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76화 (276/425)

276화

취미원의 원주 태북천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마주 앉은 고진유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닮았어. 오래전 그분의 젊은 모습과…….’

태북천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분에게는 돌아가신 주모님 사이에서 한 명의 공녀만이 있다고 들었다.

“노부를 만나고자 한 이유가 그대의 신분과 관계가 있소이까?”

“그렇습니다.”

“알겠네. 노부가 질문을 해도 되겠소?”

“편하실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는 질문을 바로 하지 않고 잠시 차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신 뒤 내려놓았다.

“……그대는 누구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하시겠지만 고진유라 합니다.”

태북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한 대로 무림맹주 화산도협이 그였다.

중원 무림에 이만한 내력을 지닌 젊은 무인은 그밖에 없을 터.

“그대는 정말로 화산파의 제자가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무림맹주인 그대가 본 원에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보오. 본 원은 무림문파도 아니지 않소이까. 굳이 나눈다면 작은 상가라고 할 수 있지요.”

“작은 상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원 최고의 상가이지요. 중원에서 지하상권의 돈줄의 쥐고 있는 암흑금상(暗黑金商)이지 않습니까.”

“……!”

태북천은 숨이 멎는 듯했다.

단 한 번도 무림에 알려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귀주금천지의 관리자이기도 하지요.”

“…….”

고진유가 밝힌 엄청난 사실에 그는 어떻게 대답할지 머릿속이 텅 빈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다시 질문했다.

“맹주께서는 귀주…… 금천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소이까?”

“극일천의 삼대금지인 무량삼천지가 아닙니까?”

환장한 노릇이 아닌가?

무림맹주가 극일천 삼대금지까지 알고 있었다.

이 내용은 극일천에서도 몇 명 외에는 모를 극비였다.

고진유에 대해서 그 또한 많은 소문을 들었다.

광동성에서 도둑이었던 소년이 무림맹주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중원 무림 역사상 신화적인 인물이 바로 화산도협 고진유였다.

태북천은 그를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극일천과의 연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대는 고아라고 들었네. 그것도 맞소이까?”

“……아닙니다.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나는 아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난 그것을 물은 건 아니지요.”

“알고 있습니다. 원주님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셔서 긴장을 풀어드리고자 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렇구만. ……고맙소이다.”

태북천은 몸에 힘을 풀고는 여유를 가지기 위해 아래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휴우…… 갑자기 무림맹주가 본 천의 무량삼천지를 말하니 긴장이 안 될 수 있겠는가.”

“이해합니다.”

“노부에게 알려줄 수 있겠소? 그대는 누구인가?”

“원주님께서 그 질문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대는 노부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소.”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닮은 사람이 그중 한 명이라도 없겠습니까?”

“그건 아니네. 그대가 말을 하면서 입꼬리가 살짝 움직이는 방향까지 그분과 닮았소. 이것도 우연이라 생각하지는 않소이다.”

“…….”

취미원에 찾아온 목적.

귀주금천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게 모든 사실을 밝혀야 했다.

그가 아니고서는 귀주금천지의 수많은 자금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극일천의 자금을 끊어 압박할 수 없다.

고진유는 무심하게 자신을 밝혔다.

“극일천주께서 아버지입니다.”

그의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아들이란 말인가?’

태북천은 두 귀로 똑바로 들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나…….’

고진유의 말을 믿었지만 아들이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우우우웅-

고진유는 양손을 모으며 진기를 일으켰다.

‘이건…… 용린(龍鱗)…….’

내력를 일으키자 양손에서 시작된 내기가 목을 지나 얼굴까지 비늘로 덮인 듯한 모습처럼 호신강기가 만들어졌다.

용린호신기(龍鱗護身氣)를 오랜만에 보았다.

‘천주 황야께서 가문의 피를 지닌 자만 가능한 강기라고 했던…….’

이것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화산도협은 그의 친자가 분명했다.

“황야께서는 주모께서 돌아가신 후 천주궁을 벗어난 적이 없었소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대가 알려줄 수 있겠소이까?”

“화유 누님과 본도는 쌍둥이이외다.”

“…….”

“본도는 십오 년 동안 천주궁에서 아무도 모르게 지냈소이다.”

“고아였다는 건…….”

“무림에 나오기 위해 망혼대법을 펼쳤지요.”

태북천은 더는 물어보지 않아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했다.

그는 가슴이 착잡했다.

