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68화 (268/425)

268화

무림맹에서 내려온 고진유와 북소연은 형주로 곧장 향했다.

고진유가 가는 곳에는 그녀가 갈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무림맹에 혼자 두는 것보다 지옥혈림이 그녀에겐 훨씬 나았다.

무림맹을 나서는 길에 지옥혈림에 미리 연락을 보내 형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초입에 들어섰을 때는 북소연을 마중하기 위해 지옥혈림에서 나와 있었다.

지옥혈림의 서흑신왕이 직접 나올 줄은 몰랐지만.

“공자님, 숙부님께서 나오셨어요.”

“그렇군요.”

고진유는 그녀와 함께 북안궁의 앞으로 다가섰다.

“북 숙부께서 직접 나오셨습니까?”

“오랜만에 조카사위의 얼굴도 볼 겸 나왔네. 어떻게, 조금 이야기할 시간은 되는가?”

“괜찮습니다.”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나?”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두 사람은 북소연이 탄 마차 뒤를 따라 걸었다.

“요즘 시끄럽더구먼.”

“마도팔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네. 호북에서도 마도팔문 귀령문에 마교에서 나온 십이신마 중 한 명이 나타났다는 소문일세.”

“알고 있습니다. 무당파와 제갈세가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해가 크지 않겠나? 필요하다면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아닙니다. 이번 일은 두 문파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파라서 그런 것인가?”

그가 섭섭하게 생각하는 듯하자 고진유는 말을 덧붙였다.

“북 숙부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호남은 녹림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지옥혈림이 사파라서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이유가 있는가?”

“지옥혈림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

철갑에서 찾은 명부에 적힌 두 명의 인물.

남흑신왕 허주광과 동흑신왕 이독을 가만히 둔 채 함부로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았다.

고진유는 이미 그녀에게 지옥혈림의 사정을 모두 들었다.

“동흑신왕은 지옥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남흑신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 또한 같은 경우라고 봐야겠지. 지옥토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네.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해야 하는데 형님께서도 상당히 곤란한 모양이야.”

“지옥혈림에서는 그들을 처리할 계획이 있습니까?”

“그대도 알겠지만 본 림의 네 곳은 상당히 특이한 장소에 세워져 있다네. 그들이 지옥토와 지옥도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무리하지 않고서는 힘들다고 보네.”

“스스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곳에 직접 들어가서 무력으로 해결을 볼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무력을 사용해도 두 곳 모두 쉽게 접근하긴 어려운 곳이라.”

“어려운 일이군요. 음…… 몰래 들어갈 수는 없습니까?”

“그것 또한 어렵다고 봐야겠지. 지옥토와 지옥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북안궁은 시선을 돌려 고진유를 보며 말을 이었다.

“두 곳 모두 급하지만 시급한 곳은 남흑신왕이 있는 지옥토일세.”

“이유가 있습니까?”

“본 림에서 남흑신왕을 따르는 흑귀들이 많다네. 그들의 세가 커지기 전에 빨리 정리를 하는 게 맞다고 보는 것이지. 혈성존께서도 그런 부분에서 걱정을 하는 것이라네.”

“북 숙부님의 말씀대로 일이 커지기 전에 정리하는 게 맞겠군요. 지옥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가…… 나서주려는 건가?”

“지옥토에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 듯합니다.”

사실 북안궁은 그가 도움을 주기를 기다렸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고진유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옥혈림에서 남흑신왕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은 가진 이는 혈성존 외에는 없었다.

“미…… 안하군. 그대에게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하거늘.”

“아닙니다. 여태껏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신농가 밀림에 있다네.”

북안궁은 고마우면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나왔다.

“신농가라면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군요.”

“그렇다네. 빨리 움직인다면 이틀 만에 갈 수 있지.”

“그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대가 알아서 하게. 잡아서 오든지 죽이든지 편할 대로 하면 된다네. 그가 본 림의 간자라는 증거는 많이 있으니 상관하지 않겠네.”

“알겠습니다.”

북안궁의 얼굴이 밝게 퍼졌다.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지옥혈림 자체에서는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네 명의 흑신왕 중 두 명의 흑신왕이 극일천의 간자였다.

지옥혈림의 수하들을 잃지 않고 세력을 유지한 채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두 곳의 수장들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길밖에 없었다.

