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고진유는 모여든 집행수행단을 향해 살기를 내보였다.
슈우우우욱-
그가 내뿜는 거대한 살기에 집행수행단 오십 명이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주위의 상황에 도제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맹주, 이번 일은 본 천의 일이다. 외부인은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이네.”
“개인적인 일이라면 본도가 오히려 더 관심을 가져야지 않겠습니까?”
고진유의 표정은 물러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왜…… 더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지?”
“본도의 누님입니다. 세상의 누구라도 본도의 가족을 건드리는 놈들은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맹주, 그렇다면 무구천을 적으로 둘 생각인가?”
“훗. 언제는 친구로 지냈습니까? 무구천은 원래부터 본도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구천이 중원 무림을 적으로 만들 생각이군요.”
‘……쉽지 않겠군.’
고진유의 말에 도제는 당황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를 잡기 위해서는 고진유는 물론 인양과 녹림야검까지 처리해야 했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무구천의 뜻이 어떠한지 밝힐 수 없습니까?”
‘끄으응.’
고진유의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무혼신녀가 무구천으로 함께할 것을 거절할 줄은 몰랐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백 년 만에 깨어난 그녀는 중원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오로지 무구천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잘못 생각했다.
이미 그녀에게 다른 인물이 존재했다.
이제는 물리적 방법밖에 없었다.
그녀도 문제였지만 고진유와 두 명의 인물도 보통이 아니었다.
고진유를 상대로 집행수행단의 수하들이 우위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고진유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그만 물러들 가십시오. 누님께서 무구천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천주가…… 무혼신녀님을 원한다. 난 천주의 명을 따를 뿐이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싸우는 수밖에.”
휘리릭!
무혼신녀가 도제의 앞으로 나섰다.
“넌 본녀가 상대해야겠구나. 도천왕의 후손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고 싶군. 감히 나에게 도전할 정도라면.”
“…….”
동시에 호전적인 기를 뿜어내는 고진유와 무혼신녀는 정말 닮아 있었다.
파앗!
싸우기로 결심한 이상 무혼신녀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손에서 이미 무형검이 빛을 뿌리며 도제를 향해 뻗었다.
채애애앵-!!
도제는 움직이지 않은 채 시천도를 세워 무형검강을 막아냈다.
전설로 듣던 무혼신녀의 대단함을 몸으로 부딪치고 싶었다.
휘리리릭!
무형검강이 사라지면서 눈앞에서 검풍이 번져 나갔다.
도제의 눈썹과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날뛰듯 흩날렸다.
우우우웅.
도제는 시천도에 내력을 끌어 올리며 검풍을 잠재웠다.
“좋은 수였다.”
무혼신녀는 만족한 듯 한쪽 입술을 치켜 올렸다.
내력의 소모가 강한 무형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공심법이 뛰어나야 했다.
수미화심공은 그녀가 무형검강을 펼치는 데 완벽한 내공심법이었다.
미세한 내공이라도 수미화심공을 거치면 몸이 받쳐주는 한 열 배까지 증폭된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무형검이 한 번 더 펼쳐지면서 도제의 전신으로 날아갔다.
‘이…… 정도까지라고?’
몸소 체험하고 싶은 정도가 아니었다.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무혼신녀가 펼친 무형검강은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무공을 익힌 뒤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두려움이 느껴졌다.
모든 기를 끌어내며 시천도에 집중시켰다.
도제를 중심으로 바닥에서 기가 솟구치면서 도강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뚫고 들어가고자 하는 무형검강과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도강이 부딪혔다.
공간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 듯 무형검강과 도강이 빨려 들어가면서 사라졌다.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서 울렸다.
무혼신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도제, 코에서 피가 나오는데?”
“…….”
“혈흔의 색을 보니 내상을 많이 입은 것 같군. 계속해 볼까? 그러면 죽을지도 몰라. 천주가 슬퍼할지도.”
도제는 소매로 코를 닦아냈다.
그러는 사이 오십 명의 수하들은 세 명에 의해 이미 제압당한 상태였다.
