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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72화 (272/425)

272화

천문전으로 들어서는 인영.

예전과 달리 언제부터인가 천문전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 복도를 걷는 수곡자의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전주…….’

열린 창문 사이로 백색 수염의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수곡자는 복도를 돌아 문 앞에 섰다.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전주님, 수곡자입니다.”

“들어오게.”

수곡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 손에 들고 있던 전서를 그의 앞으로 공손하게 내려놓았다.

수곡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신강에서…… 온 전서입니다.”

“자네 목소리를 들으니 좋은 소식은 아니군.”

“송구하옵니다.”

나하중은 전서를 한번 노려본 뒤 펼쳐 보았다.

“허허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극일천의 인물이 보낸 전서가 아니었다.

보낸 인물은 마교의 수장 천마였다.

“천마. 이놈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나하중의 눈동자에서 강한 살기가 뻗어나왔다.

손에 든 전서는 이미 화염에 휩쓸려 먼지로 흩어졌다.

“좋은 약을 보내주어 내공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적혀 있군. 그리고 무림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잘 만들어주어서 고맙다?”

“…….”

“신무신단을 마기로 해독하는 게 가능할 줄은 몰랐군.”

중독되지 않았다면 극일천에서 마교를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수곡자는 걱정이 되었다.

통제할 수 없는 마교는 앞으로 상당히 귀찮은 일이 될 것이었다.

무림맹은 물론 마교와도 중원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교에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됐네. 귀찮을 뿐이지. 마교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건 없지 않은가? 우리 말을 듣지 않더라도 중원 무림에 나오면 결과는 똑같아. 우린 그저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것이네. 어떻게 놀지 잠시 지켜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곡자는 궁금한 게 있었다.

“물어볼 게 있는가?”

“무림맹주는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극일십우에서 처리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자네는 올라오는 소식만을 기다리면 되네. 그들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극일천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는 여전히 무림맹주 고진유였다.

그들이 중원으로 내려온다고 해도, 나하중이 한 말 그대로 마교는 귀찮을 뿐이었다.

“수곡자, 자네가 할 일이 있네.”

“무엇이옵니까?”

“십전회의를 해야겠어. 각 전에 연락을 하게.”

“곧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극일천무신지(極一天武神地)를 십전회의에서 의논할 걸세. 아마 회의가 끝나는 대로 중원 무림에 공표할 것이라 보면 되네.”

“알겠습니다.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게.”

수곡자는 더는 물을 게 없는지 물러났다.

십전에 연락을 띄워야 했다.

거의 몇십 년 만에 하는 십전회의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천문전주가 십전을 모두 한자리에 모으는 이유는 극일천무신지의 공표였다.

공식적으로 극일천이 중원 무림에 당당하게 문파로서 나서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수백 년 동안 암묵적으로 무림을 지배했던 극일천이 세상 밖으로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지배하겠다는 뜻.

수곡자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천주님께서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 * *

천영령은 천주궁 앞에 도착했다.

실개천을 넘어 붉은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운무가 걷히자 그의 앞으로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건장한 체격을 지닌 중년 사내.

긴 세월이 지났지만 천주의 모습은 늘 그대로였다.

천영령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황야를 뵙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왔는가?”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급한 일인가 보군. 무엇인가?”

“천문전주가 십전회의를 연다고 합니다.”

“용건은 무엇이라 하던가?”

“극일천무신지를 열겠다고 합니다.”

“후후후. 정말로 야망이 큰 인물이군.”

천주는 오랫동안 그를 보아왔다.

그는 천문전주에 오른 뒤 본격적으로 야망을 펼칠 준비를 했다.

각 문파에 새롭게 간자들을 심어두고 무림 최고의 인물이 되기 위해 준비했다.

“언젠가는 크게 일어날 인물이지.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지낼 인물이 절대로 아니지 않은가.”

“그는 천주님의 권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상관없네. 내가 원하는 게 그것이니까.”

“…….”

“자네도 무림인이라면 천문전주처럼 되고 싶지 않은가?”

