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붉은색 가사를 두른 노승이 합장하며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아미타불. 무림맹주께서 친히 본 사에 방문하셨소이다. 본승은 지객당을 맡은 공월이라 하외다.”
“공월대사이시군요. 고진유라 합니다. 처음 뵙습니다.”
고진유도 그에게 포권을 했다.
소림사로 찾아오는 빈객들을 맞이하는 그이기에 항상 웃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숭산 아래의 객잔에서 무림맹주에 대한 소문이 났다.
하루가 지난 뒤이니, 소림사에서 그 소문을 듣지 못할 리 없었다.
혹시 모를 무림맹주의 방문에 산문에서부터 숭산을 오르는 일행을 확인했었다.
고진유도 주위에서 그들의 시선을 느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다만 지객당주가 미리 나와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림맹주의 신분은 정파무림에서 최고의 인물.
소림사의 위명이 높다고 하지만 무림맹주의 위명 또한 높았다.
무림맹주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주급의 인물이 마중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지객당주 공월은 고진유와 함께 온 세 사람에게도 간단히 합장을 보았다.
“세 분 시주들께서도 본 사에 잘 오셨습니다.”
일행과 짧게 인사를 나눈 공월은 경내 안으로 가리켰다.
“본 사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본승이 안으로 안내하겠소이다.”
“고맙습니다.”
공월와 고진유는 나란히 걸었다.
“맹주께서는 본 사가 처음이신지?”
“항상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본 사의 첫 느낌은 어떠한지 궁금하외다.”
“소림사의 정문에 도달한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미타불. 마음이 편안하시다니 맹주의 마음에 불성이 존재한 모양이외다.”
“후후. 본도는 화산의 제자이지 않습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부처님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요.”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혹시 기회가 되시면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진유는 가볍게 포권을 했다.
‘오호…… 맹주는 무공만 강한 게 아니구나. 상대에 대해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 다르도다. 화산에서 대단한 인물을 배출했어. 무림의 홍복이로다.’
공월은 살짝 부러워졌다.
그와 함께 가는 앞에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관문 위로 편액이 걸려 있었다.
‘천하제일조정이라…… 소림사는 충분히 자부심이 묻어 나올 만하다.’
고진유는 소림사이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천하제일조정을 통과하자 소림사의 심장인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본 사의 대웅보전이외다.”
고진유는 손바닥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우선 본 사의 방장께서 여러분들을 지객당으로 모시도록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참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월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따라오시지요.”
고진유와 세 사람은 그를 따라 지객당으로 안내를 받았다.
“맹주께서는 불편한 것이 있으시면 지객당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 될 것이외다.”
“알겠습니다.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방장실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소이다. 잠깐만이라도 편히 쉬도록 하시지요.”
공월은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방에서 물러났다.
지객당의 내부는 사찰의 분위기와 조금 달랐다. 일반객들이 편안하게 지내도록 속세의 분위기처럼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침상 또한 고급 객실에 놓인 것처럼 푹신했다.
녹림야검은 침상에 털썩 누웠다.
“소림사라고 하면 원리 원칙에 꽉 막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대부분 녹검 씨처럼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선입견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죠. 녹림도 마찬가지잖아요. 얼굴에 털이 시커멓게 달린 사람만 보면 산적 같다고 하지 않나요?”
“으으, 맞습니다. 실제로 산채에 가보면 그런 놈들은 겨우 한두 명밖에 없습니다.”
녹림야검은 말을 하면서 괜히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무혼신녀가 말했다.
“원래 산적은 산적처럼 생겨야 제 맛이다. 너무 말끔하면 재미없잖아. 안 그러냐?”
“후후후. 누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의복도 때와 장소에 맞게 차려입듯이 하는 직업에 따라 복장과 그에 맞는 용모를 맞추는 게 맞겠지요. 소림사 승려들이 도복을 입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진유 동생 말이 맞아.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거늘. 여기서 괜한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는 것이지. 무구천처럼…….”
무혼신녀는 여전히 무구천의 변화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의 성격으론 완전히 엎어버리지 않고서는 화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누님,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들은 누님에게 혼이 날 것입니다.”
“아…… 알겠다. 내가 또 성급하게 생각한 모양이군.”
무혼신녀는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단번에 그녀의 기분을 알아차린 고진유는 그녀가 흥분하지 않고 곁에서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주었다.
