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헉.’
아진화의 걸음이 멈췄다.
“너는 진짜 골 때리는 년이군. 지금까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지 알겠구나.”
휘익!
아진화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악!”
바닥에 떨어진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상대가 어떻게 공격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너는 정신 좀 차려야겠다. 네년이 혼자 죽는 건 괜찮으나 괜한 애들 고생시킬까 걱정이군.”
무혼신녀는 그녀 뒤에서 어쩔 줄 모르는 사제들을 보았다.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검후에게 똑바로 전해라. 내가 열받아서 검각에 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찾아오라고.”
“으으…….”
“멸봉자(滅鳳者)라고 하면 알 것이다. 똑바로 알아들었느냐?”
“네에…… 알겠습니다.”
“그리고 배가 포구에 멈추면 무조건 내려라. 더 맞기 전에.”
“…….”
아진화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배에 계속 타고 싶어도 부끄러워서 더 있을 수 없었다.
잠시 뒤 포구에 도착하자 그녀는 제일 먼저 내렸다.
아진화는 배가 떠나기도 전에 포구에서 벗어났다.
‘망할 계집이…… 두고 봐.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
* * *
천문전주 나하중은 운기를 했다.
바닥에서 일 자 높이로 떠오른 그의 몸은 반시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스르르륵.
가부좌를 한 그의 몸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내력이…… 여전히 모자라는군.’
북명신공까지 완벽하게 익혔건만 여전히 마지막 하나가 아쉬웠다.
완벽하게 제조된 신무신단을 복용했다면 천명공천공을 십이 성 깨우칠 수 있을 것을.
“젠장…… 철갑만 제대로 회수가 되었다면 끝나도 벌써 끝날 일을…….”
나하중은 가부좌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철갑을 찾고자 했지만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망할 녀석이 제대로 숨겨놓았어.’
신무신단의 제조법을 알기 위해서는 고진유를 잡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가 천명공청공을 익혀야 하는 단 하나의 목적.
중원의 무림의 멸문이 아닌 극일천주와의 대결이었다.
‘천주를 이기기 위해서는 천명공천공을 완성해야 한다. 만일 어쩔 수 없다면 그 녀석과 협상을 하는 수밖에.’
마음에 들지 않은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님, 수곡자입니다.”
“들어오게.”
안으로 들어선 수곡자는 허리를 숙이고는 나하중에게 전서를 내밀었다.
“안휘성에서 올라온 전서입니다.”
“혈사천이 움직인다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안휘성이라면 혈사천의 일 외에는 보고될 일이 없었다.
“혈사천이 허락을 했는가?”
“무호에서 생사결을 하겠다고 남궁세가에 연락했습니다.”
“무호라…… 자네는 생사결의 장소가 왜 무호인지 알겠는가?”
“제가 판단하건대, 무호는 호북으로 가장 빠르게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교통 요충지입니다. 남궁세가의 관할지인 무호를 뺏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맞네. 혈사천주, 그놈. 하여튼 욕심은 하늘 꼭대기까지 찼군.”
“혈사천주가 원래 그런 인물이지 않습니까?”
“욕심이 많으면 언젠가는 배탈이 나는 법이지.”
“그렇지 않아도 마곡이 꿈틀거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마곡에서? 드디어 마도에서도 움직이는 것인가?”
“아직은 아닌 듯싶습니다. 마도의 종주인 마교에서 조용합니다. 마곡은 이번에 따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나하중은 이내 두 문파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냈다.
혈사천에 의해 마곡의 관할인 방부의 일부를 잃었다.
“복수인 모양이군. 재미있겠어.”
“그렇습니다. 마곡이 움직인다는 것은 중원에 마도도 나왔다는 의미라 봅니다.”
“후후. 우린 마곡을 도와 혈사천을 때리는 게 재미있지 않을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호에 모여 있는 중원인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게 좋을 것 같군.”
“어떤 선물이신지?”
“흐음, 화끈한 물건이면 좋지 않겠나?”
“벽…… 력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남궁무명이란 놈과 천살지인의 승패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이렇게…… 퍼어어엉……!”
나하중은 양손을 폈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듯 백색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클클…… 앞으로 무림 놈들이 함부로 모이지 못하도록 시범 삼아 불꽃놀이를 하는 것이지.”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어. 크하하하!”
