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화산파를 보냈으니 이제 지문전을 빠르게 해결해야 했다.
고진유는 정확히 상대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지문전의 잔머리 주현재. 그였어.’
잊고 있었던 인물.
옛날 천주궁에서 무공을 배우는 동시에 극일천의 모든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도 익혔었다.
‘아버지는 극일천을 완벽하게 상대하기 위해서 십전의 인물들에 대해 알려주셨지.’
그들의 특징과 성격, 그리고 무공과 독문 무기까지 무엇인지 익혔다.
주현재, 그는 똑똑한 인물이었다.
다만 그것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성격이 강했다.
‘훗. 만일 그의 생각대로 안 된다면 조마조마할 테지.’
지문수각군의 무인들은 주위에 가득했다.
이제부터 사냥할 시간이었다.
제일 큰 사냥감은 지문전주이자 극일십우인 살화 동후변.
그를 잡기 전에는 우선 모사 주현재를 잡아야 했다.
지문수각군의 무인들은 사방에서 강한 살기를 뿜어내면서 고진유를 압박했다
죽음의 공포를 보여주고자 했겠지만 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고진유는 오히려 살기를 즐기는 듯 미소를 띠며 그들을 잡으러 다녔다.
그와 함께한 사형제들의 움직임은 유령과 같았다.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또 사라졌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주현재는 미칠 지경이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니 그들을 잡을 수 없었다.
‘지문수각군 오백 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멀리서 고진유를 지켜보던 시선이 흔들렸다.
‘우리가 함정에 빠졌다.’
이제는 언제 당하게 될지 모른다.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지금처럼 계속 흩어져서 그들의 행적만을 좇다가는 수하들이 모두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모두 모여라.”
주현재는 급히 명령을 내린 뒤 수하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
반각이 지나고 일각이 지났지만 나타나는 수하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틀이 지나는 동안 오백 명의 수하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삐이이익-
주현재는 다급히 다시 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모두 당했다는 것인가?’
움직이고자 했지만 두려움이 밀려 왔다.
주위에서 압박감이 다가왔다.
‘왜, 왜 이리 무거운 느낌이지?’
어깨를 누르는 기운에 몸이 점점 가라앉는 듯했다.
“젠장……!!”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재빨리 자리를 떠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휘익!
“당신이 주현재이오?”
그의 앞으로 화산도협 고진유가 내려섰다.
“……!”
고진유의 첫마디에 당황했다. 분명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다.
“나, 나를 어떻게 알았소?”
“그냥 알게 되었소.”
이게 그냥 알게 될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극일천의 인물이 아니고서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배신자가 있다는 것인가?’
휙휙.
주현재의 고개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올 사람은 없소이다. 본도의 사형들에게 당했소.”
주현재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
화산육협에 의해 수하들이 모두 당했다는 게 확실해졌다.
분명 사실인데 그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지문수각군이 어떠한 무인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열 명도 되지 않은 화산파 도사들에게 오백 명이나 당하다니.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도 시작해 볼까요?”
“잠깐.”
그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수하들과 함께 싸운다면 모를까 혼자서는 고진유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 무공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상대는 극일십우와 싸워 이긴 자다.
객관적인 실력으로 봐서 단독으로 고진유와 싸워 이길 수 없었다.
시간만 끌수록 불리할 터.
심지어 수하들을 상대했던 화산육협이 돌아온다면 완전히 포위되는 상황이 될 것이었다.
‘여기에서 빨리 물러나야 해.’
그는 기회를 봐서 달아날 준비를 했다.
“보내줄 수 없소이다.”
“……!”
“보아하니 도망갈 준비를 하는 것 같구려. 하지만 본도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외다.”
고진유의 말에 그의 가슴이 뜨끔거렸다.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움직였다.
‘허억.’
주현재는 갑자기 다가온 기척에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처억!
그의 양쪽 어깨에 고진유의 손이 닿았다.
