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고진유는 옥방에서 올라온 뒤 곧바로 움직였다.
주위 경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흑귀들은 외부인들이 지옥토에 잠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인지 주위 경계가 허술했다.
토왕동의 입구도 마찬가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흑귀 인원은 겨우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똑바로 호위를 서지 않고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엉망이군. 그리 자신이 있나 보지?’
휘이익!
고진유는 호충신법을 펼쳤다.
내력을 거둔 뒤 움직인 고진유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는 흑귀들은 없었다.
흑귀들 뒤로 움직이며 토왕동으로 빠르게 들어선 그가 어둠 속에 모습을 숨겼다.
‘어엉?’
흑귀 중 한 명이 이상한 듯 뒤로 돌아서며 토왕동 안을 보았다.
그의 옆에 선 동료가 툭 건드리며 물었다.
“뭘 보고 있는가?”
“방금…… 우리 뒤로 지나가는 기척을 못 느꼈는가?”
“뭘? 뭔가 있었나?”
“그건 아니고…….”
“허허. 또 헛것을 봤겠지. 자넨 가끔 이상한 것을 많이 보는 것 같다니깐.”
“……그런가?”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바로 돌아섰다.
‘움직여 볼까?’
토왕동 안쪽 벽에 바짝 붙어선 고진유는 다시 안으로 움직였다.
토왕동 안으로 십여 장을 걸었다.
어둠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르륵.
고진유가 지나간 뒤편 어둠에서 인영이 나타나 살기를 뿜었다.
“멈춰라.”
“오, 잠시 몰랐을 뻔했소이다.”
“……이놈, 죽어라!”
그는 고진유의 등을 향해 검을 뻗었다.
“멈추지 않으면 후회할 텐데.”
일장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
팟팟팟팟!
“……!”
그의 검이 고진유의 등에 닿는 순간, 검을 찌른 그의 팔에서 붉은 피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고진유는 돌아서면서 그를 보았다.
“당신이 숨어 있는 것을 계속 모를 줄 알았나? 공격할 줄 알고 미리 검사를 만들어놓았지.”
“네놈은…… 누…… 구지?”
“남흑신왕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이오.”
“혈성존이 보냈나?”
“수장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보니 극일천의 간자겠군. 혹시나 해서 목이 아니라 손만 노렸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펼쳐도 되겠소.”
“건…… 방지구나. 네놈이 나를 죽일 수…… 커어억?!”
순간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언제 출수를 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죽일 수 있지.”
그는 믿기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이렇게…… 빠른 신법이…….’
“우우욱…….”
그는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 무공은…….”
“소양무음장이라는 것이오.”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대단한 무공이라고 놀라는 것인지 모르겠군.”
“…….”
그가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소양무음장은 극일천의 인물이 아니고서는 익힐 수 없었다.
“이것도 보여줄까?”
번쩍!
고진유의 손가락에서 지공이 뻗어나갔다.
“……!!”
그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의 배에 손가락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그…… 건…… 전설…… 의…… 천룡광천섬지(天龍光天閃指)?”
“잘 알고 있군.”
“대체…… 어떻게 극일천의 무공을 알고?”
“저승에 가서 물어보시오. 염라대왕께서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을 거요.”
투욱.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목숨을 잃었다.
흑명군 응벽만.
그는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한 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목숨을 잃었다.
고진유가 다시금 안으로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위이이이잉!!
토왕동 안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륜비행무용(花輪飛行舞勇)…….”
눈앞에 다가온 파륜이 개미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을 만들며 날아왔다.
‘동굴 안에서 가장 적절한 무공이군.’
샤르르.
고진유의 어깨 위로 내기가 솟구치며 손바닥 안으로 내력을 일으켰다.
앞으로 내력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치지직- 치치지직-
‘피할 수 없다면 모두 부숴 버리면 되지.’
번쩍!
고진유는 오른손을 뻗어 뇌전강막(雷電剛膜)을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앙!!
화륜비행무용을 펼친 파륜들은 뇌전강막을 뚫지 못하고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안에서 상대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륜은 이렇게 사용해야지.”
고진유가 왼손을 뻗자 바닥에 떨어진 파륜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슈우우우욱-!!
그리고 고진유의 머리 위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파천륜강.
동굴 안으로 파륜이 거센 파도처럼 쏟아져 나갔다.
스걱. 스걱.
안에서 날카롭게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안으로 얼마 걸어가자 사지가 잘리고 몸에 파륜이 박혀 있는 인물이 죽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시체 뒤로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관동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화산도협. 당신이 여기에 올 줄은 몰랐소이다.”
“당신도 극일천의 간자였군.”
“…….”
“본도가 극일천이라면 상당히 싫어하는 것을 잘 알겠지요?”
“화산도협, 그때는 본인의 무력을 똑바로 사용하지 않았소이다. 다를 것이오.”
“그건 본도도 마찬가지오. 물론 기대해도 좋소이다.”
파앗!
두 사람 중 고진유가 먼저 움직였다.
추관동은 눈앞에 보였던 상대의 신형을 놓쳤다.
‘이렇게 빠르다니……!’
퍽퍽퍽!
고진유를 찾으려고 하는 순간 얼굴과 가슴, 그리고 복부에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그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앞에 선 고진유를 보았다.
“비겁하게…….”
“무엇이 말이오? 당신이 본도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게 비겁하다는 뜻인가?”
추관동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일초지적도…… 안 된단 말인가?’
그때와 달라진 무공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고진유는 그런 그의 생각을 무시하듯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당신이 무공을 펼치도록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잘 가시오.”
추관동은 그는 장공을 펼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움…… 움직일 수 없어.’
