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46화 (246/425)

246화

중년 사내는 감탄한 표정으로 객잔이 울리도록 칭찬했다.

“하하하, 소저의 무공을 보니 너무 대단하외다. 세상에 젓가락으로 상대를 찍소리도 못 내도록 주눅 들게 만들 줄은 몰랐소이다.”

“넌 누구야?”

“어? 지금 본인…… 에게 한 말이오?”

무혼신녀의 하대에 그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어?”

“소저는 상당히 말이 짧구려. 하긴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용서가 되오. 본인은 이무결이라 하외다. 무림에서는 검류화협이라 부르지요. 혹시 들어보셨소?”

중년 사내는 눈웃음을 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느끼한 자식은 뭐냐? 근데 이놈이 검류화협이라…… 이것도 우연인가?’

얼굴을 바짝 들이민 그는 천하이십절대무인이자 중원오협의 검류화협 이무결이었다.

절대무인의 등장에 객잔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무혼신녀는 그를 올려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숭산 아래에서 오무천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대단한 인물이군.”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소이다. 소저의 방명은 어떻게 되는지요?”

“알아서 뭐 하게?”

“……이 정도의 무공 실력이라면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것이외다.”

“고진하.”

“고진하? 음…… 고진유란 이름은 아는데……? 어째 비슷한 것 같소이다만…….”

“고진유가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지?”

“당연히 모를 리가 있겠소이까? 무림맹주가 아니오. 소저께서는 그를 잘 아시오?”

“당연히 잘 안다고 해야겠지. 그는 내 동생인데.”

“…….”

무혼신녀의 말에 객잔이 또 한 번 웅성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그녀에게 부상을 당했던 사내들은 움찔거렸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맹주의 누님을 건드렸다고 알려진다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이무결은 그녀와 마주 앉은 일행을 보았다.

‘고진하…… 이분이…… 무혼신녀이다.’

세 명의 사내.

도제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무림맹주와 함께 다닌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 무림맹주 고진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짓는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혹시…… 그대가 무림맹주 고진유가 맞소이까?”

“그렇습니다.”

고진유의 한마디는 객잔의 분위기를 더욱더 적막하게 만들어 버렸다.

후다닥!

건너편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매, 맹주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됐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누님께서 합당한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괜찮습니다. 다쳤을 텐데 치료들을 잘하세요.”

“맹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그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객잔 안에 있던 손님들은 그 모습을 보며 고진유의 대범한 아량에 감탄한 눈빛을 보였다.

이무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녀가 누구인지 확실해졌다.

무혼신녀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내가 누군지 이제야 알아본 모양이군.”

“……그댄…….”

“됐어. 그만해라. 보아하니 공진을 만날 모양인가 보군. 그년이 정말로 미쳤구나.”

“…….”

이무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앉으시지요. 불편하지 않습니까?”

“……알겠소이다.”

그는 주위의 시선을 느낀 뒤 자리에 앉았다.

바로 앞에서 노려보는 무혼신녀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그가 먼저 물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너하고 같은 이유겠지.”

“……금강불성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까?”

“맞아. 그를 만나서 할 말이 있거든.”

“……저에게는?”

“네놈은 틀렸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녀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순진한 건지 아니면 엄청 약은 놈인지 모르겠군. 보통 이런 얼굴은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을 많이 울린 관상인데 말이야. 한데 묵경 동생은 상대를 존중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여자들을 이용해 먹고 버릴 놈 같구먼.”

“…….”

그녀가 금강불성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

이무결은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본 천에 반하는 행동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반하는 행동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말해보아라. 내가 쉽게 알도록.”

“…….”

“쯔쯔, 말을 못 하는군. 오무천자란 놈이 본 천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 또라이 같은 년이 나를 쫓아 보내고 나머지 놈들을 구워삶아 먹으면 끝나는 줄 아는데, 본 천을 세우신 조사께서 이런 미친년이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까?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면 정말로 심각한 일이로다. 누가 그년을 천주로 삼았는지 패 주고 싶을 정도야.”

이무결은 흠칫거렸다.

천주에 의해 쫓겨났다는 그녀가 보여주는 당당한 태도에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구천에서 천주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천주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넌 생긴 대로 똑똑해. 하나 천주의 명이 어떠한지 똑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헛똑똑이라고 할 수 있겠어.”

