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63화 (263/425)

263화

북소연은 그와 함께 온 장소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여긴 어딘가요?”

“탁아원입니다.”

퉁퉁.

고진유는 목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잠시 후 안에서 여인의 늙은 목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오래된 문에서 녹인 슨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파가 밖으로 나왔다.

노파의 시선은 문밖에 선 고진유와 북소연의 모습을 아래위로 살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경험으로 탁아원으로 찾아온 두 남녀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 책임자를 만나볼까 합니다만…… 안에 계신가요?”

“저어……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셨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그분을 직접 뵙고자 하는데. 힘든가요?”

“…….”

노파는 고진유의 시선을 피하고자 했지만 무거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제가…… 책임자…… 입니다.”

“당신이 이곳을 운영한다는 말이군요. 맞소이까?”

“네에…… 맞습니다.”

“여기 책임자가 도중에 바뀐 모양이군요. 혹시 언제부터 여기를 맡아서 했습니까?”

“제가 운영을 한 지 거의……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고진유의 표정이 굳어졌다.

탁아소의 책임자.

벽화당의 두목이 분명히 말하기를 그곳의 책임자는 그의 사촌 남동생이라 했었다.

고진유의 기억으로는 벽화당에 들어간 후 그가 탁아원에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굳이 갈 이유도 없었고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십시오.”

그녀는 목문을 완전히 열었다.

고진유와 북소연은 노파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은 탓에 썩은 냄새들이 사방에서 풍겼다.

어린아이들이 지내기에 환경이 좋지 않았다.

노파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변명을 했다.

“저어…… 요즘에는 장사…… 아니, 도움을 주는 분들이 없어서…….”

고진유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연주에서 벽화당이 사라진 이후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꾸준히 살 곳이 없어졌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알겠소.”

북소연도 고진유를 따라 자리에 앉으면서 주위를 보았다.

팔다리는 야위고 배만 볼록한 아이들.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을 보면서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어도 책임을 질 순 없었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께서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음…… 혹시 여기에 들어온 아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소?”

“…….”

노파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찾는 게 확실하구먼.’

방금 전의 저자세에서 허리가 조금 펴진 노파가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고진유는 노파의 태도 변화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완전한 장사꾼이군.’

아이들은 노파에게 장사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기억이 나긴 하지만…… 요즘 나이가 들어서 세월이 지날수록 잊는 게 많습니다.”

“그렇군요. 본인이 기억을 잘 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소이다.”

“…….”

고진유는 손바닥을 펴서 그녀가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금…… 이다.’

단번에 노파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입가에 욕심이 가득한 웃음이 나왔다.

“헤헤헤. 기억이 잘 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오. 기억이 안 나면 그냥 갈까 했소이다. 이십 년이 조금 지난 일인데도 기억이 날지 잘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삼십 년 전이라도 당연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노파는 절대로 황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진유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래전에 나무 목걸이를 찬 사내아이가 들어온 적이 있소?”

“나무 목걸이를 말입니까?”

“그렇소.”

노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옆으로 내저었다.

“죄송하지만……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제가 웬만한 아이들은 기억하지만 목걸이를 달고 온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그렇소? 혹시 이것을 처음 봤소이까?”

고진유는 목패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와 비슷한 것을 보지 못했소?”

“…….”

노파는 어떻게 대답을 할까 고민을 했다.

모른다고 하면 황금을 주지 않을 듯싶었다.

“사실대로 말을 하면 이것을 주겠소이다.”

“……보지 못했습니다.”

“확실하오?”

“네. 그렇습니다. 여기엔 단 한 명의 아이도 목에 목걸이를 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큰 도움이 되었소이다.”

고진유는 금원보를 노파의 앞으로 내밀었다.

“아…… 고맙……?”

그녀는 얼른 손을 뻗어 금원보를 받고자 했지만 고진유는 내려놓지 않고 가만히 들고 있을 뿐이었다.

“저어…….”

“걱정 마시오. 이것을 당신에게 줄 테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직접 주는 게 아니라 연주상단에 맡겨 놓을 것이오.”

“…….”

“보름에 한 번씩 상단에서 필요한 금액을 받아가시오. 하지만 만일 돈을 받아간 뒤 엉뚱한 곳에 사용한다면 남은 모든 돈은 받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이들을 위해 똑바로 운영하라는 것이오. 당신 눈에는 이곳이 정상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

고진유의 살기에 노파는 온몸에 따가운 느낌을 받았다.

“죄…… 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봐주도록 하겠소이다. 만일 다음에 왔을 때도 이처럼 지저분하다면 그때는 당신의 두 다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외다.”

‘쳇…… 내가 이런 경우를 한두 번 겪은 줄 아는 모양이지?’

노파는 무서워하는 듯 표정을 지었다.

쏴아아아-

고진유의 살기가 노파를 스쳐 지나갔다.

“본인의 말이 우습게 들린 모양이군.”

팟.

“아아악!”

노파의 한쪽 발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건 경고야. 아니면 지금 바로 베어줄까?.”

“아…… 닙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본인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과는 다를 것이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소연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췄다.

“아 참. 내가 누군지 궁금할 것 같아서 알려주겠소. 고진유라고 하오.”

“……고…… 진유…… 라…… 하심은……?”

