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마도팔문 중에서 중원 무림과 가장 먼저 부딪친 곳은 안휘성의 마곡과 남궁세가였다.
합비에서 부딪힌 두 문파의 싸움은 일방적으로 남궁세가의 승리로 돌아갔다.
창천신검 남궁무명의 검을 막아낼 수 있는 마곡의 마도인은 없었다.
합비에서 당한 마곡은 이내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남궁세가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방산을 치고 올라가서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마곡을 시작으로 마도팔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중원 무림에 마도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군소방파로 활동하던 마도의 세력들도 동시에 일어나면서, 정파는 물론 사파까지 건드리며 세력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중원 무림은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강자존으로 변해갔다.
* * *
고진유는 신농가에서 나온 뒤 곧바로 무량삼천지로 향해 움직였다.
극일천의 삼대금지인 무량삼천지 중 그가 가는 곳은 귀주금천지(貴主金天地).
그곳은 귀양의 운무산에 위치했다.
무량삼천지 중 이곳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
극일천의 진정한 자금력을 모아놓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귀주로 내려오는 동안 무림은 점점 시끄러워졌다.
객잔에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똑같았다.
웅성웅성.
객잔에서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마도팔문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을 정도로, 이는 현 무림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전부 열심히들 사는구나.’
승패도 중요하지만 그들은 무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중원마도가 움직인다는 것은 마교의 준동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천문전주가 마교에게 길을 만들어줬어.’
고진유는 그를 떠올렸다.
천주궁에 숨어서 지낼 당시 먼 곳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백의 자락으로 흘러내리는 백발의 노인.
신선이 있다면 그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고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야망과 탐욕이 하늘을 덮을 만큼 거대했다.
‘천문전주도 마교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머리가 꽤 아플 것 같은데.’
마교를 통제하겠다고 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적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밀어붙였다.
성공하게 되면 자신들의 뜻대로 마교가 움직이게 될 것이라 확신했었다.
중원에서 마도팔문이 움직이는 것이 천문전주의 뜻인지, 아니면 마교의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만일 마교가 통제를 받지 않게 된다면 천문전주로서도 큰 치명타를 입을 수 있었다.
스윽.
점소이가 식탁 앞으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귀주 사람이 아니면 조금 매울 수도 있습니다.”
“소초육면(小炒肉麵)이라…… 맛있어 보이는군.”
알싸한 향이 후각을 자극하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두 젓가락 정도 먹었을 때였다.
우당탕!
객잔 안쪽에서 싸움이 일어난 듯 식탁이 넘어지고 난리가 났다.
모든 시선이 그 방향으로 향했지만 고진유는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끝까지 했다.
마도인과 사파인의 감정싸움으로 점점 커지면서 두 세력의 싸움으로 변한 것이었다.
우르르르-
그들은 곧장 결투를 위해 넓은 장소로 빠져나갔다.
이제 객잔에 홀로 남은 손님은 고진유밖에 없었다.
후루루룩!
고진유는 그릇을 두 손을 감싸고는 국물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잘 먹었다. 귀주에 오면 꼭 소초는 먹어봐야 한다는 말이 맞았네.”
그는 그릇을 내려놓은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부 구경 간 모양이네. 여기도 다들 재미있게 살고 있구나.”
고진유는 계산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돈을 받아야 할 객잔 주인과 점원도 구경하러 나가고 없었다.
‘이거 참……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내다보며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뚜벅뚜벅.
그때, 객잔으로 들어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인들이군.’
향기부터 달랐다.
고진유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오십 대의 중년 여인과 이십 대 후반의 여인이었다.
“여기에 자리가 비어 있나요?”
“빈자리입니다.”
중년 여인은 자리에 앉으면서 고진유의 의자 옆에 놓인 검을 보았다.
‘무인이군.’
그녀는 궁금했는지 바로 청년의 내력을 살폈다.
평범한 기가 흐를 뿐, 강한 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말투로 보아 중원의 남쪽 광동성에서 온 듯했다.
중년 여인은 객잔 뒤편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궁금했다.
“소협, 밖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오?”
“객잔 뒤편에 가면 마도인과 사파인이 서로 싸우고 있을 겁니다.”
