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됐어.’
둑으로 갔던 장두총의 연락을 받았다. 예상대로 그곳에서 둑을 무너뜨리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던 구유천의 마도인을 처리했다고 했다.
고진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야. 그들이 구유천림에서 싸우고자 했다면 우리도 피해가 많이 있었을 텐데…….’
구유천림은 빽빽하게 밀집된 나무숲으로 되어 있었다.
나무들 사이에 기관 장치가 많이 숨겨져 있다고 들었다.
만약 구유천이 그곳에 숨어 기다리고 있다가 안으로 들어갈 때 공격한다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불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구유천에서는 구유천수를 격전지로 택했다.
진우청도 보고를 받은 후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유천림이 아니어서 제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둑을 무너뜨리는 만행을 저지르고자 했다.
“호정 사질, 큰일 날 뻔했네. 정말로 구유천에서 둑을 무너뜨릴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러게 말이에요. 사제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호화 연자련도 한마디 거들었다.
고진유는 무심한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숙님, 구유천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마도라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켜야 하는 법이거늘…….”
구유천의 지나친 행동에 모두 화가 난 상태였다.
스윽.
우종성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사숙님, 준비되었습니다.”
“알겠다.”
모든 결전의 준비가 끝이 났다.
진우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아, 나가보자.”
구유천수로 향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화산파의 제자들의 시선은 밖으로 나온 진우청에게 집중되었다.
출진 명령을 내릴 순간이었다.
“호정 사질. 앞으로 나오게.”
원래라면 화산파 제자들 앞으로 진우청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고진유에게 앞으로 나서기를 부탁했다.
“네. 사숙.”
우우우우우웅-
화산파 제자들 앞으로 나오는 고진유의 신형에서 거대한 무형기가 솟아올랐다.
“와아아아아……!!”
고진유의 기운에 진영에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장면을 본 곡경인은 감탄이 나왔다.
‘대단하군. 한마디 말도 없이 내기만으로 싸울 준비를 끝내다니…….’
함께하면서 보지 못했던 고진유의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괴도에서 화산검절이신 사부님께 무공을 익히면서 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화산천하제일문!”
화산파 제자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맞습니다. 사부님과 사조님, 그리고 장문인께 약속했습니다. 화산파를 천하제일문으로 꼭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이제 중원인들은 화산파를 천하제일문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전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지금부터 여기 모인 여러분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화산파를 천하제일문으로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제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화산파의 모든 우리들이 만들어갈 것입니다.”
스으으으으응-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으며 하늘 위로 올렸다.
“화산파의 영광을 위하여.”
채애애앵!
채애애앵!
고진유를 따라서 모든 화산파 제자들이 검을 뺐다.
수많은 검이 하늘 위로 치켜 올랐다.
“화산파의 검은 천하제일의 검이 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다시 한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들 앞에 항상 제가 설 것입니다.”
휘이익!
고진유의 신형이 진영 앞으로 내려서며 구유천수를 향해 달렸다.
앞으로 나서는 그를 보면서 함성이 쏟아졌다.
“화산도협을 따르자!!”
* * *
구유천수에 수많은 마도인이 집결했다.
수귀는 구유천수로 도착한 뒤 화산파가 오기를 기다렸다.
‘훗. 사지(死地)로 몰려오는구나.’
정찰을 나갔던 수하들에게 놈들이 구유천수로 몰려온다는 연락이 왔다.
중원 무림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서 화산파를 잡게 된다면…….’
수귀는 구유천수 앞을 내려다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벌써 천하의 화산파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화산파에서 공격하는 순간 신호를 보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와서 공격해 주기를 원했다.
웅웅웅웅웅웅-
“……?”
땅이 진동하며 기의 폭풍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수귀는 검미를 찌푸렸다.
예상보다 강한 화산파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진정시켰다.
‘네놈들이 강하더라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
척.
그는 손을 들어 둑으로 전할 신호를 보냈다.
백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크크. 일각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곳이 네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뭣들 하느냐? 화산파 도사 놈들을 죽여라!!”
두두두두-
구유천수의 강둑에 있던 마도인들이 아래를 항해 달려 나갔다.
수귀도 뒤에서 수하들 사이에서 움직였다.
화산파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도 일각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여겼다.
화산파의 선두에는 고진유와 함께 뒤로 네 명의 사형제들이 앞장을 섰다.