“누님, 우선 금강불성을 만나본 뒤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동생 말대로 하마.”
“금방 연락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쉬고 계세요.”
* * *
지객당에 들어선 지 이각이 지나갈 때였다.
공월이 문밖에서 기척을 냈다.
“맹주,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들어오시지요.”
공월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젊은 승려와 함께했다.
“맹주, 여긴 본 사의 삼대 제자인 명소라 하외다. 인사를 드리거라.”
“맹주님을 뵙습니다. 명소입니다.”
그는 고진유를 보며 합장을 했다.
무심한 표정처럼 목소리 또한 딱딱하게 들렸다.
“반갑습니다. 명소 스님은 과묵한 편이시군요.”
지객당주 공월이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이 녀석의 별명이 무소승(無笑僧)일 정도이지요. 화가 난 게 아니니 오해를 안 했으면 하외다.”
“그렇군요.”
“맹주께서는 여기 명소와 함께 방장실로 가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잠시만.”
고진유는 따라나서기 전 그와 시선을 마주친 뒤 양해를 구했다.
무혼신녀에게 돌아섰다.
“누님, 소림사 방장님을 뵙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편히 쉬고 계세요.”
“알겠어. 다녀와.”
지객당 밖으로 나선 뒤 명소의 뒤를 따라 방장실로 향했다.
경내를 지나면서 많은 소림사의 승려들과 마주쳤다.
명소의 뒤를 따르는 고진유는 보통 청년이 아니었다.
무림인에게 하늘과 같은 존재인 무림맹의 맹주가 바로 그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며 맹주에 대한 예를 보여주었다.
고진유도 그들의 인사에 바로 포권을 했다.
앞서가던 명소는 그 모습을 보면서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겨우 약관의 나이에 맹주가 되었다고 해서 어느 정도 거만할 것으로 생각했거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 명씩 인사를 받아주는 모습에 조금 전까지 그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지웠다.
방장실에 가까워지면서 명소는 또 한 번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방장님께서…….’
문 앞에 방장 공허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이었다.
‘그래. 무림맹주의 신분이니깐.’
그는 뒤에 자신이 모시는 인물이 젊은 청년이 아니라 무림맹주라는 사실을 다시 인지했다.
공허는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고진유 앞에 멈춘 그가 합장했다.
“아미타불. 방장 공허가 무림맹주를 뵙소이다.”
“방장님께서 직접 나와주시니 저 또한 영광입니다. 고진유라 합니다.”
고진유도 두 손을 올려 정중하게 인사했다.
“명소는 수고했다. 그만 물러가도 좋으니라.”
“알겠습니다.”
명소는 그대로 방장실에서 물러났다.
스윽.
공허는 한 손으로 안을 가리켰다.
“맹주,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겠소? 아니면 정자에 오르시겠소이까?”
“오늘 날씨가 좋지 않습니까. 밖이 더 좋겠습니다.”
“본승도 맹주의 뜻과 같소이다.”
공허는 앞장을 서며 후원으로 돌아 움직였다.
삼무정(三無亭)의 편액이 적힌 작은 정자가 보였다.
세 개의 붉은 기둥에는 각각 무기(無記), 무리(無利), 무익(無益)의 글이 적혀 있었다.
“맹주께서는 오르시지요.”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정자에 오른 뒤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공허는 실례가 되지 않게 고진유의 모습을 살폈다.
화산파의 삼대 제자가 중원 무림에 나선 뒤 이룬 선행들과 많은 업적들.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소문을 들었는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었다.
‘평범하도다.’
한데 고진유의 신형에서는 그 어떠한 내력을 느낄 수 없었다.
절대무인이라면 신형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무형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무형기조차 다스릴 수 있을 경지로 넘어섰다는 것인가?’
처음 봤을 때는 강해 보인다는 느낌이었지만 점점 자세히 보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그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허어…… 맹주의 능력을 소림에서 누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마 맹주를 보면서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하겠지.’
무림의 격언에 삼할 을 숨기라는 말이 있지만, 고진유는 그의 능력의 구 할을 숨긴 듯 보였다.
공허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맹주께서는 어인 일로 본 사에 찾아오셨소이까?”
“예전부터 소림사에 꼭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소이까? 본 사에 와서 직접 보니 어떠한지요?”
“중원에서 듣던 명성 그대로였습니다. 중원 정파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 소림사가 아닙니까.”