“아닙니다. 소신은 그를 닮고 싶지 않습니다.”

천영령은 바로 대답했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무림 최고의 인물이 되고자 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에게 세상의 전부는 천주 황야였다.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 자네는 닮고 싶은 사람을 닮아가도록 해보게. 그것이 진정한 재미가 되지 않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천영령은 머뭇거리다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제가…… 닮고 싶은 분은…… 천주님이십니다.’

그는 속으로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나갈 텐가?”

“…….”

“그 녀석은 잠시 밖에 나갔네. 동생이 걱정되는 모양이더군.”

“아…… 네. 알겠습니다.”

천영령의 표정에 아쉬움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멈칫.

언제 뒤에 다가왔는지 여인이 서 있었다.

“…….”

천화공녀가 밝은 미소를 띠며 마주 서 있었다.

“천영령께서 오셨군요.”

“공녀님.”

“아버지를 뵙고 가시는 길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벌써 가시는 것인가요?”

“…….”

그는 안으로 먼저 들어간 천주를 보았다.

“차라도 한잔하셨나요? 시간이 된다면 한잔하세요.”

“아…… 네에.”

“고생도 많으신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천영령은 차를 준비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그녀는 예전의 기억을 찾은 뒤, 어릴 적부터 항상 필요한 물건들을 구해 주고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인물이 천영령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그녀가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천영령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많이 심심했을 거예요.”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신 것입니까?”

“네. 전부 생각이 나네요.”

“다행이십니다.”

천영령은 그녀가 기억이 돌아온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천문전주가 극일천무신지를 열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뒷전으로 밀어 넣고 자신이 전면에 나오겠다는 말이군요.”

“십전회의를 거친 뒤 발표할 것 같습니다.”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죠. 아버지는 아무 말 하시지 않으셨죠?”

“천주님께서는 지켜볼 것이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는 계획대로 그가 정말로 따를 줄은 몰랐어요. 지금 그는 자신의 뜻대로 되는 줄 알고 좋아하겠죠?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인 줄도 모르네요.”

“…….”

천영령은 그녀가 한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을 모시는 그가 넘어서는 안 될 경계가 있었다.

“천영령께서는 혹시나 동생에 대한 일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네, 공자께 이상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천영령은 어릴 적부터 제가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분이세요.”

“아닙니다. 소신이 어찌 공녀님의…….”

“아니에요. 만일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천영령께서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천영령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녀님……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하다가 가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런가요? 제가 앞까지 안내하겠어요.”

“…….”

천영령은 그녀와 함께 천주궁 입구까지 함께 걸었다.

그는 무심한 듯 표정을 지었지만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란히 걷는 그녀를 슬쩍 보았다.

늘 어린아이 같았던 그녀는 어느덧 성숙한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 * *

극일십우.

극일천의 초무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 각자의 무공은 중원 무림에서 적수가 없을 거라 여길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독안룡의 죽음에 극일십우의 위상이 한 단계 떨어졌다.

독안룡을 죽인 인물.

극일천이 생긴 이래 가장 강한 상대가 무림에 나타났다.

그리고 극일천의 명이 떨어졌다.

무림맹주 화산도협을 죽여라.

천문전주와 가장 먼저 당한 독안룡을 제외한 극일십우의 목표는 고진유를 죽이는 것이었다.

뒤뚱뒤뚱.

거구의 사내가 살이 처진 육중한 몸으로 힘겹게 길을 걸었다. 그는 뱃살이 거의 땅에 닿을 정도였다.

연신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를 보면서 놀란 듯 서너 번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구만.”

사내가 잠시 쉬려는 듯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다.

“이 돼지 새끼는 뭐야?”

그때, 한 무리의 사내들이 다가서면서 히쭉거리며 웃었다.

그들 중 구레나룻이 진한 사내가 발을 차며 툭툭 건드렸다.

“이봐, 뚱씨. 혹시 돈 좀 있어?”

“하이고야…… 그냥 가라.”

거구 사내는 땀을 닦아내며 올려다보았다.

