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중년 사내는 돌아서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도 대단하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어머니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묻지 않았던 것이더냐?”
“…….”
“많이 궁금했을 텐데?”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알았지만 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원히 떠났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그녀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두 사람을 나에게 주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
‘두…… 명?’
중년 사내는 분명 두 명이라 말을 했다.
‘아…… 아…….’
휘청.
천화공녀는 순간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억이…… 나는 것 같아. 난 쌍…… 둥이었어…… 내게 동생이 있었어.’
그녀는 바닥에 앉은 채 망혼대법에 빠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우리…… 였구나. 동생과 함께 우리 둘이서…….’
스윽.
중년 사내의 손이 다가왔다.
“괜찮으냐?”
“…….”
천화공녀는 그의 손을 잡은 뒤 일어났다.
“아버지, 왜……?”
원망의 눈빛이 나왔다.
망혼대법을 왜 자신들에게 펼쳤는지 알고 싶었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 이번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지만 너희들도 원했던 것이었다.”
“…….”
자신들이 원했던 일이라기에 믿을 수 없었다.
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기억이 나지 않았다.
“쉬도록 해라.”
중년 사내는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먼저 자리를 떠난 뒤 방으로 들어갔다.
털썩.
그녀는 자리에 힘없이 앉았다.
잊고 있던 기억에서 자라나 점점 동생의 얼굴이 생각났다.
‘화산도협이…… 내 쌍둥이 동생이라니.’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 * *
고진유와 북소연의 발길은 어느덧 호남을 지나 광동성에 들어선 지 오주야가 지났다.
“여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잖아요.”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군요.”
그녀는 고진유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제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무작정 움직이는 게 아니죠?”
“후후후. 당신과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 같소이다.”
“……아니잖아요.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시면 안 되나요?”
처음에는 정처 없이 움직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와 함께 걸으면서 문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중간중간마다 만나는 길목에서도 고민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던 그의 걸음을 보면 처음부터 목적지가 있었음이 확실했다.
“휴, 알겠어요.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신과 같이 있으니 상관없긴 하죠.”
그녀는 어디에 간들 고진유와 함께하면 좋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쯤 두 사람은 연주로 들어섰다.
“소저, 혹시 배가 고프지 않소?”
“조금…… 허기가 지긴 하네요.”
“내 기억이 맞다면 얼마 머지않은 곳에 노점 객잔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한 그릇 먹고 가는 게 어떻겠소?”
“좋아요.”
고진유는 길을 걸으며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정정했던 분이신데…… 아무 일이 없을 거야.’
노점 객잔이 아직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에 여전히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반각이 지날 때쯤 역시 생각대로 노점 객잔이 나타났다.
‘여전히 정정하시군.’
노점 객잔의 길거리 주방에서 소면을 삶는 노파가 시야에 들어왔다.
단 하나의 가격표가 크게 적혀 있었다.
-동전 세 푼.
노점 객잔은 오로지 소면만 팔았다.
삼십여 명의 손님들이 간이 탁자에 붙어 앉아서 소면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 사이로 들어간 뒤 빈자리에 앉으면서 소면을 보았다.
“맛있는 모양인가 봐요. 손님들이 많네요.”
“맛없소이다. 그냥 싼 맛에 먹는 거죠.”
고진유의 말에 소면을 먹던 손님들이 고개를 돌려 노려보았다.
서너 명이 소면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이놈아…… 오랜만에 왔으면 조용히 먹고 갈 것이지, 요즘 싸움 잘한다고 자랑할 일 있냐?”
“아하하, 노파는 제가 누군지 아셨습니까?”
“그때도 똑같은 말을 하더만. 벌써 젊은 놈이 기억상실증이구먼.”
“그런 것 같습니다.”
“에라이…… 나이 많은 사람을 옆에 두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옆에는 색시냐?”
“네, 맞습니다. 예쁘지 않습니까?”
북소연은 그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예쁘기도 하지만 너를 택한 걸 보면 성격이 좋아 보인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북소연은 노파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서로 편하게 말을 하는 사이로 봐서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듯했다.
“무림맹주가 되었으면 큰일을 해야 할 녀석이 무슨 일로 여기에 왔지? 할 일이 없이 놀러 오지는 않았을 테고?”
노파의 목소리에 사방에서 목에 걸린 기침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무림맹주 화산도협 고진유.
연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이거 참. 놀랍네요. 여기서 소면만 파시는 줄 알았는데. 제가 무림맹주가 되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지나가는 사람마다 네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모르겠냐?”
“그런가요? 근데 그동안 소면 만드는 솜씨는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맛이 없는데.”
“뭣이 맛없다는 거냐? 그건 네 입이 고급이 돼서 그런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입맛에는 맛없어요.”
“……내가 네놈하고 말싸움하느니 그냥 앓는 게 낫겠다. 색시가 한번 먹어보고 말해 보슈.”
“아! 네, 네!”
후루룩.
북소연은 소면을 한입 먹은 뒤 노파를 보았다.
“맛있어요. 지금까지 먹어본 소면 중 제일 맛있는데요?”
“그렇지? 원래 저 녀석이 성격이 못나서 그래. 이놈하고 같이 산다면 색시가 앞으로 고생이 많겠구려.”
“호호호. 제가 잘 참아야죠.”
북소연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노파도 뭐…… 아니, 이만하면 제 성격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고진유가 얼른 반박을 하려고 했다.
“네놈은 그냥 먹기나 해라. 먹기 싫으면 그냥 이리 줘.”