지금까지 극일천은 화산도협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천주가 싸웠다는 뜻이다.

‘예전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허튼소리가 아니었어.’

“북천, 이젠 자네도 지겹지 아니한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

“저들을 보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보다 재미있게 살고 있다네. 우리가 너무 방대해지다 보니 이런 재미를 극일천의 인물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들도 세상의 재미를 느껴봤으면 좋겠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후후후. 앞으로 계획을 잘 세워봐야겠어.”

천주가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분은 한다면 하는 분이시지.’

어떤 일이라도.

주모께서 쌍둥이를 낳자 바로 계획이 떠올랐을 것이었다.

그는 고민이 되었다.

극일천의 원수가 천주의 아들이었다.

앞으로 극일천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주군의 뜻을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고진유는 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았다.

“무량삼천지는 극일천이 아닌 극일가(極一家) 소속이지 않습니까?”

“…….”

“아버지께서는 항상 극일천과 극일가는 다르다고 하셨소이다.”

태북천은 그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극일천과 극일가는 같으면서도 엄연히 달랐다.

천주와 가주는 같은 인물이었지만, 극일천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세력의 인물들이 모여들어 방대해진 연합의 성격을 띠었다.

“귀양금천지의 당주인 소신은 극일가의 사람이외다.”

“그럴 것이라 믿고 있었소이다.”

스윽.

고진유는 허리에서 극일가의 신패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고화유에게 전해 받은 신패.

신패의 앞면에 주(主)가 새겨 있었다.

태북천의 눈이 커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가주령패였다.

가주령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고진유가 극일가의 새로운 가주라는 뜻이었다.

“소신 태북천이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는 허리를 숙였다.

“반갑소. 정식으로 인사를 하겠소이다. 가주 고진유라 하외다.”

고진유도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 * *

묵룡마문의 목표는 소림사였다.

예전이었다면 하남성에 기반을 둔 사마의 문파들은 숨을 죽이며 지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림맹의 이름만으로 그것이 가능했으니까.

묵룡마문도 마찬가지. 그들 또한 하남성에서는 조용하게 지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정파 무림은 극일천이란 세력에 의해 힘이 약해졌다.

또한 묵룡마문이 마교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힘이 강해졌다.

하남성에는 무림의 구심점인 맹이 있다고 하나, 정신적인 구심점은 당연히 소림사였다.

천마의 뜻은 소림사를 치는 것.

마교에서 도착한 원군에는 십이신마의 신마승도 함께였다.

“우평 문주, 어떻게 할 것인가?”

“신마승님. 소림사를 기습할 것입니다.”

“가능하겠는가?”

“신마승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크크크. 소림사의 땡중들은 본좌에게 상대가 안 되지. 하지만 무림맹이 있다.”

“하루라면 충분히 소림사를 치고 빠질 수 있습니다. 무림맹에서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한들 하루 만에 원군을 보낼 수 없습니다.”

“하루라면 충분하지. 좋다. 그대의 뜻을 따르도록 하지.”

묵룡마문의 진격은 빨랐다.

숭산으로 향하는 그들의 움직임에선 그 어떠한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일 소림사에게 이긴다면 의미가 컸다.

묵룡마문은 무림맹의 전력이 사천성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았다.

더는 그들의 진격을 막아설 걸림돌이 없었다.

묵룡갑을 전신에 두른 묵룡마문주는 기마에 탄 채 마창을 한 손에 쥐고 숭산으로 달렸다.

다행히 숭산으로 움직이는 동안 무림맹의 전력이 사천성으로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크크크. 하늘이 본 문을 도와주는군!”

그는 더욱더 박차를 가하며 숭산으로 묵룡마문의 전 인원을 이끌고 달렸다.

그리고 삼 일 뒤.

숭산 아래에서 묵룡마문주는 선봉에 섰다.

* * *

“아미타불…….”

방장 공허는 산문으로 달려오는 묵룡마문의 마도인들을 보았다.

“걱정 마라. 별로 강해 보이지도 않는구만.”

빙긋.

공허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무림맹에서 무혼신녀와 인양이 도움을 주기 위해 도착했다.

단 두 사람밖에 오지 않았지만 소림사의 무승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의제권협 인양의 무공은 소림사도 인정했다.

무림맹주의 누님으로 알려진 무선여협의 무공 또한 강했다.

두두두두-

숭산이 울릴 정도로 달려오는 기세가 강했다.

