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둥둥둥둥.
구유천의 전각들 위로 북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빠르게 퍼져 나가는 북소리가 적의 침입을 알렸다.
구유천의 마도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각 전.
구유대존은 수하의 보고를 받았다.
화산파의 도사들이 자양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자양에서 구유천까지 오는 시간은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구유천의 주요 인물들이 구유대전에 다급히 모여들었다.
콰아앙!!
구유대존은 바닥을 내리쳤다.
“화산파 도사 놈들이 자양으로 들어올 때까지 뭣들 하고 있었지? 분명 그 소문은 거짓이라 보고하지 않았나?”
“…….”
“사귀. 똑바로 대답하지 못할까?”
“송구하옵니다. 소문을 조사하기 위해 갔던 수하들이 중간에 모두 당했습니다.”
“전부 당했다고? 그렇다면 재빨리 보고를 하지 않고 대체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이냐?”
구유대존은 머리끝까지 노기가 솟구쳤다.
사귀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척.
그의 옆으로 사내가 포권을 하며 나섰다.
“대존, 지금 당장 급한 것은 화산파를 막아내는 것입니다.”
“흑소귀, 어떻게 화산파를 상대해야 하지? 밖으로 나가서 싸워야 하나?”
“화산파는 현 무림의 제일문파입니다. 수라마문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화산파와 전면전으로 붙는다면 위험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흑소귀의 말에 반대편 자리에 있던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흑소귀, 지금 본 구유천이 꼬랑지를 내리고 숨어 있자는 말이오?”
“……동귀. 지금 본인에게 따지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흑소귀의 강한 살기에 당황했는지 그는 슬쩍 뒤로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흑소귀의 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동귀, 화산파를 밀어낼 자신이 있다면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당장 아래에 내려가서 화산파를 상대하시오.”
“…….”
“왜 대답이 없는 것이오? 분명 꼬랑지를 내린다고 하지 않았나?”
“미안하오. 본인이 흥분을…… 해서…… 갑자기 말이 튀어나온 모양이외다.”
흑소귀는 다시 구유대존을 향해 돌아섰다.
“대존, 화산파를 막기 위해 최선의 방법은 구유천림에서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습니다.”
“흑소귀, 구유천림이라 했는가?”
“대존, 그렇습니다. 구유천림은…….”
스윽.
구유천림에 대한 흑소귀의 설명이 끝나기 전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앞으로 나서며 반박을 했다.
“흑소귀께서는 화산파의 도사들이 본 천까지 올라오는 것을 그대로 보겠다는 것입니까? 만일 구유천림이 뚫린다면 바로 앞은 본 천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습할 시간도 없소이다. 흑소귀께서 하신 말씀은 지금 화산파에게 길을 내어주자는 것 같습니다.”
“수귀. 본인의 말뜻을 모르지 않을 텐데?”
“모르겠습니다. 구유천림이 아니더라도 본 천의 힘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화산파는 천하제일문이다.”
“본 천은 중원 마도의 제일마문입니다. 설마 이 사실을 흑소귀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수귀, 그대가 화산파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못 이길 법도 없지요. 이곳은 화산파보다 본 천에 유리합니다.”
척.
수귀는 빠르게 돌아서며 구유대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존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산파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구유천수에서 수장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
“수귀, 무슨 말이더냐?”
“그놈들이 구유천수를 지날 때 둑을 터뜨린다면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수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흑소귀가 단번에 노기를 터뜨렸다.
그가 말한 방법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그는 대존을 돌아보았다.
“만약 둑을 무너뜨린다면 아래 있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수장될 수 있습니다.”
“…….”
“수귀, 정녕 네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을 할 수 있지?”
“흑소귀께서는 대체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군요. 그놈들은 죽으면 안 되고 구유천의 형제들은 죽어도 된다는 말 같소이다.”
“누가 죽어도 된다고 했지? 구유천림에서 충분히 싸울 수 있다.”
“우린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화산파 도사 놈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이는 게 목적입니다.”
수귀의 얼굴에 비웃음이 나타났다.
“크하하하.”
구유대존은 대전을 향해 대소를 터뜨렸다.
그 또한 수귀의 생각에 찬성했다.
“모두 잘 들었나? 본좌는 수귀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다면 지금 바로 말을 해라.”
“대존. 한 번 더 재고를 해주십시오. 둑을 무너뜨린다면 마을의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수귀가 다시 반박을 했다.
“흑소귀께서는 구유천림에서 싸운다면 피해가 없을 것이라 보십니까? 어차피 누군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본 천은 화산파를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수귀, 화산파의 도사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을 정도라면 본 천도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는지 아는가?”