고진유는 그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
“여기까지는 살살 했소이다. 하지만 계속하겠다면 봐주지 않겠소. 두 번 다시는 무공을 펼칠 수 없도록 전부 단전을 부숴 버리겠소이다.”
고진유의 말은 협박이 아니었다. 충분히 수하들의 단전을 부수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완벽한 패배.
이 자리에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물러가겠소이다.”
도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길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오무천자의 수장은 천주가 되는 것이 맞지만…….’
천주인 그녀가 몰래 찾아왔었다.
무구천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위계질서는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부탁을 했다.
무구천 소속의 인물들에게 무혼신녀 보다 천주가 위에 있음을 가르쳐 주면 될 것이라 했다.
천주의 위엄을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지?’
그녀와 싸운 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무혼신녀는 이제 무구천의 사람이 아니었다.
무구천은 오무천자 중에서도 가장 강한 무인을 잃었다.
극일천과 싸워 대등한 실력을 가졌던 무혼신녀의 존재가 사라졌다.
‘천주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거늘.’
후회가 온몸을 짓눌렀다.
도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들의 시야에서 물러났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싸움이 지나간 후.
고진유는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선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이번 일로 인해 무구천과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마음이 상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할 때였다.
“에이…… 망할 년. 갑자기 성질이 나네.”
“누님, 괜찮으십니까?”
그녀가 뒤를 돌아서며 고진유와 마주 섰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들이 가만히 있는 사람의 뒤통수를 쳤잖아. 그냥 무구천의 존재를 극일천에 알려줘 버릴까 보다.”
“…….”
“어차피 같은 놈들이야. 무구천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잠든 백 년 동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다.”
“누님, 만일 무구천이 중원에 나서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극일천보다는 아니겠지만 무구천도 생각 외로 중원 무림 안에 섞여 있다.”
“중원 무림이라 하시면 구대문파나 십대세가 같은 대문파에도 무구천의 인물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당분간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만일 그년이 정말로 엉뚱한 짓을 하려는 것이라면 오무천자부터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내가 보기에 아직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구나.”
“음…… 오무천자는 어떤 인물들인가요?”
“유하랑을 만나봤다고 했지?”
“네. 누님.”
“그리고 방금 저 녀석 도제. 그리고 소림사 출신으로 금강불성, 마지막으로 검류화협이라고 하더군.”
그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녹림야검이 바로 두 사람에 대해 설명했다.
“금강불성은 중원오성의 일인입니다. 그리고 검류화협은 중원오협입니다.”
“전부 유명한 인물들이군. 녹검 씨, 설명 고마워.”
무혼신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천주가 그놈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무구천도 얼마든지 중원에서 허튼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년이 보기에 내가 만만하게 안 보였던 게지. 그래서 오무천자에서 내보낼 계획을 세웠던 것이고.”
“음……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천주의 계획은 성공했군요. 도제가 돌아가 오늘 있었던 일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으면 무구천에서 쫓겨날 것 같습니다만…….”
“와아…… 이년이 정말 똑똑하구나.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네?”
무혼신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구천을 제 맘대로 가지고 놀겠다는 고약한 심보로구먼.”
“그렇다고 봐야죠. 누님,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아니시죠?”
“당연하다. 무구천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이번 기회에 완전히 갈아엎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제가 누님을 돕겠습니다.”
척.
인양과 녹림야검도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든든하구나. 동생하고 너희 두 사람이 도와주면 무서울 것이 없지.”
그녀를 돕는 이유는 간단했다.
극일천까지 무림에서 날뛰는 세상에 무구천까지 나선다면 정말로 혼탁해질 수 있었다.
“진유 동생, 뭐부터 하는 게 좋겠느냐?”
“천주가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오무천자부터 만나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무림맹으로 가야 하잖아.”
“화산파 사형들과 묵경 형이 무림맹에 도착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그들이라면 큰일은 없을 거예요. 숭산은 바로 옆이고.”
“그래도 맹주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많아.”
“제갈양 형님이 잘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그리고 제갈문 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무구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후, 고맙구나. 이번 일만 정리가 되면 내가 확실하게 극일천과 싸울 때 도와주마!”
“누님께서 계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가까운 소림사로 가볼까?”
“좋습니다. 먼저 금강불성을 만나러 가도록 하죠.”
