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선녀기검 관효정은 내상을 입었다.
거구 사내가 검 끝을 잡은 채 가볍게 밀어냈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거구 사내의 내력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
거구 사내가 살을 출렁거리며 다가왔다.
“크큭, 선녀기검이라 해서 대단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당신…… 누구지?”
그녀는 싸울 때 겉모습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방심한 것도 있었다.
그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절대고수가 확실했다.
“사부님…….”
효교는 그녀를 돕기 위해 옆으로 다가섰다.
“둘이서 해보겠다고? 얼마든지 해봐.”
한 걸음씩 다가서는 그의 모습에서 위압감이 쏟아졌다.
그녀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내력을 끌어 올렸다.
‘아직도…….’
하지만 관효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전히 내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상황으로는 그와 싸워 이길 수 없었다.
“효교야, 물러나라.”
“사부님!”
효교는 사부를 버리고 물러날 수 없었다.
‘동귀어진을…….’
사부를 구할 방법은 그와 함께 죽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녀는 단전의 원기까지 끌어 올렸다. 한 번의 기회에 끝내야만 했다.
거구 사내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크크크, 그 정도 내력으로 본좌와 동귀어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하는 짓이 귀엽군.”
거구 사내는 두 팔을 편 채로 멈췄다.
“자아, 자신 있으면 맘대로 해보든지.”
그녀를 보며 비웃는 그때,
휘이익!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인영이 거구 사내의 앞에 다가섰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방심은 금물이지.”
퍼어어어엉-!!
거대한 타격음이 그의 배에서 울렸다.
“커어어억.”
거구 사내는 그 자리에서 삼장 뒤로 밀리며 쓰러졌다.
“공자님!”
효교는 다시 한번 구해준 그의 등을 보았다.
고진유는 무심한 표정으로 내상을 입은 관효정에게 다가섰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알…… 겠네.”
스윽.
고진유는 그녀의 등에 손을 올린 뒤 흐트러진 내상을 진정시켰다.
아주 잠깐 기절했던 거구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듯했다.
“이노오오오옴!!”
“…….”
고진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의 내상을 치료했다.
부우우웅.
거구 사내가 펼치는 신법은 빨랐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앞으로 다가섰다.
두두두두-!!
고진유를 쏟아진 일장.
하지만 고진유는 옆으로 돌아선 채 한 손으로 날아오는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대단하군.’
관효정은 치료를 하면서 상대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소문의 용모와는 다르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듯했다.
‘역시…… 무림맹주가 맞구나.’
“이제 괜찮을 겁니다.”
“고맙소이다.”
관효정은 뒤로 물러났다.
‘이놈은 누구지?’
거구 사내는 믿기지 않았다.
그가 잠시 멈칫거리던 찰나.
슈우우욱-
고진유가 빠르게 움직이며 거구 사내의 복부를 향해 일장을 펼쳤다.
철썩.
가볍게 치는 듯한 동작처럼 보였지만 출렁거리는 뱃살이 움푹 파였다.
“우우욱.”
몸속 내부의 장기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속이 울렁거렸다.
“대단한걸. 이 정도의 충격은 보통 사람이라면 죽고도 남았을 텐데…… 살이 두꺼운 이유가 있군.”
거구 사내는 충격의 여파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넌…… 누구냐?”
“이거 실망이군요. 난 당신을 아는데 당신은 나를 모르다니.”
“나를 안다고?”
“비마신(飛馬身).”
“…….”
거구 사내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거리며 흠칫거렸다.
극일십우의 일인.
비마신은 중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인물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상대가 극일천의 인물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고진유는 변환공으로 얼굴의 골격을 바꾼 상태였다.
그는 당연히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대체…… 넌 누구지?”
“내가 누군지 안다면 바뀌는 것이라도 있소? 어차피 당신은 오늘 세상을 하직할 텐데.”
“……!!”
비마신의 터져 나갈 듯한 턱살이 흔들거렸다.
다른 인물이라면 대소를 터뜨리며 웃었겠지만 눈앞에 선 사내는 달랐다.
그는 화산도협의 행적을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귀주까지 내려왔다.
이곳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강한 무인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화산도협도 문제지만 이놈도 살려두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고진유와 앞에 선 청년을 다른 인물이라 착각했다.
“혹시…… 무구천의 인물인가?”
“그 머리로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무구천밖에 없소?”
‘망할…… 무구천도 아니라고?’
그는 점점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자신을 안다는 건 극일천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 확실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소이다. 내가 누구인지 많이 궁금한가 보군.”
