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파앗!!
고진유는 비무대 위로 솟구치는 원형 폭탄들을 보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군중들 앞으로 달려 나갔다.
굉음을 내며 폭탄들이 터지는 동시에 내력을 쏟아냈다.
콰가가가가강-!!
공중에서 터진 원형 폭탄들의 파편들과 그 안에서 쏟아진 수천 개의 비침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고진유의 옆으로 무혼신녀와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도 바로 따라 나오면서 호신강막을 펼쳐 군중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하지만 수없이 터진 폭탄의 피해를 그들만으로 전부 막아낼 수 없었다.
“아아악!”
“사람 살려!!”
사방으로 흩어진 파편과 비침들에 군중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생사비무대는 단번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럴 수가…….’
고진유는 비무대를 내려다보았다.
가장 강한 충격을 받은 비무대는 여러 개의 폭발에 의해 참혹한 광경으로 변해 있었다.
‘사숙님……!’
바닥이 무너진 비무대 아래서 비침을 맞은 채 쓰러진 천살지인을 보았다.
‘천…… 살지인…….’
남궁무명은 수없이 터진 폭탄 아래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에게 감싸 안긴 채 엎드려 있었다.
“나를…… 왜……?”
비무대 위로 솟구친 폭탄들이 터지는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가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
남궁무명은 그의 품 안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괜…… 찮으…… 십니까?”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
절명한 게 틀림없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남궁무명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천살지인을 살폈다.
그의 전신은 파편들과 비침들로 가득했다.
휘익.
고진유는 비무대 아래로 내려섰다.
바닥에 누워 있는 천살지인과 그 옆에 굳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남궁무명.
“……괜찮습니까?”
“난 괜찮네. 한데…… 이분께서…….”
남궁무명은 천살지인을 가리켜 높여 말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셨네. 왜…… 그랬는지…….”
“사숙님께서 어제 말씀하시기를…… 결자해지라 하셨습니다.”
‘……결자해지.’
남궁무명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이 짓을 누가 했지? 혈사천인가?”
“그들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할 만한 세력은 극일천이 분명합니다.”
“일반 백성들까지 죽이고자 한 건가……? 극일천, 이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군.”
남궁무명의 주먹 쥔 손이 떨려왔다.
“화가 나더라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때를 기다리면 기회가 올 것입니다.”
고진유는 천천히 바닥에서 천살지인을 안아 들었다.
비무대로 혈사천주가 빠르게 다가왔다.
“화산도협, 그를 내려놓아라!”
“혈사천주, 사숙님은 화산파의 제자이외다.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은 본 문이오.”
고진유의 눈에 살기가 뻗어 나왔다.
괴도에서 사부가 돌아가신 이후, 이 정도의 살기를 뿜어낸 적은 처음이었다.
“……!”
“본도는…… 아니…… 됐습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게 좋겠군요. 다음에 찾아가지요.”
“크윽…….”
혈사천주 조탁은 그의 기세에 숨이 막혔다.
고진유는 비무대를 떠나기 전에 남궁무명과 시선을 나누었다.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나.”
파아앗!
천살지인을 안아 든 고진유의 신형이 비무대에서 사라졌다.
후다다닥!
이번에는 남궁무명의 곁으로 남궁후진과 더불어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다가왔다.
“무명! 몸은 괜찮아?”
“난 괜찮네. 죽음 속에서 나를 살려주셨어.”
“나도 알아. 그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군.”
“……그분께서 맹주에게 말씀했다고 하더군. 결자해지로 모든 은원을 풀겠다고 .”
“아아…… 알겠네. 이제 남궁세가와 그분이 가졌던 모든 은원은 사라졌네.”
검황을 죽인 천살지인.
그리고 남궁무명을 살려준 천살지인.
이는 남궁세가가 그에 대한 은원이 사라졌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남궁무명은 처참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선 먼저 이곳을 정리하세나. 많은 사람이 다쳤어.”
“음, 그렇게 하세.”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현장을 정리하면서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멀리서 비무대의 현장을 지켜보던 차가운 시선.
“쳇. 완벽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비무대 위로 살아난 남궁무명의 모습을 보았다.
폭발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날 줄 몰랐다.
천살지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확실하게 죽었을 것이었다.
“미친놈이…… 갑자기 왜 쓸데없는 그런 짓을 해서 살려주었지?”
“그분께서는 화산파의 제자이시니까.”
“……!”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중년 사내는 몸이 움찔거렸다.
