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49화 (249/425)

249화

공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내기가 충만해졌다.

“본승의 무공은 백보신권이외다.”

우우우웅-

그는 기마보의 자세를 취하며 금방이라도 출수할 준비를 마쳤다.

무림일절이라 일컫는 소림사의 백보신권.

중원 무림인이라면 백보신권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강맹한 권공.

고진유도 집중하며 공문을 자세히 보았다.

“백보신권이라…… 궁금했는데 드디어 보게 되네요.”

“겁나는 무공이지. 아마 위력적인 부분에서 백보신권은 소림사의 최고 무공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무혼신녀 또한 백보신권의 강함을 인정했다.

공문의 손이 움직이면서 백보신권을 펼쳤다.

슈우우우웅.

인양의 눈앞으로 백보신권의 권강이 다가왔다.

‘위력이 강하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실제 싸움이 아니라 비무다.

‘앞으로 많은 싸움을 겪으면서 피할 수 없을 경우가 생길지도 몰라. 이럴 때 내 무공이 어느 수준인지 알 필요가 있어.’

인양은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펼치고자 결심했다.

전신의 내력을 단전에 집중하며 모았다.

‘하나의 구결로는 백보신권을 이길 수 없어. 한번 해보는 거야.’

화산복호권 세 개의 구결 풍강벽(風剛劈)을 동시에 펼친다.

한 초식에 하나의 구결로 무공을 펼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인양은 상식을 무시했다.

‘형이 가르쳐 준 대로 한다면……!’

그동안 수련하면서 두 개의 구결까지 동시에 운용해 보았다.

세 구결은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기에 쉽게 펼칠 수 없었다.

‘이게 안 되면 죽는 거야.’

인양은 이를 악물고 풍강벽의 세 구결을 외우며 화산복호권의 가장 강한 초식 만강호천을 펼쳤다.

구구구구구-

인양의 손에서 뻗어 나간 일권에서 허공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그건 분명 비정상적인 소리였다.

고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군. 또 하나의 벽을 부쉈구나.’

인양과 공진의 삼 초 비무는 일 초 만에 끝이 났다.

백보신권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펼친 화산복호권.

공문은 참지 못하고 전신이 파르르 떨리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에 반해 인양은 그대로 선 채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거…… 참.’

공문은 허탈했다.

백보신권이 이렇게 나가떨어질 줄은 몰랐다.

더구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대가 피하지 않고 상대를 해주었다.

높다고 생각했던 내력도 그와 차이가 없었다.

그는 툭툭 먼지를 털면서 일어났다.

“아미타불…… 권협, 좋은 비무를 했소이다.”

“전주님, 저도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방금 보여준 권공은 화산파의 화산복호권이 정말 맞소이까? 어떻게 익혔소이까?”

“네. 진유 형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 무공의 스승이십니다.”

“그렇군요.”

두 사람은 서로 의형제라 하나 권협은 무공을 무림맹주에게 직접 배운 제자이기도 했다.

의제권협이 무림에서 강한 이유를 알 듯했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비무를 다시 가져도 되겠소이까?”

“네.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고맙소이다. 의제권협께서는 무림의 영웅이 되실 것이외다.”

공문은 미래의 무림영웅에게 합장을 했다.

* * *

무림맹주 고진유의 일행을 중원 무림에서는 친협이라 부른다.

그리고 중원에 친협이 한 명 더 나타났다.

무림맹주 고진유의 누나로 알려진 여인.

중원오협의 검류화협을 일 초식만에 꺾은 그녀를 중원인들은 무선여협(武仙女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친협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의제권협 인양의 무공도 대단했다.

홀로 금강십팔나한들과 싸워 이긴 데다 금강전주 공문과의 비무에서 일 초식만에 그를 꺾었다.

중원 무림에서 친협들을 무적협천인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듯했다.

나한전과의 비무가 있던 오후.

방장 공허는 지객당으로 고진유를 만나기 위해 들어섰다.

그는 일행과 마주 서며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쉬고 계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소이다.”

“아닙니다. 들어오시지요.”

공허는 지객당실로 들어서면서 한 명씩 시선을 마주했다.

두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

‘맹주가…… 나이가 많다고 했거늘…….’

