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마조동은 마도팔문이라 하지만 천검궁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마도팔문 전체가 상대해도 천검궁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초일군은 굳이 하북팽가에 원군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본진으로 간다는 소문을 들으면 곧바로 물러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만성으로 가서 마조동을 완전히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천검궁은 단번에 하북 만성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마조동으로 올라갔다.
최후의 관문까지 올라오는 데는 두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관문은 마교에서 내려온 십이신마 음양혈마가 지켰다.
저벅저벅.
태산 같은 위압감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왔다.
파아앗!
그는 앞으로 다가온 사내를 보며 음양조혈장을 펼쳤다.
마도십장 중 하나의 장법이라 하지만 초일군의 일 장 앞에서 은하신검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음양혈마,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약하군. 실망이야.”
“무신…….”
이번에는 초일군이 먼저 움직였다.
팟팟팟팟팟-!!
음양혈마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은하신검의 뒤로 검기가 만들어낸 유성이 수없이 떨어졌다.
승패의 결과는 그들 두 사람의 내력 차이에 따라 갈라졌다.
음양혈마는 은하유성우를 막아내고자 음양마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은하신검의 검기가 단번에 뚫고 떨어졌다.
“커어억!”
음양혈마의 이마와 가슴에 검기가 박히면서 짧은 비명을 남긴 채 그대로 즉사했다.
그의 죽음은 마조동의 기세를 급격히 떨어지게 만들었다.
마조동이 장악되기까지 시간은 고작 반 시간.
천검궁의 무력 앞에 항복하지 않은 이상 죽음밖에 없었다.
털썩.
마조동 문주 탈혼마제는 무릎을 꿇었다.
“오랜만일세.”
“무신…… 그렇소이다.”
“조용히 지내기로 하지 않았던가.”
“…….”
“그게 아니면 내가 천검궁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모양이지?”
“죄…… 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하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먹으면 좋지 않은가? 우리 조용하게 지내세. 지금까지 조용하게 잘 있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선처를…….”
“이 문제는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군. 나도 화산도협의 부탁을 듣는 입장이라서 살려주고 싶어도 함부로 할 수 없지.”
“……!”
탈혼마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군가.
무신이 화산도협의 명을 받고 따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지금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사천에 가 있을 터. 연락을 띄워 기다리기엔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그냥 정리했으면 하는군.”
“무신님……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마교에 의해 죽는다고 해도 절대로 나서지 않겠습니다.”
“허허. 그건 내가 결정할 상황이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살려 주십시오.”
스윽.
묵경이 머리를 조아리며 부복을 한 그의 옆으로 나섰다.
“무신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풍류옥협, 본인에게 할 말이 있는가?”
“탈혼마제가 분명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은 없지만 지금 마조동의 문주를 보니 거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풍류옥협님의 말씀대로 거짓이 아닙니다.”
탈혼마제는 사지 속에서 생명줄을 잡은 듯 묵경을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맹주 아우에게는 제가 책임지고 말을 하겠습니다. 무신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풍류옥협께서 부탁을 하니 생각을 해보겠네.”
“고맙습니다.”
묵경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섰다.
“이보게, 탈혼마제.”
“무신님, 하명하십시오.”
“자네와 마조동의 목숨은 여기 풍류옥협이 살렸다. 앞으로 또 한 번 무림에 분란을 일으킨다면 그때는 누가 와도 용서하지 않겠다.”
“무신님, 고맙습니다. 풍류옥협님, 감사합니다.”
“화산도협이 마교를 정리하는 동안 조용히 지내라.”
“명심하겠습니다. 마조동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일어나라.”
초일군은 그의 앞에 다가서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했다.
“피차 무림인으로 뜻이 맞지 않으면 서로 죽이는 일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네.”
“명심하겠습니다.”
“우린 내려가겠네.”
초일군은 천검궁의 무인들과 함께 마조동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휴우.”
드디어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탈혼마제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젠장…… 괜히 마교의 말을 듣다가 죽을 뻔했어!”
그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오늘부터 본 문은 모든 활동을 멈추고 마교의 상황을 지켜본다!”
“넵. 알겠습니다.”
봉문한 그들의 모든 눈과 귀는 사천성으로 향했다.
* * *
마도의 종주, 마교는 청해를 넘어 사천으로 넘어선 지 보름이 넘었다.
