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80화 (280/425)

280화

“호오…….”

사내들의 시선들이 길가를 지나가는 여인을 보면서 웅성거렸다.

여인의 얼굴은 면사로 가려졌지만 분홍빛 비단으로 지은 치마가 바닥을 스치면서 사내들의 호기심을 단번에 일으켰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한번 말이라도 걸어봤으면 좋겠다…….”

“이봐. 유부남은 빠지시지?”

“뭐냐? 한번 말이나 해보겠다는데 갑자기 유부남이 왜 나와?”

사내들은 괜히 서로 마주 보며 화를 냈다.

스윽.

그때, 사내들 사이에서 한 명의 인영이 빠르게 지나치며 빠져나갔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사라지는 여인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크크크. 이런 곳에서…… 웬 떡이냐.’

슬금슬금 좌우를 살피면서 움직이는 사내의 얼굴에 음탕한 웃음이 나왔다.

‘어디를 가는지 따라가 볼까. 크큭.’

그는 기척을 죽이면서 여인의 뒤를 몰래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두 명의 인물.

고진유와 곡경인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놈이 맞는 것 같지 않소이까?”

“따라가 보도록 하죠. 저자가 화유색마라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분명 납치하고자 할 거외다.”

“알겠소이다.”

휘이이익!

두 사람의 신형이 여인의 뒤를 쫓는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크크크크…….’

화유색마는 여인을 따라가면서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하늘이 돕고 있었다.

여인은 점점 사람들이 없는 장소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뒤를 따라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주위엔 사람이 없어. 그럼 가볼까?’

그가 앞서간 여인을 따라잡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멈칫.

그의 걸음이 멈췄다.

“어…….”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앞에 있던 여인이 사라졌다.

그는 제자리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그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망할…… 귀신에게 홀렸나?”

화유색마는 투덜거리면서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섰다.

“……?”

한데 조금 전엔 보이지 않던 여인이 서 있었다.

다만 그녀의 옆에 한 명의 사내가 함께 있었다.

그는 재빨리 왼손으로 검을 잡았다.

‘좌수검이군.’

타악!

고진유는 그의 왼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챙그랑!

바닥에 검을 떨어졌다.

“너어언…… 누구…… 냐?”

“화유색마,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줄 사람이지.”

후웁.

화유색마는 재빨리 손목에서 백색 가루를 꺼낸 뒤 불었다.

휘이잉!

고진유가 그와 동시에 바람을 일으켰다. 얼굴로 날아오던 백색 가루가 오히려 맞바람을 맞으면서 화유색마의 얼굴에 쏟아졌다.

“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백색 가루는 산공독이었다.

“컥컥…….”

기침하며 계속해서 숨을 참았다.

“이거 웃긴 놈이군.”

퍼억!

이번에는 고진유의 발끝이 그의 복부에 닿았다.

“우욱……!”

오 성의 내력이지만 화유색마가 받은 충격은 수백 장의 절벽에서 떨어진 충격과도 같았다.

몸속의 장기들이 뒤틀리는 충격에 몸을 숙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한번 얼굴을 볼까?”

고진유는 그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피부가 벗겨지듯 얼굴이 뜯어지면서 본래의 얼굴이 나타났다.

“변용을 한 게 맞군. 검흔은…….”

곡경인이 다가온 뒤 그의 상의를 바로 잡아당겼다.

찌이이익!

상의가 찢어지면서 가슴이 드러났다.

“가슴에 상처 흔적도 있소이다.”

“이놈이 범인이 맞군요.”

화유색마는 고통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도망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뻐어억!

고진유는 그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에 화유색마는 정신이 빠져나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도망갈 생각만 하는군.”

“음, 지금 거세를 해야지 않겠소이까?”

“당연히 해야겠지요. 이자를 일으켜 세우세요.”

곡경인은 뒤에서 그의 어깨를 잡은 뒤 세웠다.

“어…… 어……?”

거세한다는 말에 화유색마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들이 자르겠다는 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이런…… 미…… 미친놈들아!!!!!”

“후, 맞소. 태어나서 사내의 거시기를 자를 줄은 몰랐네.”

스걱.

고진유는 말이 끝나는 동시에 사의검이 움직였다.

화유색마는 갑자기 아래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네놈이 저질렀던 짓의 인과응보다.”

휘이익.

또 한 번의 사의검이 움직이자 화유색마의 사지에서 피가 솟구쳤다.

