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86화 (286/425)

286화

화산파는 빠르게 움직였다.

장두총은 저 멀리 사라진 그들의 모습을 일별한 뒤 고진유를 향해 돌아섰다.

“전부 갔어. 이젠 우린 어떻게 하면 돼?”

“그 전에 제가 드릴 말이 있습니다.”

“아, 맞다. 사제가 할 말이 있다고 했지? 얼마나 놀랄 일인지 내가 직접 듣고 판단하겠어.”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알았다. 어디가 좋을까?”

길가에서 십여 장 떨어진 장소.

그들은 주위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다섯 명의 사형제들은 고진유를 중심으로 편안하게 앉았다.

고진유는 손바닥을 비비며 좌우를 보았다.

“음…… 별일은 아닙니다만 대충 아실 것이라 봅니다. 제 신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을 찾은 모양이지?”

고아라고 알고 있었던 고진유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를 낳아주신 부모밖에 없었다.

“애매하지만 찾았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호경 사형.”

“여하튼 사제의 부모님을 찾았다고 하니 잘된 일이잖아. 축하해.”

연자련은 다른 것을 떠나 지금까지 고아였던 사제에게 부모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했다.

“호화 사저, 고마워요.”

고진유는 설명을 쉽게 하기 전에 사형제들에게 먼저 알려줘야 할 게 있었다.

“사형들, 혹시 망혼대법이라고 아세요?”

“망혼대법은 처음 들어보는데?”

다섯 명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망혼대법은 고대 밀종의 술법 중 하나입니다.”

“…….”

“고대 밀종의 일부를 극일천에서 계승했다고 보면 됩니다.”

다섯 명의 사형제들은 고대 밀종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하나 고대 밀종에는 무공도 뛰어나지만 특이한 능력을 지닌 술법이 많다고 무림에 알려져 있었다.

장두총이 궁금해서 물었다.

“사제, 망혼대법은 정확히 뭔데?”

“망혼대법을 받게 되면 원하는 부분은 물론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까지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전자에 의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기억을 새롭게 심을 수 있습니다.”

“음…… 사제, 그 말은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인가?”

곽우가 가장 먼저 이해를 했다.

“네. 호민 사형께서 말한 게 맞습니다.”

“……!”

그의 시선은 고진유에게 향하고 있었다.

망혼대법을 꺼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사제가…… 망혼대법을 받았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제가 열다섯 되는 해에 아버지인 극일천주에 의해 망혼대법을 받게 되었습니다.”

“……!!”

그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극일천주의 아들.

고진유가 직접 밝힌 내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들 사이에 흐르던 고요함 속에서 호청 당우희가 침묵을 깼다.

“호경 사형, 사제가 그의 아들이라고 해도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사제는 우리 화산파의 제자니까.”

“맞다. 호정은 본 문의 제자다. 당연히 문제가 없다.”

먼저 사실을 알게 된 우종성 또한 별말이 없었다.

혁자영도 사형제들 사이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단정 지었다.

“사형들, 고맙습니다. 전 당연히 화산파의 제자입니다.”

고진유는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극일천주에 의해 망혼대법을 펼친 이유를 시작으로 모든 일을 설명했다.

이각이 지난 후.

“아…… 아…….”

중간중간 장두총은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정…… 말이냐? 사제, 확실한 것이지?”

“네. 모든 게 사실입니다.”

“에이……!”

갑자기 장두총이 실망한 표정으로 아쉬워했다.

곧이어 연자련의 웃음이 터졌다.

“후후후, 내 말이 맞지? 사제는 분명 있는 집 자식이라고 했었잖아. 내가 이겼다. 전부 열 냥씩이야.”

“언니의 예상이 맞았어요. 에이, 나도 그런 생각 했는데…….”

열 냥씩 달라는 연자련을 보며 고진유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누구인지 내기했다는 말이군.’

탁탁.

장두총은 일어나서 다가온 뒤 고진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다른 것을 떠나 아버지를 찾았다니 축하할 일이지. 대사형은 뭐라고 하셨어?”

“극일천과 싸우는 건 똑같다고 하시면서 별말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대사형과 같은 생각이다.”

혁자영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그동안 최후의 적은 극일천주라 여겼었다.

“그러면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극일천이긴 한데, 극일천주가 아니라 비천이라는 조직과 싸운다는 것이군.”

“맞습니다.”

