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48화 (248/425)

248화

지객당에 들어선 고진유는 잠시 후 무혼신녀와 함께 다시 나섰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금강전이었다.

슥슥.

동자승이 자신보다 큰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수고가 많습니다.”

“앗……!”

동자승은 빗질을 멈추고 금강전으로 들어선 두 명의 남녀를 보았다.

고진유는 동그란 머리가 귀여워 미소를 지었다.

“바닥이 아주 깨끗한걸요.”

“전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귀한 손님께서 오신다고 했습니다.”

동자승은 작은 손으로 합장을 하며 대답했다.

“귀한 손님이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무림맹의 맹주님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본도가 맹주입니다만.”

“……!!”

동자승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진유를 얼굴을 보았다.

“본도의 얼굴이 이상합니까?”

“그게 아니라…… 너무 젊으셔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자승은 고개를 숙였다.

어린 나이의 동자승은 맹주라 하면 나이가 많은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소이까?”

“넵! 전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맹주님께서 오신다면 안으로 들여보내라 하셨습니다.”

“후후후.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동자승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멋진 분이시다.’

안으로 들어간 고진유를 보면서 동자승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금강전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관음상 앞에 정좌를 한 승려를 보았다.

스윽.

그는 정좌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 척 이상의 장신으로 어깨에 두른 가사가 짧게 느껴졌다.

그가 긴 허리를 숙이며 합장했다.

“맹주, 오셨소이까? 소승은 공진이라 하외다.”

“금강불성이신 공진대사를 처음 뵙습니다.”

두 사람의 인사가 간단히 끝나자 무혼신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이번에도 먼저 공진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시지요. 무혼신녀님을 뵙습니다.”

“호오, 나를 바로 알아보는군.”

“어찌 무혼신녀님을 몰라볼 수 있겠습니까?”

“내가 누군지 안다면 이야기하기 쉽겠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맙군. 안내해라.”

금강불성 공진은 그녀의 반말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공진은 앞서 걸으며 금강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두 사람이 찾아올 줄 예상했는지 탁자 위에 세 개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음…… 고맙기는 한데 난 술이 더 좋구나. 하긴 절에 무슨 술이 있겠냐마는.”

“다음번에 방문하신다면 준비해 놓겠습니다.”

“글쎄다. 다음에 여기에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후후후.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공진은 앉은 자세에서 긴 팔을 뻗으며 차를 따랐다.

“어제 숭산 아래에서 올라온 소식을 들었습니다.”

“빠르기도 해라.”

“검류화협을 잘 만나보셨습니까?”

“만나기는 했지.”

“실망하신 것 같습니다.”

“쯧쯧,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그런 놈을 전인으로 삼은 놈에게 실망했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네가 변명 안 해도 돼.”

스으윽.

공진은 다관은 옆으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한잔 드셔보시지요. 향이 좋을 것입니다.”

“잘 마시겠네.”

무혼신녀는 찻잔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졌다.

그녀는 향을 음미한 후 맛을 느꼈다.

“흐음…… 나쁘지는 않군.”

“제가 보기에 천주께서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한 게 아니라 실수를 했어. 말을 똑바로 해야지.”

“죄송합니다. 실수를 했습니다. 무혼신녀님을 저희와 같은 오무천자로 보셨더군요.”

“역시 수양을 많이 한 자네가 조금 낫군.”

“천주가 한 실례에 대해서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됐어. 뭘 자꾸 사과한다고 하는 겐가. 자네가 할 필요 없다. 그 녀석들 문제이지. 도제, 그놈도 똑같아. 연륜이 제법 쌓였을 텐데 상황을 똑바로 주시 못 하는 걸 봐서는 전부 같은 녀석들이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이미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을 내린 듯 보였다.

“무혼신녀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답은 나와 있을 텐데.”

“…….”

“천주, 그년을 내려야 무구천이 똑바로 된다고 본다, 아니 그런가?”

“천주를 내린다고 하셔도 방법이 있습니까? 본 천에서 천주의 명은 절대적이지요. 무혼신녀님의 신분을 알게 된다고 해도 무구천의 인물들은 결국 천주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넌?”

공진은 그녀의 물음에 잠시 멈칫거렸다.

무구천에는 천주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힘이 없다.