“우욱. 무슨 짓이냐?!”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젠…… 장…….’
두두둑.
쿠우우욱!!
고진유는 그의 어깨가 부서지도록 강하게 잡는 동시에 손가락에 힘을 주며 눌렀다.
“아아아악!!”
주현재는 비명 소리와 함께 잠시 정신을 잃었다.
* * *
번쩍.
주현재는 눈을 떴다.
그의 머리 위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제, 일어난 모양인가 봐.”
“호청 사저, 그런가 봅니다.”
화산파의 도사들이었다.
“…….”
주현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때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렸으면 일어나는 게 좋겠소이다.”
‘화산도협?’
고진유에게 정신을 잃었다는 게 생각났다.
몸속에 흐르는 내기의 느낌이 이상했다. 그는 일어나기 전에 운기를 해보았다.
‘내력이…… 없어.’
단전이 막혔다.
무인이 단전에 내력이 없다는 건 죽음과 마찬가지.
주현재는 몸을 일으킨 뒤 뒤를 돌아섰다.
매화도의를 입은 여섯 명의 화산파 도사들 사이에서 고진유와 마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진유는 웃으면서 놀리는 듯 물었다.
“계획대로 안 되지요?”
“…….”
“똑똑하다고 알려진 사람이 너무 안일하게 본도를 상대한 건 아닌가요?”
‘내가 안일했다고?’
주현재는 무엇을 보며 안일했다고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상대할 때 최선을 다했다.
“이런, 여전히 모르는 모양이군. 정말 실망이오.”
“화산도협. 본인은 최선을 다해 그대를 상대하고자 했다. 절대로 안일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닐 텐데? 지문전으로 본도를 잡을 수 있다고 믿지 않았소?”
“……!!!”
주현재는 순간 머리 뒤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문전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 안일했다는 뜻이었다.
누가 맞는 답인지 현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문전으로는 말이외다. 본도를 어떻게 할 수 없소. 당신의 수장인 지문전주 동후변, 그자가 직접 나타나도 본도를 이길 수 없소이다.”
“…….”
화산도협이 보여준 자신감이 거대한 폭풍처럼 스치며 지나쳤다.
“그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군.”
“본도가 생각 외로 모르는 게 없소이다. 당신도 아는데 지문전주를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소이까?”
‘아니……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대체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화산도협, 본인을 어떻게 할 것이오?”
“한 가지밖에 더 있겠소? 본도는 사부님께 약속했소이다. 본도와 극일천 둘 중 하나는 중원 무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오.”
스르르릉-
사의검이 빠져나오면서 가슴 앞에서 둥근 자줏빛의 원이 만들어졌다.
“최선을 다하시오. 일 초에 막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게 될 것이외다.”
‘헉. 진심이다…… 어떻게……?’
주현재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지문전에서 수하들과 함께 그를 상대하고자 했지만, 이제 도와줘야 할 수하들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그를 상대해야 할 상황이었다.
“왜 나를 지금 죽이려고 하는 거지?”
“당신이 있어야 그가 나타날 게 아니오.”
‘망할……!!’
다가오는 사의검을 막고자 했지만 내력이 사라졌다.
“잠깐! 난 단전이 없…….”
스걱.
사의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주현재의 가슴을 스치며 지나갔다.
“앗. 이런, 몰랐소이다.”
‘망할…… 노오옴.’
주현재는 원망의 눈빛으로 몸속에 든 모든 것을 토해낼 듯 목에서 울컥거렸다.
그리고 바닥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천라지망을 펼치며 화산도협을 잡고자 했던 계획이 실패했다.
“화…… 산…… 도협. 본인을…… 죽인 것에 축하…… 한다. 하지만…… 지문전주님을 과연…… 네놈이 죽일 수 있을까?”
“그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군요. 하긴 지문전주 동후변이라면 극일십우의 살화이니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컥, 컥!”
주현재는 숨이 완전히 목구멍 끝까지 찼다. 점점 기침이 강해지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잘 가시오.”