고진유가 미리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십 대 후반의 젊은 여인으로 착각했을 것이었다.

그는 무혼신녀를 보면서 도저히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방장 공허라 하외다. 여협을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반가워.”

‘흐읍.’

그녀의 대답에 공허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산 아래에서 방금 여협에 대한 소문이 올라왔소이다.”

“내 소문이 났다고?”

“그렇소이다. 무선여협이라 부른다고 하더이다.”

“무선여협……? 나쁘지 않아. 마음에 들었어.”

인양과 녹림야검도 얼른 한마디 했다.

“딱 누님에게 맞는 별호인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별호에 느낌이 팍 옵니다.”

무혼신녀는 두 사람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흐음. 정말로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인가?’

공허는 그녀를 보면서 믿기지 않았다.

“방장은 나를 왜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내가 이상해 보이는 모양인가 보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생각보다 나이가 적게 보이는 모양인가 보군.”

“…….”

그녀가 말하는 모양새는 분명 나이가 많아 보였다.

“후훗. 방장 사부가 누구지? 아니, 조사부가 누구인지 물어보는 게 좋겠군.”

‘조사부까지 올라간다고?’

농담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조차 없었다.

하지만 무림맹주가 보는 앞이기에 정중하게 그녀를 대하였다.

“유종 조사부이십니다.”

“유종? 유종 조사부라면…… 혹시 왼쪽 귀밑에 세 개 점이 있던 분이신가?”

“…….”

“아마 소림에서 그분을 삼점이불(三點耳佛)라고 한 것 같은데…….”

공허의 눈이 커지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그 시대의 인물 외에는 없었다.

젊은 여인이 절대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무혼신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고인을 뵙습니다.”

“됐어. 방장. 그냥 앉아라.”

공허는 시선을 돌려 고진유와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는 궁금증이 한가득했다.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방금 방장이 말하지 않았는가?”

“아…… 무선여협님.”

‘사람이 이렇게 오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니. 주안술은 분명 아니거늘.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기에 아직도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지 모르겠군.’

공허는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녀를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분명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무선여협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예전의 별호가 있으십니까?”

“무슨 오래된 일을 꺼내고 있어. 꼭 나이 많은 티를 낸다니까.”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죄송할 건 없지. 내 입으로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흐음…… 제갈문이 내 조카다.”

“……!”

제갈문이 누군가.

무림맹의 군사였던 천하제일뇌 제갈문이 조카라니.

공허는 빠르게 무림사에 대한 기억을 떠올랐다.

그리고 한 명의 여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공허의 눈이 다시 한 번 더 커졌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머리는 좋구나. 바로 알아보네?”

눈앞에 선 그녀는 멸봉자가 아닌가.

공허는 더욱더 공손하게 물었다.

“본 사에 오신 볼일을 보셨습니까?”

“방장 덕분에 마무리를 잘했다. 잘 쉬다가 가네.”

“벌써 가시려고 하십니까?”

“방장이 아쉬워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좀 바쁜 사람이라서.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한 번 더 놀러 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항상 무탈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방장이 빌어준다면 더 오래 살겠구만.”

공허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 * *

천주 도해령은 하남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았다.

독기 어린 눈빛이 순간 나왔다가 사라졌다.

도제와 검류화협까지 그들에게 당했다.

계획이 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되면 쉽게 쫓아낼 수 없겠어.’

지금쯤이면 소림사에서 금강불성을 만났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를 만났다고 해서 무구천에서 무혼신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할 수 없군. 쫓아내지 못한다면 죽일 수밖에…….’

천주 도해령은 다른 방법을 준비해 놓았다.

‘그녀를 극일천의 간자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군.’

극일천의 간자란 증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천문전주 나하중과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밝힌다면 무구천의 인물들은 분명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무혼신녀의 무공이었다.

그녀의 무공은 검류화협이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과연 무구천에서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무인이 있을까.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그들이 있었다.

“척신단.”

도해령은 척신단을 생각했다.

무구천의 배신자를 척결하는 임무를 지닌 열 명의 살수들.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이들이라면 충분히 그녀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짝짝.

그녀는 손뼉을 쳤다.