“쩝…… 알겠어요.”
고진유는 소면을 다시 입에 넣을 때였다.
스윽.
고진유의 곁으로 웬 기척이 나타났다.
‘어?’
백의여인이 다가온 뒤 옆으로 바짝 앉았다.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본 고진유와 북소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가까이 다가온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백의여인은 미소를 띠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합석해도 되겠죠?”
“안 된다면요?”
북소연은 그녀를 째려보면서 반응을 보였다.
“동생, 나중에 후회할 텐데.”
“뭐라는 거야?”
“인상 쓰면서 말을 하면 피부가 나빠지잖아. 안 그래?”
“……!”
백의여인의 목소리에서 거부할 수 없는 무형기가 밀려 나왔다.
북소연이 받아내기에 무리였다.
스윽.
고진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무형기를 밀어냈다.
“소저, 합석하는 것은 좋으나 괜한 장난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죠. 동생.”
“……왜 우리를 보며 동생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내 동생이니까.”
“……?”
고진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 이해를 못 했다.
혹시 그녀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동생들은 어딜 가는 거야?”
“그걸 알아서 뭐 하게요?”
북소연은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하남에 있어야 할 사람이 광동까지 내려왔잖아.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어?”
백의여인은 분명 두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혹시…… 극일천에서 오셨소?”
“응. 맞아.”
“…….”
고진유는 웃는 얼굴로 순진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망설였다.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이오?”
“음…… 맞아, 동생에게 볼일이 있지. 아직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조만간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
북소연은 나란히 앉은 두 남녀를 보면서 그들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소연 동생은 그런 눈으로 안 봐도 돼.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거든.”
“……나를 알고 있나요?”
“당연히 잘 알지. 내 동생이 사랑하는 여자라고 소문이 자자하던걸.”
스윽.
백의여인은 볼일을 마쳤는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동생, 이제 가봐야겠어. 소연 동생이 자꾸 째려봐서 부담스럽네. 우리 나중에 봐.”
휘리리릭!
백의여인의 신형이 사라졌다.
고진유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지만 사라진 그녀의 기를 느끼지 못했다.
“대단한…… 여인이군. 도저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소.”
“엄청났어요…… 시선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움직이지 못할 것 같다니…….”
고진유는 그녀가 했던 말들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 * *
연주 마을로 들어섰다.
고진유는 마을에 들어오기 전 만났던 여인에 대해서 더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었다.
하지만 고진유와 달리 북소연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세요?”
“그렇소.”
“다른 것은 기억 잘하는 분이 그건 왜 기억을 못 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소저가 답답한 것만큼 저도 답답합니다. 뭐, 시간이 지나면 그녀에 대해서 기억이 나겠지요. 계속 신경 쓰면 우리 머리만 아픕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근데…… 진짜 웃긴 여자야. 기억 안 나면 가르쳐 주면 되잖아. 안 그래요?”
“보아하니 내가 스스로 기억을 해야 할 만한 일인가 봅니다. 그녀가 말해도 어차피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믿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긴 하네요.”
북소연도 결국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마을로 들어선 뒤, 두 사람을 서너 개의 객잔을 지나쳤다.
“혹시 찾는 객잔이라도 있어요?”
“여기에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를 만나러 갈 겁니다. 소저를 계속해서 객잔에서 지내게 할 수 없잖아요.”
고진유가 그녀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연주상단이었다.
정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라는 상단주 왕종의 뜻이었다.
고진유와 북소연은 정문으로 들어섰다.
“헉……!”
우삼은 장부를 들고 총관을 만나러 가는 도중 정문에서 들어서는 사내를 보았다.
그의 두 눈이 커졌다.
안으로 들어선 사내.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후다다닥!!
우삼은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내를 향해 소리치며 달렸다.
“화산도협님!”
“아하…… 누군가 했더니 인양이 친구 우삼이 맞지?”
“네. 그렇습니다. 우삼입니다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 고진유를 보면서 감동이 밀려왔다.
항상 고진유와 인양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랑하며 다녔다.
혹시나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잘 있나?”
“넵,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툭툭.
고진유는 그의 어깨를 대견한 듯 두드려 주었다.
“잘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인양도 잘 지내고 있습니까?”
“서로 다른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
“저도 그때 같이 갔으면…….”
“후후. 인양은 인양대로 우삼은 우삼대로 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는 거야. 물론 무림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우삼도 보기 좋아. 충분히 만족하면 살고 있지 않아?”
“넵. 맞습니다. 상단주님께서 잘해주십니다.”
“항상 내 것에 만족하면 돼. 남의 물건이 커 보인다면 나 자신을 망치는 것이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상단주님께 안내를 하겠습니다.”
우삼은 앞으로 나서면서 뒤에 북소연을 보았다.
“인양이 친구라고?”
“넵. 그렇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삼입니다.”
“반가워.”
* * *
왕종은 갑자기 찾아온 고진유를 보면서 맨발로 뛰어내러 왔다.
“아이고, 은공께서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언제든지 오셔도 됩니다.”
“고맙소이다.”
왕종은 함께 온 북소연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본 건 처음이지만 소문을 많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왕종이라 합니다.”
“반가워요.”
“안으로 드시지요.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왕종은 두 사람을 최고의 귀빈으로 대우하며 안으로 모셨다.
고진유와 북소연이 상단에 온 지 하루가 지났다.
두 사람은 후원의 금문당에서 들어선 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후원을 기웃거렸지만 그들은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상단의 사람들 몰래 빠져나간 뒤 연주 외곽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