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주루루룩.
붉은 피가 가슴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대결을 했지만, 매번 상대의 검강이 튕겨 나갔다.
‘이런…….’
공무천마는 순간 휘청거리며 서너 걸음 뒤로 밀려났다.
‘화산파의 검에 밀릴 줄이야.’
주화입마에 빠진 뒤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비록 그가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지만, 겨우 화산파의 삼대제자에게 곤욕을 치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생사결에서 상대를 가볍게 이긴 후 마령침혼대법의 효능이 끝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다.
“크크크크. 다행이군. 스스로 죽지 않아도 되다니…… 잘된 일이야. 무인으로서 가장 좋은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가는 게 아닌가.”
그는 만족한 상황을 보면서 괴소를 지었다.
가슴에서 피가 흘렀지만 상관없었다.
“크큭,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있지. 어차피 죽는다면 그동안 펼쳐보지 못한 것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천마무공 최후의 초식.
시전자의 목숨과 바꿔야만 마신강림의 초식을 펼칠 수 있다.
죽음 직전에야 펼질 수 있는 천마무공의 마지막 초식이 어떠한지 그 또한 궁금했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점점 기분이 좋아져 갔다.
공무천마의 신형이 투명하게 변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마지막…… 이다.’
우종성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마지막 한 수를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번쩍!
공무천마의 신형이 투명하게 변하며 그 자리에서 마신의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스르르르-
그때, 우종성은 단전 아래에서 혼원태극심공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뭐지?’
스스로 일어난 내력이 혼원태극심공을 자극했다.
‘함께…… 간다.’
우종성도 재빨리 단전에 내력을 끌어내며 앞선 내력을 따라 운기를 시작했다.
우우우웅-
머리 위에서 내기의 진동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움직인다.’
분명 자신은 가만히 있었다.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옆으로 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하늘과 땅이 어느덧 원을 그리며 바뀌었다.
마치 거꾸로 서 있는 것처럼.
태극의 문양처럼 음과 양이 움직이며 세상이 돌기 시작했다.
‘이것이 혼원태극이라는 것인가?’
무한의 세상에 음과 양이 생성하며 공존한다.
우종성은 이미 마신의 존재에 대해 잊었다.
휘이이익!
마신의 존재 또한 무한의 공간에서 희미하게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 눈앞에 다시금 세상이 나타났다.
‘내가…… 이긴 것인가?’
혼이 사라진 공무천마의 가슴에 매화가 맺힌 화무검이 닿았다.
파스스-
공무천마의 육체가 부서지며 먼지로 변해갔다.
생사결의 대결을 본 두 진영에서는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절대무인들의 비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에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척.
제갈양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아-!!”
“화산군협 만세!!”
“무림맹 만세!!”
그의 신호에 따라 무림맹의 진영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천무림 세 문파의 수장들은 우종성을 보면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화산파의 세대들은 괴물들만 모인 것 같소이다.”
“그런 듯하외다. 그래도 당문주께서는 좋겠소이다. 그들 중 한 명이 당문 출신이지 않소이까.”
“허허허…….”
당천독은 웃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당우희의 눙력이 뛰어난 줄 알았다면 화산파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었다.
둥둥둥둥!
무림맹의 진영 위로 승리의 북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화산군협이 마교의 공무천마를 이겼다.
마교에 천마가 남아 있다고 해도 무림맹에는 화산군협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무림맹주가 있었다.
화산도협의 무림무패전설.
무림에 나온 뒤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무패의 전설이 무림맹 무인들에게 각인되었다.
* * *
천마 임조학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사부…….’
그 또한 무인이기에 슬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도 인정이 남아 있었다.
마교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생사결이 끝났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놈들의 기세를 떨어뜨리기 위해 생사결을 제안한 것이 독이 되었군.’
뇌군의 잘못은 아니었다.
공무천마를 생각한 건 최고의 계획이었다.
단지 무림맹에서 그보다 강한 인물이 나왔을 뿐이었다.
‘생사결은 졌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휘이익.