혈성존이 나선다고 해도 지옥토 소속의 수하들이 누구를 따를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함부로 지옥토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남흑신왕 허주광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잠입하여 그를 직접 상대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문제는 북안궁의 말처럼 지옥혈림에서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는 것.

때마침 고진유와 북소연이 내려온다고 하기에 북안궁이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지옥혈림의 입장에서는 지옥토만 정리된다면 지옥도는 상대하기 편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식량과 물을 통제하면 그들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옥도는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반대로 그들이 나오는 것도 어려웠다.

“북 숙부님, 지옥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네. 그대가 직접 움직인다면 남흑신왕을 처리하는 데 어렵지는 않을 것이네.”

북안궁은 지옥토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알려주기 시작했다.

* * *

지옥혈림에서 원하는 건 남흑신왕 허주광의 목숨.

지옥토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다그닥.

죄수를 태운 수레가 습지로 된 초원을 지나 깊은 협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밀림은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듯했다.

수레를 끌고 가는 흑귀들은 신농가림 복지(腹地)라 불리는 장소 앞에 도착했다.

죄수들 안에서 고진유는 조용히 주위를 보며 앉아 있었다.

‘완전 밀림 숲이군.’

사방이 하늘을 치솟은 나무들과 허리까지 오는 잡풀들로 깊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한 번 들어온 이상 길을 모르면 나가지도 못하겠어.’

다행히 이런 숲은 경험이 많았다.

괴도도 이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흑귀들은 짜증이 나는 듯 연신 투덜거렸다.

“에이…… 여긴 아무리 와도 적응이 안 되네.”

수레를 끌고 가던 흑귀들의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오히려 수레를 타고 가는 죄수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 시진 동안 숲을 가로지르며 움직였다.

쏴아아아-

후덥지근한 공기에서 순간 시원한 냉기가 밀려왔다.

‘도착한 것 같군.’

북안궁에게 들은 대로 복룡폭포가 커다란 풀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복룡폭포의 뒤편을 지나면 동굴이 있다.

그곳을 지나야 지옥토의 분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동굴은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군. 저기로는 힘들겠어.’

동굴 외에 지옥토로 들어가는 방법은 하늘에서 분지로 떨어지는 것.

‘북 숙부의 말씀이 맞았어. 절대로 몰래 들어갈 수 없겠군.’

그래서 고진유는 지옥토에 몰래 잠입하기 위해 죄수로 위장하기로 결정했다.

지옥토에 죄수를 후송하는 흑귀들도 그 사실을 몰랐다.

고진유는 속으로 감탄이 나왔다.

‘지옥혈림에서는 이런 곳을 어떻게 찾는 거야?’

저번에 다녀온 지옥수도 탈출이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폭포 앞에서 수레가 멈췄다.

흑귀가 돌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고 있어? 저놈들을 빨리 내려라!”

철컥.

발목과 손목에 두꺼운 철 족쇄가 채워진 죄인들이 수레에서 차례대로 내렸다.

고진유는 죄인들 사이에서 내린 뒤 지옥토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내렸으면 빨리 차례대로 움직여!”

흑귀의 명에 앞에 있던 죄인부터 동굴로 들어섰다.

동굴 안에는 지옥토 소속의 흑귀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이 안에서 지키고 있군. 몰래 이곳을 뚫는 것은 역시 어려워. 변장이 정답이었어.’

고진유는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섰다.

“다음!”

눈알이 튀어나올 것같이 두 눈을 부릅뜬 흑귀가 귀찮은 듯 소리쳤다.

고진유는 흑귀 앞에 섰다.

“이름.”

“진고…… 입니다.”

흑귀는 죄명을 본 뒤 고개를 숙인 고진유를 내려다보았다.

“젊은 놈이 똑바로 안 살고 사기나 치다니…… 사기로 이런 곳에 올 정도면 얼마 해먹었어?”

“…….”

“죽고 싶어? 똑바로 말 안 해?”

“황금…… 일백만 냥.”

“…….”

순간 동굴이 조용해졌다.

흑귀들은 물론 죄인들까지 눈이 커지며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뭐…… 뭐……? 다시 말해봐. 어, 얼마라고?”

“황금 일백만…… 냥입니다.”

“진짜야? 네가 사기…… 친 게?”

“네에…….”