무림맹의 진영이 있는 노곽까지는 사흘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우선 중원에서 마도팔문의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마교 진영으로 전서구들이 날아들었다.
중원 각지에서 올라온 전서구들.
전서의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
쉬이이익!
천마 임조학의 신형에서 천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전서 내용을 보고받은 그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지만 뿜어져 나온 천마기만으로도 얼마나 노여움이 가득한지 알 수 있었다.
“하하하! 믿기지 않는군. 마도팔문과 십이신마들이 모두 당했단 말이지?”
그는 믿기지 않았다.
중원 무림에 대해 충분히 승산을 확인한 뒤 움직였다.
십이신마와 마교의 수하들까지 그들에게 함께 보냈다. 그런데도 모두 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특히 마도팔문 중 구유천이 화산파에 의해 완전히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화산파, 이놈들은 언제 구유천까지 내려왔지?”
“구유천에서도 전혀 몰랐던 모양입니다. 화산파에 대한 소문이 중원에 중복되는 탓에 구유천에서 소홀히 한 듯합니다.”
“멍청한 놈.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건만.”
뇌군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천마님. 사천성으로 곧장 내려가는 계획에 대해서 잠시 재고하심이 어떻겠습니까?”
“…….”
“중원에서 마도팔문이 당한 이상 본 신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사라졌습니다.”
“뇌군.”
천마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는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자는 말인가?”
“송구하옵니다.”
“뇌군의 뜻은 마도팔문의 도움이 없다면 본 신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처억.
뇌군은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소신은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무엇인가?”
“무림맹의 기세가 강하기에 당장 붙는 것보다 기세를 꺾은 뒤에 움직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기세를 꺾는다?”
“그렇사옵니다.”
“어떻게 기세를 꺾는다는 말이지?”
“무림맹에 생사결을 신청하는 게 어떠한지요?”
“생사결을? 크큭…….”
천마 임조학은 괴소가 나왔다.
뇌군의 의견이 마음에 들었다.
“생사결이라면 누가 나가는 것이지? 본좌가 나가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각 진영에서 수장을 제외한 어떠한 인물이라도 상관없이 한 번으로 결정짓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
“그렇사옵니다. 무림맹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지만 화산도협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강한 무인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받아들인다면 우린 누구를 보내면 좋을까? 우리도 거의 비슷한 수준의 무공들이라 보는데?”
“생사결에 알맞은 한 분이 계십니다. 무림맹에서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이지?”
“전대 천마이십니다.”
“…….”
뜻밖의 이름.
그는 천마 임조학의 사부였다.
“그분이 싸울 수 있다고 보는가? 이미 마기가 뇌 속에 퍼져 제정신이 아니다.”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
뇌군이 말한 방법.
마령침혼대법이었다.
“대법의 유효 시간은 반 시진이다. 만일 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 어쩌면 오히려 그분께는 그 방법이 좋을 것입니다. 전대 천마께서도 정신을 잃은 채 비참하게 사시는 것보다 무인으로서 죽음을 택하실 것입니다.”
“…….”
천마 임조학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말처럼 어두운 지하에서 손발이 묶인 채 살아가는 것보다 마지막으로 무인답게 싸운 뒤 돌아가시는 게 좋을 수 있었다.
잠시나마 정신이 돌아온 전대 천마의 무공이라면 화산도협을 제외한 무림맹에서 모든 인물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뇌군.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곧바로 무림맹에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뇌군은 막사를 나온 뒤 곧장 그의 막사로 들어섰다.
잠시 뒤 그는 수하를 부른 뒤 한 장의 서신을 내밀었다.
“이것을 무림맹에 전해주고 오면 된다.”
* * *
화산파는 구유천을 내려오는 동안 노곽에 사천 무림의 세 문파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곧바로 노곽으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넘어가기 전 고진유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뒤에 남아서 계속해서 미행하던 극일천의 지문전을 해결하는 것.
우종성을 제외한 다섯 명의 사형제들은 고진유와 함께 남은 뒤 그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화산파가 노곽으로 출발하기 전, 고진유는 대사형 우종성과 조용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저번 무림맹에 있을 때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엄청난 비밀이겠지?”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제 신상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묵 형에게 대충 기억을 되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듣는 게 좋을 것이라 하더군.”
예전과 달라진 고진유의 분위기를 사형제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진유에게 어떠한 비밀이 있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고진유는 언제나 화산파의 제자이며 그들의 사제이기에.