“…….”
“좋소. 내가 누군지 가르쳐 주겠소. 다만 여기는 보는 눈이 많으니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데, 따라오겠소? 혹시 죽고 싶지 않다면 여기에 있어도 좋소이다.”
파르르.
그의 손이 떨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대에게 무시당했다.
“네놈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고 보겠다. 앞장서라.”
“따라오시오.”
고진유가 먼저 움직이자 그 뒤를 비마신이 따랐다.
두 사람이 사라진 뒤 적막감이 흘렸다.
“사부님, 괜찮으신가요?”
“다행히 그가 도와줘서 괜찮구나.”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무림맹주보다 더 무공이 강한 것 같아요.”
“…….”
관효정은 얼굴이 붉어진 그녀를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이 아이는 그가 무림맹주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인줄 알고 있어.’
이미 무림맹주에게는 다른 여인들이 있음을 제자도 알고 있었다.
‘큰일이군.’
* * *
비마신은 앞서 달리는 사내를 따라잡고자 했다.
하지만 그와의 거리가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았다.
‘신법까지…….’
상대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뚝.
고진유의 걸음이 멈췄다.
산속에 들어온 뒤 충분히 싸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여기면 충분하겠어.’
주위에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고진유는 편안히 인상을 쓴 채로 달려오는 비마신을 기다렸다.
그는 오 장 거리에 정확히 멈춰 섰다.
“이제 아무도 없잖아? 네놈이 누구인지 밝혀.”
“내가 누구인지 정말로 알고 싶은 게요?”
“약속을 지켜라. 네가 원하는 대로 이곳까지 왔다.”
“알겠소이다. 당연히 약속인데 지켜야지 않겠소이까. 본래의 얼굴을 보여주겠소이다.”
“변용을 했다는 것이냐?”
“변용은 아니고, 천면변환공이라는 것이오.”
비마신은 또 한 번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본 천의 무공이거늘…… 어떻게 네놈이 무공을 익혔지?”
“글쎄요. 이것도 궁금한 모양이군요.”
스스스스스-
고진유의 얼굴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고진유의 본 얼굴을 자세히 본 그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자신이 만나야 할 인물과 똑같이 생긴 청년.
“네놈은…… 화산도협.”
“맞소. 화산도협이 본도이외다.”
“…….”
비마신은 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면변환공은 극일천의 무공이었다.
화산도협이 어떻게 극일천의 무공을 안단 말인가?
‘설마 극일천에 또 다른 배신자가 있다는 것인가?’
무구천 외에 극일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물은 없었다.
“비마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소. 죽으면 그만이지 않소이까.”
“네놈이 본좌를 죽일 수 있다고 보는가?”
“극일십우의 무공이 대단한 건 알고 있소. 싸운다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한데 당신에게는 질 것 같지 않군요.”
고진유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목소리에, 비마신의 이마에 주름이 짙어졌다.
‘저자는 화산도협이다. 도발에 당하면 위험해.’
그는 내력을 점점 끌어 올렸다.
“크크…… 극일십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본좌의 무공에 대해서도 잘 알겠군? 네놈을 잡아서 정체를 밝혀내겠다.”
비마신의 살이 출렁거리며 점점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천강무체공(天鋼武體功).”
비마신이 익힌 극강의 외공.
출렁거리는 살들은 금강불괴라는 신체들보다 강하다고 알려졌다.
도검불침의 경지는 이미 그에겐 의미 없는 말이었다.
그의 거대한 살은 금강불괴의 유일한 약점인 외부를 관통하여 내부에 전해지는 충격을 완화해 주었다.
“칫, 모르는 게 없군.”
“칭찬 감사하오. 본도가 조금 똑똑한 편이라서.”
“화산도협, 네놈은 본좌가 잡을 것이다.”
그들에겐 말이 필요 없었다.
파아앗!!
비마신이 먼저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이 공격이 성공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신형은 빨랐다.
하지만,
휘익!
고진유의 움직임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고진유는 비마신의 공격을 벗어나며 옆으로 돌아섰다.
퍼어어억!
둔탁한 소리가 비마신의 옆구리에서 울렸다.
“하, 약하군. 이 정도가 전부라면 실망인데……!”
“그건 맛보기였소.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해야 할 게 아니오.”
고진유는 사의검을 잡았다.
스르르르응-
자줏빛 검신이 빛을 내며 검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 검으로 본좌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비마신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세상에서 검으로 자신의 몸을 벨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지금까지 했던 그대로 싸우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있을 텐데. 아쉽군.”
