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44화 (244/425)

244화

중원 마도가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마곡의 반격.

중원 무림인들은 그들의 행적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마곡이 될 거라 생각한 중원인은 없었지만, 천살지인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마곡주 후규영이 검을 쳐들었다.

방주의 일부 지역을 혈사천에 의해 빼앗겼던 마곡은 때를 기다려 왔었다.

“지금이 기회다. 혈사천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할 때 마교의 제자들은 본 곡의 땅을 수복한다.”

후규영은 대전에 모인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옙. 곡주님의 명을 따르기 위해 방주로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충분히 자신이 있는가?”

“천살지인이 없는 이상 혈사천은 두렵지 않습니다.”

천음마인 신음동은 의지를 크게 다졌다.

혈사천에서 두려운 존재는 천살지인뿐.

그가 사라진 이상 혈사천은 언제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천음, 그대가 자신을 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곡주님. 기다려 주신다면 이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으하하하! 알겠다. 당장 떠나라!”

마곡주 후규영은 목청껏 대소를 터뜨렸다.

* * *

두두두두-

천음마인 신음동이 이끄는 마동대가 방주를 향해 달렸다.

그들의 목표는 혈사천에게 빼앗겼던 방주지부.

그는 목표가 나타나자 소리를 질렀다.

“혈사천 놈들을 몰아내라!!”

선두에 달린 신음동이 몸을 띄웠다.

우우우웅-

공중으로 솟구친 그는 마기를 끌어내며 펼쳤다.

“사파 놈들아!! 본인의 천음마장을 받아라!!!”

혈사천 소속의 사파인들은 지독한 음기의 장법에 몸에 얼어붙는 듯했다.

휘이익!

“우우욱……!!”

“물러나라!!”

사파인들 사이에서 인영이 빠르게 달려 나왔다.

혈사천 방주지부장 사괴주검(邪怪朱劍)은 신음동을 향해 검기를 뻗었다.

콰아앙-!!

신음동의 천음마장과 검기가 부딪혔다.

“커어억.”

사괴주검은 입에서 짧은 비명이 토해냈다.

내력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모양이지?”

신음동의 비웃음에 그는 입에 피를 흘리면서 살기를 드러냈다.

“이…… 노오오옴!! 죽어어어라아아아!!”

사괴주검은 전신의 내력을 끌어 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혈풍이 휘몰아치면서 신음동을 갈기갈기 찢고자 했다.

우우우우웅-

신음동도 그의 마지막 한 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도 전력을 다해 내력을 올리며 천음마장의 최후초식 천음음공(天陰陰功)을 펼쳤다.

검을 휘두르던 사괴주검의 몸이 움찔거렸다.

‘커억.’

허리에 비검이 꽂혀 있었다.

슈우우우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뻗어 나간 장력은 혈풍을 밀어내고 사괴주검의 전신을 스치며 지나갔다.

“우우우욱.”

사괴주검의 몸은 음기에 의해 시퍼렇게 변해갔다.

“비…… 겁…… 하…….”

그는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신음동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누가 던진 것이지?”

그와 싸워 이긴 것은 맞지만 정당한 싸움에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사괴주검의 허리에 박혀 있는 비검.

누군가 참견을 하지 않았다면 그를 쉽게 이길 수 없었을 것이었다.

사괴주검의 죽음으로 혈사천의 방주지부는 단숨에 무너졌다.

마동대에게 자비란 없었다.

살아서 숨을 쉬는 것이라면 목숨을 빼앗았다.

혈사천에게 빼앗겼던 방부 지역은 다시 마곡의 차지가 되었다.

* * *

혈사천과 마곡의 싸움은 무림으로 퍼져 나갔다.

고진유는 무림맹으로 돌아가던 길에 두 문파의 소문을 들었다.

“진유 형, 갑자기 혈사천이 동네북이 된 것 같아요.”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하는 법이지. 혈사천주는 한마디로 말해서…… 음, 너무 잔머리를 굴린다고 해야 할까? 치사하다? 그런 게 있어.”

혈사천주는 정확히 하나로 정의 내리기 힘든 사람이었다.

“혈사천이 이번 생사결의 일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가만히 둬도 괜찮겠습니까? 차라리 밀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혈사천은 남궁세가에서 처리할 거야.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다면야…… 전 혈사천주가 혹시나 형님을 노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흐음, 나를 노린다…… 그렇게 해주면 더 좋고. 남궁세가 못지않게 나도 그에게 불만이 많지.”