“객잔에 있던 전부가 나간 것이오?”
“일부만 싸우고 나머지는 구경을 하는 것 같더군요.”
“허허…… 소협은 여기서 뭐 하고 있는가?”
“남의 일에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있겠습니까?”
“자네는 무림인이지 않은가? 당연히 가서 혹시나 모를 일은 지켜보는 게 맞다고 보네.”
“무림인이라고 해서 꼭 봐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
중년 여인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구먼. 굳이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림인이라면 의(義)가 아닐 경우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의라는 게 서로의 입장에서 보다 보면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서로의 생각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관여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소협은 이기적인 사람인가 보군. 모든 것을 소협의 생각으로 정의를 내리는 모양인가 보네.”
“…….”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그녀와 마주쳤다.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네. 본인의 생각이 그러하더라도 약자를 도와줄 줄 알아야만 나중에 본인 스스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네. 무림인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선행을 베풀어야 이름을 알릴 수 있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녀를 보며 짧게 포권을 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다시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기댄 채 밖을 내려다보았다.
‘하아. 이자가…… 분명 사부님께서 그렇게 좋은 말씀을 했건만…….’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갈 것이라 여겼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젊은 여인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로 보나 무림의 선배가 좋게 말을 하면 나가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예의 아니었던가.
스윽.
그때, 고진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 건가?’
하지만 그는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잠깐만…….”
뒤에서 젊은 여인이 불렀다.
“어디를 가는 것인가요?”
“피곤해서 침실에 가고자 합니다.”
“…….”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진유를 보았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겼다.
“소저께서 저에게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무림에서 자신 생각대로만 고집을 피운다면 일찍 죽을 수 있어요.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결국 혼자가 될 게 뻔해요. 그때는 어려움을 당해도 도와주지 않겠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나요?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에요.”
“소저의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고진유는 두 여인에게 포권을 한 뒤 몸을 돌렸다.
이 층 객실로 올라가는 고진유를 보면서 그녀는 화가 났다.
“사부님, 저자는…….”
“됐느니라. 보아하니 자존심이 강한 것 같다. 안타깝구나. 제법 무골이 좋은 청년인데…… 무림에서 오래 살아나지 못하겠어. 쯔쯔.”
중년 여인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밖으로 나갔던 객잔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크하하하!!”
그들 뒤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객잔을 울렸다.
마도의 괴마문(怪魔門)과 사파의 신혈파(神血派) 간에 대결에서 괴마문의 마도인들이 이긴 모양이었다.
대소하며 들어오던 괴마단주 우장식은 걸음을 멈췄다.
중년 여인을 보며 흠칫한 것이었다.
방금까지 웃던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선녀곡주…….”
“누군가 했더니 괴마문의 우 단주였군요.”
우장식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았다.
중원오기의 선녀기검이며 선녀곡의 수장 관효정이 객잔에 있었다.
“요즘 마도가 날뛴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구려. 하지만 본곡의 땅에 왔으면 조용히 해야지 않겠소이까?”
“큼, 미안하게 됐소이다. 신혈파에서 시비를 거는 바람에 조금 시끄럽게 한 모양이외다. 조용히 해 보지요.”
“그렇게 하시지요.”
“선녀곡주의 인자함에 감사드리겠소이다.”
괴마문의 마인들은 그를 따라 조용히 객잔에 앉았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여인의 신분이 어떠한지 알았다.
‘호오. 대단한 여인인 줄은 알았지만 선녀곡주 관효정이라.’
고진유는 이 층 객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기억이 돌아오면서 무림사 인물들에 대해 외웠던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침실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일 층 객잔으로 사내가 양손에 벽력탄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우장식, 이노오오옴!! 모두 이 자리에서 죽는 거다!!”
우장식에 의해 패배한 신혈파의 사파인이 틀림없었다.
“꺄아아아!!”
객잔은 단번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의 반대편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 저 미친놈이……!!”
“투혈탄검, 그것을 치우지 못할까?”
우장식은 소리치면서도 당장에라도 객잔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시선은 오직 우장식의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장식, 멈춰라.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여기 있는 놈들은 모두 죽는다.”