예전부터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혼신녀는 두 명의 오무천자와 싸웠다. 천주의 명을 받은 그들과 싸운 그녀의 행동은 문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무구천의 인물은 오무천자라 해도 천주의 명을 받은 자와 싸울 수 없었다.

무혼신녀는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무구천을 떠나실 생각이라면 가능하지만.’

하나 그녀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천주를 내리고자 했다.

그렇다면 무언가 자신이 있다는 것인데…….

“쯔쯔. 세속인처럼 어떤 것이 유리한 지 따지고 있는 것인가? 네놈도 갑자기 별 볼 일 없는 놈이라 생각되는군.”

“죄송합니다. 전 무혼신녀님을 따르겠습니다.”

“빨리도 결정하는군. 여하튼 나를 선택하겠다고 했으니 네놈의 신패를 줘봐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년의 머리끄덩이를 꽉 잡고 천주에서 내려야지.”

“…….”

“탄핵을 할 것이다.”

천주에 대한 탄핵이란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탄핵을 할 수 있습니까? 무구천에는…….”

무구천에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왜. 하지 못할 것 같으냐?”

“천주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서는 강제가 아닌 명확하게 법제화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무구천의 인물들이 수용할 것입니다.”

“훗. 네가 말하는 그것이 법제화가 되어 있다면 괜찮은 건가?”

“그렇습니다. 제가 무구천의 법천입니다.”

“알겠네. 바로 보여주도록 하지.”

무혼신녀는 허리에서 신패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바닥보다 한 배 반 정도 큰 신패였다.

무혼신녀의 오무신패.

그녀는 신패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뒷면을 읽어보도록 해라.”

스윽.

공진은 그녀가 말한 대로 신패를 돌려 보았다.

자신의 오무신패와 달리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안력을 높여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분의 패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니…….’

이건 본인 외의 오무천자들도 모르고 천주조차 알지 못할 게 분명했다.

만약 천주가 알았다면 절대로 무혼신녀를 깨우지 않았을 것이니까.

‘천주가 제 무덤을 팠구나.’

그가 본 신패의 뒷면에는 오무신패 중 절반을 모으게 된다면 천주를 탄핵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냐.”

공진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관음상에 다가섰다.

스윽.

관음상을 든 공진이 아래에서 그의 오무신패를 꺼낸 뒤 가지고 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다. 잘 사용하고 나중에 돌려주도록 하지.”

그녀는 두 개의 신패를 모았다. 아직 절반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신패가 더 필요했다.

“무혼신녀님, 아직 하나가 더 부족합니다. 도제와 검류화협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천주가 만나기 전에 유하랑 님을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만날 필요 없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신패는 절반인 세 개가 있어야 한다고…….”

스윽.

옆에 앉아 있던 고진유가 가슴 품 안에서 오무신패를 꺼냈다.

“제가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맹주가 왜?”

고진유는 궁금한 눈빛을 보내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누님에게 이 사실을 들은 후 검류화협과 마주쳤을 때 슬쩍했습니다. 제가 한때 무영도수로 날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 솜씨가 죽지 않았더군요.”

“…….”

검류화협의 오무신패였다.

무혼신녀는 세 개의 신패를 가리켰다.

“어쨌든 세 개만 있으면 된다. 그놈이 안 줬다고 해도 난 받았다고 우기면 되잖아. 안 그러냐?”

“허허허…….”

공진은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무림맹주가 소매치기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그 녀석은 신패가 없어져도 별 신경을 안 쓸 거야. 그게 뭔지 모르니깐. 뭐, 나중에 잊어버린 신패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안다면 난리가 나겠지.”

“바로 본 천으로 가실 것입니까?”

“시간을 끌면 안 될 일이야. 그년이 어떤 일을 할지 모르니 빨리 손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본 천의 일은 여기 동생들이 같이 있으니 괜찮다. 넌 소림사에서 밀승들이나 잘 살펴보아라. 극일천의 간자일 확률이 매우 의심스러워.”

“그렇지 않아도 밀승들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극일천의 간자가 맞다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계속 수고 좀 해주게. 우린 그만 일어나야겠다.”

공진은 두 사람을 밖으로 안내했다. 그는 고진유를 보며 합장을 했다.

“무혼신녀님을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히 제 누님이십니다.”

“고맙소이다. 아미타불.”

* * *

부우우웅-

소림의 강권이 바람을 가르며 인양의 얼굴 앞을 지나갔다.