천마 임조학은 천마군림보의 비행술을 펼치며 우종성을 향해 날아갔다.
우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물체.
우종성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 람?’
거의 앞에 다다랐을 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무천마의 분위기와 비슷한 중년 사내가 앞에 내려섰다.
하지만 앞선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천마이오?”
“본좌를 마주치면서도 당황하지 않는군. 사부님을 이긴 실력이니 대단하긴 해.”
“…….”
“화산군협이라 했나?”
“그렇소이다.”
“네가 걱정돼서 몰려오는가 보군. 의리가 좋아.”
두두두두-
무림맹의 진영에서 수십 명의 화산파 제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호양 변영동이 다가섰다.
“대사형!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우종성은 다급하게 달려온 사제들을 보면서 든든했다.
그들의 무공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위해 달려 나온 사제들이었다.
천마 임조학은 마기를 끌어 올렸다.
“화산군협, 본인과 한 번 더 무공을 겨룰 수 있겠는가?”
“약속을 어기는 것이오?”
“무슨 약속을 했다는 것이지?”
“…….”
“생사결을 하고자 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후후, 이렇게 나오는 게 마교다운 짓이군요.”
천마 임조학는 검미를 찌푸렸다.
“비꼬지 말라.”
“무림에게는 상식이라는 게 있소이다.”
“크하하!! 그건 형식에 얽매이는 정파의 무림이겠지. 마도에는 의미가 없다.”
“당신들은 약속이란 말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겠소.”
“어차피 끝이 나지 않을 문답은 필요 없다. 본인과 겨루어볼 텐가?”
우종성은 천마기를 막아내고 있지만 분명 공무천마와는 느낌이 달랐다.
‘이것이…… 진정한 천마기인가.’
천마가 내뿜는 내력의 기는 점점 강해졌다.
성큼.
천마의 천마군림보.
그가 한 걸음 다가오자 거대한 압박을 받았다.
우종성 또한 내력을 올리려고 했다.
“……?”
그때, 천마군림보가 주는 압박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누구를 보는 것이지?’
그리고 천마 임조학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알았다.
우종성도 그가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제.’
무림맹의 진영에서 고진유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러니 마교가 치사하다고 욕을 처먹는 모양인가 봅니다.”
“…….”
천마 임조학은 다가온 사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그대가 무림맹주 화산도협인가?”
“맞소만, 안 바쁘면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사형과 잠시 인사를 하겠소이다.”
“…….”
고진유는 천마를 무시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우종성과 사제들 곁에 다가섰다.
“사형, 수고하셨습니다. 여기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때마침 왔군.”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지 않습니까.”
“후후후. 그렇지. 부탁하마.”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고진유는 다시 변양동과 함께 온 사제들에게도 말했다.
“사제들도 들어가서 쉬고 있어.”
“넵,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우종성과 사제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스윽.
천마를 향해 돌아섰다.
“원래 본도가 알기로 생사결은 한 명만 하기로 한 게 아닙니까?”
“맞다.”
“뻔뻔하시네요.”
“…….”
무림맹주라고 하지만 젊은 놈이 거침없이 말을 했다.
긴장이라고는 전혀 없이 비스듬히 선 모습도 건방졌다.
“원래 이런 성격인가?”
“본도의 성격이 어떻다고 보는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몰라서 묻는 것인가?”
“혹시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맞다.”
“그렇군요. 남들이 보기에 건방지게 보이는 모양인가 봅니다. 혹시 자신감이 강해 보이는 건 아닙니까?”
“남들이 보기에가 아니고 건방져.”
천마 임조학은 대답하면서도 괜히 말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근데 당신하고는 상관없지 않소이까? 본도가 건방지든 아니든.”
“상관없지. 다만 그대의 생명이 줄어드는 게 보일 뿐.”
슈우우우욱-
그는 고진유를 향해 천마무형살기를 펼쳤다.
무공을 펼치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리는 것과 비교해 무형살기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세 배의 내력이 순간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따아아앙!
