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화
귀주금천지는 운무산 깊은 장소에 숨겨져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인물은 두 명.
장소가 어디인지 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직 극일천주와 귀주금천지의 당주 태북천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다.
운무산 아래에서 고진유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물들.
암영검의 연락을 받은 극일십우도 귀주금천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른 장소였다면 암영검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곳은 그만큼 중요했다.
그들은 다급히 운무산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만나야 할 화산도협은 나타나지 않았다.
암영검은 사흘째가 되는 날이 되자 짜증이 밀려 왔다.
‘귀주로 움직인 건…… 분명 여기에 오기 위해서이거늘.’
운무산으로 찾아올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휘이익!
그때, 그의 앞으로 인영이 내려섰다.
명을 수행하기 위해 귀양의 취미원으로 보낸 수하가 돌아왔다.
“암영검님을 뵙습니다.”
“어떻게 됐지?”
“화산도협이 그곳에 다녀간 듯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라.”
“취미원의 총관이란 자가 말하기를 한 청년이 찾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고 했습니다.”
‘화산도협이…… 그곳에 다녀갔다고?’
암영검은 다급히 물었다.
“지금 그는 어디에 있지?”
“취미원을 나간 뒤 사람들 사이에서 행적을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수하들이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놈이…… 그렇군. 여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취미원으로 간 것이었어.’
귀주에 나타났다고 하기에 귀주금천지밖에 생각을 못 한 자신의 실수가 틀림없었다.
‘이자는 극일천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운무산으로 오지 않고 취미원으로 갔다는 것은 극일천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했다.
‘귀양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겠군.’
그렇다면 더는 운무산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극일십우들에게 전해라. 그가 취미원에 나타난 뒤 사라졌다고 하면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하는 곧바로 물러났다.
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취미원까지 아는 놈이라면 목표는 귀주금천지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천문전주가 왜 지금까지 고역을 당했는지 알겠군. 상당히 똑똑한 인물을 적으로 두었어. 극일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을 알리기 위해서겠지.”
고진유가 귀주에 나타난 이유가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면 충분히 성공했다.
수하의 명을 전해 받았는지 운무산에 머물고 있던 극일십우들이 떠나가는 기척을 느껴졌다.
그도 운무산을 떠나야 했다.
“취미원이라…….”
극일십우라 하나 그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화산도협이 그곳에 가서 원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쯧, 가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극일천 무량삼천지의 주인은 극일천이 아니었다.
천주 황야가 주인이긴 하지만, 극일천의 천주로서가 아닌 극일가의 가주로서였으니까.
즉 취미원주 태북천은 극일천의 인물이 아니었다.
극일천의 인물들은 예전부터 극일가의 인물들을 상대하기 부담스러웠다.
천문전주 나하중도 그들을 대할 때 껄끄러운 인물들이라 했다.
그중 무량삼천지의 세 곳을 담당하는 인물들은 특히나 어려워했다.
그들은 극일가에 충성하는 가신들이기에, 극일천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천문전주는 특히 귀주금천지의 힘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중원 상권을 암중하에 쥐고 있는 그들의 족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극일가의 가주가 마음을 먹는다면 중원 어떠한 곳이라도 돈줄이 막혀 망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천문전주가 천주에게 눈치를 보는 이유가 극일가 무량삼천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래도 취미원에 가서 왜 찾아왔는지 물어나 보는 게 좋겠지 나 전주가 닦달하기 전에…….”
휘익.
암영검은 신형을 움직였다.
* * *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산 아래로 내려왔다.
‘후, 전부 떠났군.’
운무산을 지키고 있던 극일십우의 인물들이 떠난 뒤.
고진유는 천천히 운무산을 올랐다.
마치 태초의 산을 보는 듯한 절경이 좌우에 펼쳐졌다.
“남방의 산은 또 다른 느낌이야.”
운무산은 화산과 비교했을 때 부드러우면서도 보여줄 수 없는 듯한 비밀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고진유의 발걸음이 계곡 앞에 멈춰 섰다.
짙은 안개에 가려진 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운무곡이군.’
일 년 내내 안개가 그치지 않는다고 알려진 계곡 안에 귀주금천지가 있었다.
“그럼 가볼까?”
고진유의 신형은 거침이 없이 운무 속으로 몸을 날렸다.
‘진법과 실제 운무가 섞여 있다.’