“사제, 극일천주께서 직접 싸우면 되지 않나?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혁자영의 궁금증을 곽우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비천이란 조직이 거대하게 변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천주로서 극일천을 지켜야 할 명분을 스스로 어기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사제를 극일천을 무너뜨릴 목적으로 키웠던 거고.”

“호민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문을 수장이 된 그분께서 직접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을 하던 그때 제가 태어났고요.”

“사제는 그곳에 정이 없는가?”

혁자영이 다시 물었다.

극일천주의 아들이니 고진유 또한 극일천의 인물이었다.

극일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고진유의 대답은 단호했다.

“극일천은 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제가 천주궁에서 지낸 십오 년의 시간은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살아온 세월입니다.”

“사제…….”

연자련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진유의 손을 잡았다.

고진유를 만난 뒤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는 다른 인물들보다 유난히 가족이란 것에 집착한다는 것이었다.

자라면서 가족에 대한 정을 그리워했을 게 분명했다.

그 이유를 알 듯했다.

극일천주의 아들.

본래라면 극일천 최고의 축복을 받으며 지내야 할 아이다.

근데 자신의 신분조차 숨긴 채 극일천의 천주궁에서 유령처럼 십오 년의 세월을 지냈다.

그것도 한참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가 아닌가.

스윽.

연자련은 그를 안았다.

“사제는 정말 잘 자랐어.”

“…….”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만일 자신이었다면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열다섯밖에 안 된 아이가 다른 곳도 아닌 중원 최고의 극일천을 상대로 싸운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극일천주는 나쁜 사람이야.”

당우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요. 저를 좋아해 주는 많은 분들이 계시잖아요.”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돼. 항상 사제 옆에는 우리가 있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알겠지?”

고진유는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그의 사형제들은 그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이들을 만난 건 운이 좋았다.

“사형들, 고맙습니다.”

“뭘…… 당연한 거잖아.”

장두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사제가 극일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 해볼 만하지 않겠어?”

“모르고 싸우는 것보다는 알고 대처하는 게 좋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할 비천의 진짜 전력은 이미 숨겨 놓았습니다. 물론 극일천에 있는 세력조차 중원 무림의 힘에 비하면 훨씬 강합니다.”

“……비천의 숨긴 힘도 강하다는 말이지?”

“그들도 극일천주에 대해 대비를 한 것이죠. 정확히 밝혀진 건 없습니다.”

“하아…… 그동안 우리가 모르는 일이 암중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것이군.”

“맞습니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그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사형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고진유가 한 말이었다.

중원 무림에서 무림맹주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당연히 걱정 안 하지. 누구의 말인데.”

* * *

철컹.

동굴로 들어가는 철문이 열렸다.

“하아…….”

사내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동굴 깊은 장소.

그의 뒤로 열 명의 수하들이 따랐지만, 그들의 표정도 앞선 사내와 다르지 않았다.

척.

사내와 수하들은 동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눈앞에 나타난 장소는 백여 평 정도의 거대한 어둠의 공간이었다.

마교의 인물들은 이곳을 천마동이라 불렀다.

‘저기…… 계시는군.’

소요마군은 혼자 동굴의 한쪽 벽으로 걸어갔다.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미세한 기척을 느꼈다.

번쩍.

어둠 속에서 야수의 섬광이 앞으로 쏟아지는 듯했다.

‘헉…….’

겨우 눈만 떴을 뿐임을 안다. 게다가 내력은 이미 제압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키키키키…….”

귀를 거슬리는 괴소가 들렸다.

어둠 속에 잠긴 그가 할 수 있는 건 괴소밖에 없었다.

사지는 만년한철로 만든 족쇄에 묶여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소요마군은 잘 알았다.

전대 마교주 공무천마(恐武天磨).

스윽.

뇌군이 왜 이분을 데리고 오라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소요마군은 조용히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열 명의 수하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곧장 천형마비(天刑痲痹)를 겨누었다.

“쏴라.”

픽픽픽픽픽.

열 발의 천형마비가 공무천마의 전신에 꽂혔다.

“크크크크크크……!!”

철커어어엉.

공무천마는 전신에 천형마비를 맞은 뒤 괴소를 지르며 사지가 묶인 채 비틀었다.

소요마군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지켜보았다.

“…….”

거의 일각이 지나갈 동안까지 괴소와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대…… 단하다. 내력도 없거늘. 이 정도의 천형마비라면 맞는 즉시 정신을 잃었을 텐데…….’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그제서야 서서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이 멈추며 축 늘어졌다.

