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70화 (270/425)

270화

고진유는 지옥토를 나온 뒤 약속된 장소로 움직였다.

신농가의 초입 마을.

그곳에서 북안궁을 만나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그를 만났다.

북안궁은 반갑게 고진유를 맞이했다.

“조카사위. 왔는가?”

“많이 기다렸습니까?”

“우리도 한 시진 전에 들어왔다네. 오늘쯤 나올 줄 알았지. 갔던 일은 잘 처리된 모양이군.”

“문제없이 잘 정리했습니다.”

“역시…….”

북안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지옥토에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남흑신왕 허주광을 당연히 처리했다는 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고진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옥토로 가시면 바로 정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네. 조카사위 때문에 지옥토의 일은 쉽게 정리가 된 듯하네.”

“지금은 그들만 정리했을 뿐입니다. 남흑신왕을 추종하는 세력이나 협력자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염려 말게. 충분히 조심하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여기 있네.”

고진유는 그에게 맡겨놓았던 사의검과 짐을 받았다.

“조카사위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보이지 않게 조용히 뒤에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지옥혈림의 일은 이젠 고진유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지옥토의 일이 완전히 정리되는 모습을 본 뒤 떠나도 늦지 않을 듯했다.

“자네가 그렇게 해준다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지. 안 그런가?”

“당연한 일입니다.”

고진유는 그들의 뒤에서 조용히 지옥토로 향했다.

* * *

쏴아아아-

폭포가 나타난 동시에 북안궁은 두 명의 흑명군, 서영흑명군 남등과 서국흑명군 전오에게 명령을 내렸다.

“두 사람은 지금 바로 지옥토의 입구를 제압해라.”

“존명.”

남등과 전오가 수하들과 함꼐 동굴 안으로 뛰어든 뒤 소리쳤다.

“본인은 서영흑명군 남등이다! 살고 싶다면 무릎을 꿇어라!!”

동굴을 지키던 흑귀들은 소리친 인물이 누구인지 알았다.

‘이들은 지옥궁의……?!’

서영 흑명군과 서국 흑명군이 확실했다. 둘의 무공은 지옥토의 사대흑명군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었다.

‘……우린 싸우면 이길 수 없어.’

지옥궁 소속의 흑명군이 왔다는 것은 지옥궁주 서흑신왕도 함께 왔다는 것.

영춘은 지옥토로 들어가지 못하게 동굴을 막아낼 수 있었다.

입구를 뚫고 들어오려면 상대도 피를 흘려야만 가능했다.

만일 남흑신왕과 흑명군이 살아 있었다면 당연히 싸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죽었다. 싸움은 무의미해.’

그리고 죄수였던 그가 사라지면서 벽에 적은 글이 생각났다.

영춘은 얼른 뒤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검을 버리고 이분들의 뜻을 따른다!”

영춘은 허리에서 검을 내려놓은 뒤 부복을 했다.

스윽.

지옥토 소속의 흑귀들도 하나둘씩 영춘을 따라 검을 내려놓으며 무릎을 꿇었다.

“똑똑한 인물이군.”

동굴로 들어서는 인물.

예상대로 서흑신왕 북안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의 소속과 이름은?”

“교위 영춘이라 합니다.”

“자네가 영춘이군. 지금부터 자네를 흑절사로 임명하고자 하는데 본왕의 명을 따르겠는가?”

“……!”

흑절사의 지위는 흑나찰보다 한 단계 위의 상급자였다.

영춘의 대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넵. 알겠습니다. 서흑신왕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북안궁 또한 지옥혈림의 소속.

그는 보직만 새롭게 바뀌는 것이라 생각했다.

두두두두-

남등과 전오는 수하들과 동굴 밖으로 나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지옥토의 입구를 완전히 장악했다.

“흑절사. 본왕이 전할 말이 있다. 지금 바로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도록 해라.”

“넵. 알겠습니다.”

영춘은 수하들과 함께 지옥토의 긴급 신호를 울리기 시작했다.

둥둥둥둥둥!!