뒤에 다가올 때까지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누군가 했더니 네놈이군.”
천살지인을 안고 비무대를 떠났던 고진유가 앞에 서 있었다.
“저렇게 만든 범인이 당신인가?”
“…….”
중년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훗. 혼자 온 걸 보면 자신 있는 모양이군.’
그는 소매에서 언제 빠져나왔는지 모를 소폭탄을 고진유 앞으로 툭 던졌다.
퍼어엉!
고진유는 갑자기 앞에서 터진 폭발음에 뒤로 물러나면서 호신강기를 펼쳤다.
그사이 중년 사내 또한 거리를 벌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화산도협, 내가 여기에 있는 줄 알아차리다니 대단하군.”
“생각대로 극일천의 인물이었군. 네놈들은 저기 보이는 일반인들이 죽어도 상관없는 모양이지?”
“큭. 어차피 죽을 인생 조금 빨리 갈 뿐 아닌가?”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허리 뒤에서 꺼낸 붉은색 벽력탄을 던졌다.
피우우웅-
바람 소리를 내며 벽력탄이 고진유의 앞으로 날아갔다.
콰아아앙!!!
팟팟팟팟팟-!!
폭발과 함께 이번에는 독침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진유는 손에 든 사의검으로 빠르게 원을 돌리면서 독침들을 막아냈다.
날아오던 독침들이 튕기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역시…… 화산도협의 무공은 대단하군. 좀 더 놀아주고 싶은데 이번 일은 네 녀석과 싸우는 게 아니라서.”
중년 사내의 손은 빨랐다.
어느새 양손에 흑색의 폭구가 들려 있었다.
“우린 다음에 보도록 하세나. 본인은 유성우라고 한다. 음…… 워낙 오래된 이름이라 잘 모를 수도 있겠군. 한때 폭우존자(暴雨尊者)라고 하면 거의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화산도협, 다음에 만날 때는 좀 더 좋은 것들을 많이 준비하겠네. 그때 만나세나. 크하하하!!”
그의 손에서 떠난 폭구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 형이 왜 재밌다고 했는지 알겠구만.!!”
그리고 사방으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번쩍!!
십 장 반경 주위, 빛이 닿는 것들이 녹아들었다.
“휴우…….”
고진유는 호신강기로 펼치며 빛을 막아냈다.
고개를 숙여 몸을 살피자, 옷이 누더기가 된 듯 찢겨 나가고 녹아 내렸다.
“대체 극일천에는 얼마나 많은 인물이 있는 거지?”
극일천과 싸우면 싸울수록 대단한 세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인물들은 그들에겐 그저 유희와 같은 놀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
‘폭우존자라…….’
* * *
무호지부로 돌아온 뒤 고진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문을 닫은 채 독소응의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관에 넣었다.
‘사숙님, 이젠 화산파로 돌아갈 것입니다.’
고진유는 화산파에 갈 수 있도록 관을 표국에 부탁했다.
다각. 다각.
관을 실은 마차가 무호지부를 떠나갔다.
고진유는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형…… 무사히 화산파로 갈 겁니다. 그분들이 장례를 치러 드릴 거예요.”
“내가…… 좀 더 일찍 찾아뵈었다면…….”
스윽.
무혼신녀는 고진유의 어깨를 감쌌다.
“되었다. 그의 죽음에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을 게다. 천살지인이 되고자 했던 것도, 천하제일인이 된 동생을 보고 싶은 것이라고 했으니 소원을 풀었어.”
“……네. 맞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편안하게 사시지 못했습니다.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어쩔 수 없다. 천살성의 기를 타고난 사람의 운명이지.”
“누님, 운명이란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까?”
“……글쎄다.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들 우리가 어떻게 하늘이 정한 운명을 알 수 있을까? 나도 내 운명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느냐? 굳이 운명을 알려고 하지 마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그도 그랬을 게다.”
“……누님의 말씀이 맞는 듯합니다.”
“원래 오래 살다 보면 인생을 알게 되는 것이지.”
“들어가시지요.”
고진유는 일행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였다.
무호지부로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후진과 남궁무명은 오는 길에 화산파로 떠나는 마차와 마주쳤다.
마차에 그의 시신이 든 관이 있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도 정중하게 절을 한 뒤 사라질 때까지 배웅을 했다.
남궁후진은 반갑게 소리쳤다.
“큰 누님, 후진입니다!”
“후진 동생 왔는가?”