“화산파를 물리치기만 한다면 상관없습니다.”
“…….”
“흑소귀께서는 말한 것처럼 구유천림에서 싸운다면 화산파를 확실히 이긴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저도 구유천수가 아닌 구유천림에서 싸우는 것을 찬성하겠습니다.”
“…….”
흑소귀는 인상을 쓰면서 수귀를 노려보았다.
‘망할 놈의 새끼…….’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놈이었다.
흑소귀에 의해 주눅이 들었던 동귀가 나섰다.
“대존님, 소신도 수귀의 계획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신도 같은 생각입니다.”
흑소귀를 제외한 대전에 모인 그들 모두 수귀의 생각에 찬성했다.
구유대존의 명이 떨어졌다.
“화산파와의 결전은 수귀가 총책임자를 맡을 것이다. 본존의 뜻에 이의가 있는 자는 앞으로 나서 말을 하게.”
“…….”
이미 결정이 났다.
흑소귀는 가슴이 점점 무거워져 갔다.
* * *
자양에 들어선 뒤 고진유와 곡경인은 화산파의 진영으로 향했다.
진영 안으로 들어가면서 많은 이들과 웃으면서 눈인사를 했다.
‘저기들 계시는군.’
휘이익.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여섯 명의 사형제들을 보았다.
고진유는 예전의 기억을 되찾았지만 그들에 대한 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 년의 기억에서 그들은 고진유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예전 십오 년의 기억보다 밀이다.
화산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온 책임자는 화산장절 진우청이었다.
“허경 사숙님을 뵙습니다.”
“호정,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저는 혼자이지 않습니까. 사숙님께서 큰 책임을 맡으셔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허허허. 어쩌다 보니 부족한 내가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구나.”
“화산장절이신 사숙님이시라면 당연한 자리입니다.”
“천하의 호정 사질에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구나.”
허경 진우청은 미소를 지은 채 옆에 함께 온 사내를 보았다.
“사숙님, 이분은 중원오협이신 유랑검협이십니다.”
“오오. 이런…… 죄송합니다.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진우청은 그를 향해 먼저 포권을 했다.
무림의 명성과 배분으로 보아 유랑검협 곡경인이 한 배분 높았다.
“화산장절의 고명함을 늘 듣고 있었소이다. 곡경인이라 하외다.”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소이다.”
진우청은 그와 함께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남은 고진유는 여섯 사형제와 인사를 나눴다.
“대사형,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라고 할 게 있느냐? 갔던 일은 해결이 잘된 모양이로구나.”
고진유의 얼굴은 무림맹에서 헤어질 때와 다르게 예전의 밝은 표정이었다.
“네.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와락.
장두총이 얼른 고진유를 안았다.
“난 또 못 보는 줄 알았다.”
“후후후. 제가 어딜 간다고 그런 생각했습니까?”
“뭐…… 그땐 그런 느낌이었거든. 돌아오니 좋네.”
“저도 사형들과 함께 있으니 좋습니다.”
“자아…… 들어가자. 사숙께서 기다리겠다.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시간이 많아. 우선 처리할 것부터 의논하자.”
“넵. 대사형.”
장두총은 기분이 좋은 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화산파의 진영은 조용했지만 제자들의 얼굴은 밝았다.
수라마문과 결전을 하기 전 화산파의 제자들은 수라마문을 그렇게 쉬이 물리칠 줄 몰랐다.
허자배의 이대제자들 역시도 화산육협의 실전을 보면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비무와 실전은 엄연히 다른 법이었다.
한데 실전에서 화산육협이 보여준 무공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수라마문의 문주와 마교의 십이지마를 상대해서 이긴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이젠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화산파에 고진유가 돌아왔다.
진영으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은 신인(神人)과도 같았다.
구유천이 아닌 마교와 싸운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장두총은 아래에 놓인 지형도를 보며 설명했다.
“방금 정찰을 돌아온 정후대에 의하면 구유천에서 우리 예상과는 달리 구유천수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어…… 정말요?”
고진유는 의외란 듯 물었다.
“나도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살펴보라고 했거든. 근데 구유천수가 맞아.”
“음…… 구유천림에서 막을 것 같아서 고민했는데. 왜 여기에서 진을 칠까요?”
“우리와 정면으로 붙을 생각인 거겠지.”
“구유천이 그 정도로 강한가요?”
“마도팔문 중에서 최강자이긴 해. 그래도 현재 우리 기세를 알고 있다면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모를 꿍꿍이가 있다는 말이군요.”
고진유는 지형도를 유심히 본 후 장두총에게 물었다.
