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50화 (250/425)

250화

휙휙.

사내가 반갑게 팔이 빠지도록 흔들고 있었다.

“진유 형, 저기……!”

“맞는 모양이군.”

고진유는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알은척을 안 하면 몰라보겠어.”

그는 얼굴을 변용한 묵경이었다.

무림맹에서 심심하게 혼자 있을 때, 묵경은 한 장의 서신을 받았다.

보낸 이는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서신에는 글자의 부수들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었다.

묵경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비문을 보니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음…… 난 삼오칠이지.’

일렬로 나열된 부수들 중 세 번째, 다섯 번째, 일곱 번째에 나오는 부수들을 연이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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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부수가 나왔다.

‘좋았어.’

묵경은 석형산이란 글자를 만들어냈다.

“형, 왔어요?”

“모두 반가워. 내가 없으니 재미없었지?”

“네, 맞습니다. 묵경 형이 있어야 분위기가 사는데 조금 조용했습니다.”

묵경은 고진유와 인양, 녹림야검과 반갑게 안았다.

꾸벅.

그리고 무혼신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누님, 반갑습니다. 이번에 크게 한 건 하셨더군요! 무림맹에서도 난리가 아닙니다. 대체 남매가 어떻게 된 인물인지 엄청 궁금한 모양입니다.”

“후훗. 그러냐? 겨우 그 한 놈 때려잡았다고 난리라니. 그보다 더한 놈을 잡으면 천지개벽하겠는데?”

“하하하! 맞습니다.”

묵경은 따분했던 무림맹에서 벗어난 탓인지 목소리가 커졌다.

조용했던 분위기가 바로 바뀌었다.

묵경의 합류로 일행 중 가장 신난 사람은 인양과 녹림야검이었다.

두 사람은 고진유와 무혼신녀에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이 힘들었지?”

“아…… 네에…….”

인양은 슬쩍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크크크, 하긴 저기 누님과 진유 아우는 편하게 이야기하기 힘들지.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확인했냐?”

“헤헷, 네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야?”

“북경으로 갑니다.”

“어…… 왜 돌아서 가는 건데?”

“그게…….”

인양과 녹림야검은 소림사에서 일어난 일들과 무구천으로 가야 하는 이유까지 알려주었다.

“쯧쯧, 옛말이 틀린 게 없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깨끗한 물을 흐린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구먼.”

묵경은 뒤를 돌아 무혼신녀를 보았다.

“누님, 걱정이 많이 되겠습니다.”

“걱정까지는 아니고…… 화가 나는 것이지. 이상한 게 들어와서 집안을 거덜 내고 있으니 화가 안 나겠느냐?”

“맞습니다. 누님의 말씀이 백 번 천 번 옳습니다.”

“후후, 근데…… 너와 친우는 어떻게 그리 비슷하지?”

“……누구우울 말씀하시는 겁니까?”

“남궁세가의 그놈 있잖아. 후진이라고 하더군. 그 녀석도 만만치 않던걸.”

“아하. 하하, 그래도 제가 더 낫지 않습니까? 더구나 얼굴도 훨씬 잘생겼습니다.”

“그놈도 나를 보자마자 누님이라고 부르더구먼.”

“그 친구가 얼굴이 워낙 뻔뻔해서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놈이나 네놈이나 똑같다.”

“하하하하. 네에. 좋게 생각하겠습니다.”

묵경은 얼른 고개를 돌리며 다시 두 사람과 앞서 걸으면서 연신 수다를 계속했다.

“저 녀석이 오니 두 녀석이 활기가 있군.”

“그래서 부르지 않았습니까. 인양하고 녹검 씨가 힘든 것 같아서요.”

“그건 너 때문이다.”

“아닐걸요. 누님 때문입니다.”

휙.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묵경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죄송한데 둘 다입니다.”

* * *

산서성으로 들어선 지 이틀이 지났다.

중원에는 보이지 않는 눈들이 많았다. 언제 어디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예전과 달리 무림맹주와 친협의 존재는 중원 무림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최대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고진유는 마을을 넘어설 때쯤 이마에 작은 주름이 생겼다.

하루 전, 일행의 주위에 수상한 기운들이 나타났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을 봐서는 자신들에게 볼일이 있는 게 확실했다.