고진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남궁세가만 아니었어도 혈사파와 한판 제대로 붙을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일행은 어느덧 안휘성을 넘어 하남성으로 들어왔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마을 초입에 들어설 때였다.

조용히 뒤에서 따라던 무혼신녀가 반갑게 소리쳤다.

“어라? 저 녀석의 기운이 많이 익숙한데.”

“…….”

저 녀석이라고 가리키기에 젊은 사람을 말하는 줄 알았다.

고진유는 물론 인양과 녹림야검도 가끔 그녀의 나이를 잊었다.

“진유 동생, 혹시 아는 사람인가?”

“아, 음, 도제님입니다.”

“오호…… 도제 하면 도가문의 도제를 말하는 것이군.”

“네. 도가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도천왕의 후인이겠구먼.”

“…….”

고진유 또한 가끔씩 그녀의 말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도천왕은 백 년 전의 인물이었으니까.

도제 시남구는 십여 일 동안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무천자의 그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무림맹주와 함께 다닌다고 했다.

그는 무혼신녀가 고진유와 함께 안휘성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후 하남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무혼신녀를 보면서 도제는 감탄했다.

‘이런 일도 일어나는군.’

믿기지 않는 일을 실제로 눈앞에서 확인했다.

도제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무혼신녀님을 뵙습니다. 시남구라 합니다.”

“시정후의 후손이군.”

“조부님이십니다.”

“기세는 도천왕을 뛰어넘었군. 명호조차도…… 도제이고.”

“감사합니다.”

그는 다시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녀와의 짧은 대화에 백 년 전 무혼신녀가 맞음을 확신했다.

“오셨습니까?”

고진유는 그녀의 뒤에서 짧게 인사를 했다.

“맹주에 오른 걸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도제의 목적은 저번과는 다른 듯했다.

“이번에는 저를 만나러 오신 게 아니군요.”

“맞네. 무혼신녀님을 뵙고자 찾아왔네. 잠시 뒤로 물러날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그들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고진유는 뒤로 물러났다.

무혼신녀와 도제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나에게 할 말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 웬만하면 빨리 끝내자꾸나. 동생하고 무림맹으로 가는 길이라 바쁘거든.”

“동생…… 이라 하셨습니까?”

“듣지 못했나? 많은 사람이 우릴 남매로 알고 있다네.”

“…….”

“하하, 그 표정을 보니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보군.”

“……아닙니다.”

도제도 그녀를 만나기 전 소문을 듣긴 했다.

처음에는 유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그녀를 보니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 난 그와 남매 사이가 되면 안 되는가? 흥, 자네 집구석은 어째 질투가 그렇게 심한지 모르겠군.”

“…….”

도제는 인상이 구겨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았다.

도천왕 시정후가 그녀를 좋아하여 따라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직접 본 적이 없으니 한낱 소문인 줄 알았건만.

‘사실이었군. 조부님께서 이분을 좋아하셨던 게…….’

하지만 그녀와 끝내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도제가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무혼신녀님, 언제까지 맹주와 함께 지낼 생각이십니까?”

“음…… 왜? 걱정이 되는 모양이지?”

“저와 함께 무구천으로 돌아가셔야겠습니다.”

“천주의 뜻인가?”

무혼신녀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예전부터 그녀는 누군가 간섭하는 자체를 싫어했다.

“아…… 닙니다. 제가 나선 일입니다.”

“자네가 나섰다…….”

“그렇습니다. 천주께서는 전혀 이 일과 연관이 없습니다.”

“천주도 가만히 있는 일을 네가 왜 나서는 것이지?”

“제가 무구천의 오무천자이며 법행자의 신분이지 않습니까?”

“그렇군. 법행자의 신분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는 뜻이군.”

그녀의 말에 도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내가 무구천에 죄를 지었다고 보는 겐가?”

“…….”

“이것 봐라? 대답을 안 하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본데?”

무혼신녀는 어이가 없었다.

도제의 태도에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이유가 뭔가?”

“얼마 전에 극일천의 인물을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만났다. 오래전부터 알던 인물을 만났지.”

“근데…… 그 인물이 극일천의 천문전주 나하중이 아닙니까?”

“맞아. 그를 만났지. 대단하군.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지?”