“말이 많소이다. 본도가 두려운가 보지?”
“…….”
비마신의 웃음이 멈췄다.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했다.
‘저 면상…… 왠지 기분이 나쁜데.’
삐쭉.
순간 그의 목덜미를 타고 머리 위로 소름이 끼쳐 올라왔다.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알고 있는 최강의 사내.
천주 황야.
‘이…… 놈은 뭐지? 왜 그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거야?’
의문이 들면서 점점 깊은 의심으로 변해 갔다.
‘극일천의 무공과 자신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어.’
하지만 앞에 선 청년은 그가 아니었다.
‘그의 제자라는 말인가?’
비마신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게 제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천주궁에는 오직 그의 딸인 천화공녀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작해 볼까요?”
팟!
사의검의 검기가 퍼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매화가 피어올랐다.
매화 향기가 사방에 진동했다.
“화산파의 무공으로 본좌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무공에 단정을 짓는 게 어디 있소. 얼마만큼 똑바로 펼치느냐에 달려 있거늘.”
휘리리릭!
매화 잎이 그의 머리 위에서 휘돌며 아래로 떨어졌다.
채애앵!!
비마신의 어깨 위에 사의검이 빠르게 떨어졌다.
강한 쇳소리가 나면서 사의검이 튕겨 올라갔다.
“이 정도의 강도로는 베지 못하는군요. 좀 더 빠르고 강하게 베어볼까요?”
“……!”
공격한 뒤 검이 튕겨 나가면 당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실험하는 듯 즐거워했다.
“화산도협, 받아라……!!”
비마신의 공격은 단순했다.
단단한 육체를 지닌 탓에 상대를 공격하는 초식은 섬세하지 못했다.
그가 중점적으로 익힌 것은 신법.
하지만 비마신은 운이 없었다.
상대의 신법은 중원 최고라 할 수 있었으니까.
비마신의 신법은 고진유의 신형을 여전히 따라잡지 못했다.
휙, 휙!
그의 공격은 계속해서 빗나갔다.
상대를 맞히지 못하면 이길 수 없었다.
스걱.
그의 허리가 날카로운 검기에 베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려 허리를 보려고 했지만 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내가…… 베였어?’
따끔거리는 고통이 전해졌다.
천강무체공을 익힌 뒤 처음 느끼는 고통이었다.
“천강무체공도 무적은 아니외다. 힘들긴 하지만 베어지기는 하는군. 이것조차 안 된다면 정말로 도망갈 뻔했소.”
너스레를 떠는 고진유를 보는 비마신의 눈에 살기가 진해졌다.
우우우웅-!!
그는 몸을 더욱더 부풀리며 양손에 내기를 모았다.
외공을 익혔다고 해서 그에게 내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외공 수련을 많이 했을 뿐 내공 또한 당연히 수련했다.
슈우우우욱!!
천용묵신장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거대한 그의 신장에서 솟아나는 내력의 장법이 고진유를 향해 날아왔다.
‘지금이다.’
고진유는 이때를 기다렸다.
비마신이 내력을 펼치는 순간, 단단했던 천강무체공의 외공벽에 빈틈이 생겼다.
샤르르르-
비마신의 눈 앞으로 매화 잎들이 휘날렸다.
“겨우 눈속임으로 피하고자 하느냐?”
비마신은 코웃음을 치면서 흩날리는 매화 잎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녹였다.
‘잡았다. 이노옴!!’
매화 뒤로 숨어 있던 고진유의 찾아내며 천용묵신장을 쏟아냈다.
한데 단번에 얼음처럼 녹을 것이라 여겼던 고진유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허상……!’
“끝이외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파앗!!
고진유은 사의검을 뻗으며 그의 심장을 찔렀다.
“……이놈…… 내가 내력을 펼치도록…… 해서…….”
“천강무체공의 약점이지. 내력을 펼칠 때 완벽했던 외공이 미세하게 풀리지 않소이까.”
“그걸…… 어떻게……?”
“그건 저승에 가서 물어보시고.”
쑤우욱.
고진유는 사의검에 힘을 주며 심장 끝까지 밀어 넣었다.
“커어억……!”
비마신은 고통의 신음을 내며 숨이 끊어졌다.
고진유는 숨을 내쉬었다.
“힘들군. 비마신 이자는 극일십우 중에서도 아래에 있는 자인데…….”
앞으로 여덟 명의 극일십우가 남아 있었다.
“좀 더 완벽하게 내공을 익히는 수밖에 없겠어.”
고진유는 사의검을 검집에 넣은 뒤 그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