노파는 무림인이 아니라 해도 연주의 자랑이라고 칭송하는 무림맹주 고진유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다.

“그렇소, 당신이 생각한 사람이 맞을 거요. 상단에서 수시로 여기에 찾아오도록 시킬 테니 지저분하거나 아이들을 방치해 놓는다면 그때마다 당신의 사지가 하나씩 자르도록 명을 내릴 것이오.”

“알…… 겠습니다.”

노파는 살기 위해 허리가 접힐 것처럼 숙였다.

밖으로 나가는 그는 황금을 주는 귀인이 아니라 죽음을 끌고 온 저승사자였다.

* * *

상단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

탁아원을 나온 이후 고진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이가…… 없을 정도군.’

자신의 현실이 그냥 믿기지 않았다.

현재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기억들.

그 기억들이 맞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고진유는 기억의 순서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믿기지 않았다.

탁아원에서 자신의 존재는 없었다.

머릿속에 숨겨져 있던 기억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과거라고 알고 있던 많은 기억이 조작되었다면, 현재의 기억도 조작이 아닐까 의심을 해 봐야만 했다.

기억을 따라 직접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계속해서 두 삶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떤 게 자신의 진짜 삶인지 혼란스러웠다.

반각 동안 고진유는 앞서 걸었다.

북소연은 깊은 생각에 잠겨 무작정 앞서가는 그를 불렀다.

“공자님.”

“……!”

고진유는 순간 멈칫했다.

‘이런…….’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얼른 굳었던 표정을 애써 풀며 돌아섰다.

“미안합니다. 혼자 걸었군요.”

“……아니에요.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을까요?”

“…….”

고진유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상단에 돌아가거든 우리 술 한잔 마실까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당황스럽게?”

“오붓하게 둘만 있는 시간이 잘 나지 않을 것 같군요.”

“저야…… 당연히 좋죠. 그래요.”

연주상단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후원에 놓인 정자에 술자리를 만들었다.

고진유는 먼저 술병을 들어 그녀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바로 이어 자신의 술잔을 채웠다.

채앵.

고진유와 북소연은 술잔을 부딪치며 첫잔을 단번에 비웠다.

이번에는 그녀가 빈 잔에 술을 부었다.

술잔을 든 고진유가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군.”

“…….”

북소연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묻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스윽.

고진유는 그녀의 손을 잡은 뒤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놓았다.

“어떤가요?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잘 뛰네요.”

“맞습니다. 당신을 좋아하는 제 감정입니다.”

벌컥.

고진유는 다시 술잔을 비웠다.

“지금 당신을 좋아하는 감정이 거짓처럼 보입니까?”

“……누가 저를 좋아하지 말라고 하던가요?”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소저를 좋아하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근데…… 그런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북소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의도를 알 듯했다.

얼마 전부터 그의 행동과 대화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그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고 있었다.

“전…… 공자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를 좋아해 주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어요.”

고진유는 그녀의 곁에 가서 안았다.

“고맙소이다.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어줘서 마음이 편합니다.”

“무슨…… 일인지 저에게 말씀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자신의 품 안에 안긴 그녀의 목소리가 가슴을 통해 울렸다.

“소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래전 내 과거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거짓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우리가 방금 전에 탁아원에 다녀오지 않았소이까?”

“네.”

“그곳이 어릴 적 내가 맡겨졌던 곳이었지요. 벽화당 두목이 그곳에서 아이들을 매입했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아이들을 산 뒤 도둑으로 만들었습니다.”

“공자님이 저번에 말씀을 하셨잖아요. 잘 알고 있어요.”

“두목은 탁아원의 책임자가 사촌인 남동생이라 했었습니다.”

“…….”

북소연도 함께 다녀와서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누군가 실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벽화당 두목이 사촌 남동생을 여자로 잘못 말할 리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진유가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물론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공자님이 오해를 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녀도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저, 그건…… 내 어릴 적 기억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쉽게 말해서 누군가 내 기억을 완전히 지운 듯해요.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놓은 듯 보입니다.”

“그런 게 가능한 일인가요?”

“……극일천이라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했다는 거죠?”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다만 확실한 건 극일천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북소연은 궁금한 게 있었다.

“혹시…… 예전의 기억들이 나는가요?”

“아직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완전하게 빠짐없이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군요.”

“아…… 네에.”

또르르르.

고진유는 술잔에 재차 술을 채웠다.

이번에는 서로 마주 보면서 나란히 술잔을 비웠다.

“당신이…… 만일 머릿속에 숨겨져 있던 기억이 다 떠오르면 지금까지 기억들은 사라지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두 개의 기억이 동시에 떠오른 건…… 흑귀들에게 잡히기 전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십오세 전인가 보네요.”

“맞소이다. 흑귀에 잡힌 뒤부터는 소저가 아는 기억이 전부입니다.”

흑귀에 잡히기 전까지의 기억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공자님. 생각이 안 날 때는 많은 것을 떠올리면 더 복잡해집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신다면 더 빨리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고맙소이다.”

고진유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잊힌 십오 세까지의 기억들.

희미한 안개 사이에서 한 명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녀다.’

자신을 보며 동생이라 했던 여인의 얼굴.

그녀는 정말로 자신과 아는 사이였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남매사이였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기억을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