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스윽.
고진유의 몸이 뒤에서 밀어내듯 밖으로 빠져나왔다.
거대한 석문이 눈앞에 보였다.
‘여기가 진정한 귀주금천지…….’
귀주금천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운무곡까지였다.
귀주금천지에 들어갈 방법은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 했었다.
‘앞에 가보면 알겠지.’
석문에 가까이 다가섰다.
우우우웅-
고진유의 신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용린호신기가 석문으로 빨려들어 갔다.
드르르륵-
용린호신기에 투명한 빛을 내기 시작한 석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어가 볼까?’
고진유는 열린 석문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다.
원주 태북천에게 미리 들은 귀주금천지 안은 단순했다.
본래대로라면 그곳에는 많은 황금과 보물들이 쌓여 있어야 했다.
크게 기대하고 왔다면 가슴이 무너질 광경이었다.
“후후, 그들이 나중에 이곳에 오면 실망하겠는데…….”
원주에게 사실을 듣지 못했다면 황당했을지도 몰랐다.
귀주금천지에 수많은 황금과 보물들은 이미 중원으로 빠져나간 지 오래되었다.
취미원이 암흑금상인 것을 아는 인물은 오직 두 명. 천주와 고진유밖에 없었다.
암흑금상의 상천주가 곧 극일가의 가주였기에.
태북천에게 받은 금상령패.
고진유는 손바닥 안에 든 황금신패를 만지작거렸다.
극일천은 취미원의 역할이 단순히 귀주금천지의 관리자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원주 태북천은 수십 년 동안 천주 황야의 명에 따라, 귀주금천지의 재력을 이용해 중원의 지하 상권을 장악하도록 명을 따랐다.
중원 이대상국인 중원상국과 천하상국조차 암흑금상의 자금을 이용할 정도였다.
만일 암흑금상에서 두 상국의 자금을 압박한다면 며칠 내로 망하게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힘을 지녔다.
천주 황야의 계획대로 원주는 귀주금천지의 모든 보물과 황금을 이용해서 중원의 지하 상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귀주금천지에서 보물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취미원이 곧 귀주금천지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 귀주금천지의 주인은 극일가의 가주인 고진유였다.
고진유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 원주 태북천에 물었다.
“극일천에서 귀주금천지가 텅 빈 것을 알면 원주께서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암흑금상은 이미 중원 전체에 퍼져 나간 지 오래되었지요. 그들조차 취미원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취미원이 사라진다고 한들 암흑금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암흑금상의 인물들도 상천주가 누구인지 모르며 어디가 암흑금상인지 알지 못했다.
오직 황금신패를 지닌 인물이 상천주이며 그가 있는 곳이 암흑금상이었다.
고진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주금천지에 올라왔다.
이곳에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을 마쳐야 했다.
석문 밖으로 나오면서 무량삼천지의 나머지 두 곳도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이른 시일 내에 필히 찾아가 봐야 할 곳들이군.’
고진유는 밖으로 나가 운무곡을 보았다.
여전히 짙은 운무에 가려 앞이 보아지 않았다.
“이젠 여기도 필요 없겠지.”
굳이 이곳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원래의 계획대로.
고진유는 진법을 해체하기로 했다.
귀주금천지가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게 될 것이었다.
* * *
암영검은 취미원에서 나온 뒤 운무산으로 다급하게 향했다.
하나 운무산에 올라온 뒤 그를 찾았지만, 고진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오지 않았단 말인가?’
그가 운무곡으로 들어갔을 리는 없었다.
그는 수하들과 함께 운무곡으로 서너 걸음 들어가 보았다.
“……!”
그리고 놀라서 물러났다.
수하들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두 목숨이 끊어졌다.
그 또한 내력이 약했다면 밖으로 물러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운무곡은 진법을 알지 못하면 절대금지이며 사지(死地)이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함께 안으로 들어갔던 수하들이 모두 죽고 그 혼자만 살았다.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암영검은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시진을 운무곡 앞에서 기다렸을 때였다.
스스스슥.
운무곡을 가로막았던 운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암영검은 운무곡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설마. 이 안에 들어갔다는 것인가?’
운무가 엷어지면서 운무곡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안에…….’
운무곡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
이십 대의 젊은 청년.
얼굴을 처음 보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화산도협…….”
암영검은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가 운무곡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니.