천마무형살기가 고진유의 몸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천마 임조학은 믿기지 않은 듯 눈이 커졌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무공이 대단한 인물이라도 천마무형살기에 닿는다면 막아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이지?’
그는 다시 한 번 더 천마무형살기를 뿜어냈지만 처음과 같이 튕겨 나왔다.
“애들이 하는 장난은 그만하시죠.”
‘호신강기?’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무형살기를 막아낼 수 있는 호신강기를 지니고 있을 줄 몰랐다.
‘……설마.’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 한 번 더 천마무형살기를 뻗어냈다.
따아아앙!
고진유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역시 맑은 소리가 울렸다.
천마는 천마무형살기를 막아낸 부위를 자세히 보았다.
용의 비늘처럼 생긴 강기가 빛을 냈다.
‘저건…… 용린…… 호신기다.’
천마 임조학은 몸이 떨렸다.
‘이건 극일천주의 호신기이거늘 어떻게 화산도협이 익히고 있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천마의 입장에서는 궁금증이 밀려 올 수밖에 없었다.
파아앗!
천마 임조학은 눈앞으로 쏟아져 나온 내기를 보았다.
‘이놈이……!’
화르르르-
고진유의 내기가 만들어낸 열 개의 매화가 천마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쾅쾅쾅쾅쾅!!!
거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천마는 폭발의 충격에 뒤로 물러났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요? 먼저 당신이 공격하지 않았소? 본도는 빚지고 사는 성격이 아니외다.”
“…….”
천마는 고민을 했다.
‘뭔가 있어. 이놈은 보통의 화산파 제자가 아니다.’
화산도협의 진정한 정체를 알아야 했다.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싸웠다가는 당할 수 있었다.
‘젠장…… 오히려 악수를 뒀어.’
자신이 나선 뒤 무림맹의 기세를 꺾고자 했건만 반대로 마교의 기세가 한 번 더 꺾였다.
물러가야 하지만 천마의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다.
최소한 비기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준 뒤 물러나야 했다.
무형무음의 암살지공.
천마지(天魔指)가 고진유의 가슴으로 향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요?”
팟팟팟팟!!
그와 동시에 고진유도 지공으로 맞상대했다.
천마지가 오는 도중에 허공에서 사라졌다.
지공을 지공으로 막는 것은 천마조차도 쉽게 할 수 없었다.
특히 천마지는 무형무음이기에 눈을 쫓을 수도 없는 지공이라 알려져 있었다.
천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거렸다. 천마지가 중간에 사라진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고진유가 펼친 지공을 알았다.
‘방금 그가 펼친 것은…… 천룡광천섬지가 확실하다.’
용린호신기와 천룡광천섬지.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천마 임조학은 처음으로 목소리가 흔들렸다.
“어…… 어떻게…… 된 것이지?”
“보는 바와 같소. 천마, 그대의 공격이 막힌 것이오.”
“그건 나도 안다. 본좌가 묻는 건 그 무공을 어디서 익혔는지 묻는 것이다.”
“본도가 굳이 그걸 알려줄 이유라도 있소이까?”
“…….”
“끝까지 해보겠소? 아니면 그만 여기서 멈추겠소?”
“잠…… 시 물러나지. 하지만…… 본 신교가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당신들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싸우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줄 테니. 근데 빨리 결정을 해야 할 거요. 사제들이 마교를 치고 싶어 하더이다.”
‘저…… 놈을…….’
천마 임조학은 굳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고진유도 더 이상 볼일이 없는 듯 물러났다.
그리고 무림맹 진영으로 다가서면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똑바로 보았다.
무림맹주의 무위가 천마를 상대로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무림맹을 지나 마교의 진영까지, 목청은 물론 가슴이 터져라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나왔다.
제갈양은 천천히 걸어오는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뭐…… 인정할 수밖에 없군. 당분간 무림은 맹주의 세상이야.”
우르르르-
고진유의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조금이라도 그를 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림맹주님 만세!!”
“만세……!!”
이번에는 고진유를 향한 함성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