“미친놈아. 난 이놈들과 상관이 없다! 벽력탄을 던지든 말든 네놈 알아서 해라!”
우장식은 신형을 돌려 밖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효교야, 저자를 잡아라.”
관효정은 이미 그가 움직이려는 것을 알고 제자에게 명을 내렸다.
파앗!
그녀는 밖으로 도망치려는 우장식을 막고자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창문 앞에서 그보다 먼저 앞을 막아섰다.
휘익.
효교와 우장식이 서 있는 앞으로 벽력탄이 날아왔다.
“……!”
그녀는 부지불식간 바닥에 떨어진 벽력탄을 보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효교야!’
관효정의 눈이 다급하게 제자를 향했다.
콰아아아앙!!
창문 앞에서 거대한 폭음이 터지고, 객잔의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아…… 아…… 살았어.’
효교는 벽력탄이 터지기 전 앞을 가로막은 사내의 등을 보았다.
‘누…… 구지?’
사내는 내력만으로 벽력탄을 막아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내력을 지녔기에.’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벽력탄이 만들어낸 후폭풍이 서서히 사라졌다.
‘저…… 청년은……!’
관효정은 제자의 앞을 막아선 고진유를 보았다.
분명 평범한 내력을 지니고 있던 청년이었다.
‘내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고수였다고?’
그녀는 놀란 시선으로 고진유를 뚫어지게 보았다.
스걱.
투혈탄검의 왼손이 잘려 나갔다.
“아아악!!”
고진유는 벽력탄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잡은 뒤 창문을 통해 공중으로 던졌다.
콰아아앙!!
공중 위에서 폭음이 터졌다.
“으으…… 으…….”
객잔은 손이 잘린 그의 신음만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다.
고진유는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목소리에 노기가 느껴졌다.
“당신은 살 가치가 없소이다. 당신 때문에 선량한 많은 사람이 다칠 게 분명하오.”
“으…… 으…….”
죽음 앞에 다가서면 살고자 하는 게 사람이었다.
그는 애원의 눈빛을 보였지만 고진유의 사의검은 이미 그의 목을 지나갔다.
목에서 피가 쏟아지며 그의 몸이 아래로 쓰러졌다.
“……고맙습니다.”
효교는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벽력탄을 내력으로 막아낸 인물.
이 정도의 무공이라면 분명 중원 무림에 위명이 있을 게 확실했다.
“괜찮소이까?”
“네에…… 공자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그렇소이다.”
관효정은 앞으로 다가섰다.
“제자를 도와줘서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약자를 도왔을 뿐입니다.”
“…….”
관효정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그에게 충고한다고 했던 말이었다.
“미안하게 됐소이다. 본녀가 함부로 말을 한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혹시 무명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이름을 밝히지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그녀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다음에 뵙게 되면 인사를 따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만나고 싶군요.”
고진유는 다시 이 층 객실로 올라갔다.
효교가 궁금해서 물었다.
“사부님. 어떤 분인지 모르시겠습니까?”
“음…… 현 무림에서 약관의 나이에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면…….”
관효정은 한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림에는 수많은 기인이 존재하니까.
객실에 올라간 청년 또한 그들 중 한 명일 수도 있었다.
현 무림맹주인 화산도협은 마도팔문과 극일천이라는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바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중원 한참 아래 귀주까지 혼자서 내려올 가능성은 적지.’
그녀는 제자인 효교를 슬쩍 보았다.
효교는 중원십봉의 선녀봉으로 이름을 알린 여고수였다.
그의 좋은 배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효교야, 방금 그 사내라면 사귈 생각은 있느냐?”
“…….”
효교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보통 때 같았으면 싫다고 난리칠 녀석이거늘.’
제자의 마음에 든 사내가 나타나는 날도 있었다.
‘음…… 근데 만일 그가 내가 생각한 인물이라면…….’
다시금 문제가 생겼다.
소문에 의하면 그에게는 세 명의 여인이 있다고 했는데.
‘쯧쯔, 그가 아니기를 비는 수밖에.’
오늘은 괜한 말을 꺼내는 날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