“무구천도 그들과 함께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곳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그래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개인적인 일이라서. 역시 자네 조부가 상당히 집착한 성격이었던 모양이야. 그와의 사이를 알고 있었어.”

“천문전주와 사귀었던 사이라는 것을 몰랐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어허…… 사귄다라……? 그건 아니지만, 그 전에 내가 누구를 사귀든 말든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닐세.”

“상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는 극일천의 천문전주입니다.”

“그때는 아니었다.”

“…….”

무혼신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집행자의 신분으로 나를 잡으러 온 것인가? 내가 그에게 무구천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배신을 했다는 뜻인 모양이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극일천은 무슨 수를 사용해서라도 무혼신녀님을 잡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잡힌다면 무구천의 모든 것을 알려주게 되니 돌아가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좋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런데 네놈들은 안 잡힌다는 보장이 있는 모양이지?”

“우린 그와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또다시 원점인가? 결론은 내가 그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으니 못 믿겠다는 말이 아닌가. 진작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말을 했으면 쉬울 것을 시간 아깝게 말을 돌리고 있군.”

“거절하시는 것입니까?”

“거절이 아니라 처음부터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도제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허리에 찬 명패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무구천 집행신령패.

천주조차 죄를 지었다면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

무소불위에 가까운 힘을 지닌 도제의 신분이었다.

하나 집행신령패를 보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뭔가?”

“보고도 모르십니까?”

“난 몰라. 그게 뭐지?”

“무혼신녀님께서 지금 보이시는 행동은 본 천을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무시한 적은 없다. 그리고 집행신령패를 나에게 보여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 그건 본 천에 죄를 지은 자에 해당하는 것이지. 내가 죄를 지었다는 증거를 보여라.”

“…….”

그녀의 말이 맞았다.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 집행신령패가 제대로 발휘가 되는 것이었다.

“무혼신녀님, 만일 저와 함께 돌아가지 않으시다면 변절자로…….”

“도제라 했나?”

그녀의 신형에서 내기가 흘러나왔다.

참을 수 없는지 화가 솟구쳤다.

“똑바로 말해라. 자네의 뜻이 아니라 천주의 뜻이겠지?”

“…….”

도제가 아무리 집행신령패를 지닌 집행자라 해도 천주의 뜻이 없으면 나설 수 없는 일임을 알았다.

“망할 계집이…… 뒤에서 호박씨를 까고 있었군.”

무구천주 도해령은 무혼신녀를 충분히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천주의 위엄이 그녀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할까.

무구천에서 천주의 자리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어야 했다.

‘순진한 척하면서 딴생각을 품고 있었어.’

무혼신녀가 중원으로 나간 후 그녀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혼신녀의 존재는 무구천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도제, 돌아가서 천주에게 말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누구와 닮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

“알아들었다면 떠나라.”

도제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이미 천주 도해령에게 들었다.

천주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말했다.

“그녀가 거부한다면 완력으로 잡아 오세요.”

그녀를 힘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무혼신녀님, 죄송합니다. 집행신령패를 누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그 말은 나를 힘으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가능하다고 보는가?”

“집행수행단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제는 손을 들었다.

언제부터 주위에 있었는지 오십 명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할 년이…… 정말 본색을 드러내는군. 네놈도 그년의 뜻과 같은 모양이야.”

무혼신녀는 가슴이 답답했다.

스윽.

고진유가 그녀의 뒤로 다가오면서 가볍게 어깨를 만졌다.

“누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생에게 맡기세요.”

“…….”

고진유의 미소를 보았다.

만일 혼자였다면 얼마나 기분이 더러웠을까?

고진유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무구천, 이놈들도 극일천과 다를 게 없군. 네가 철갑을 이놈들에게 안 준 이유를 알 것 같다. 네가 보기에도 이놈들도 그들과 같은 놈으로 보였겠지. 진유야, 시간이라는 게 정말 이상하지? 세상을 이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그래서 재미있지 않습니까? 늘 같으면 심심하잖아요.”

“그런가?”

무혼신녀는 몸과 마음이 다시 가벼워졌다.

“아이고…… 나도 모든 것을 버려야겠구나. 앞으로 난 고진하로 재미있게 놀아보고 싶군.”

“누님, 좋습니다.”

무혼신녀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렸다.

그리고 앞으로 무림에서의 삶은 고진하로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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