극일천에게 완전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지루한 싸움이 끝없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전면전을 시도하는 위험을 먼저 시도하지 않을 테니까요.”
“힘든 일이군. 그들이 동시에 수십 군데를 보낸다면 무림맹에서 한꺼번에 막아내기에는 힘들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봐야겠죠.”
“무림맹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각 문파의 유기적인 협력이 중요하겠군.”
“극일천에서는 그것을 끊어내고자 하겠지요.”
끄덕끄덕.
우종성은 고개를 작게 아래위로 끄덕였다.
‘지금까지 극일천과의 싸움은 시작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구나.’
* * *
화산파 도사들은 회음현에 들어섰다.
사천성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미 중원에 퍼져 나갔다.
마을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반겨주었다.
“대단한 일을 화산파에 해냈다고 하더군.”
“나도 알고 있네. 마교가 꽁지 내리면서 도망쳤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정말로 오랜만에 기분 좋은 소리인데?”
중원인들은 마교를 싫어했다.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관군조차 마교를 상대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화산파 도사들은 마을을 지나 화산의 산문으로 올라섰다.
‘흐으음…….’
오랜만에 맡는 매화 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사형, 언제 맡아도 좋은 향기입니다.”
“사제는 역시 화산파의 사람이군.”
스윽.
두 사람 사이로 장두총이 불쑥 들어왔다.
“호진 사형, 당연하지 않습니까? 호정 사제의 얼굴에 화산파 제자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우종성은 고진유의 얼굴을 보았다.
“음…… 난 안 보이는데?”
“사형도 참! 어디 손발이 맞아야 도둑질도 한다는데.”
“아…… 하하, 미안하구나.”
장두총은 손을 뻗어 고진유의 어깨에 올렸다.
“사제는 한번 화산파는 영원한 화산파인 것을 알지?”
“당연하죠.”
“그럼 됐다. 빨리 가자. 장문인님과 도진 전주님께서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계실 거다.”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점점 올라갈수록 화산의 웅장한 기암절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멀리 천하제일도당의 현판이 보였다.
한 걸음씩 걷는 화산파의 도사들은 가슴이 뿌듯했다.
현판 아래에 도착하자 붉은색 기둥에 적힌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종성은 손을 기둥을 만지면서 천천히 읽었다.
“화산고금천하제일문.”
고진유가 새긴 글이었다.
“화산파 모든 제자들은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사제가 쓴 글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부끄럽네요.”
“우리 모두에게 사제가 있어 자랑스럽지. 우리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
고진유는 그의 진심을 알았다.
“저도…… 사형과 화산파의 여러분들이 있어 고맙습니다.”
스윽.
고진유는 포권을 하며 뒤에 따라오던 화산파 도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