“어디서? 아니, 아니, 누구에게 사기를 친 거야?”

“중원상국…….”

중원상국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세상에 황금 일백만 냥을 사기 치고 온 놈은 처음이었다.

“하아…… 이놈 완전히 물건일세.”

스윽.

고진유는 슬쩍 그의 앞으로 넘어지듯 다가섰다.

그리고 빠르게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흑귀 영춘의 표정이 바뀌었다.

“크흠, 넌 나중에 내가 따로 면담을 해야겠다. 들어가 있어.”

그의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가는 고진유의 뒷모습을 보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옥토로 들어온 죄수들은 두 명씩 옥방에서 지냈다.

이곳에 수감된 죄수들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광장에서 모여 앉아 있을 뿐.

고진유는 혼자서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지옥토에 들어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변을 충분히 파악했다.

지옥토의 수장 남흑신왕 허주광의 거처가 동쪽에 보이는 삼 층 건물인 것은 들어오기 전에 알았다.

‘저곳에 그가 있겠군.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고.’

고진유는 오늘 야밤에 끝을 내고자 결정을 내렸다.

스윽.

그때, 흑귀가 다가온 뒤 바닥으로 툭 물건을 떨어뜨렸다.

고진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지옥토로 들어오면서 마주쳤던 흑귀 영춘이었다. 그는 눈을 찡긋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몰래 던져준 물건을 펴자, 아직 따끈한 커다란 만두가 두 개 들어 있었다.

고진유는 얼른 품 안에 넣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슥슥.

그리고 바닥에 황금 백 냥이라고 적은 뒤 빠르게 지웠다.

영춘은 입가가 완전히 찢어지듯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가 몰래 자신에게 했던 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황금 천 냥은 몰래 숨겨놓았다고 했다.

진고의 형량은 이 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지옥토에 있는 동안 잘 보살펴 준다면 황금 백 냥을 얻을 수 있을 터.

“혹시나 여기에서 괴롭히는 놈들이 있으면 말해.”

“넵. 알겠습니다.”

“불편한 것은 없어?”

“하루밖에 안 되어서요.”

“그렇긴 하군. 여기서 지낼 이 년 동안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고 지내.”

“고맙습니다, 선생님.”

스윽.

고진유는 주위를 살핀 뒤 신발을 벗고는 발가락 사이에서 손톱만 한 물건을 꺼냈다.

“저어 일단 이것을…….”

휙!

고진유가 내민 물건을 얼른 받은 그가 재빨리 품 안에 넣기 전에 무엇인지 확인했다.

‘금이다.’

번쩍이는 작은 덩어리.

황금이 분명했다.

영춘의 눈이 커지면서 입이 실룩거렸다.

‘사실이었어. 혹시나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는데…….’

고진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크흠, 흐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넌 내가 책임질 테니 쓸데없는 걱정 마라.”

“알겠습니다. 아, 저어 근데…….”

“필요한 게 있나?”

“아아니, 그건 아니고요…… 저기 저 건물은 무엇입니까?”

“음? 아, 지옥토의 수장이신 남흑신왕님의 거처였지.”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영춘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얼마 전부터 다른 곳으로 옮기셨어.”

“아아…… 어디…….”

영춘은 매섭게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궁금한 모양이지?”

“예? 아아뇨, 죄송합니다…… 그냥 옮겼다고 해서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쯧, 됐다. 하긴 네놈이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안다고 해서 그곳에 갈 수도 없겠지. 남흑신왕님께서는 저기 너머 토왕동에 계신다.”

고진유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슬쩍 본 뒤 관심 없는 척 만두를 베어 물었다..

‘다행이었군. 모르고 올라갔다면 큰일 났겠어.’

* * *

지옥토의 하늘은 빨리 어두워졌다.

죄수들이 각자 옥방에 들어가면서 문이 닫혔다.

해가 떨어지자 지하 옥방에는 달빛마저도 들어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을 자는 것밖에.

고진유는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스윽.

그리고 조용히 눈을 떴다.

함께 옥방을 지내는 사내의 곁으로 간 뒤 바로 혈을 누르자 그는 곧바로 기절했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모든 게 끝이 날 것이외다.”

빠드드득.

고진유의 골격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고진유는 몸을 바로 세우며 옥방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고진유가 사라지는 모습을 본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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