‘조금만 더…….’

소요마군은 반각까지 좀 더 지켜보았다.

다행히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됐다. 저분을 묶어라.”

“알겠습니다.”

수하들은 들고 온 철갑을 통째로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머리만을 둔 채 몸과 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하아…….”

이제는 그가 깨어난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었다.

사천성으로 조용히 내려가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또 천형마비로 정신을 잃도록 만들어야 했다.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오자 이미 밖에는 흑색 철갑으로 된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해서 이분을 실어라.”

“넵, 알겠습니다.”

소요마군은 그를 마차에 싣는 장면을 조심스럽게 보았다.

‘됐다.’

철컹.

철갑의 문을 밖에서 잠갔다.

가장 큰일이 끝났다.

“이제 살았군…….”

소요마군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대로 곧장 천마님께 간다.”

* * *

무림맹은 사천성 노곽에 도착한 뒤 곧바로 진영을 펼쳤다.

군사 제갈양은 사천무림과 맹주 고진유가 올 때까지 마교를 자극하지 않고 조용하게 기다렸다.

만일 둘 중 하나라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교가 움직이면 머뭇거리지 않고 후퇴할 계획이었다.

군사 제갈양의 군막 밖에서 수하가 보고했다.

“군사님, 잠시 밖으로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제갈양은 바로 일어난 뒤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가?”

“마교에서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전령이?”

제갈양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전령을 보낸 건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는 뜻이었다.

‘뇌군이 보낸 것이겠지?’

마교에서 머리를 쓰는 인물이라면 뇌군 외에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제갈양은 진영 앞으로 향했다.

무림맹의 진영은 제갈세가의 진법을 수정 보완하여 외부에는 팔괘진과 내부에는 오행진을 펼쳤다.

제갈양은 진영 앞으로 다가온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마교의 전령이라 들었다. 본인은 무림맹의 군사를 맡은 제갈양이라 한다. 그대는 무슨 일로 왔는가?”

“뇌군께서 전하라는 말이 있소.”

“말을 하시오.”

“본 신교와 중원 무림에서 대표로 한 명이 나와 생사결을 겨루고자 하오.”

“생사결이라 했나?”

“그렇소이다.”

“그리고 생사결의 도전자는 천마와 무림맹주를 제외한 어떠한 인물이라도 상관없다고 했소이다.”

“…….”

제갈양은 단번에 그들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우릴 무시하는 거군. 맹주 외에는 강자가 없다고 보고 있어.’

마교 뇌군의 생각을 알았다.

마도팔문의 대승에 중원 무림의 기세를 꺾고자 하는 게 분명했다.

‘약았군.’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마교가 두렵기에 피한다고 할 게 분명했다.

‘생사결을 받아들인다면…….’

맹주를 제외한 무림맹의 고수들 중 가장 강한 인물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많은 고수가 무림맹에 있었지만 선뜻 누구를 보낼지 망설여졌다.

“마교에서는 천마가 나오지 않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본 신교에서는 일선에서 물러날 분이 나오실 것이외다.”

“…….”

“보아하니 바로 대답을 못 하는 것을 봐서는 자신이 없는 모양입니까?”

제갈양은 피식 웃었다.

전령이 자신을 은근히 도발하고 있었다.

‘화산파에서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최소한 육협 중 한 명이라면 가능하다고 여겼다.

마교의 도전자는 일선에서 물러난 인물이라면 전대의 고수임에 틀림없을 터.

‘전대고수라면 더 해볼 만하지.’

제갈양은 마공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마기는 몸이 버텨주는 힘이 강해야 했다. 그렇기에 대부분 세월이 지나면 신체적으로 부족해 마기를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좋소. 본 무림맹은 마교의 뜻을 받아들이겠소.”

“알겠소이다. 돌아간 뒤 천마님께 보고한 뒤 결전 날짜를 전하겠소이다.”

“바로 싸우지 않은 것이오?”

“생사결을 할 분이 오는 중이오.”

‘훗. 마교에서 온다는 말이겠군.’

무림맹의 입장에서도 아직 화산파에서 오지 않았기에 역시나 기다려야 했다.

“좋소이다. 마교의 뜻을 따르겠소. 준비가 되는 대로 연락하시오.”

마교의 전령은 모든 게 그들의 뜻대로 된 것을 보며 만족했다.

제갈양을 보며 짧게 포권을 한 전령은 돌아서며 마교의 진영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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