정주 무림맹으로 향했던 일행의 목적지는 숭산으로 방향을 미세하게 틀었다.
* * *
꽈아악.
천주 도해령은 서신을 구겼다.
도제 시남구에게서 날아온 서신을 보면서 기대했건만, 서신의 내용은 그녀가 원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씨익.
하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상한 것과 달라졌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녀가 내 말을 듣는 것보다는 아쉽지만 밖으로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녀가 마음에 걸리는 건 오무천자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무혼신녀의 힘을 더는 이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괜찮아. 굳이 극일천과 싸우지 않는다면 무혼신녀가 없어도 상관없어.’
도해령은 오래전부터 세웠던 계획대로 움직이고자 했다.
‘우선 다른 천자들의 뜻을 나에게 맞추어야 한다.’
이제 할 일은 무혼신녀가 빠진 사무천자들의 동의를 받아내야 것.
도제와 검류화협은 분명 자신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나머지 두 명의 인물.
유하랑은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명.
소림사 금강불성 공진 대사.
그의 마음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
그가 강하게 반대한다면 무구천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어. 죽을 때까지 무구천에 박혀서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내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아.’
“검류화협께 부탁을 해야겠어.”
그녀는 밖으로 소리를 쳤다.
“밖에 있는가?”
* * *
숭산으로 향하는 네 명의 일행.
무림맹과 숭산과의 거리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정주에 무림맹을 세운 초대 맹주는 바로 소림사의 천불성 후영 대사.
그가 숭산과 가까운 위치에 무림맹을 세웠다.
소림방장의 신분과 동시에 맹주직을 맡기 위해 정주의 형양에 세운 것이다.
등봉현으로 들어선 네 명의 일행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객잔에 들어섰다.
살생과 육식을 금하는 불제자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라 객잔에서도 대부분 음식은 야채 위주였다.
“아쉽지만 소면하고 야채볶음이나 가지고 오게.”
녹검은 간단하게 주문을 한 뒤 두 자 정도의 술 항아리를 들고 자리에 돌아왔다.
“녹아는 사회생활을 잘 배웠어.”
“공녀님,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무혼신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대낮부터 술독을 놓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위에서 쳐다보았다.
“크흐, 오랜만에 마셨더니 몸이 풀리는 것 같군.”
그녀는 비는 술잔에 각각 따라주었다.
그때, 건너편 자리에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기 싫은 듯 못마땅한 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대낮부터 여자가 술을 처마시고…….”
파악!
사내의 탁자 앞에 나무젓가락이 꽂혔다.
“…….”
“헛소리하는 것은 괜찮으나 비방은 안 되지.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라.”
사내는 얼굴이 붉어졌다.
주위 동료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여자에게 무시당한 자존심 때문이지 참지 못한 채 벌떡 일어났다.
“야, 이런 미친년……!”
핏핏.
사내의 어깨를 향해 두 개 빛이 쏟아졌다.
“아악!”
어깨에 젓가락이 하나씩 박혔다.
팔에서 힘이 사라지며 거추장스럽게 달린 듯 흐느적거렸다.
“내가 분명 다친다고 방금 전에 말을 했을 텐데. 어린놈들이 왜 말을 안 들어.”
후탕탕!
사내가 당하자 그의 동료들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무혼신녀를 노려보았다.
“수법이 악랄한 것을 보니 사파의 계집이로구나. 감히 정파의 성지에서 이게 무슨 짓이더냐!”
휙 휘휙!
이번에도 젓가락이 허공을 날았다.
그들은 피한다고 했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어깨에 젓가락이 꽂혔다.
털썩.
사내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무혼신녀는 손에 뭉텅이로 젓가락을 들었다.
“또 없느냐? 괜히 술 마시는 도중에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지금 바로 덤벼라. 이 정도로 친절하게 말을 했는데도 나중에 덤비면, 어깨가 아니라 심장에 박히도록 해주마.”
툭툭.
그녀가 젓가락으로 탁자를 치면서 미소를 짓자,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주위 눈치를 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짝짝짝.
그때, 객잔 한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사십 대의 중년 사내가 일어나면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