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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84화 (284/425)

284화

휘이익.

구유천림으로 두 명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빽빽한 숲속, 달빛조차 내리지 않은 구유천림은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고진유에게 어둠은 문제가 없었다.

구유천림으로 들어선 뒤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다.

‘흠…… 이런 게 펼쳐져 있군.’

나무들 사이에 숨겨 놓은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숲을 가득 채운 나무들로 인해 좁은 구유천림에서 기관이 작동되면, 피하기 어려운 지형이 확실했다.

[사형, 미리 살펴보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턱대고 들어 왔으면 제법 큰 피해를 봤겠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부 해체하는 게 좋겠습니다.]

[할 수 있겠어? 잘 모르면 함부로 만지면 안 될 텐데…….]

[기관술의 원리를 알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그건 또 뭐야?]

[예전에 배워 두었던 것입니다.]

[너…… 예전이라면 도둑일 때잖아. 요새는 그런 것도 배우는 모양이지?]

[도둑질을 잘하려면 기본 사양입니다.]

[아…… 하, 그렇구나.]

장두총은 뒤에 서서 설치된 함정을 만지는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해체하는 모습을 보면서 탄성이 나왔다.

“오우, 잘하네…… 나도 도둑이나 될 걸 그랬다.”

“후후, 사형은 손재주가 없잖아요. 이런 것도 손이 빨라야 해요. 아마 호청 사저는 손이 빨라서 잘할 겁니다.”

“그렇긴 해. 가끔 폭탄 만드는 걸 보면 신기하면서도 놀라워.”

“아 참, 사형, 축하해요.”

“엥…… 무슨 말이야? 뭘 축하하는데?”

고진유는 고개를 돌리며 장두총을 보았다.

“몰랐어요? 난 또 일부러 말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

“저한테 조카가 생긴 것 같던데요?”

“조카? 진…… 짜?”

“네. 확실할 겁니다. 근데 사저가 사형에게도 말을 안 한 모양이네요.”

“어……?”

장두총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 싸움은 위험하지 않을까?”

“하하, 이젠 당분간 사형이 옆에서 지키면 괜찮을 겁니다.”

“알았…… 다. 알려줘서 고마워.”

“호청 사저에게 당분간 모르는 척하세요. 때가 되면 이야기하실 겁니다.”

“그렇게 할게.”

장두총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나면서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쓰윽.

그러더니 고진유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의 표정에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사제.”

“말씀하세요.”

“나중에…… 혹시 우리 애기가 태어나면 사제가 직접 무공 사부가 되어줄 수 있겠어?”

“좋아요.”

“정말……? 고맙다.”

장두총은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인물도 아닌 천하제일인이 무공을 직접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앞으로 사제가 해달라는 것 전부 해줄게.”

“후후후. 그러세요.”

두 사람이 구유천림에 들어선 지 한 시진이 지났다.

하지만 구유천의 마도인들은 전혀 그들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진유는 마지막 기관을 해체한 뒤 일어났다.

“끝났어요.”

“수고했어. 그만 가자.”

“모두 해체했으니 함정에 의해 다치지는 않을 겁니다.”

고진유와 장두총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구유천림을 빠져나갔다.

* * *

둥둥둥.

구유대존은 엎드려 자던 중에 벌떡 고개를 일으켰다.

‘이건…….’

구유천림의 진영에서 퍼져 나가는 북소리.

“무슨 일이냐?”

“대존, 화산파에서 구유천림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뭣들 하느냐? 빨리 기관을 작동시켜라!”

“알겠습니다.”

수하는 다시 밖으로 달려 나갔다.

‘화산파…… 이놈들,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구유대존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들이 몰려들면 결국 구유천림이 뚫릴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화산파를 괴롭혀 주리라 결심했다.

밖으로 나오자 구유천림에서는 비명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뭐지?’

한데 기관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수하들의 비명 소리들이 점점 가깝게 들리고 있었다.

화산파 도사들이 구유천림에 들어선지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설마…… 벌써 여기까지 통과했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정말로 일각 만에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휘익!

구유천림을 나온 인물.

구유대존은 앞으로 다가오는 청년 도사와 마주 섰다.

그가 화산도협 고진유라는 사실은 아직 알지 못했다.