“화유색마, 잘 들어라. 네놈은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도 없다.”

“으…… 으으으…….”

그는 정신이 없었다.

고진유는 그를 바닥에 내버려 두었다.

화유색마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될 것이었다.

“우린 갑시다.”

“그게 좋겠소이다.”

* * *

주화루에 도착한 세 사람.

화유색마를 유인했던 그녀는 이곳의 기녀였다.

“도움을 줘서 감사하오. 이건 도움을 준 대가이외다.”

고진유의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녀에게 한 장의 전표를 건네주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소녀가 공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지 않겠사옵니까.”

“아니지요. 사전에 약속했으니 당연히 지켜야지 않겠소.”

“소녀, 공자님의 뜻을 감사히 받겠사옵니다.”

그녀는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전표를 받았다.

“이제 나가봐도 좋소이다.”

“알겠사옵니다. 두 분께선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곡경인은 그녀가 나간 뒤 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우…… 난 이런 곳은 체질이 아니라서…….”

“마찬가지외다. 누군 체질인지 아시오?”

“체질도 아니라면서 여기 왜 왔소?”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 당연하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꽤 비싸 보여서 미안해서 그렇지.”

“신경 안 써도 되오. 본도가 계산하겠소이다.”

“허허, 그렇다면야…… 오랜만에 한잔 마셔볼까?”

곡경인은 술병을 먼저 들었다.

“맹주, 한잔 받으시오.”

“고맙소이다.”

술잔에서 향긋한 주향이 올라왔다.

“비싼 곳이라 술도 좋아 보이는구만.”

“본도도 한 잔 따르겠소이다.”

채앵.

나란히 술잔을 채운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유랑검협께서는 무림에 관심이 없소이까?”

“앞에 똑똑한 분이 있는데 굳이 멍청한 사람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소이까.”

“맞는 말 같습니다.”

“……음. 맹주, 역시 너무하는군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니오?”

“후후, 유랑검협 스스로 말을 하시는데 본도가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맹주는 소문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런 소리 많이 듣소이다.”

스윽.

고진유는 웃음을 보이며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맹주께서 손수 술을 권하니 혹시나 본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겠소이다.”

“괜찮소이다. 유랑검협께서는 지금처럼 의협심을 가지고 지내시면 됩니다.”

“…….”

“왜 말이 없으십니까?”

“맹주는 내가 싸움을 못할 것 같아서 그런 거요? 보기엔 그래도 남들만큼 할 수 있소.”

“아하하!”

고진유는 웃음이 나왔다.

마치 어린아이와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중원오협이신 유랑검협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고맙게 받아야지 않겠습니까.”

“난 비싸오.”

“공짜가 아니었습니까?”

“맹주를 보니 돈이 많은 것 같아서 혹시나 말해보는 것이오.”

“얼마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오늘처럼 거하게 술이나 사면 좋소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윽.

곡경인은 술잔을 들어 고진유와 술잔과 부딪혔다.

“우리 계약을 위하여.”

“위하여.”

* * *

화산파는 강했다.

수라마문은 화산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화산파의 선봉을 이끈 화산육협의 위력에 낙엽처럼 목이 떨어질 뿐이었다.

마교의 십이신마 괴혈마신은 화산절협 혁자영에게 목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수라마문의 문주 또한 화산군협 우종성에게 목숨을 잃었다.

두 명의 수장을 잃은 그들은 재빨리 물러났다.

화산에서 물러나는 수라마문을 보며 더는 의미 없는 싸움이라 여긴 화산파는 그대로 그들을 보내주었다.

화산파와의 대결에서 완벽하게 졌지만, 수라마문의 피해는 생각 외로 적었다.

수장이 죽은 이후 빠른 판단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전력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였던 것.

한데 수라마문이 물러나는 도중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종남파에서 수라마문을 뒤쫓은 것이다.

그들은 화산 근처에 일찍 도착했지만 바로 화산파로 올라오지 않았다.

수람마문에 의해 화산파의 피해가 심할 때까지 기다린 뒤 원군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수라마문이 그대로 돌아간다면 섬서성에서 화산파의 위명은 더욱더 커질 터.

그래서 종남파는 물러나는 수라마문의 뒤를 노리기로 했다.

화산파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그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 게 화근이었다.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만 알 뿐 정확히 알아보지 못한 종남파는 패잔병이라 여기며 공격했다.

수라마문의 문주와 마교의 십이신마가 죽었으니 쉽게 무너질 것이라 오산한 것이다.

