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적막감이 감도는 지하방.
햇빛이라고는 거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그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숨도 쉬지 않는 듯, 자신들의 손에 들린 투패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하나만…… 더…….’
중년 사내는 투패를 천천히 죄기 시작했다.
얇은 턱선과 가느다란 눈매 때문인지 그의 인상은 날카로워 보였다.
“아……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군.”
중년 사내는 마음에 안 든 표정을 지으며 구시렁거렸다.
그의 앞에 있던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하시오! 패가 안 좋으면 빨리 죽든지 하라고!”
“허허. 이 사람이…… 내가 얼마나 늦었다고 그러시오.”
스윽.
중년 사내는 앞에 있던 판돈을 전부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에라, 모르겠다! 따라올 테면 들어오시오.”
“…….”
중년 사내의 바로 옆에 있던 사내는 건너편에 앉은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무언가 사전에 약속한 듯한 눈빛.
“좋소이다. 나도 전부를 걸겠소. 다른 사람들은 어쩌시겠소?”
세 번째 인물은 좌우 눈치를 보면서 패를 내려놓았다.
“쯧, 난 죽겠소이다. 이런 난장판에 함께 들어갔다가는 망하게 마련이지.”
“나도 죽겠소.”
네 번째 인물도 패를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죽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두 명.
“크큭, 우리 둘만 남아 있구려.”
“진정한 승부를 겨루게 되었소이다.”
그는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중년 사내를 보았다.
“아니, 패가 안 좋으면 죽어야지 전부 걸면 어떻게 하오. 자자, 내 패부터 보여주겠소이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투패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와아…… 구땡이다…….”
주위 사람들은 숫자 구(九)가 적힌 두 장의 패를 내려다보며 함성을 질렀다.
“아하하!! 이건 전부 내 것이외다!”
그는 이미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아는 듯 팔을 뻗으며 돈을 거두고자 했다.
“잠깐만.”
중년 사내가 그의 앞으로 투패를 내려놓았다.
십(十)이 적힌 패가 두 장.
잠시 적막감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그럼 고맙게 잘 먹겠소이다.”
“……어…… 어떻게……?”
숫자 십이 적힌 투패 중 하나는 이미 동료가 죽으면서 내려놓았을 게 확실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십이 적혀 있는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눈빛을 교환했던 사내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그는 허탈한 눈빛으로 돈을 챙기는 중년 사내를 보았다.
“아이고, 이제 오늘은 그만하겠소이다. 패가 생각보다 안 들어오는구려.”
그는 중년 사내의 팔을 다급히 잡아당겼다.
“지금 돈을 따고 간다고?”
“내가 가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내 맘이지.”
채애앵!
그는 소매 안에서 단검을 꺼내며 중년 사내에게 겨누었다.
“판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못 가.”
“허어, 이걸 안 치우면 다칠 텐데…….”
“다치는 건 네놈이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중년 사내를 찌르고자 했다.
그리고,
스걱.
단검을 뻗은 그의 손이 잘리며 탁자 위로 떨어졌다.
어떻게 잘렸는지 앞에 있는 그들 모두 보지 못했다.
“아아아악!!”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투전판이 열리던 방 전체가 고요해졌다.
중년 사내는 천 위에 돈을 담으면서 한마디 했다.
“목이 잘리고 싶은 놈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시오.”
“…….”
그는 돈을 싼 천을 가지고 일어나며 돌아섰다.
등을 돌리는 순간 중년 사내의 뒤에서 도끼를 든 인물이 날아올랐다.
“이노오옴! 죽어라!!”
“……쯧, 본좌가 분명 죽는다고 했을 텐데.”
파아아앗!!
도끼 든 인물의 몸이 공중에서 사지와 목이 잘린 채 떨어졌다.
그 순간 투전판의 모든 사람은 중년 사내의 살기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덜컹.
그때, 투전판의 입구가 열리며 수십 명이 쏟아져 내려왔다.
“어떤 놈이 사고를 치는 거야?! 모두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철봉을 든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주위를 노려보다, 앞으로 걸어 나오는 중년 사내를 보며 소리쳤다.
“이 새끼가…… 누가 움직이라고 했어. 죽고 싶어?”
“아이고, 돈을 따도 제대로 가지고 나갈 수도 없군.”
“망할 새끼가……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군.”