* * *

고진유는 화산파 선두에서 가장 빠르게 구유천림에 들어섰다.

구유천림에 장치된 기관을 해체했기에 중간중간에 숨어서 쏟아내는 마도인들의 공격만을 조심하면 되었다.

앞으로 움직이는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뒤에 따르는 화산파 제자들도 한꺼번에 들어서지 않고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며 움직였다.

“왜……!! 왜 작동이 안 되지?”

화산파의 도사들을 막아낼 기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두 개 정도는 불량이라 쳐도, 하나도 발사가 되지 않은 건 분명 모든 장치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일 터.

우귀는 가장 가까이 있던 장치를 찾아보았다.

“……!”

기관장치가 사용하지 못하게 부서져 있었다.

“대체…… 누가…….”

“그건 본도가 그랬소이다.”

“……!!”

우귀는 앞으로 내려선 도사를 보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당신은……?”

“고진유라 하오.”

“허……! 무림맹주가 직접 올 줄은…… 몰랐소이다.”

“그렇게 되었소이다.”

우귀는 선수필승이라 여겼다.

파앗!

스걱.

우귀가 움직이는 동시는 고진유의 사의검도 움직였다.

동시에 움직였지만 속도의 차이가 그들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커어어억.”

먼저 지나간 사의검 뒤로 그의 피가 흘러나왔다.

우귀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피로 인해 가슴은 붉게 변해 있었다.

“역시…… 천하제일인…….”

쿵.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고진유는 가장 먼저 구유천림을 빠져나와 마주 본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당신이 대존인가 보군요.”

고진유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려고 할 때였다.

휘익휘익!

고진유의 앞으로 구유대존의 친위호위들이 내려서면서 소리쳤다.

“죽어라!”

이십 명의 호위들은 나타나자마자 고진유를 감싸며 검을 내리쳤다.

차아아아앙.

스무 개의 검이 고진유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들 모두 반탄기에 충격을 받았다.

“어…… 억…… 억…….”

친위호위들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누구시오?”

구유대존의 목소리가 떨렸다.

구유호위대를 호신강기만으로 충격을 가한 인물이었다.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하오.”

“아…… 아…….”

그가 바로 무림맹주 화산도협이었다.

호위대가 단번에 당한 이유를 알았다.

“왜, 본 천을 공격하는 것이오? 우린…….”

“잠깐. 혹시 잘못이 없다고 말할 것 같으면 그만두시오. 구유천에서 마교와 손을 잡고 사천 무림을 칠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

그는 말문이 막혔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에게 변명을 할 수 없었다.

“본 천을 어떻게 할 생각이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하게 마무리를 짓고자 했소만, 구유천은 둑을 무너뜨리고자 했소. 할 말이 있소?”

“…….”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사실인가 보군. 그대들이 마도인이라 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소이다.”

“그건……!”

그는 변명을 생각했지만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한 문파의 수장으로서 비겁하게 변명할 생각부터 하는군요.”

“…….”

“구유천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대의 수하들에게 부끄럽지 않소? 허리에 찬 검을 뽑으시오.”

고진유는 사의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구유천이 살고자 한다면 당신이 죽어야 할 것이오.”

“하, 항복을 하겠소. 본 천은 맹주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채앵.

구유대존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아…… 이거 참.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겠다니…… 어쩔 수 없군. 원한다면 구유천의 항복을 받아주겠소. 하지만 마교와의 모든 결전이 끝날 때까지 당신의 단전은 본도가 잠시 거두겠소이다.”

“어…… 그게…….”

핏핏핏핏!

고진유는 구유대존의 혈맥을 눌렸다.

“이게…… 무엇이오?”

구유대존은 혈맥을 따라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혈맥기충이라는 것이오. 한 달 안으로 본도가 직접 이놈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당신 머릿속으로 올라간 뒤 산산조각 폭발하는 것이지요.”

“……!”

“물론 그동안 목숨에는 상관이 없겠지만 단전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오.”

“맹…… 주…….”

“본도가 마교를 정리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찾아오겠소.”

털썩.

구유대존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았다.

구유천림 안에서 하나둘씩 화산파 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있는 구유대존과 앞에 선 고진유를 보았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화산파 만세!!”

“화산도협, 만세!!”