“방장, 선봉은 우리가 맡을 테니 알아서 따라붙어라.”

그녀는 이미 묵룡마문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 것인지 인양과 이야기를 끝낸 뒤였다.

“인양아, 저기 맨 앞에서 오는 놈을 상대해라. 난 저기 뒤에서 온 마교놈을 맡도록 하지.”

“누님, 알겠습니다.”

“가자.”

파아앗-!

인양은 호충신법을 펼치며 산문으로 달려오는 묵룡마문주 우평을 향해 쏟아져 갔다.

그의 신법이 얼마나 빨랐는지 빛이 쏟아져 나가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공허는 소림사의 무승들을 향해 소리쳤다.

“소림사의 제자들은 마도인들을 몰아내도록 하라!!”

쉬이이이익-

묵룡마문주 우평은 전방에서 바람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인양은 바닥을 뛰어오른 뒤 우평의 얼굴을 향해 무릎을 세워 가격했다.

퍼어어억!

우평은 위험을 감지하며 턱을 치켜 올려 인양을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하지만 충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찌지지직-

뒤로 넘어질 듯 휘청거린 그는 마창을 받치며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당신을 잡을 사람.”

인양의 말투는 어느덧 고진유를 닮아가고 있었다.

“어린놈이 감히…….”

“싸우고 죽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오.”

타앗!

인양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 고진유의 말을 잊지 않고 항상 그대로 따랐다.

싸움에 있어 승패는 무공의 우위가 아니라 방심의 유무.

한 번 방심은 죽음이며 상대가 쓰러지거나 죽지 않은 이상 멈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호충신법을 펼치며 화산복호권을 뻗어내는 인양의 움직임에 그는 마창을 펼칠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

퍽퍽퍽!

그의 신체에서 유일하게 묵룡갑이 없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삼 초의 공격에 우평은 퉁퉁 부은 두 눈과 입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다.

묵룡갑은 그에게 전혀 의미가 없었다.

“이…… 새끼가…… 죽인다!!!”

우평은 마창을 머리 위에서 돌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거친 바람 소리가 들리며 상대를 찾았다.

하지만 인양은 한자리에 서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서지 못할까?”

휘익!

우평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인양이 움직인 방향을 찾고자 했지만 그의 시선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딜 보시오?”

시선 반대 방향에서 인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몸을 재빨리 돌렸다.

슈우우우욱.

인양의 일권이 이제 화산복호권의 초식을 따르지 않고 초월했다.

느리게.

가볍게.

간단하게.

너무나 쉽게 보이는 인양의 공격에도 우평은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받았다.

“커어어억.”

가슴에 맞은 충격에 속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아아-!!!”

소림사의 무승들이 함성을 질렀다.

의제권협 인양의 무용에 소림사 무승들의 사기는 승천했다.

묵룡마문의 마도인들을 상대로 금강십팔나한들과 사대금강의 활약은 대단했다.

콰아아아아-

그리고 무혼신녀의 상대인 신마승은 어이가 없었다.

‘망할……!’

마불기를 뚫고 들어오는 그녀의 내기에 온몸이 찢겨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받았다.

“누, 누…… 구……?”

“이제는 무선여협이라고 하더군.”

“당…… 신이……?”

“그냥 신강에 처박혀 있으면 될 것을 왜 자꾸 내려오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 그곳도 제법 살 만하지 않나?”

“크윽…… 정파 놈들은 모른다……! 본 신교는 강자존의 세상. 가만히 있다가는 늘 내분이…….”

“그렇군. 내분의 갈등을 주기적으로 외부에서 푼다라……. 왜 일정한 주기로 내려오는지 늘 궁금했는데.”

“…….”

“궁금한 것도 알았으니 그만 죽어라.”

무혼신녀는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점점 강해지는 그녀의 내기에 신마승의 인상이 굳어졌다.

“잘 가게나. 다음 생에는 조용히 살도록 하게.”

그녀는 손을 펴자 무형검이 솟구쳤다.

스걱.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그의 신마승의 목이 잘랐다.

신마승과 우평의 죽음은 두 문파 사이의 승패를 더욱 빠르게 결정지었다.

무혼신녀와 인양의 도움이 컸지만 소림사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기운이 꺾인 묵룡마문의 마도인들은 소림사의 무승들에게 밀려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묵룡마문은 산문조차 올라가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쳐들어온 사파에 의해 멸문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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