구유천의 기세를 단번에 꺾어버릴 계획이었다.
고진유의 신형은 점점 빨라졌다.
“저 먼저 갑니다.”
타앗!
전력을 다한 고진유의 신형은 이미 구유천의 마도인 앞에 다가섰다.
그와 동시에 사의검이 허공을 갈랐다.
스걱.
자줏빛 검기가 쏟아지면서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제일 신났군.”
혁자영은 적과 싸우고 있는 고진유를 보았다.
“후후. 호중, 우리도 빨리 가야겠다. 이러다가 우리가 상대할 적이 남아 있지 않겠어.”
“그렇게 하죠.”
우종성과 혁자영은 내력을 끌어 올려 신법을 펼쳤다.
고진유는 마도인들 사이에서 한 마리 들소처럼 광란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극성의 내력으로 사의검을 휘두르는 고진유의 곁으로 구유천의 마도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저…… 놈은 누구지?’
수하들 뒤에서 고진유를 지켜보던 수귀의 눈이 당황했는지 커졌다.
검을 한 번씩 펼칠 때마다 검기가 뻗어나가며 수십 명의 수하들이 잘려나갔다.
수하들이 검으로 막아내도 검까지 잘라 버리는 광경을 보면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앞으로 도착한 네 명의 화산파 제자들이 수하들과 부딪히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의 무공도 무서웠다.
“으아아악!!”
“커어어억…….”
사방에서 수하들의 비명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저놈들을 어서 막지 못하고!!”
수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수하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뒤를 이어 화산파의 도사들이 도착하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비켜라!”
뒤에서 지켜보던 흑소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싸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수하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고진유를 향해 앞으로 나섰다.
휘익.
흑소귀는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지?”
“고진유.”
“……화산도협.”
천하제일인이라는 화산도협이 앞에 서 있었다.
‘젠장…….’
엄청난 무공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무림맹주 화산도협일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신이 화산도협인 줄 몰랐소이다.”
“지금 알았지 않소이까.”
“그렇군.”
흑소귀는 마촉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파앗!
마촉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번쩍.
고진유도 다가오는 그를 보며 사의검을 휘둘렀다.
‘내가 더 빨랐건만……!’
흑소귀는 눈앞까지 다가온 검기를 보며 막을 수밖에 없었다.
채애애앵.
그는 사의검의 힘에 뒤로 밀려 나갔다.
‘팔이…… 부러졌다.’
한 번의 공격에 흑소귀의 양손의 뼈가 부러진 듯했다.
‘이건 싸워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야.’
고진유와 부딪히면서 단번에 알았다.
이렇게 된 이상 화산도협을 이기려면 차라리 수귀의 계획이 잘된 것일지도…….
“혹시 둑이 무너지기를 기다린다면 미안하게 됐소.”
“……!”
흑소귀는 고개를 들어 둑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귀의 계획이 실패했다.
‘큭…… 구유천림에서 싸웠다고 해도 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최소한의 대항은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싸움의 결과는 나왔다.
바닥에 쓰러지는 건 구유천의 수하들이었다.
흑소귀는 모든 전력을 끌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천하제일인과 한 수를 겨루어 보고 싶소.”
“그렇게 하지요.”
흑소귀에게 남은 건 최후의 한 수였다.
혈광구검식 만강혈세(彎降血勢).
고진유는 다가오는 혈빛검기를 보았다.
‘멋지군.’
빈틈없이 다가오는 최후의 초식을 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고진유 또한 최고의 검으로 상대했다.
파아아앗!!
흑소귀의 눈앞에서 매화 잎이 흩날렸다.
그가 펼친 혈광은 어느덧 사라지고 자줏빛의 매화만이 지나갈 뿐이었다.
‘황홀하군.’
흑소귀의 몸이 천천히 쓰러졌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진 검이었소.”
천하제일인이 자신의 검을 인정했다.
흑소귀는 미소를 지었다.
‘천하제일인에게 졌으면 됐…… 다.’
흑소귀는 웃음을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수귀의 시선은 계속 둑이 있는 방향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왜? 지금쯤이면 둑이 무너져야 하는데……!’
“지금 어딜 보나요?”
“……큭!!”
그녀의 양손에서 쏟아지는 비검들이 회전하며 수하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비화여협?”