“사형, 저에게는 한 분의 아버지와 쌍둥이 누님이 계십니다.”
“잘된 일이구나. 지금까지 고아로 알고 있었잖느냐. 그분들을 찾은 모양이지? 기분이 좋았겠어.”
“네. 그렇습니다. 분명 기쁜 일이지요.”
고진유의 가족에 대해서는 평범한 인물이 아닐 것이라 예상했다.
“혹시 그분들이 내가 알고 있는 분들이냐?”
“사형은 그분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누군지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
우종성은 느낌이 왔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지금 그분께서 극일…… 천주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 그분이 제 아버지입니다.”
우종성은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고진유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상대가 극일천이었다.
그동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죽이고자 했다는 것인가?
“사형께서 생각하신 것보다 상황이 훨씬 복잡합니다.”
“……말해보거라.”
고진유는 천천히 모든 이야기를 차례대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철갑에 든 한 가지 물건을 찾기 위해 망혼대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일.
모든 설명을 들은 우종성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극일천과 싸웠지만, 극일천주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천륜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극일천주께서는 극일천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제를 숨겼다는 것이군.”
“네, 맞습니다.”
“잘 들었다. 이건 사제 말처럼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일이었군.”
“그렇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고진유가 극일천주의 아들이라 해도 현재는 화산파의 제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다.
또 죽을 정도로 극일천과 싸워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 아닌가.
다행스러운 건 극일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으로 상황이 좋아졌다.
“장문인과 사조님께는 뵙게 되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사제들하고 몸조심하고. 나중에 보자꾸나.”
“사형, 잠시만 앉아보십시오.”
“음?”
고진유는 우종성을 따로 부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가부좌를 한 뒤 운기를 하십시오.”
“지금 여기에서?”
“괜찮습니다. 제가 주위를 모두 막아놓았습니다.”
“알겠다.”
우종성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했다.
스윽.
고진유의 손이 그의 등에 닿았다.
“사형께서 펼치신 오행매화검을 봤습니다. 탈형을 벗어난 오행매화검으로 확실히 예전보다 강했습니다. 하지만 오행검은 가장 큰 장점은 조화로움이지 않습니까? 탈형에 의해 강해진 오행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균열이 생긴 듯합니다. 쉽게 말하면 오행을 지탱할 수 있는 음양의 조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우종성은 단번에 자신의 무공에 대해 파악한 고진유의 능력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인가 부족함을 알았지만 음양의 기가 모자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고진유를 만나면 조용할 때 묻고자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지금 제가 흘려보낸 내기를 따라오십시오.”
우종성은 정신을 집중했다.
혈맥을 지나는 고진유의 기를 느끼며 따라 움직이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렸다.
“제가 지금 알려주는 심공은 혼원태극심공(混元太極心功)입니다. 사형께서 익히신 오행의 힘을 도와줄 것입니다.”
스스스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고진유의 내기의 뒤를 쫓던 우종성의 기는 어느덧 소주천을 빠르게 이루었다.
우종성의 가슴에 혼원태극의 기가 머물렷다.
“……!”
그는 가슴이 뚫린 채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았다.
“사제…….”
“역시 한 번에 성공하실 줄 알았습니다.”
“사제가 앞에서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도중에 멈췄겠지. 고맙구나.”
우종성은 소주천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고맙다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사이에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후후, 혼원태극심공이 당연하다고 말하면 사제에게 무엇이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군.”
“그런가요? 제가 어릴 적에 외워두었던 무공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우리끼리 말을 했었지. 대체 왜 강할까? 근데 이제야 사제가 강한 이유를 알겠어.”
“여하튼 제가 똑똑한 게 아니겠습니까.”
“후후후. 맞다. 내가 전생에 엄청나게 복을 많이 베푼 것 같구나.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제를 두지 않았느냐.”
“최대한 빨리 마치고 노곽으로 가겠습니다. 사형께서도 조심하세요.”
고진유와 우종성은 화산파의 제자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내려갔다.
장두총이 그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사형,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하시오?”
“나중에 사제가 이야기를 해줄 게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라.”
“그런가요? 얼마나 놀랄 일이기에 대사형이 그런 말을 하슈?”
“넌 아마 뒤로 넘어질 수도 있다.”
“예?”
우종성은 미소를 띠며 장두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후.
화산파의 제자들은 노곽으로 출발했다. 그들 사이에서 유랑검협 곡경인 또한 친해진 진우청과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