혼란 속에 빠져 있던 지옥토 소속의 흑귀들이 중앙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서흑신왕 북안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갑자기 지옥궁에 있어야 할 서흑신왕이 나타나면서 지옥토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때까지도 지옥토 소속의 흑귀들은 남흑신왕과 흑명군이 죽은 채 발견된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서흑신왕 북안궁이 수하들을 이끌고 지옥토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 사이에 알지 못한 사건이 있음을 알았다.

잠시 후 북안궁의 설명에 지옥토의 흑귀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흑신왕 허주광이 극일천의 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북안궁은 지옥토의 임시 수장으로 서영흑명군 남등을 삼았다.

그리고 남흑신왕의 측근의 인물들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지옥토에 다시 어둠이 짙어졌다.

스르르르.

삼 층 전각.

토왕전으로 소리 없이 다가서는 그림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삼 층으로 곧바로 향했다.

그는 불이 켜진 방으로 움직인 뒤 숨소리조차 거둔 채 방 안을 주시했다.

창문 너머로 움직이는 한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혼자…… 다.’

이 시간에 지옥토주의 집무실에 혼자 있는 사람은 북안궁뿐.

‘단번에 들어가서 죽인다. 서흑신왕을 죽이면 다시 이곳을 찾아올 수 있어.’

파앗!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단숨에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어, 동시에 집무실 앞 탁자에 앉아 있는 인영을 향해 검기를 펼쳤다.

그때, 번쩍이는 검기 속에서 낯선 청년의 얼굴이 나타났다.

‘헛?!’

그가 아는 서흑신왕 북안궁의 얼굴이 아니었다.

채애애앵!

청년은 날아온 검기를 가볍게 막아냈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검을 든 청년을 보았다.

“너언…… 누구냐?”

“고진유.”

청년은 앞으로 다가서면서 짧게 이름을 밝혔다.

‘무림맹주?’

그는 상대의 신분에 뒷걸음질 쳤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고진유는 그가 주위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숨어 있는 것을 알았나?”

“당연히 알고 있었소이다. 얼마나 겁이 많은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기에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소.”

“…….”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 바로 도망을 가느냐, 아니면 싸우느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고진유가 바로 해결해 주었다.

“많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당신은 도망갈 수 없소.”

“…….”

“항복도 의미 없소이다. 여기에서 살려주지 않을 것이니 그냥 시원하게 싸우도록 합시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망갈 수 없다면 고진유의 말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무림맹주 화산도협.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감이 떨어진 지 오래였다.

스르르릉-

고진유는 검집에서 사의검을 잡아당겼다.

‘오랜만에 검신을 보는 것 같네.’

최근에는 검보다 장공이나 권공을 많이 펼쳤다.

화르르-

집무실 안으로 매화 향이 가득히 흐르기 시작했다.

매화 향은 자신이 화산파의 제자임을 일깨워 주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았을 뿐이었다.

고진유의 움직임은 상대가 보기에 그것이 끝이었다.

스걱.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욱.’

사내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길게 이어진 검흔이 생겨났다.

‘아니…… 검을 움직이지도 않았거늘……?’

고진유의 무공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날카로운 검기가 망사처럼 사방에서 느껴졌다.

‘사방에 검기가 나를 노리고 있다.’

무턱대고 움직였다가 보이지 않은 검기에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의 얼굴은 점점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허허, 계속 가만히 있을 것인가?”

“……!”

그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서…… 흑신왕…….’

언제 다가왔는지 북안궁이 뒤에 서 있었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산도협의 예상이 맞았군. 네놈이 진짜 극일천의 간자였어. 삼공자 북우!”

그의 정체는 북조궁의 셋째 아들 북우.

혈성존의 다섯 아들 중 삼남인 그는 남흑신왕과 가장 친한 인물이었다.

“숙부…… 본인을 어떻게 하실 것이오?”

“본 림의 배신자에게 선처는 없다.”

“난 그의 아들이외다.”

“아들이라는 놈이 아버지를 죽이고자 검을 들었단 말인가?”

“…….”

“아들은 아버지를 죽여도 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더냐?”

북안궁은 노기를 일으켰다.

그가 차라리 도망가기를 원했다.

토왕전에 나타난 그를 보면서 실망감은 이미 사라지고 대신 분노가 일어났다.

“북우, 네놈이 그분의 아들이라면 이 자리에서 당장 자결해라.”

“……그건…….”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배신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더냐?”