종남파의 공격을 받은 수라마문은 광분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패배했다는 것에 울분이 찼던 그들이었다.

마도인들은 종남파의 도인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

종남파는 화산파와 달랐다.

수라마문의 부문주는 알았다.

자신들이 약한 게 아니라 화산파가 강했다.

수라마문은 화풀이를 종남파에게 하기 시작했다.

종남파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거의 절반이나 되는 종남파의 도인들을 잃었다.

수라마문과 종남파의 피해는 비슷했다. 계속해서 싸웠다가는 둘 중 한 곳은 멸문에 이를 정도로.

결국 두 문파는 큰 손실을 입은 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섬서성의 패자는 화산파였다.

* * *

‘어휴…… 이것도 욕심인가?’

고진유는 사천으로 들어서면서 섬서성의 소문을 들었다.

명성을 억지로 얻고자 하는 것 또한 탐욕이었다.

“화산파는 강하군요.”

“몰랐습니까?”

“맹주는 어찌 겸손이라는 게 없는 듯하외다.”

“예의를 차릴 사이도 아닌데 굳이 겸손까지 보일 필요가 없겠지요.”

“혹시 친한 사람들은 맹주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오?”

“본도와 계속 다니다 보면 더한 것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역시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니깐. 소문은 아무런 쓸모 짝도 없어.”

고진유는 구시렁거리는 그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는 헤어지지 않고 당분간 할 일이 없다면서 고진유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고진유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한 방울 국물조차 남김없이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맹주 곁에는 날파리들이 항상 따라 다니는 모양이구려. 치워야 하는 게 아니오?”

“늘 있는 일이라 가끔 잊고 있습니다.”

“흠, 그건 자신감이오?”

“그렇다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사천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진유는 주위에 따라 다니는 기를 느꼈다.

“혹시 저놈들이 극일천이라는 놈들이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음…… 대단한 놈들이긴 하구만. 적당한 거리에서 멈춘 채 미행하는 것을 알리지 않소?”

“내가 못 잡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요. 한 번 잡아볼까요?”

“같이 가겠소이다.”

“아닙니다. 여기에서 쉬고 계세요.”

“…….”

휘이익!

고진유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움직였다. 이미 눈앞에서 사라진 채 보이지 않았다.

“더럽게 빠르구만.”

화산도협에 대해 중원인들은 스스럼없이 천하제일인이라 이야기했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구나.”

자신도 중원오협의 일인이지만 겨우 약관을 넘은 그와 비교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대체 화산파에서는 저런 놈을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네. 당분간 무림은 화산파의 시대가 한동안 지속되겠군.”

* * *

사내의 눈이 흔들렸다.

조금 전만 해도 멀리 있던 사내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극일천 지문전 소속의 무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고진유는 갈색의 복장을 보며 어디에서 나왔는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지문전에서 왔군.”

“…….”

지문수각대주 신미중은 흠칫거렸다.

그동안 극일천과 많이 싸웠으니 어디에서 온 줄은 알겠지만, 자신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게 했소? 음…… 지문전이 외부로 나온 것을 보면 지문전주이자 극일십우 살화(殺火)가 폐관을 마친 모양이군.”

“다, 당신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소?”

“극일천만이 세상을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우욱.’

신미중은 온몸을 짓누르는 상대의 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지문수각대의 무인들은 대주가 당하는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이…… 자를…… 죽…… 여라.”

신미중은 힘겹게 명령을 내렸다.

파앗!

십여 명이 허공을 차며 고진유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휘이익.

그들은 합공을 펼치면서 고진유의 전신을 베기 위해 검기를 뻗어냈다.

“깔끔하군.”

지문수각대의 합공은 정석 그대로 신법의 결과 검의 결을 유지했다.

“좋긴 한데…… 조금만 간격이 틀어지면 어떻게 될까?”

고진유는 그들 중 한 방향으로 사의검을 밀어내며 합공의 간격을 비틀어냈다.

순간 그들이 펼친 합공의 공간이 불규칙하게 변하면서 움직임이 삐걱거렸다.

“이래서 무공은 실전을 자주 겪어야 하는 법이지.”

사의검에서 매화 잎이 휘날렸다.

그들 사이로 휘몰아치는 매화 잎에 정신을 빼앗겼다.

스걱.

매화 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앞을 보던 신미중의 손에서 붉은 선혈이 떨어져 내렸다.

‘젠…… 장……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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