“아미타불. 맹주께서 너무 과찬의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소이다만은 여하튼 본승의 기분이 좋소이다.”
“과찬이라니요. 비록 무림맹이 있다고 하나 소림사가 바로 정파지종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허허허. 맹주께서 본 사를 이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외다.”
그가 당장 아무 부탁이나 해도 전부 들어주고도 남을 것 같았다.
“방장님,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무엇이외까?”
“극일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맹주께서 지금까지 혼자서 그들과 싸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극일천은 무림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지요.”
“맞습니다. 극일천은 분명 사라져야 합니다. 근데 그들과 싸우기에 너무 힘듭니다. 중원 각지에 퍼져 있으니까요.”
“본승도 그들을 찾아내기에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소이다.”
“방장님께서 제 말에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소림사에도 극일천에서 보낸 숨은 간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미타불…….”
공허 또한 극일천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중원 각 문파에 그들의 간자들이 숨어 있다고 했다. 심지어 맹주의 화산파에도 극일천의 간자가 존재했다.
소림사라고 없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밀승을 풀었지만 극일천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아내지 못했소이다.”
“천만다행입니다만…….”
고진유는 말을 흐리며 끝까지 맺지 않았다. 분명 그에게는 할 말이 더 있어 보였다.
“맹주, 괜찮소이다. 어떠한 말이라도 본승은 받아들일 수 있소이다.”
“방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밀승의 보고에서 극일천의 간자가 없다고 한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
“제가 밀승과 소림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극일천은 절대로 소림사를 그냥 내버려 둘 인물들이 아닙니다.”
“맹주께서 보기에 밀승이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오?”
“소림사에 극일천의 간자가 없다고 하는 건 두 가지 경우라 봅니다. 첫째는 방금 방장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소림사에는 극일천의 간자가 없기에 밀승이 찾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전 차라리 이것이 이유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고진유의 생각은 첫 번째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맹주, 두 번째는 무엇이오?”
“먼저 의심할 뿐이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만 미리 밝혀두겠습니다.”
“알겠소이다. 말해 보시오.”
“밀승에 대해 조사를 해보셨습니까?”
‘아미타불…….’
공허는 그동안 놓친 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밀승의 존재.
그들도 소림사의 제자이거늘.
‘……밀승을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밀승이기 때문에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방장님, 그들이 간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조심해서 안 좋은 건 없다는 뜻입니다.”
“……맹주의 뜻을 알겠소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본승이 잘 처리하도록 하겠소이다.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외다.”
“제가 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고진유와 공허는 서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공허가 본 고진유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본승은 극일천의 소문을 듣고 많은 걱정을 했소이다. 중원 무림의 어두운 하늘을 과연 누가 막아줄 것인가 마음이 무거웠지요. 하나 본승의 고뇌는 그저 쓸데없는 기우였나 보군요. 맹주를 진작 만났다면 편안하게 다리를 펴며 잤을 것이외다.”
“본도가 진작 찾아뵈어서야 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허허허……!”
공허는 최근에 이보다 기분 좋게 웃은 기억이 없었다.
이제 그가 찾아온 이유에 관해서 물어봐야 했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는 무림맹주가 소림사에 방문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맹주께서는 말씀하시지요. 본 사에 방문한 목적이 있을 듯싶소이다.”
“금강불성을 잠시 뵙고 싶습니다.”
“공진 사제를 만나겠다는 말인지요?”
“그렇습니다. 그분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강불성 공진은 최근 몇 년 동안 무림에 나간 적이 없었다.
맹주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듯싶었다.
“그는 금강전에 있소이다. 맹주께서는 공진 사제와 친분이 있소이까?”
“제 누님이 그분과 인연이 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혹시 누님이라는 분이 검류화협과 싸워 이겼다는 여협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네, 맞습니다.”
“오오. 맹주의 누님께서도 대단한 무공을 지닌 분이시군요. 본승도 나중에 한 번 만나 뵙고 싶소이다.”
“……누님을 만날 수는 있지만…….”
“그분께 무슨 문제라도 있소이까?”
“누님께서 겉모습보다 나이가 조금 많으십니다. 하대를 하더라도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
공허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 나이가 많다면 혹시 본승보다 더…….”
고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하하, 그렇다면야 하대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이까.”
“고맙습니다. 누님과 함께 그분을 만나보고 난 뒤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고진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지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