구유천의 하늘 위로 함성이 퍼져 나갔다.

* * *

사천 무림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소문이 퍼져 나갔다.

구유천의 완벽한 대패.

거의 팔 할 이상의 전력을 잃은 구유천은 치욕스러운 봉문을 당했다.

그리고 화산파와 싸우는 과정에서 구유천이 하려고 했던 일이 알려졌다.

구유천은 단번에 중원인들의 공분을 샀다.

이후 사천 무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천당문과 아미파, 그리고 청성파는 후방의 위협이 사라지자 무림맹과 합류하여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중원 무림의 시선은 사천성으로 향했다.

* * *

천검궁이 움직였다.

무신 초일군이 천검궁과 함께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십 년 만의 외출.

중원 무림이 들썩거렸다.

드디어 무신이 중원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봉문을 깨고 나오는 첫 목적지는 하북성의 만성.

그곳은 마도팔문의 마조동이 있는 곳이었다.

하북팽가를 위협하던 마조동은 천검궁의 소문을 들은 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조동의 문주 탈혼마제는 다급히 하북팽가로 가던 수하들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검궁은 천하제일문파였다.

마조동의 탈혼마제는 천검궁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오래전 그와 부딪힌 적이 있었으니까.

무신 초일군에게 오 초식 만에 죽을 수 있었지만, 그의 아량에 의해 목숨을 겨우 건졌다.

탈혼마제의 입장에서는 그가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다각다각.

묵경은 천검궁에 나온 무신 초일군과 함께 마조동으로 움직였다.

며칠 전 그를 만나 하북팽가를 돕기 위해 나서주기를 부탁했었다.

천검궁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금하희가 묵경을 반갑게 맞이했다.

곧바로 무신 초일군을 만났다.

“묵 대협처럼 무림에서 바쁜 사람이 홀로 본인을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군.”

“맹주께서 궁주님께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그대를 맹주가 보냈는가?”

“네, 그렇습니다.”

“무슨 부탁이기에 그대를 보냈지?”

“하북팽가에 도움을 주길 원하십니다.”

“흐음…….”

초일군은 그가 나타났을 때부터 그냥 오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마조동이라면 마도팔문 중 한 곳이 아닌가? 하북팽가를 치기 위해 성도로 올라간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

초일군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미안하네. 맹주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맹주께서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

“극일지약은 사라지고 천검은 날아오를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초일군은 처음으로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믿기지 않은 듯 묵경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방금 한 말이…… 맹주가 한 말이 맞는가?”

“맞습니다. 맹주가 그렇게 전하면 궁주님께서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 말을 알고 있는가?”

“…….”

묵경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르쳐 줘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초일군은 그런 묵경의 얼굴을 보면서 눈치를 챘다.

“그대는 이유를 알고 있군.”

“네. 그렇습니다.”

“혹시 말하기 곤란한 것이라면 더는 묻지 않겠네.”

“아닙니다. 맹주께서 굳이 알리지 말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초일군은 그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맹주는 극일천주의 아들입니다.”

“…….”

묵경의 대답에 또 한 번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맹주가 그분의 아들이라…… 딸 한 명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모르는 아들이 있었단 말인가?’

초일군은 갑자기 예전에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중원인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지만, 그들은 첫 만남에서 함께 뜻을 같이하기로 한 사이였다.

“극일천을 중원에서 사라지게 만들 거라네.”

“형님께서 직접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극일천을 상대할 녀석이 조만간 세상에 나올 게야.”

세상에 나온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이십 년의 세월.

화산도협 고진유의 나이와 같았다.

‘그렇군. 형님께서 세상에 갓 태어난 그분의 자식에게 맡기고자 하신 거군.’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근데 왜 지금까지 신분을 속였던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맹주가 열다섯 되는 해에 직접 망혼대법을 펼쳤다고 했습니다.”

“망혼대법을?”

“그렇습니다. 모두를 속이기 위해 전혀 다른 인물로 기억을 바꾼 뒤 중원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기억을 모두 되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나눈 대화를 알고 있었군…… 맹주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네.”

“고맙습니다.”

초일군의 한마디는 곧바로 천주궁의 봉문이 끝났음을 알렸다.

천검궁의 움직임에 무림은 새로운 국면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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