‘젠장…… 원주가 가르쳐 주었군.’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원주 태북천이 운무곡을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줬을 거라는 추측뿐.
다른 방법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고진유는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인물을 보았다.
“본도를 기다린 분이 암영검이었군요.”
“…….”
암영검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알고 있군.’
분명 처음 보는 사이였건만 그는 단번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모두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암영검께서 다시 올라와 본도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소이다.”
“화산도협. 어떻게 이곳을 알았지?”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지요. 여기가 그렇게 큰 비밀이었소이까?”
“이곳은 본 천의 인물들에게도 극비에 해당하는 장소이다. 중원인들이 알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오…… 그렇군요. 사실 본도가 오랫동안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이곳이 기억나더군요.”
“…….”
암영검의 표정이 굳어졌다.
상대에게 놀림을 당하는 것이 그는 익숙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얄미운 표정을 짓는 그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고진유의 무공은 그로서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당할 수 있었다.
화를 참으며 다시 물었다.
“그곳에 어떻게 들어갔지?”
“걸어서.”
“…….”
상대의 어이없는 대답에 참고 있었던 암영검의 노기가 폭발했다.
핏핏!
고진유의 목을 향해 암영검기가 불쑥 쏟아졌다.
“이런 장난은 통하는 사람들에게나 펼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까아앙!!
정확히 한 치 앞에서 암영검기가 호신강기에 의해 튕겨 나갔다.
‘흐음……!’
암영검의 눈이 커졌다.
호신기는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강막과는 다르다.
호신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암영검기를 막아낼 정도의 위력이라니.
‘내력을 끌어내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일 줄은…….’
비마신과 독안룡을 죽인 실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스르르릉-
고진유는 허리에서 사의검을 꺼내며 경고를 보냈다.
“똑바로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죽을 수 있소.”
“…….”
타앗!
고진유의 신형이 움직였다.
스걱스걱.
그가 지나가는 앞으로 날카롭게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의검의 검기에 암영검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잘려 나갔다.
‘전부 파악하고 있다……!’
스윽.
고진유는 그의 앞에 바짝 다가서며 멈춰 섰다.
‘이놈이……!! 나를 무시하고 있어.’
채애앵!!
또 한 번의 암영검기가 눈앞에 막혔다.
“방금 안 된다는 것을 봤을 텐데. 잘 안 믿는 편이군요.”
퍼억!
고진유는 어깨로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
“우욱.”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당했다.
하지만 그 또한 절대고수.
암영검은 몸이 뒤로 밀려 나가면서도 검기를 앞으로 쏟아냈다.
수십 개의 검기가 고진유의 전신을 찌르기 위해 송곳처럼 뻗어 나왔다.
스걱스걱.
사의검이 움직이면서 몸에 닿기 전에 검기를 잘라냈다.
파앗!
암영검은 공격이 실패하자 재정비를 위해 재빨리 신형을 뒤로 뺐다.
‘내 공격이 모두 보이는 것인가? 할 수 없군.’
고진유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완성시키지 못한 무공이라도 펼쳐야만 했다.
암영검은 허리에서 환단을 꺼낸 뒤 입에 재빨리 넣었다.
“혹시 복용한 것이 신무신단이오?”
“…….”
“대답을 안 하는 걸로 봐서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부작용이 심한 걸로 알고 있소만.”
고진유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 철갑을 열었더니 그 안에 신무신단의 제조법이 있더군요. 대충 살펴보니 완벽하더이다. 심지어 그걸로 제조한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부작용까지 치료할 수 있다고 적혀 있더군요.”
“네놈…… 그것을 어떻게 했지?”
“아, 불에 태웠소이다.”
“그걸 태웠다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 아닙니까? 그러니 세상에서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소.”
“미친…… 놈…….”
암영검의 몸에 점점 힘이 솟기 시작했다.
신무신단은 한번 복용하면 끊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따라왔다.
내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통의 강도도 강해졌다.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 완전한 신무신단이 필요했다.
암영검의 전신에서 붉은빛의 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화산도협…… 네놈을 죽일 것이다…….”
“그건 본도도 마찬가지외다.”
“건방지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두고 보마!”
핏핏핏핏-!!!
암영검의 신형에서 붉은 검기가 쏟아져 나갔다.
전과 다르게 붉은 검기가 빠르고 강맹하게 고진유의 신형을 완전히 둘러쌌다.