대항하고자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퍼어억.
그것이 끝이었다.
추관동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진유의 장공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세 명의 흑명군을 정리한 고진유는 토왕동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너머로 강한 기를 뿜어내는 한 사람의 기가 느껴졌다.
고진유는 손을 뻗어 문을 밀었다.
끼이이익-
토왕동의 문이 쉽게 열렸다.
고진유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서 안에 선 중년 사내를 보며 물었다.
“당신이 남흑신왕인가 보군요.”
“그대는?”
“누구겠소? 한번 알아맞혀 보시오.”
허주광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웃긴 사람이군. 본인이 모를 것이라 생각했소? 화산도협이자 무림맹주이지 않소이까.”
“제대로 알고 있군요.”
“크하하하!!”
허주광은 대소를 터뜨렸다.
고진유가 지옥토에 어떻게 왔는지 알 듯했다.
“그대를 이곳에 대신 보내다니 혈성존은 비겁한 인물이군.”
“그건 아닌 것 같소이다.”
“그게 아니라니 무슨 뜻이오?”
“그는 비겁한 게 아니라 수하들이 불필요하게 다치지 않도록 본도에게 부탁한 것이오.”
“…….”
“설마 그분이 당신을 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소?”
“그건…….”
“착각하지 마시오. 이곳을 치고 싶었다면 벌써 쳤을 것이오. 그분은 마지막까지 그대를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
“…….”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서 본도에게 부탁한 것이오.”
허주광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 * *
그는 가슴이 무거웠다.
너무 먼 길을 떠나왔다.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이제는 가던 길을 가야만 했다.
허주광은 검을 뽑았다.
상대는 무림맹주이자 화산도협.
싸워 이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세 명의 흑명군을 간단하게 처리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었다.
그는 고진유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하는 게 좋겠소.”
허주광은 선수를 펼쳤다.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 번이라도 공격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쉬이이익-!!
푸른빛의 도강이 고진유의 정면으로 날아왔다.
‘청우도환무(靑宇刀幻武)를 익혔군.’
고진유는 허주광의 무공을 단번에 파악했다.
스르르륵-
날아오던 도강이 흔들거리며 갑자기 변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고진유는 이미 검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서너 걸음 움직이자 그의 도강을 가볍게 피했다.
콰아아앙!!
뒤로 빠져나간 도강의 폭음이 터졌다.
쉬이익!!
그의 공격은 한 번이 아니었다. 연이어 펼친 두 번째 도강이 목을 향해 날아왔다.
타앗!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고진유는 가볍게 움직이며 도강을 간단히 피했다.
허주광은 최고의 한 수를 펼쳤지만 상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간단하게 피했다.
‘젠장…….’
상대는 두 번째 공격을 피한 뒤 장법을 펼쳤다.
무한의 장강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
‘끝인가?’
부딪혀 보지 않아도 알았다.
고진유의 장법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뜨거운 바람이 허주광의 신형을 지나가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점점 아래로 무너지고 있었다.
상대가 펼친 일초에 승패가 결정되었다.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그대로 멈춰있었다.
스윽.
고진유는 그의 앞에 다가선 뒤 내려다보았다.
“살 수는 없을 것이외다. 그만 끝을 내겠소.”
“…….”
우우우웅.
고진유의 손 위에 생긴 내기가 소용돌이쳤다.
슈우우웅-
허주광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 * *
아침이 밝은 뒤.
지옥토는 혼란에 빠졌다.
지옥토의 수장 남흑신왕 허주광의 시신이 토왕동에서 발견되었다.
토왕동에서는 그 혼자만 죽은 게 아니었다.
세 명의 흑명군이 함께 목숨이 끊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흑귀들은 갑자기 수장들을 잃게 되자 어떻게 할지 몰랐다.
다다다-
흑귀 영춘은 그 소식을 들은 후 느낌이 이상했다.
‘혹시……!!’
그는 빠르게 달려 옥방으로 내려갔다.
‘이 녀석이…… 어디에 있다고 했지?’
옥방의 끝으로 달리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고진유가 수감된 옥방에 도착했다.
‘제기랄…….’
옥방에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수감이 된 죄수는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둥! 둥! 둥! 둥!
지상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이건……?”
지옥토의 입구에서 들려온 북소리였다.
영춘은 옥방 밖으로 다시 올라갔다.
흑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방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인물이 없었다.
영춘은 그들을 지나치며 입구를 향해 달렸다.
그곳에 서너 명의 흑귀들이 모여 있었다.
영춘은 다가서면서 소리쳤다.
“무슨 일이지?”
“어…… 조장. 그게…….”
그들 중 한 명의 흑귀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똑바로 하지 못했다.
“똑바로 이야기해!”
“갑자기 뒤에서…… 누가 우리를 기절시키고 달아났어.”
“그놈을 봤어?”
“미안…… 합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군지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
영춘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녀석이었어.’
그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남흑신왕을 죽이고 세 명의 흑명군까지 죽인 뒤 달아날 수 있을까.
상대가 마음을 먹고 지옥토의 흑귀들을 죽이겠다 마음먹었다면 모두 죽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는 누구였지?’
영춘이 깊은 고민에 빠질 때 동료 흑귀가 소리쳤다.
“조장, 여기……!”
영춘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동굴 벽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조용히 기다리라고?”
분명 그 남자 지옥토를 떠나기 전 글을 쓰고 나간 것일 터.
‘기다리라고 한 말은…… 다시 오겠다는 것이다.’
영춘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가 모두를 죽이고자 했다면 조용히 떠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모두 잘 들어라. 흥분들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낸다. 알겠지?”
“……알겠어.”
그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