“너무 말을 함부로 하십니다.”

슈우우욱.

무혼신녀의 내기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멍청한 놈이 뚫린 입이라고 성질까지 내는군. 따라 나와.”

이무결은 잠깐 숨이 막혔다.

“…….”

그는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녹림야검은 앉은 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공녀님 따라 안 나가슈? 도망갈 생각이오?”

“…….”

“아하. 중원오협이라는 양반이 우리 공녀님에게 쫄은 모양인가 보네. 그럼 도망가든가.”

‘이…… 놈이…….’

이무결은 노기가 치밀어 오르자 손이 부들거렸다.

“인양아, 무림의 명판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네.”

“그러네요…… 예전에는 전부 훌륭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영…….”

녹림야검과 인양이 비웃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고진유가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도망가면 무림에 소문이 퍼질 것이외다. 알아서 잘 판단하십시오.”

이무결은 황당했다.

중원오협으로서 어디를 가더라도 존경의 시선으로 대접을 받았다.

근데 지금 객잔의 시선들은 경멸에 찬 듯 보였다.

고진유의 말처럼 여기에서 물러난다면 무림 전체에 비겁자라며 소문이 날 게 확실했다.

‘천주의 명을 따라야 하거늘…… 근데 왜 내가 더 이상해 보이는 거지?’

이무결은 결국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야 했다.

* * *

객잔 밖으로 나온 이무결은 건물 뒤편으로 돌아 움직였다.

먼저 도착한 그녀가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같은 오무천자로서…….”

스윽.

그녀는 손을 올려 이무결의 말을 막았다.

“잠깐. 같은 오무천자라니 넘어갈 수가 없구나. 누가 같다고 했지?”

“그건…… 당신이 오무천자이니…….”

“어이 상실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오는 말이군. 지금 나에게 당신이라 했나? 내가 누군지 제대로 잊어버렸구나.”

“…….”

이무결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오무천자는 한 세대씩 독문으로 전수되면서 내려왔다.

무혼신녀가 오무천자이긴 하나 현 세대와는 다른 윗세대의 인물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놈들이 있나. 지금 네놈들과 내가 같은 세대의 오무천자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군. 그래서 그년이 나도 제 맘대로 될 줄 알고 진유 동생을 이용해서 깨워 달라고 한 것이었어!”

무혼신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동면을 깨운 것은 천주의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던 것

그런데 깨어나 보니 계획대로 안 된 것이었다.

”원래라면 오무천자쯤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당황한 거군. 무구천을 맘대로 하고 싶은데 말은 안 들을 것 같은 나를 보면서 엄청나게 걱정이 되었던 게야.”

무혼신녀는 혀를 끌끌 찼다.

“이무결이라 했나? 돌아가서 천주에게 똑바로 전해라. 무구천은 개인의 야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일천의 독주를 막기 위함이다. 만약 내 충고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지 똑바로 전해야 할 게야.”

“…….”

하지만 그는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무혼신녀의 무공 또한 궁금했다.

‘만일…… 내가 여기에서 무혼신녀를 잡을 수 있다면…….’

무구천에서의 입지는 올라갈 게 확실했다.

그도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오무천자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무혼신녀의 무공을 직접 견식해 보고 싶었다.

“물러가기 전에 무혼신녀님과 한번 겨루어보고 싶습니다.”

“약은 놈. 싸우다가 이길지도 모른다 생각하느냐? 네놈도 무구천에서 한자리하고 싶은가?”

“그건 아닙니다. 전 수미화심공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직접 보고 싶을 뿐입니다.”

“하하, 알았다. 네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마.”

무혼신녀는 전신의 내력을 개방했다.

스윽.

검류화협 이무결의 앞으로 다가서면서 내력을 끌어 올렸다.

위이이이잉-

그녀 주위로 내기의 소용돌이가 치솟았다.

‘뚫고 들어간다.’

이무결은 소용돌이를 향해 무상심검을 펼쳤지만 안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우우욱.”

직접 부딪히면서 그녀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몸이 흔들거리며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너무…… 내력에서…… 차이가……!’

그는 무상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지만 수미화심공의 내력에 밀려 밖으로 튕겨 나갔다.

“쯔쯔. 이 정도도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똑바로 일을 하겠나?”

휘이이익!

