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무림맹의 기세는 하늘을 뚫을 정도로 대단했다.
무림맹주 고진유가 나서면서 마교주 천마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또한 그에 앞서 공무천마를 물리친 화산군협 우종성의 무력도 그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 화산파는 천하제일문이 확실했다.
맹주령기가 펄럭이는 군막으로 무림 맹의 많은 인물이 모여 있었다.
중앙의 상석에 앉기 전 고진유는 들어온 인물들의 인사를 받았다.
당문주 당천독이 다가선 뒤 고진유와 시선을 마주했다.
“무림맹주를 처음 뵙소이다. 당천독이라 하외다.”
“송풍자라고 하외다.”
“연절이라 하외다.”
그 옆으로 청성파 장문인과 아미파 장문인도 일어난 뒤 포권을 했다.
스윽.
고진유는 세 문파의 수장들과 인사를 했다.
“사천 무림의 고인이신 세 분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미천한 실력이지만 무림맹을 맡은 고진유라 합니다.”
은연중에 비치는 매화의 향기가 그들을 감쌌다.
“맹주를 직접 만나 보니 무림의 소문이 절대로 과장이 아님을 알겠소이다.”
“당문주께서 칭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늘 처음 뵙지만 호청 사저 때문인지 남이 아니라 가족 같습니다.”
“허허허. 맹주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셨소이까? 본인 또한 그러한 생각이 들었소이다.”
당천독은 가족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천당문의 입장에서 천하제일인이 스스로 가족이라고 해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무림맹의 주요 인물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황보 총군장님, 고생이 많았소이다. 하남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습니다.”
“아닙니다. 저희야 싸우지 않고 왔지만, 맹주께서 오시는 길에 구유천과 극일천의 지문전을 상대하시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술렁.
군막에 모인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들었다.
구유천을 정리한 뒤 극일천을 상대하느라고 늦게 온 이유를 알았다.
“대단한 건 아니었소이다. 한 오백 명 정도 되었나 모르겠지만 사형들과 함께 있으니 쉽게 해결이 되어서 편안하게 왔소이다.”
제갈양이 한마디 나섰다.
“역시 화산육협의 무공은 뛰어납니다. 화산군협도 공무천마를 이겼습니다.”
“대사형께서 당연히 이길 줄 알았소이다. 본도가 보기에 대사형의 무공은 이미 천하이십절대무인에 올라설 정도이지요.”
“그렇습니까? 맹주께서 확신하시니 화산파에 감축드릴 일입니다.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들리겠군요.”
“고맙소이다.”
군막에 모인지 이각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인사를 나누면서 간단하게 현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제갈양이 대부분을 이끌어 갔다.
“맹주께서 오셨으니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결정이라고 할 건 없습니다. 힘들게 노곽까지 왔지 않습니까?”
“맹주님의 뜻은 마교와 싸우겠다는 것입니까?”
고진유는 무림맹 총군장 황보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마교와의 결전은 황보 총군장께서 결정을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군막의 모든 시선이 황보성에게 집중되었다.
마교와의 결전을 자신에게 맡길 줄은 그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림맹의 무력군은 비록 맹주와 군사의 명을 따르지만 실질적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함께하는 인물이 총군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총군장 황보성의 결정이라면 무림맹의 무인들도 싸우든 물러가든 당연하게 따를 것이었다.
황보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고진유를 향해 절도 있게 포권을 했다.
“그동안 중원무림은 마교에게 늘 침략을 당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중원 무림의 힘을 마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황보 총군장의 뜻이 저와 같군요.”
“감사합니다. 마교와의 결전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보성의 결정으로 회의는 결정이 났다.
마교와의 결전.
잠시 뒤 무림맹의 무인들은 군막에서 결정된 내용을 들었다.
그들은 흥분되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마교와 싸운다고 했을 때 겁이 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교와의 싸움이 기다려졌다.
그들에게는 천마까지 물러나게 만든 천하제일인이 있었다.
‘그분만 함께한다면 이길 수 있다.’
* * *
천마 임조학은 진영으로 돌아온 뒤 말이 없었다.
마교의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반시진 후, 그는 마교의 주요 인물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뇌군부터 마군의 수장들이 모두 모였다.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에 조용히 섰다.
천마 임조학은 곁에 가장 가까이 선 인물에게 물었다.
“뇌군, 어떻게 하면 좋겠나?”