그는 철봉을 중년 사내의 어깨를 향해 내리쳤다.
철봉을 든 사내의 손이 공중에 멈췄다.
툭.
그리고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아악……!!”
잘린 사내의 목을 보며 옆에 있던 동료들이 비명을 질렀다.
팟팟팟팟!!
이번에는 입구 앞에 있던 사내들의 신형에서 피가 솟구쳤다.
“으으…….”
피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투전판은 혈향이 진동했다.
“어이, 비켜라.”
입구 근처에 있던 사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 못 하고 바닥을 기어 입구에서 떨어졌다.
“잘 놀다가 간다. 시간 나면 다시 보자고.”
중년 사내는 천에 싼 돈을 공중으로 던졌다.
“알아서들 가져.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후두두두둑.
돈과 전표들이 투전판으로 흩어지면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한 명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우당탕!
투전판은 단숨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으으으……!”
중년 사내는 밖으로 나오며 두 팔을 위로 뻗었다.
“재밌게 잘 놀았다.”
휘이익!
그의 앞으로 인영이 내려섰다.
“암영검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지?”
“비마신님께서 주검으로 발견되셨습니다.”
“…….”
암영검의 전신에서 투명한 검기가 솟아났다.
인영은 숨을 멈추며 고개를 숙였다.
“누구 짓인데?”
“주검에 매화 향이…… 맺혀 있었다고 합니다.”
“매화 향이라면 화산도협의 짓이라는 건가?”
“그분께서는 화산도협이 아니라 어떤 청년을 따라가셨다고 합니다.”
“…….”
암영검은 이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챘다.
‘그렇군. 화산도협, 이 녀석은 변용한 뒤 움직이고 있어. 본 천에서 자신을 찾는 줄 알고 있군.’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은 게 있었다.
비마신 정도라면 상대가 변용한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화산도협을 그냥 따라갔다면 변용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게 틀림없었다.
‘곤란하겠어. 비마신이 몰랐다면 나 또한 알지 못해.’
이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를 찾아야 할 극일천의 입장에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비마신 님이 죽은 장소를 중심으로 조사 중입니다.”
“아 참. 그는 어디에서 죽었다고 했지?”
“귀양의 인근입니다.”
“귀양?!”
암영검은 순간 큰 소리가 나왔다.
귀양에는 극일천의 몇몇 인물 외에는 모르는 장소가 있다.
‘그가…… 설마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건 아니겠지?’
그는 걱정이 되었다. 화산도협이 그 사실을 알고 움직인 것이라면 극일천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녀석을 빨리 만나서 죽이지 않으면 힘들어지겠는걸.’
수하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귀양으로 당장 움직여야겠군. 그리고 지금 극일십우에게 귀양으로 오도록 최대한 빨리 연락을 띄워라.”
“존명.”
수하는 허리를 숙인 뒤 빠르게 사라졌다.
휘익.
그 뒤를 이어 암영검이 곧바로 움직였다.
* * *
남궁세가의 진군은 거침이 없었다.
방산의 산문을 뚫고 마곡의 본진을 향해 진격했다.
남궁세가의 선두는 창천신검 남궁무명.
남궁무적검 남궁허와 남궁창천검 남궁도가 그의 뒤를 받쳤다.
마곡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남궁무명의 모습에 두 사람은 희열을 느꼈다.
‘그는 중원의 새로운 검황이 될 것이다.’
창천황검 아래 마곡의 마도인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타아앗!
남궁무명의 신형이 날아오르며 창천황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마곡의 정문을 향해 창천황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연이어 펼친 창천황신공의 내력에 거대한 폭음이 터지면서 마곡의 단단한 정문 한쪽 부분이 부서졌다.
“남궁세가의 제자들은 곧바로 마곡으로 쳐들어간다.”
남궁무명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언제나 천하제일문을 목표로 하는 남궁세가다.
겨우 마곡 하나를 두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남궁허도 마찬가지.
그 또한 마곡의 정문을 향해 달리면서 소리쳤다.
“제자들은 창천신검을 따르라!”
“와아아아아-!!!”
* * *
마곡주 후규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궁세가가 산문을 뚫고 본진까지 올라온 건 순식간이었다.
‘젠장…… 남궁세가를 너무 무시했어.’
그가 오해한 건 화산도협 때문이기도 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화산도협에게 당한 것을 보며 예전과 달리 많이 약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와 직접 부딪히면서 알게 되었다.