운무곡의 실체에 대해 고진유는 잘 알았다.
스스스.
운무에 흐르는 살기가 고진유의 전신으로 돌아다니며 몸속 내부로 들어가고자 했다.
차르르르-
운무의 살기에서 전신을 보호하기 위해 용린호신기가 철갑의의 철비늘처럼 고진유의 전신을 감싸며 퍼져 나갔다.
‘이것이었군.’
일반 호신강기로는 절대로 막아낼 수 없는 살기를 용린호신기로 막아낼 수 있었다.
진법을 파훼하지 않는다면 극일가의 자손이 아니고서는 운무곡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용린호신기가 아니었다면 운무의 살기에 당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고진유는 운무에서 흐르는 살기를 그대로 맞으면서 걸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력이 강해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 이유가 또 있었군.’
운무곡의 길이는 잠시 살기를 참아내며 통과할 거리가 아니었다.
운무에 흐르는 살기를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운무에 가려 빨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각 동안 앞에 보이는 건 운무밖에 없었다.
‘……끝이다.’
고진유는 느낌으로 알았다.
‘앞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군.’
제자리에 멈춘 뒤 손을 앞으로 내밀자 손끝에서 물컹한 느낌이 느껴졌다.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장소인데.”
여기로 내려온 이유가 있었다.
‘이곳을 한바탕 소란스럽게 만들 수도 없겠군.’
고진유는 한 번 숨을 쉰 뒤 머뭇거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 * *
‘음…….’
암영검은 취미원 앞에 섰다.
그가 극일십우라 하더라도 취미원에 무작정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수하가 말하기를 정문에 들어서면 총관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는 조심해서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백의인이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소이까?”
“……!”
취미원 총관 차문양을 보며 흠칫거렸다.
분명 앞에서 나타난다는 말을 미리 들었지만 그가 정확히 어디에서 다가섰는지 보지 못했다.
‘고수군.’
극일십우인 자신과 비교해도 무력이 낮지 않을 듯싶었다.
“원주님을 뵙고자 하오.”
“흐음. 최근에 원주님을 찾는 분이 많군요.”
“본인은 극일천에서 왔습니다.”
“그대의 내력을 보니 극일십우가 아닌가 싶소이다만…….”
“…….”
암영검은 놀란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상대는 단번에 자신의 내력을 알아보았다. 그에 반해 그는 백의인의 내력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
“맞습니다. 본인은 암영검이라 하외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소이다.”
“극일십우 암영검이시군요. 본 원에서 총관을 맡고 있소이다. 차문양이라 하외다.”
“차 총관, 반갑소이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혹시 본인 외에 누가 원주님을 만났소이까?”
“극일천에서 오셨다면 누구를 찾는지 알겠군요. 얼마 전에 무림맹주인 화산도협께서 오셨다가 갔소이다.”
“…….”
암영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진유는 극일천의 원수다. 더군다나 그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화산도협을 왜…… 보내주었소이까?”
“전 원주님의 명을 따를 뿐이지요. 함부로 움직이지 않소이다.”
“…….”
암영검은 말없이 그를 보았다. 문득 극일가의 인물은 본 천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군요.”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제가 원주님께 안내를 하겠소이다.”
“고맙소이다.”
그는 한 걸음 뒤로 차문양을 따라 들어섰다.
곧바로 공남각으로 들어선 암영검은 취미원의 원주와 마주쳤다.
‘이자가 귀주금천지의 지사이군.’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만나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취미원은 극일천의 인물에게도 극비이기에 극일십우라 하더라도 쉽게 찾아올 수 없는 장소였다.
“원주님, 극일천에서 오신 암영검이란 분입니다.”
원주 태북천은 암영검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보이는 그의 시선에서 무형의 압박이 느껴졌다.
‘대체 어떠한 인물이기에 이런 위압감을 준단 말이지?’
지금까지 그에게 강렬한 기운을 준 인물은 천주 이외에 거의 없을 정도였다.
“본노가 이곳의 책임자라네. 우선 자리에 앉으시게나.”
“고맙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그를 보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뒤 차문양은 차를 준비했다.
“극일십우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이까?”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이곳에 화산도협이 다녀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렇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하더군.”
“그가 지나가는 길이라 했습니까?”
“원래는 운무산에 볼일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곳에 갈 수 없어 마을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찾아온 게 이곳이라 했네.”