의제권협 인양의 명성에 도전한 소림사의 제자들이었다.

인양의 주위로 열여덟 명의 나한들이 나한진을 펼치며 움직였다.

반시진 전.

인양은 새벽부터 들려온 기합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기합 소리는 지객당과 가까운 나하전에서 수련하는 소리였다.

예전부터 소림사의 무공이 어떠한지 궁금했던 인양은 수련하는 소리를 따라서 나한전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나한전이구나.’

소림사의 금강십팔나한에 대해서 많은 소문을 들었다.

황보세가의 권공도 강하지만 중원최고의 권공을 논할 때 소림사의 권공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함부로 타 문파의 무공을 훔쳐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묵경에게 배웠다.

‘아쉽네. 혹시나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담 안에서 들려온 소리가 궁금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나한전으로 다가오는 승려와 마주쳤다.

“시주는 누구시오?”

인양은 그를 향해 얼른 합장을 했다.

“무림맹주와 함께 온 인양이라 합니다. 수련하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인양이라고 하면…….’

“그대가 맹주의 의제인 권협이오?”

“네, 맞습니다.”

“흐음…… 근데 왜 돌아가는 것이오?”

“타 문파의 무공 수련을 함부로 보는 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몰래 보려고 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본사의 무공이 궁금한 모양인가 보구려. 같이 들어가시지요.”

“정말입니까?”

인양의 환한 얼굴을 보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괜찮소이다. 본승이 이곳의 전주이외다.”

그는 나한전주 공문이었다.

인양과 십팔나한들이 비무를 한다는 소문이 지객당에도 빠르게 전해졌다.

녹림야검은 이미 나한전으로 달려가 사라졌다.

“진유 아우, 우리도 구경 가볼까? 재미있겠어.”

“네. 그렇게 하시죠.”

고진유와 그녀가 나한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무가 시작된 뒤였다.

“녹검 씨, 어떻게 되고 있어?”

“지금 나한진으로 인양 아우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진법으로 상대하는 게 처음이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도 잘 피하고 있군.”

고진유는 나한진에 갇혀 움직임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점점 여유롭게 피하고 있는 인양의 모습을 보았다.

‘휴우…… 이젠 눈에 보이네.’

처음과 달리 나한들의 공격을 피하는 데 여유가 생겼다.

호충신법이 아니었다면 나한진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반면 나한전주 공문의 표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하게 변했다.

‘십 초식을 펼치는 사이에 나한진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인양과 비무를 겨루고 있는 십팔나한들은 도자배의 제자들이 아닌 공자배의 일대제자들이었다.

소림사 최고의 금강나한들이 비무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타앗!

인양은 전방을 향해 신법을 펼치며 움직였다.

‘자축(子丑) 방향에서 들어오겠지?’

인양의 예상대로 두 명의 나한이 천답지무와 산운장천의 초식으로 권풍을 쏟아냈다.

휘리릭!

인양은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권풍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 양손에 화산복호권의 설원호보(雪原虎步)의 초식을 뿜어냈다.

퍼어어억-!!

두 명의 금강나한들이 공중으로 날아간 뒤 바닥에 쓰러졌다.

두 명의 이탈로 십팔나한진이 무너졌다.

움직임이 편해진 후 족쇄가 풀린 듯 호충신법을 펼치자 나머지 나한들은 어떻게 어디에서 당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쉬이이익-!

바람 소리와 함께 그들의 얼굴에서 멈춘 인양의 손.

금강십팔나한의 완벽한 패배였다.

공문은 잠시 멍하게 앞을 볼 뿐이었다.

‘의제권협의 무공이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인양은 공문의 앞으로 다가섰다.

“전주님,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역시 소림사의 나한진은 무서웠습니다.”

“허허허. 남들이 들으면 우리가 이긴 줄 알겠소이다.”

“비무라고 해서 저에게 사정을 봐주신 게 아닙니까. 고맙게 생각합니다.”

공명은 예의가 바른 인양이 마음에 들었다.

“권협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본승과 삼 초의 비무를 해보지 않겠소이까?”

“공명 전주님과 말씀이십니까?”

인양은 시선을 돌려 고진유를 보았다.

혹시 괜히 일이 커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고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했다.

“알겠습니다. 삼 초의 비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십팔나한들이 빠르게 연무장에서 물러났다.

인양과 공문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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