고진유는 목숨이 끊어진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남은 건 지문전주밖에 없군.’
그는 분명 근처에 있을 게 확실했다.
고진유는 돌아서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언제든지 도전을 하라는 듯한 손짓이었다.
장두총이 곁으로 다가왔다.
“사제, 지문전주만 남았지?”
“네. 맞습니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닙니다. 우선 귀찮은 부분은 해결이 되었으니 천천히 노곽으로 올라가죠. 아마 그 전에 제 앞에 나타날 겁니다.”
“알겠다. 그럼 노곽으로 가볼까?”
* * *
스윽.
화산파의 사형제들이 사라진 자리에 사내가 내려섰다.
지문전주 살화 동후변의 표정은 무거웠다.
모사 주현재까지 바닥에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있었다.
“쳇. 그렇게 자신 있다고 하더니…….”
휘익.
뒤에 기척이 느껴졌다.
“당신은 어떻소이까?”
“…….”
피식.
동후변은 짧게 웃었다.
“이거…… 완전히 당했는걸.”
그는 등 뒤에 만나야 할 사람이 찾아온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여기에 본좌가 있는지 알았지?”
“극일십우라는 이름에 너무 자만하는 것이 보이는군요.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면 실수를 하지 않죠.”
“……건방진 놈.”
스가아아앙-
동후변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검을 펼쳤다.
쿠우우웅.
고진유는 기다렸다는 듯 사의검을 세우며 그의 공격을 막았다.
두 개의 검기.
사의검기와 동후변의 살화두천기가 부딪혔다.
흔들흔들.
고진유 주위로 진동이 퍼져 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 강한 무공을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대단하군. 역시 극일천의 제일 주적다운 무공이다.”
“흠. 당신도 마찬가지요.”
타앗.
파앗.
동후변이 먼저 움직이자 고진유도 그를 향해 따라서 움직였다.
그는 살화두천기의 내공으로 칠살금마검공을 펼쳤다.
한 번의 초식으로 일곱 개의 죽음을 맞이하게 해준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
고진유는 또 한 번 다가오는 마검강을 상대하기 위해 사의검을 내리쳤다.
상대에게는 그저 가볍고 간단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콰아아앙-!!
이번에는 고진유가 아닌 살화 동후변이 내력의 충격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내가 밀린다고?’
그는 정말로 믿기지 않았다.
팔 성이나 구 성의 전력으로 상대했다면 놀라지도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펼친 내력은 십 이성 전력이었다.
‘이놈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강하다고 소문을 듣긴 했지만 내력이 이 정도일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시간을 끌면 불리했다. 주위에 화산파의 도사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끝을 내기 위해 그가 가진 최고의 초식을 펼치고자 했다.
금마개벽(金魔開闢).
우우우우웅-
그의 머리 위로 세상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화산도협, 무공이 강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막지 못할 것이다.”
동후변은 자신했다.
이보다 강한 무공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또한 화산파의 무공으로 한계가 있음을 확신했다.
가슴으로 향해 날아오는 금마검의 검강을 보면서 고진유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사의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번쩍.
광천섬광(光天閃光)이 사의검의 검신에서 앞으로 뻗어 나갔다.
‘우욱.’
동후변은 강렬한 검광에 의해 눈을 옆으로 돌렸다.
‘이건…….’
그는 혹시나 했다.
방금 사의검에서 빛난 검광이 그분의 검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바꿀 수 없다. 승자는 본인이다.’
고진유의 심장에 금마검이 닿는 모습을 보았다.
승리의 웃음이 나오려고 할 때.
금마검이 산산조각 부서지면서 산화되어 사라졌다.
동후변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멈춰 섰다.
“……그건…….”
화산도협, 고진유가 보여준 초식.
화산파의 무공이 아니었다.
“방금…… 그 초식을 어떻게 알고 있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
입가에 미소 띤 고진유의 얼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표정이었다.
“너어어언……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