“키킥, 뭐라는 거야? 이 돼지 새끼가?”

“어허. 당장 죽고 싶다면 돼지라는 말을 해도 괜찮아.”

거구 사내의 눈빛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구레나룻 사내는 순간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이, 쪽팔리게……! 돼지 새끼가 어디서 노려봐. 확 그냥……!!”

퍽!!

순간 구레나룻 사내의 턱이 치켜 올라가면서 몸이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거구 사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그는 단번에 목숨이 끊어졌다.

“아이고고……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내가 죽는다고 했잖아. 네놈들도 죽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아…… 닙니다.”

“빨리 꺼져.”

후다다닥!

사내들은 허겁지겁 죽은 동료를 엎고 사라졌다.

볼을 긁적이던 거구 사내는 건너편에서 노려보는 여인을 보았다.

“소저는 뭘 보시나?”

“겨우 그런 말을 했다고 사람을 죽여요? 충분히 타이르면 될 텐데. 그는 무림인도 아니잖아요?”

“보아하니 정의감이 깊은 아가씨로군. 그런 놈들은 타일러도 나중에는 똑같은 짓을 할 놈이니 죽여도 괜찮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걸. 저런 놈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으니.”

“…….”

효교는 그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녀 또한 사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흐.”

거구 사내는 한쪽 입가가 치켜 올라섰다.

“반박을 못 하는 것을 보니 내 말에 동의하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오늘 밤을 나와 함께 보내는 건 어때?”

“……뭐라는 거야?”

효교는 눈썹이 꿈틀거리며 인상을 썼다.

“크크크…… 화를 내는 모습이 귀엽군. 오늘 한 번 놀아볼까?”

파아앗!!

거구 사내의 신형이 단숨에 그녀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뱃살이 좌우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크크크!! 한 번 안아보고 싶구나!”

그는 두 팔을 번쩍 벌렸다.

효교는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면서 다가서지 못하도록 검을 펼쳤다.

까아아앙!

검이 부딪쳤건만 분명 살밖에 없는 거구 사내의 몸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이것 봐라. 선녀월하검이잖아.”

“……!”

“선녀곡의 여인인 모양이군.”

“어떻게…….”

“계집애들이 소꿉장난하는 월하호영(月下湖影)의 초식을 누가 모를까나?”

효교는 얼굴이 붉어졌다.

상대는 자신의 무공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방금 그 말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요.”

“크크크. 계집애야, 계집애야. 겨우 그 정도의 내력으로 본좌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네년의 사부가 누구인지 몰라도 똑바로 가르치지 않았군. 싸우기 전에는 상대의 내력이 어떠한지부터 파악해야지. 안 그럼 오늘처럼 죽을 수도 있거든.”

“…….”

효교는 전 내력을 끌어내 곧바로 월하정인(月下情人)을 펼치며 거구 사내를 향해 다가섰다.

스르르르-

그녀의 신형은 한 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두 명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사내의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십 여 명의 환영이 만들어져 있었다.

“역시 계집애들 장난이라니깐. 본좌에겐 한 명이고 백 명이고 필요 없어. 전부 때려잡으면 그만이지.”

거구 사내는 두 팔을 각각 돌리며 원을 그렸다. 그리고 환영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두두두두두-!!

수십 개의 거대한 주먹이 쏟아지면서 환영들을 하나씩 부수기 시작했다.

“큭……!”

효교는 눈앞으로 날아오는 상대의 주먹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집채와 같았다.

이번에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오호, 그건 제대로 배운 것 같네. 선녀곡의 무공은 싸우지 못하니 도망가는 용도로 익히면 딱 알맞아.”

그때였다.

쉬이이익!

날카로운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거구 사내는 표정을 찡그리며 중년여인을 보았다.

“……제법이군. 선녀기검의 명성은 살아 있다는 건가?”

그는 힘을 들이지 않고 앞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가 펼친 일검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찌이이잉-

거구 사내가 다가온 검 끝을 손가락으로 잡으며 앞으로 밀어냈다.

관효정의 몸이 휘청거리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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