소용돌이 속에서 쏟아져 나온 무형검강이 그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콰아아앙!!

강한 충격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중원오협의 아성이 무너졌다.

이무결은 하늘을 보며 바닥에 쓰러졌다.

수미화심공에 대해 의심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상대를 믿지 못하고 자신을 너무 믿은 탓은 결과는 처음부터 답이 나온 상태였다.

“편안한가? 거기서 잘 모양이지?”

“……!”

“영원히 자게 해줄까?”

‘제기랄…….’

이무결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주위에서는 숨을 죽이며 많은 시선이 지켜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하남성 전체로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줬으니 천주에게 전해라. 한가할 때 한번 찾아갈 테니 회초리나 준비해서 기다리라고 해.”

“…….”

“왜 대답이 없지? 너도 한 번 더 맞겠느냐?”

“아…… 닙니다. 천주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일은 신경 쓰지 말고 가봐.”

“알겠습니다.”

이무결은 허리를 숙인 뒤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사라진 후, 고진유가 무혼신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누님, 수고했습니다.”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아직 몸도 안 풀었단다.”

“내일 어떻게 소문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문?”

“주위를 보세요.”

고진유의 말처럼 구경꾼들이 초롱초롱하게 빛을 내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누님의 신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게? 이거 나도 궁금해지는데?”

예전 중원에서는 그녀를 부르기를 멸봉자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탓인지 중원에서 그녀의 존재는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중원오협 검류화협을 이긴 여인.

이번에는 과연 무엇이라 부를지 궁금해졌다.

현재까지 그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무림맹주 고진유의 누나이자 이름이 고진하라는 것뿐.

“누님, 들어가시지요.”

“그렇게 하자.”

* * *

네 사람은 객잔을 새벽 일찍 나서 곧바로 숭산으로 들어섰다.

오악 중 중악인 숭산에 자리 잡은 소림사는 서쪽 소실봉 아래에 위치했다.

무혼신녀를 제외한 세 사람은 숭산이 처음이었다.

“내가 오래 살다 보니 숭산에 오게 될 날이 있…… 앗, 공녀님. 죄송합니다.”

“괜찮다. 나도 따지고 보면 나이는 많아도 중원에서 보낸 시간은 녹아만큼 지냈을 뿐이지.”

“헤헤헤. 예.”

일행은 천천히 구경 삼아 숭산을 올랐다.

숭산은 무림맹과 다른 의미로 중원 무림의 성지와 같은 곳.

어느덧 소림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행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주위에 흐르는 기를 느꼈다.

항마(降魔)의 기가 숭산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고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산과 같은 도문(道門)과도 확실히 차이가 나는군요. 사파나 마도에서 왜 소림사의 무공을 싫어하는지 알겠습니다.”

“불성 자체가 항마의 기가 강한 곳이니 무공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예전 마교의 중원 침입에 소림사의 제자들이 막대한 공을 세운 이유이기도 했다.

항마의 기운이 점점 진해졌다.

전방에 고목들 사이로 소림사의 붉은색 정문이 멀리 보였다.

대소림사의 정문은 상상한 것보다 크지 않았다.

“수수하군요. 소림사라고 해서 일반 절과 다를 줄 알았습니다.”

“나도 처음에 와봤을 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냥 보통 절이더라고.”

그녀도 소림사의 첫 모습은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소림사의 진정한 힘은 건물이 아니었다.

소림사의 승려가 소림사의 모든 것이었다.

붉은색 벽에 경내로 들어서는 정문 위 현판이 이곳이 소림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인양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근데 왜 스님들이 정문에 없습니까?”

“인양아, 그건 소림사이기 때문이지.”

“네에? 누님, 너무 자만하는 게 아닌가요?”

“후후. 그건 자만이 아니라 중생들을 부처님의 법력으로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 모두 구하기 위함이다.”

“아하…… 그렇구나. 역시 대단한 곳이네요…….”

소림사의 정문부터 일반 문파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소림사의 현판을 지나 문으로 들어서자 달마조사의 조상이 나타났다.

“이분이 소림사를 창건한 달마조사님이시지.”

그녀의 설명에 세 명은 곧바로 묵념하며 공경의 뜻을 보였다.

정문을 통과하며 경내로 들어섰다.

경내 중간에 소림사의 승려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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