“천마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소신들은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뇌군은 이미 결정을 짓고 물어보는 것임을 알았다.
“내 뜻대로라…… 그대는 본좌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인가?”
“천마님의 명을 누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본 신교의 모든 이들이 어떠한 명이라도 따를 것입니다.”
“그대의 생각을 알겠네. 본좌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하니 말을 하지.”
“경청하겠사옵니다.”
뇌군은 허리를 숙였다.
스윽.
뇌군의 반대편에서 한 명의 인물이 나왔다.
“소신, 검영마. 천마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하라.”
마교의 마인들 중 우직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는 서너 걸음 앞으로 나오면서 뇌군의 앞에 섰다.
“뇌군께 묻겠소이다. 이번 일에 대해 할 말이 없소이까?”
“…….”
뇌군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았다.
이번 일에 잘잘못을 따져 추궁하고자 했다.
‘검영마…… 지금 나를 물 먹이겠다는 것인가?’
뇌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인상을 썼다. 하지만 검영마도 물러날 마음이 없는 듯 시선을 마주했다.
검영마는 다시 소리를 높였다.
“이번 일이 실패한 것은 뇌군이 똑바로 알아보지 못한 탓이외다.”
“본인의 잘못이라고 하니 인정하겠소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하겠소이다. 그대는 본인이 어떻게 하면 좋겠소?”
스윽.
검영마는 다시 천마를 향해 돌아섰다.
“천마님. 뇌군에 대해 본 신교의 위신을 깎아내린 죄를 마땅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건 자네의 뜻인가? 아니면 모두의 뜻인가?”
“소신들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받아들여야겠군. 뇌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뇌군은 앞으로 나온 뒤 부복을 했다.
“소신,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대는 본 신교의 위신을 떨어뜨린 죄를 스스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그에 따른 죄를 물어야 하는 법이지만 뇌군의 죄는 본 신교로 복귀한 뒤에 묻도록 하겠다.”
“…….”
“본좌의 결정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있다면 말을 하라.”
천마는 시선을 돌려 검영마와 마주쳤다.
“그 대신 이 시간 이후로 뇌군이 지닌 권한은 검영마, 그대가 맡도록 한다.”
검영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일어난 일들의 모든 책임은 그가 맡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뇌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신,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근신하도록 하라.”
뇌군은 물러난 뒤 밖으로 나갔다.
이번 패배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면 자신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마교는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미 기세는 무림맹으로 기울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물러나는 것 또한 모양새가 나빴다.
무림맹의 협박에 비겁하게 물러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차라리 물러나는 것이라면 무림맹과 싸운 뒤 역부족이라는 것을 안 뒤 물러나는 게 명분은 더 좋았다.
마교에도 피해는 있겠지만 도망을 가는 게 아니라 패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것이어야 했다.
‘다행이군. 검영마가 알아서 나서주다니…….’
무림맹을 공격할 인물로 검영마가 정해질 것이었다.
뇌군의 예상이 맞았다.
그 시각, 마교는 무림맹을 공격하기로 결정 내렸다.
그리고 검영마가 선봉으로 정해졌다.
‘불쌍한 놈…… 수고하시오.’
* * *
둥둥둥둥!
무림맹의 진영에 북소리가 울렸다.
마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갈양이 군막 안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맹주는 안에 계시는가?”
“맹주님은 벌써 나갔습니다.”
“뭐? 어디를?”
“선봉에 서서 마교를 상대하시겠다고 화산육협, 화산파의 도사들과 계십니다.”
“알겠네.”
제갈양은 얼른 화산파의 도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화산파 도사들 사이에서 고진유를 찾았다.
“군사님 오셨습니까?”
“맹주, 선봉에서 싸울 생각이시오?”
“무림맹의 맹주로서 첫 싸움이 아닙니까? 당연히 첫 기념으로 선봉에 서는 것이지요.”
“…….”
“후방은 제갈 군사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혹시나…… 아, 아닙니다.”
현 무림에서 그를 다치게 할 무인이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조심은 하십시오.”
“알겠소이다.”
제갈양은 이미 준비한 듯 바로 계획을 알려주었다.
“화산파에서 선봉을 서신다고 하시니 맹주께서는 봉시진(鋒矢陣)으로 마교를 상대하는 게 좋을 듯하외다. 무림맹과 사천 무림은 후방에서 학익진(鶴翼陣)으로 적을 상대하리다.”
“음…… 미리 준비한 것 같군요.”