“오는 길에 누님을 위해서 좋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남궁후진은 술병을 든 손을 흔들었다.
“네놈은 역시 재밌다니까. 두 사람 들어오도록.”
“넵. 누님.”
남궁후진은 가볍게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뒤를 따르던 남궁무명은 그녀를 보았다.
‘정말이군, 보기로는 이십 대 후반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각자 자리에 앉았다.
남궁무명이 먼저 위로의 말을 했다.
“그분의 장례는 화산파에서 지내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분도 그러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그분을 사부로 생각하네. 그분이 아니셨다면 내 무공을 완성하지 못했을 걸세.”
“무명 형께서 사숙님을 사부로 여기신다면 분명 좋아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니네. 내가 더 고마울 따름이지.”
스윽.
무혼신녀는 남궁무명 앞으로 손바닥을 폈다.
“……무슨…….”
“창천황신공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한번 보자꾸나.”
“다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창천황신공이 제일 뛰어나다고 보는 모양이지? 자만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본인 스스로가 자만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니까.”
남궁무명은 그녀의 손바닥에 손을 마주 올렸다.
“한번 내력을 올려봐라.”
“…….”
고진유가 망설이는 그를 보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알겠네.”
슈우우우-
창천황신공은 상대의 내기를 파괴하는 절대파괴심공이었다.
한번 내공을 펼치면 상대의 내공을 단숨에 치고 들어가기에 함부로 펼쳤다간 위험할 수 있었다.
남궁무명의 손에서 흘러나온 내기가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빠르게 상대의 몸으로 움직이고자 했다.
퍼어억.
하지만 그녀의 손바닥에서 창천황신공의 내기가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그는 다시 내기를 일으키며 그녀의 손바닥으로 흘려보냈지만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놀란 모양이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놀랄 거 없어. 내 내공이 수미화심공이니.”
수미화심공이란 말에 남궁후진과 남궁무명의 눈이 커졌다.
“누님…… 정말이십니까?”
“믿기지 않아? 한 번 보여줄까?”
“아, 아닙니다. 못 믿는 게 아니라, 그건…… 그것이 사라진 것은 백 년 전…… 멸봉자님의 독문심공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남궁후진은 말을 하면서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뭐야? 진짜…… 그분이시라는 거야?’
이번에는 고진유를 쳐다보았다.
고진유 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젠장…… 맞잖아.’
“누님, 정말이군요?”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
“…….”
사람이 어떻게 백 년을 살 수 있을까. 심지어 하나도 늙어 보이지 않았다.
주안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
“제가 멍청해서 이 상황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알고만 있어라. 앞으로 계속하던 대로 부르면 된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이번에는 남궁무명을 가리켰다.
“그 정도면 잘 익혔어. 계속 수련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다.”
“넵. 알겠습니다.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남궁무명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괜히 남궁세가에 가서 내가 누군지 떠들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아…… 근데 혹시 제갈문 어르신은…….”
“무림맹에서 조카는 이미 만났다. 근데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지?”
“본 가의 창천황신공과 겨룰 수 있다는 수미화천심공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하하, 하여튼 남궁세가도 인정하마. 사소한 것까지 조사할 줄은 몰랐군. 앞으로 진유 동생을 잘 좀 도와줘.”
“알겠습니다. 걱정 하나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책임지고 진유 아우가 원하는 일이라면 전부 하겠습니다.”
“후후후, 후진 형님의 말씀을 들으니 든든하네요.”
“그런 의미로 이제 한 잔씩 어떻겠습니까?”
휘익.
인양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술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혈사천주 조탁은 완전히 인상이 굳어졌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칫, 생사결에서 남궁세가를 꺾은 뒤 무호를 접수할 계획이었는데…….’
천살지인마저 죽었다.
더구나 남궁세가에서 창천황신공을 완벽하게 익힌 녀석이 나타났다.
무림에서는 이제 그를 창천신검이라 했다.
천살지인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콰아아앙!!
조탁은 앞에 놓인 탁자를 내리쳤다.
‘검황을 죽이는 것까지는 좋았어. 하지만…….’
그가 완벽한 천살지인이 되었다면 충분히 창천신검을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군. 계획이 틀어진 건 그놈, 화산파의 어린 그놈 때문이었어.”
화산파를 버리지 않고 천살성의 기에 대항했기에 완전한 힘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화산도협…… 네놈은 내가 무조건 죽일 것이다.”
조탁의 살기가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