‘아무리 호신강기가 강하다고 해도 신무신단을 복용한 지금이라면……!’
채애애앵! 채애앵!!
고진유의 전신에 붉은 검기가 쏟아졌다.
“……!!”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믿을 수 없었다.
‘대체 호신강기가 어떻기에…….’
자신의 암영검은 금강불괴 또한 뚫을 수 있지 않았던가?
암영검의 검기가 밀려나며 고진유의 번쩍이는 호신강기가 보였다.
마치 비늘처럼 여러 겹으로 겹쳐 있는 모습.
‘설…… 마…….’
암영검의 눈이 커졌다.
얼마나 놀랐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순간 멍해졌다.
‘뭐지? 이건…… 대체…….’
고진유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용린호신기……?”
“맞소이다. 극일십우라 바로 알아보는군.”
“네가, 네가 어떻게 용린호신기를 지니고 있지?!”
“잘 모르는 모양이오? 용린호신기에 관해서 묻는 것을 보면.”
“……!!”
모를 리 없다.
용린호신기는 천주 황야의 가문.
극일가의 자손에게서 나타나는 가문의 특징이다.
“대체…… 넌 누구냐? 극일가와 어떤 관계지?”
“천주 황야가 본도의 아버지외다.”
핏!
순간, 고진유의 양손 검지에서 지공이 뻗어나가 정확히 암영검의 두 어깨를 관통했다.
“천룡광천섬지…… 까지…….”
극일천의 무공까지 완벽하게 펼치고 있었다.
천주 황야에게는 한 명의 공녀만이 있었다.
하지만 암영검에게는 천주의 아들이라 밝힌 화산도협의 존재가 진실인지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대체…… 왜…… 극일천과 싸우는 것이오?”
“당신들이 아버지를 배반했으니 극일천은 사라지는 게 맞지 않겠소?”
“……!”
암영검은 가슴이 철렁했다.
천주가 모를 것이라 여겼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극일천의 주요 인물들을 모두 비천이 장악했기에 그는 힘이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천주 황야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산도협이 왜 극일천과 싸우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천주가 힘이 없어 당신들을 가만히 보고 있다고 생각했소? 옛정이 있어 귀찮았을 뿐이지…… 극일천을 지우기 위해 본도를 극일천과 천하의 원수 사이로 만든 것이었소.”
“…….”
“한 명씩, 천천히 극일천의 모든 인물을 모두 죽여주겠소이다. 본도에게 급할 건 없소. 그분과 본도는 세상에서 극일천만 사라지면 될 뿐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요.”
암영검은 암담했다.
천주 황야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았다면 절대로 배반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이젠 극일천은 끝이었다.
천주 황야가 원한다면 세상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궁금한 게 없는 모양이군요. 그럼 잘 가시오.”
“…….”
스걱.
언제 뒤에서 검기가 날아왔는지 몰랐다.
툭.
암영검의 머리가 떨어졌다.
또 한 명의 극일십우가 목숨을 잃었다.
* * *
부들부들.
천문전주 나하중은 서신을 보면서 손이 떨렸다.
암영검까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귀주금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운무산을 오른 뒤 운무곡에 도착하자 예전과 달리 진법이 파훼되어 있었다.
운무곡으로 들어가자 귀주금천지의 석문이 나타났다.
하지만 석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후 귀주금천지를 관리하던 취미원을 찾았지만, 그곳 역시 건물만 남아 있을 뿐 소리 없이 사라진 뒤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귀주금천지가 텅 빈 것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
화산도협이 도착한 후 그 짧은 시간에 옮길 수 없었을 터.
‘예전부터 준비된 일이었어.’
극일천의 무량삼천지라 하지만, 사실 그곳들은 극일가의 삼신가에서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동안 극일천은 귀주금천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진 이상, 이제 극일천은 귀주금천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앞으로 자금력을 확보하는 게 피곤하겠군.”
만일을 대비해 준비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중원상국과 천하상국 중 한 곳을 얻고자 했지만 그 계획도 실패했다.
그것을 방해한 인물이 화산도협이었다.
‘망할 놈의 새끼…….’
그를 생각하자 욕이 튀어나왔다.
“휴우…….”
나하중은 호흡을 깊게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긴 수염을 쓰다듬었다.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해봐야겠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