“구유천수는 깊은가요?”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예전에는 상당히 수량이 많은 강이었다고 해. 지금은 상류에 둑을 세워 놓은 뒤 거의 강이라고 할 수 없지.”
“여기에 둑이 있다는 말이군요.”
장두총은 지형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이 정도일 거야.”
“이건 혹시나인데요. 그놈들이 미친 짓을 할 것 같지 않나요?”
“……!”
고진유의 말에 막사에 모인 모든 사람이 말문이 막혔다.
“설마…… 그놈들이 아무리 마도라고 해도 이런 짓을 하겠어?”
“호청 사매, 그런 짓을 할 것 같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혁자영이 한마디 툭 던졌다.
“이거 참……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군.”
“미치지 않고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미친 것인가?”
사형제들은 한마디씩 했다.
고진유는 장두총과 곽우를 보았다. 정말로 그들이 미친 짓을 할지 확인해야 했다.
“호경 사형과 호민 사형이 지금 바로 둑으로 가주세요. 정말로 그들이 있다면 알아서 정리하시면 됩니다.”
“알겠다. 그곳이 정리되는 대로 연락할게.”
“수고해 주세요.”
장두총과 곽우는 곧바로 막사를 나온 뒤 열 명의 제자들과 함께 둑을 향해 움직였다.
* * *
화산파 제자들은 조심스럽게 천수를 따라 상류로 향했다.
장두총은 올라가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호민, 진짜로 사제의 말이 맞을까?”
“사제의 말은 틀린 적이 없잖아.”
“하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게 더 겁나네. 젠장…….”
“어떻게 둑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지?”
“마도 놈들이잖아.”
“아무리 마도라고 해도 절대로 하면 안 될 일이 있는데…….”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과 뒤로 열 명이 빠르게 움직인 탓인지 멀리 둑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윽.
장두총은 손을 들어 뒤에 따르는 신형들을 멈추게 했다.
“여기부터 내력을 최대한 지우면서 간다.”
“알겠습니다.”
화산파 제자들은 장두총의 말처럼 최대한 몸을 숙이며 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둑방에 점점 가까워질 때였다.
그곳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뭣들 하고 있어? 꾸물대지 말고 설치하지 않고!”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아! 조심해서 움직여. 네놈들이 들고 있는 게 폭탄이야. 그게 지금 터지면 다 죽어!”
그는 연신 주위를 보면서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이 새끼들이…… 왜 이리 행동들이 꾸물대고 있어? 빨리 못해?”
탁탁.
사내는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아 씨. 어떤 새끼가 일을 안 하고 있어?”
그는 인상 쓴 채로 돌아섰다.
“어어…… 누구?”
사내는 곧바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도사……!”
매화의를 입은 장두총을 보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휘익!
구유천의 마도인들 사이로 곽우와 열 명의 화산파 제자들이 내려섰다.
“지금부터 손가락이라도 미세하게 움직이는 놈이 있으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찌지직.
뇌전화검에서 강한 내기가 흘러내렸다.
“…….”
장두총의 기세에 마도인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장두총과 마주 선 사내.
동귀는 상대의 인원을 재빨리 파악했다.
‘총 열 두 명…….’
그들은 오십 명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그는 천천히 허리에 찬 검을 잡았다.
“어허. 방금 우리가 한 말을 이해 못했군. 움직이면 목이 날아간다고 했을 텐데.”
뇌전화검이 번쩍이며 동귀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허억.’
동귀는 검을 들어 막아내고 했다.
하지만 뇌전화검의 벼락같은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쉬이이익!
그와 동시에 구유천의 마도인들이 곽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말로 말을 안 듣는구나.”
슈우우욱.
곽우는 달려드는 마도인들을 향해 양손에서 매화청심장을 뿜어냈다.
푸른 매화가 그들 사이에서 휘날리면서 가슴에 떨어졌다.
“커어어억.”
“컥…….”
한 번 공격에 대여섯 명의 마도인들의 가슴에 청강장이 폭발하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곽우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폭탄이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력을 다한 일장에 마도인들의 가슴은 탄 채로 목숨이 끊어졌다.
동귀는 처참하게 죽어가는 수하들을 보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안 일어날 거요?”
“…….”
구유천에서도 최상의 강자에 속했지만 검을 겨눈 화산파 도사에게는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네놈들이 하는 짓을 봐서는 모두 죽이고 싶다만, 한 번 살길은 줘야겠지. 살고 싶으면 검을 버려라.”
“…….”
동귀는 허망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따르기만 한다면 죽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는 손에 들어 있던 검을 옆으로 던졌다.
그와 동시에 그를 따르던 수하들도 하나둘씩 검을 버린 뒤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