남궁세가가 약해진 게 아니라 화산도협이 강한 것이었다.
“공약 님…….”
그가 믿을 건 마교에서 나온 혈폭신마과 마교도였다.
“재미있겠어. 그렇지 않아도 남궁세가의 검과 상대해 보고 싶었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혈폭신마 공약은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 * *
남궁무명은 마기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인물을 보았다.
‘십이신마…….’
혈사천주 조탁을 죽인 마교의 절대고수였다.
“모두 멈춰라!!”
우우우웅-
그의 마령후가 정문을 향해 퍼져 나갔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마기가 휩싸이자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저자의 내력이 이 정도일 줄은…….’
남궁허는 내력을 올려 마기에 대항했지만 그의 뒤로 수하들이 막아내기에 힘겨워 보였다.
그때였다.
차아아앙-!!
검신의 맑은 소리가 남궁세가 진영으로 퍼져 나갔다.
창천황검에서 울리는 검명.
남궁무명은 그를 보며 소리쳤다.
“그대가 혈폭신마인가?”
“크크크. 창천신검이군. 상당히 젊은 친구인데 남궁세가에 미안하게 됐어.”
“미안할 이유가 있소이까?”
“이제 막 꽃을 피우려고 하는데 내가 잘라 버리는 것 같아서 말일세.”
“그렇군요.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소이다.”
“크크크. 그런가? 우선 가볍게 시작해 볼까?”
화라라라락!
그의 손에서 불기둥이 솟구치면서 남궁무명을 향해 떨어졌다.
혈폭신마가 화염마장을 펼치는 동시에 마교도들도 남궁세가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남궁무명은 세상을 녹일 듯한 불기둥을 노려보았다.
‘충분히 벨 수 있다.’
스으으윽.
머리 위로 천황검을 들어 올렸다.
창천(蒼天)은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천제이며,
무애(無涯)는 넓고 멀어서 끝이 없도다.
창천황검이 지나가는 뒤로 불기둥이 사라졌다.
“창천무애검법인가? 좋군. 마음에 들었어.”
혈폭신마는 전력을 다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이미 두 번째 초식을 준비했다.
십이 성의 내력으로 끌어 올리며 끝을 내고자 했다.
“이번에는 광마염장이다.”
혈사천주 조탁의 목숨을 끊어낸 한 수.
그의 손을 떠난 불덩어리가 다시금 남궁무명에게 쏟아냈다.
‘이자는 이번 한 수로 끝을 내고자 하는군.’
남궁무명은 피하지 않았다.
창천황신공이 스스로 움직였다.
호신강기를 일으키자 남궁무명의 전신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휘익!!
남궁무명은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창천무애검법을 펼치며 앞으로 다가섰다.
두 개의 내기가 부딪혔다.
콰아아앙-!!
광마염장의 폭음이 터지면서 주위에 폭풍과 함께 먼지가 솟구쳤다.
번쩍.
그와 동시에 먼지 속에서 뻗어 나온 황금빛이 세상 끝까지 길게 이어졌다.
“…….”
혈폭신마 공약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올리고 싶어도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왜……?’
그는 의문이 들었다.
털썩.
그대로 몸이 주저앉았다. 일어나고자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커어억.”
그는 가슴이 막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혈폭신마 공약의 죽음은 마곡과 마교도에게 충격적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이겼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
마교도들은 뒤로 밀려가면서 마곡의 마도인과 함께 쓰러져 갔다.
* * *
안휘성의 소문은 중원으로 퍼져 나갔다.
모여 있는 사람들마다 남궁세가와 마곡의 결전에 대해 떠들었다.
‘무명 형님이 제대로 해냈군.’
남궁세가는 역시 강했다.
마교의 도움을 받은 마곡을 완벽하게 물리쳤다.
‘천문전주가 원하는 게 이것이겠지?’
마도와 정파의 싸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것이었다.
어차피 무인의 숙명은 죽음이었다.
언젠가는 터질 일.
무인에게 죽는 날은 빠르거나 늦을 뿐이었다.
안타깝지만 아쉬워할 마음은 없다.
이번 기회에 마도를 정리할 수 있다면 당분간 정파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저벅저벅.
호숫가에 앉아 있는 고진유의 곁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흐음…… 나를 찾는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