‘음…… 우리가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군.’
암영검은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원주의 말이 거짓말이라도 따질 수 없었다.
원주에게 한 번 더 되물었다.
“그가 그렇게 말을 했습니까?”
“그렇다네. 음…… 혹시 그대는 본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아닙니다. 단지 운무산에 가지 않고 취미원에 온 게 너무 우연이라서 물어본 것입니다.”
“하긴…… 본노라도 그대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어. 허허.”
태북천은 가볍게 웃어넘겼다.
“혹시 그가 어디로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글쎄. 차를 한 잔 마신 뒤 잘 마셨다면서 가더군. 어디로 갈 것이라고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교를 정리할 것이라 말했다네.”
“마교를 정리한다고 했습니까?”
“요즘 중원 마도에서 난리를 친다고 하면서 아마도 그들 뒤에 마교가 있을 것이라 하더군.”
“…….”
“그가 어디에 갈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겠나?”
‘마교라…… 그럴 수도 있겠군.’
무림맹주의 신분이니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사천성으로 움직인 무림맹 무인들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고진유를 잡고자 한다면 사천성으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암영검은 취미원을 떠나기 전 물었다.
“원주님께서는 그가 무림맹주이자 화산도협인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맞네. 그렇게 신분을 밝히더군. 그래서 알았네.”
“분명 본 천의 원수인 사실을 알면서 보내주었습니까? 차 총관이나 문주님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 보입니다.”
“그대는 차 총관과 본노가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암영검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두 명이 동시에 그를 상대한다면 충분히 잡거나 죽일 수 있는 실력이 된다고 여겼다.
원주 태북천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음…… 극일십우인 그대가 차 총관이나 본노의 무공에 대해 칭찬을 해주니 기분이 좋군. 혹시 그대는 화산도협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구먼. 화산도협을 만나보면 알게 될 걸세. 왜 조용히 보내줘야 했는지.”
그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만나보면 알 것이라…….’
원주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화산도협은 두 사람의 무공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암영검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이 원주와 차문양을 상대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둘의 무공은 극일십우와 비교해 봤을 때 절대로 낮지 않았다.
화산도협과 싸워 이겨야 할 그의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참…… 어이가 없군. 내가……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낀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극일십우와 함께 싸우는 것이지만 그들은 자존심이 강했다.
누구도 자신과 함께 화산도협을 상대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원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할 말은 없는가?”
“…….”
암영검은 그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무엇인가?”
“귀주금천지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테고. 당연히 극일가의 가주이시네.”
“극일천과는 상관이 없습니까?”
“극일천이라…… 가주님께서 그곳의 천주이시기에 그대들이 연관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닌가?”
“원주님께서는 극일가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뜻도 같습니까? 아니면 혼자만의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그분의 생각이네. 본노가 어찌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나.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두 곳 또한 극일가의 세력일 뿐 극일천은 아니라네.”
“천주님께서는 극일천과 극일가가 다르다고 보시는 모양이시군요.”
“그건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극일천은 쉽게 말하면 연합체의 성격이지.”
“…….”
“가주란 한들 극일가의 재산은 개인의 물건이 아니라네. 가문의 재산이지. 극일가는 극일천이 아니지 않은가.”
암영검은 인상이 점점 굳어졌다.
그는 극일가의 사람이지 극일천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천주님께서 극일천에서 물러나신다면 귀주금천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몰라서 묻는가? 이곳은 늘 한결같이 극일가였네. 우린 가주를 모시는 가신일 뿐이지.”
암영검은 더는 궁금한 게 없었다.
화산도협을 풀어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들과는 연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윽.
암영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갈 텐가?”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에까지는 차 총관이 안내를 할 것이라네.”
* * *
암영검은 밖으로 나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의 행방은…….’
처음에는 사천성으로 간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듯했다.
운무산.
그가 처음부터 원한 곳이었다.
‘당한 것 같군.’
고진유는 운무산에 극일십우들이 집결할 거란 사실을 알았다.
귀주금천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문제는 그에게 나중 일이었다.
화산도협의 입장에서 분명한 건 그곳을 건드린다면 극일천이 반응한다는 것뿐.
그는 경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주금천지에 직접 타격을 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었다.
‘그곳에 간 게 틀림없어.’
휘이익!
암영검의 신형이 운무산으로 다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