곧바로 문이 열고 들어선 중년 사내, 무구수호군장 장전은 허리를 숙였다.

“천주님, 부르셨습니까?”

“잠시 외부에 다녀오겠네.”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다녀올 일이 있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에서 멀리 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천주 도해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무구천을 나서는 경우는 몇 년 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스르르-

진법을 통과한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전까지 보였던 무구천은 사라지고 골목이 나타났다.

‘가볼까?’

휘이익!

그녀는 신법을 펼치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북경 최고의 객루 중 한 곳인 북경루에 들어선 여인.

무구천주 도해령은 계단을 오르며 오 층으로 곧장 올라섰다.

“어서 오십시오. 루주님.”

“백 총관, 오랜만이군.”

“이 년 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던가.”

총관 백종은 앞장서며 황금색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녀는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며 익숙한 듯 백색의 털로 덮인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요즘 많이 바쁘신 듯하십니다.”

“극일천 놈들이 날뛰니 어쩔 수 있겠나? 무구천의 주인으로서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지.”

백 총관의 옆으로 시녀가 다가왔다.

“루주님, 한 잔 드시지요.”

그는 시녀가 들고 온 황금 잔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벌컥벌컥.

천주는 소리를 내며 단 한 번에 마셨다.

“하수오를 달인 탕약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구천에 보내고자 준비했던 것입니다.”

“내 몸을 생각해 주는 인물은 백 총관밖에 없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어쩌면 간단한 문제이기도 해.”

“저희 척신단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 귀찮겠지만 자네들이 조용히 처리할 문제라네.”

그녀의 말에 백종의 표정이 굳어졌다.

척신단이 움직인다는 의미는 무구천에서 누군가를 쳐내겠다는 뜻이었다.

스윽.

그는 시녀에게 손짓을 하며 물러가도록 했다.

백종은 북경루의 총관이 아닌 무구천의 척신단으로 돌아왔다.

“천주님, 누구를 쳐야 합니까?”

“무혼신녀를 없애야겠네.”

“……!”

백종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그녀가 원한 인물이 무혼신녀가 확실했다.

“그분은…… 오무천자가 아닙니까?”

“오무천자가 아니다. 정말로 오무천자였다면 천주인 본녀의 말을 거역해서는 안 되지. 근데 그녀는 도제와 검류화협과 싸워 죽이고자 했다.”

“……그들이 싸웠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무혼신녀는 천주의 명을 거역했다.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가 예전에 사귀었던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가?”

“누구입니까?”

“극일천의 천문전주 나하중이다.”

“그…… 무혼신녀가 배신자라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많기에 잡고자 했다.”

“무혼신녀에게 명을 내려 보셨습니까?”

“말을 듣지 않았다.”

“거부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맞다. 그는 천주인 본녀의 명을 분명히 거절하는 행동을 했다. 그렇다면 천주인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천주 도해령이 원하는 건 무혼신녀의 죽음. 척신단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척신단이 움직인다는 의미는 죽이는 것입니까?”

“무구천의 배신자는 죽여야 한다. 앞으로도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천주의 명을 무시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 하겠지.”

“알겠습니다. 천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백종은 포권을 했다.

천주의 명을 거역할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 * *

숭산을 내려온 후 일행은 신형을 감추며 하북으로 방향을 돌렸다.

무혼신녀는 무구천으로 올라간 뒤 천주 도해령을 잡을 계획이었다.

무림맹이 있는 형양을 지나가는 길이지만 비밀리에 움직이는 탓에 들를 수 없었다.

하북성의 북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양을 지나서 하북성으로 들어가는 길이 일반적이었다.

하나 고진유는 산서성을 통해 하북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누님, 하북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보다 산서성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늦지 않을까?”

“북경에 도착하는 시간은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영향은 없을 겁니다. 다만 산을 넘어야 해서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음……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동생이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일행은 산서성 접경 지역의 북쪽 마을 중참현으로 향했다.

무혼신녀도 조금 늦기는 하지만 고진유의 우회하는 방법을 따랐다.

그들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혼신녀의 목표는 무구천의 무인들이 아닌 천주 도해령.

천주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는 무구천의 인물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다.

산서의 석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석형산을 넘어야 했다.

앞장서던 인양의 얼굴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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