“혹시나 해서.”
“알겠습니다. 봉시진이라면 단숨에 마교의 진영을 치고 들어간 뒤 후방을 포위하라는 뜻입니까?”
“후후후. 역시 맹주이외다. 단번에 이해를 하시는군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적당히 마교를 때려줄 생각이었는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본인이 언제 맹주를 제대로 이용하겠소이까? 이번 기회에 마교가 최소한 반갑자 이상은 무림에 뜻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소이다.”
“후, 그런 의미라면 군사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소이다.”
무림맹의 선봉은 화산파로 정해졌다.
고진유는 여섯 사형제를 모았다.
“군사의 명으로 우린 봉시진으로 적을 그대로 통과할 것입니다.”
“선봉은?”
“봉시진의 선봉이 가장 위험하지 않습니까? 저와 함께 호경 사형과 뇌전대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중앙은 호청 사저와 호화 사저, 호민 사형이 맡아주세요. 후미는 대사형과 호중 사형이 맡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모두 조심해라.”
여섯 명의 사형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두두두두두-
마교도들의 다가오는 기척이 점점 커졌다.
‘좀 더…….’
고진유는 그들이 좀 더 넓은 장소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완전히 들어오지 않은 이상 봉시진으로 통과한 뒤 포위할 수 없었다.
멀리 노곽의 평원으로 완전히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됐다.’
채애애앵!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검을 들어라.”
“와아아아아-!!”
수백 명의 화산파 제자들이 검을 뽑았다.
“우린 멈추지 않고 적을 통과할 것이다. 가자.”
파앗.
고진유는 가장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장두총과 뇌전대가 빠르게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
거대한 기의 진동이 울리면서 전쟁이 시작됨을 알렸다.
* * *
마교의 선봉은 검영마군이 맡았다. 그 뒤로 마교의 본진이 움직였다.
우우우웅-
‘이 소리는…….’
그 순간, 검영마군의 중앙에서 움직이던 검영마는 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림맹에서 한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미친놈들이 아닌가? 우리를 통과하겠다고?’
마교를 뚫기 위해 어린진도 아닌 봉시진으로 달려오는 게 확실했다.
‘멍청한 놈들.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겼다.’
그는 자신했다.
봉시진으로 마교를 뚫을 수 있는 중원 무림의 문파는 없었다.
“화산파다!!”
선두에 있던 수하가 앞에까지 다가온 무림맹의 무인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전방에서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콰아아앙-!!
그것은 벼락이 터지는 소리였다.
검영마군의 선두가 단숨에 좌우로 흩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막아라……!!”
검영마는 소리를 치며 앞으로 달려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앞에까지 치고 들어온 화산파의 도사를 보았다.
‘누구……? 헉…… 무림맹주.’
무림맹주 화산도협이 선봉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자줏빛 검기에 수십 명의 수하가 나가떨어졌다.
고진유의 사의검은 냉정했다. 앞을 막아서는 마교도를 향해 휘두를 뿐이었다.
걸음을 멈추거나 속도를 낮추면 뒤에 따르는 화산파 제자들이 위험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대로 적의 진영을 통과해야 했다.
“아아아악…….”
“커어어억!!”
마교도의 비명 소리가 마교의 진영 위로 울렸다.
번쩍!
뇌전대의 위력도 대단했다.
장두총은 심혈을 기울여 뇌전대를 만들었다.
“호양, 뒤를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린다.”
“넵. 사형, 알겠습니다.”
뇌전대는 오로지 앞을 보며 달렸다.
콰가가강!!
검영마군의 절반 이상이 한 번의 부딪힘으로 사라진 듯했다.
‘화산에 이런 놈들이 있다니…….’
그의 시선은 사의검을 휘두르는 고진유에게 향했다.
‘맹주를 먼저 잡아야 한다.’
검영마는 앞으로 나오며 고진유의 앞으로 막아섰다.
“이노오오옴. 멈춰라!!”
스걱.
허공을 가르며 자줏빛 검강이 지나갔다.
“커억…….”
분명 검강을 보고도 피할 수 없었다.
검영마는 휘청거리며 몸이 뒤로 밀려 났다.
휘이익!
이번에는 바람 소리가 그의 목을 지나가는 듯했다.
툭.
검영마의 목이 잘려 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에 검영마군의 마교도들은 봉시진을 피해 옆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부르르.
마교의 진영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천마 임조학의 손이 떨렸다.
‘화산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