미행자들은 주위에서 완벽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고진유가 그들을 잡기 위해 움직이고자 하면 기척을 완전히 숨겼다.

쉽게 잡을 수 없는 뛰어난 신법을 지닌 게 틀림없었다.

‘어디에서 온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실력이 좋군. 하지만 더는 달고 다닐 수 없지.’

고진유는 미행자들을 정리하기로 결정 내렸다.

“묵경 형, 오늘은 여기에서 야숙을 해야겠어요.”

“야숙을? 그럴까? 오랜만에 분위기 좀 내보는 것도 좋겠군.”

미리 계획한 것처럼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은 야숙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녹림야검은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천을 펼친 뒤 낙엽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인양은 양손에 두 마리씩 산토끼를 잡고 있었다.

그동안 묵경은 잔가지들을 모아온 뒤 불을 피웠다.

슥슥.

마지막으로 고진유는 야숙할 자리 주위를 크게 돌아보면서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혼신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너희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예전부터 가끔 야숙을 할 일이 생기더군요. 몇 번 해보니 우리에게 최소로 필요한 것만 알아서 챙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오늘 저녁으로 산토끼 고기는 어떻습니까?”

“괜찮아. 난 음식은 별로 안 따지는 편이라서.”

“다행이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진유와 인양은 토끼를 가지고 잠시 사라졌다.

“묵경, 어디 가는 거지?”

“고기 손질하러 갔습니다.”

“여기서 안 하고 왜?”

“근처에 냇물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손질하면 피 냄새에 밤에 잘 때 귀찮은 놈들이 오거든요.”

“아…… 그렇구먼. 근데 진유가 고기 손질도 할 줄 아느냐?”

“후후후. 한번 드셔보십시오. 날마다 야숙하자고 할지 모릅니다.”

“설마…….”

* * *

산속의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모닥불 앞으로 모여 앉은 일행은 토끼 고기를 먹는 중이었다.

특히 무혼신녀의 손과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요리한 훈제 고기가 거의 사라져야 숨을 쉬는 듯했다.

산토끼 고기를 태어나서 이보다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었다.

“완전 대박인데…….”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쯧, 여기에 술만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고진유를 보았다.

“진유야, 담에도 시간 나면 야숙하는 게 어떠냐? 그때는 술도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그때는 한번 제대로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요리는 언제 배웠느냐?”

“어릴 때부터 혼자서 먹고 살다 보니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꽤 힘들게 자랐구나.”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 보면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양을 보았다. 그도 고진유와 비슷한 환경이었다.

“인양도 솜씨가 좋아?”

“형만큼은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먹을 정도는 할 줄 압니다.”

묵경이 입에 묻은 기름을 닦으면서 한마디 했다.

“누님, 고기는 진유 아우가 낫지만 볶음밥 종류는 인양, 이 녀석이 훨씬 맛있습니다. 한때 주방에서 보조까지 했답니다. 새 알로 만든 황금빛이 나는 볶음밥, 완전 끝내주는 맛입니다.”

“볶음밥을? 나…… 그거 완전히 좋아하는데.”

“누님, 제가 다음에 꼭 해드리겠습니다.”

“좋았어. 무조건 담에도 야숙이다.”

그녀는 배가 부르면서도 볶음밥 생각에 입에서 침이 생겨났다.

“녹아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전 먹는 걸 좋아합니다.”

“넌 산적이잖아. 산에서 사는 녀석이 원래 더 잘해야 하는 게 아니냐?”

“공녀님, 그게 아니라…… 지금 공녀님 앞에 계시는 두 사람이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가?”

“맞다니깐요. 계속 옆에서 보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보이시지만 이건 당연하게 아니고 특이한 것입니다.”

묵경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후후후, 누님. 녹검 씨의 말이 맞긴 합니다. 무공에다가 요리까지! 이 녀석들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흐흠, 그렇긴 하구나. 진짜 특이하긴 하지. 그리고 녹아하고 네놈도.”

“그건 누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풋. 하긴…… 우리가 이상한 게 맞군.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 없구나.”

무혼신녀도 인정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녀석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배도 부르니 움직여도 되겠죠?”

“좋아. 소화도 시킬 겸 움직여 보지.”