북안궁은 다시 돌아서며 밖으로 나갔다.

“…….”

북우는 그가 왜 사라졌는지 알았다.

그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타악!

그의 등 뒤에서 어깨를 잡는 손을 느껴졌다.

고진유는 그의 어깨를 누르며 저승사자처럼 속삭였다.

“그만 갈 시간이 된 것 같소이다.”

“화산……!”

북우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앞으로 움직였다.

“커어억.”

잊고 있었다.

사방에 검기가 펼쳐져 있었다.

팟팟팟팟.

그의 전신에서 피가 솟구쳤다.

“으…… 으…….”

몸이 무너지면서 신음이 나왔다.

결국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는 목숨이 끊어졌다.

* * *

북우의 죽음으로 지옥토의 상황은 마무리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북안궁은 간자의 색출에 대한 조사 책임자로 영춘에게 임무를 맡겼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평소에도 지옥토의 흑귀들과 사이가 좋은 탓인지 그들 따르는 흑귀들이 많았다.

“흑절사 영춘입니다.”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알겠습니다.”

영춘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서흑신왕 북안궁 외에 세 명의 인물이 함께 있었다.

‘저…… 자는…….’

두 명의 흑명군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알던 모습과는 무엇인가 달라진 듯해 보였다.

“흑절사, 안면이 있는 모양인가?”

“아…… 네에……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가?”

“죄, 죄수가 아…… 니었습니까?”

“하하, 죄수라…… 하긴 예전에도 지옥도에 갈 뻔하긴 했지. 그러고 보면 우리와는 인연이 너무 많아. 그렇지 않은가?”

“후후. 맞습니다.”

그는 미소를 띠며 북안궁의 물음에 미소를 띠었다.

‘누구지……?’

영춘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십 대의 청년.

북안궁과 편안하게 대면한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은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 들은 소식 중에서 한 인물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그가……!’

영춘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그밖에 없었다.

현 무림맹의 수장이자 화산도협 고진유.

남흑신왕과 세 명의 흑명군을 상대로 죽인 범인이 바로 그였다.

남흑신왕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모두 풀렸다.

“저…… 저분께서는 무림맹주이십니까?”

“똑바로 맞혔네.”

그의 예상대로 무림맹주이자 화산도협이었다.

죄수로 위장을 한 뒤 들어와서 토왕동을 물어본 이유도 알았다.

“그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소이다.”

“아…… 아닙니다. 제가 몰라뵙고 함부로 대한 점에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후후후. 괜찮소이다. 그리고 황금 일백 냥은…….”

“아,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그건 아니지요. 사람이 약속했으면 지켜야 하는 게 아니오.”

스윽.

고진유는 그의 앞으로 전표를 내밀었다.

“받으세요.”

“…….”

영춘은 두 손으로 받은 뒤 그것이 전표라는 것을 알았다.

“한번 보시오.”

“넵…… 알겠습니다.”

그는 반으로 접힌 전표를 펴 보았다.

“커어억!!”

눈이 커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서…….”

“얼마 안 됩니다. 지금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요.”

“예에? 아닙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납니다. 그리고 전 이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춘은 황금 일십만 냥의 전표를 다시 공손히 내밀었다.

“이번에 알았습니다. 사람이 괜한 욕심을 부린다면 어떻게 되는지를요.”

“그렇군요. 음, 흑절사의 뜻이 그러하다면 황금 일백만 냥을 그대의 이름으로 지옥혈림에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북안궁은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흑절사의 뜻을 혈성존께 보고하겠네. 혈성존께서 본 림에 대한 그대의 충성심을 아신다면 좋은 일이 있을걸세.”

“고맙습니다. 전 항상 본 림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후후후. 고맙네. 자네 같은 인물이 많아야 하거늘.”

그의 칭찬에 영춘은 가슴이 뿌듯해졌다.

“아 참. 흑절사, 조사는 모두 끝났는가?”

“넵.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본 림으로 이송시켜 조사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고했다. 앞으로 이곳에 책임자가 내려오기 전까지 잘 부탁하지. 혹시 다른 곳을 가기를 원한다면 그때 말해도 되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춘은 허리를 숙였다.

이제 자신의 앞날은 꽃길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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