“둑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다니 당신들은 미쳤군요.”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제가 있거든요. 지금 그것 때문에 우리 모두 화가 무척 났어요.”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러면 우리가 죽기 때문이다.”
“착각하는군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건들지 않았을 텐데 구유천에서 마교와 함께 사천당문을 치고자 했잖아요? 내가 어디 출신인지 알죠?”
“…….”
비화여협 당우희.
그녀는 사천당문 출신이었다.
“당신은 내 손에 죽어요.”
“네년이……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보느냐?!”
“지금 가슴에 박힌 건 뭔가요?”
“……!!”
‘커억…… 언제……?’
“비겁하게…….”
“멍청하게 날아오는 것도 못 본 사람이 뭐라는 건지.”
휘이익!
수귀는 얼굴 양쪽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비검들을 보았다.
‘헉…… 피해야……!’
하지만 신형을 펼치기에 이미 늦었다.
핏핏.
목을 스치며 지나가는 비검에 피가 솟구쳤다.
멀리서 구유천수를 바라보던 구유대존은 몸이 떨렸다.
화산파 도사들의 무력에 대항조차 하지 못한 수하들이었다.
구유천의 칠 할 이상이 구유천수에서 무너져 내렸다.
‘흑소귀…… 흑소귀는 어디 있는가?’
하지만 그는 이미 주검으로 변한 뒤 쓰러져 있었다.
‘이럴 수가…….’
결국 남은 구유천의 수하들과 함께 구유천수에서 물러나야 했다.
화산파를 대항하기 위해서 최후의 보루인 구유천림에 진을 펼쳐야 했다.
화산파의 무력을 보자 후회가 밀려왔다.
수귀의 계획이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 자신했던 게 패착이었다.
구유천 최후의 운명은 구유천림이 무너지는 순간이 될 것이었다.
구유대존은 가슴이 무거웠다.
* * *
화산파 도사들은 구유천수에서 승리한 뒤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굳이 다급하게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급한 곳은 구유천이니까.
화산파는 공격을 멈추고 부상을 당한 제자들을 치료했다.
승기를 잡았지만 구유천림에 함부로 들어가는 방심을 하지 않았다.
급한 일은 없었다.
둑으로 갔던 장두총과 곽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재정비를 했다.
화산파의 진영은 구유천림 앞에 세웠다.
하늘은 이미 어둠으로 가득했다.
진우청은 승리의 기쁨을 느끼게 하도록 가볍게 한 잔 정도의 술을 마실 수 있게 허락했다.
고진유는 진영을 다니면서 사형제들과 인사를 나눴다.
“호양, 괜찮아?”
“사형. 오셨습니까?”
호양 변영동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그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됐어. 그대로 앉아 있어.”
“아…… 네에.”
고진유는 십여 명이 모여 있는 그들 틈에 앉았다.
수련할 당시 친하게 지내던 사제들이었다.
“사제들 모두 고생이 많지?”
“저희가 고생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형께서 가장 먼저 나서주시니 저희야 따르기만 할 뿐입니다.”
“후후후. 다들 열심히 수련한 것 같더군.”
“모두 사형께서 도움을 주신 덕분입니다.”
“계속해서 수련하다가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없을 때는 사형들에게 찾아가서 귀찮게 해.”
“알겠습니다.”
“호경 사형과는 잘 지내고 있지?”
“저희에게 제일 열심히 가르쳐 줍니다. 요즘 사제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 의외인걸?”
“야, 뭐가 의외야. 당연한 거잖아. 내가 얼마나 잘해주고 맛있는 것을 많이 사다 주는데.”
장두총이 뒤에 서 있었다.
“하하하! 언제 오셨습니까?”
“능청스럽다니깐. 오는 것을 알았으면서…… 가자. 시간 됐다.”
“그럴까요?”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영동이 따라 일어나면서 물었다.
“어디를 가십니까?”
“구유천림에 가서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지 않겠어?”
“아…… 조심하십시오.”
“알겠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올라갈 테니 적당하게 마셔.”
“사형, 알겠습니다.”
변영동은 장두총과 함께 가는 고진유를 보았다.
무림맹주가 되었다고 해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들의 사형이었다.
“모두 사형 말씀을 잘 들었지? 그만 마시고 내일을 준비하자.”
“넵.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