“주위에 진법을 펼쳐놓아서 우리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 잡으면 됩니다.”

“알겠다. 준비하고 있지.”

고진유는 야숙을 준비할 때 주위를 돌면서 진법을 설치했다.

야숙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진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

그래서 제갈양에게 소팔괘진법 중 연무진(煙霧陣)을 배워놓았다.

진법은 간단하면서도 어렵지 않았다.

그저 밖에서 진법 안이 보이지 않도록 안개로 가리는 정도였다.

그 정도만이라도 충분했다.

진법 안에서는 밖의 상황이 너무나 똑바로 보였다.

스으윽.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 주위로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척신단주 백종은 내력을 감추며 산속을 움직였다.

‘갑자기 향이 사라졌어.’

척신단이 쫓던 목표가 산에 들어오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흠…… 늦은 시간에 산을 빠져나갔을 리는 없지.’

그들이 움직일 방향으로 빠져나갔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분명 산에 있을 텐데. 이놈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군.’

백종은 척신단의 수하들과 함께 최대한 조심하면서 사방을 살폈다.

진법 안에서 척신단을 보는 일행은 좀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법 주위로 열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이제 그들의 신법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도망간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고진유가 주위에 펼쳐놓은 진법을 거두었다.

“이제 우리가 저놈들을 잡을 시간입니다.”

“좋았어.”

스르르르-

안개가 그치면서 눈앞으로 갑자기 사내들이 나타났다.

“허억……!”

백종은 모습을 드러낸 그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이런…… 진법이었어.’

그는 안개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면서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진법을 펼쳤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넌 어디에서 왔는가?”

“…….”

그의 눈앞에 선 여인.

처음 보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무혼…… 신녀.”

“내가 누군지 아느냐?”

“…….”

백종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당황한 그와 달리 무혼신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나왔다.

“이것들이 누군가 했더니…… 극일천이 아니라 무구천에서 나온 놈들이었군.”

‘들켰다…….’

척신단이 강한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기습이 아닌 이상 무혼신녀와 맞상대를 하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으악!”

“커어어억…….”

‘벌써?’

싸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근데 이미 수하들이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척신단이 살수이지만 강하다고 믿었다.

‘이들이 없는 틈을 노려 무혼신녀를 상대했어야 했다.’

수하들이 상대하는 인물들은 중원 최고의 무인들이었다.

‘너무 얕잡아 봤어.’

털썩.

척신단의 수하들이 연이어 허공을 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수하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혼신녀의 살기가 느껴졌다.

‘우욱…… 움직일 수 없어.’

무구천에서 오무천자의 위상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하나 척신단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무구천의 인물에게는 특유의 향이 있었다.

입단 시 복용하는 산공무기에서 나오는 고유의 향.

척신단은 변절자를 처리하는 임무를 지녔기에 그들이 어디에 숨은들 찾아낼 수 있었다.

척신단의 무인들은 특별한 환단을 복용한다.

무구천의 인물이 척신단의 전신에서 흐르는 향을 맡게 되면 산공무기의 영향을 받게 되어 몸속에 산공의 효능이 퍼져 나간다.

오무천자인 무혼신녀라 해도 별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네놈들은 척신단인가 보군.”

“…….”

“이런 멍청한 놈아. 내가 복용한 산공무기의 효과가 백 년을 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향이 미세하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미 효능은 전부 사라졌어.”

백종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녀의 향이 여전히 흐르고 있어 산공무기의 효능이 유지될 줄 알았다.

“천주가 네놈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몰라도 오무천자를 죽이고자 한다면 네놈도 목숨 정도는 걸어야지?”

“극일천…… 의 간자라 했습니다.”

백종은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년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습니다.”

“아니라면?”

“…….”

백종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림맹주와 함께하는 사이였다.

‘이상…… 하긴 했다. 극일천의 간자라면 맹주와 함께 지내지 않을 터…….’

극일천과 원수인 무림맹주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었다.

‘멍청한 짓을 했다.’

천주의 말만 믿고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백종은 그 자리에서 부복을 했다.

“무혼신녀님, 죄송합니다. 제가 똑바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에게 천주님의 명을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를 죽여주십시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서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 똑똑하군.”

“…….”

툭, 툭툭.

그의 앞으로 세 개의 신패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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