* * *
수로를 이용한 교통의 요충지답게 무호는 평소에도 복잡한 곳이었다.
더구나 이틀 뒤에 열릴 생사결로 인해 무림인들까지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녹림야검은 포구에 선 채로 앞을 보았다.
“너무 사람들이 많습니다.”
“형, 이러다 잘 곳도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얼른 객잔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녹검 씨, 이곳에는 무림맹의 무호지부가 있습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무호지부가 어디인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녹림야검의 모습이 바로 사라졌다.
“저 녀석, 일 하나는 빠릿빠릿하게 잘하네.”
“역시 녹림에 돌려주기에 아까워요. 그래서 다음에 만날 때는 황금 일억만 냥을 요구할까 합니다.”
“녹림에서 받아들이겠느냐?”
“안 받아들여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돈을 받지 않으면 보내지 않는 것이죠.”
“너도…… 참 대단하다.”
무혼신녀는 미소를 짓고는 앞에서 걷는 인양을 가리켰다.
“이 녀석도 녹검만큼이나 괜찮은 녀석이지 않느냐?”
“다다익선이지 않습니까?”
“너무 과하면 넘치는 법이다.”
“누님의 말씀대로 제 그릇 이상으로 넘칠 때까지만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반의반의반의반도 안 찼습니다.”
“하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을 지닌 사내를 동생으로 뒀군.”
“후후후. 맞습니다.”
마을 중심에서 일각 정도 북쪽 방향으로 움직이자 무림맹의 무호지부가 나타났다.
무호지부의 정문 위사는 다가오는 네 명의 일행을 보았다.
중요한 인물이 온다는 연락을 따로 받은 건 없었다.
하지만 무호에 수많은 무인이 모이고 있어, 주의를 단단히 받은 상태였다.
정문 위사 진오는 그들을 향해 정중히 물었다.
“이곳은 무림맹 무호지부이외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남궁 지부장이 수하들 교육은 잘 시켰군요.”
세 명의 사내 중 한 사내가 허리에서 신패를 꺼냈다.
‘허억! 맹주령패…….’
진오는 갑자기 숨이 막힌 듯했다.
털썩.
진오는 재빨리 부복을 했다.
“소신 진오. 무림맹주님을 뵙습니다.”
“진오 위사이군요. 일어나시오.”
“감사합니다.”
진오는 몸이 튕기듯 일어났다.
“소신이 안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이다.”
그는 지부의 문을 열어젖히면서 안으로 향해 소리쳤다.
“맹주님께서 오셨습니다!”
“……!!!”
지부 안은 순간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반각이 지나가기 전에 건물 안에서 사십 대 중반의 인물이 빠르게 달려 나왔다.
무호 지부장 남궁이경.
남궁세가의 방계 출신인 그가 무호지부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달려 나오면서 세 명의 사내 중 정확히 고진유의 인상착의를 알아보았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무호지부장 남궁이경이라 합니다.”
“고진유이외다. 반갑소이다.”
목에 검흔의 자국이 있는 녹림야검과 고진유보다 어린 청년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았다.
“녹검살협과 의제권협을 뵙습니다.”
“반갑소이다.”
녹림야검과 인양도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진유 오른쪽 옆에 나란히 선 무혼신녀와도 간단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마쳤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알겠소이다.”
남궁이경은 앞장서며 일행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접객실로 들어선 그는 상석을 권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앉으십시오.”
고진유가 자리에 앉은 뒤 일행과 남궁이경도 그들을 마주 보며 앉았다.
“맹주님께서는 이번 생사결 때문에 무호에 오셨습니까?”
“그렇소이다.”
“혹시…… 생사결을 멈추게 하려고 오신 것인지요?”
“그건 아닙니다. 그들의 생사결은 무림맹에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본도가 온 건 별 탈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알겠습니다.”
남궁이경은 무림맹의 인물이긴 하나 그 또한 남궁세가 출신이었다.
마음 한편에는 남궁세가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혹시 남궁세가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아십니까?”
“현진세가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은 남궁세가의 가신 세가입니다.”
“그렇군요 지부장께선 연락을 넣어 본도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남궁무명을 만날 것입니까?”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만일 바쁘다면 거절을 해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사결을 하는 동안 우리가 이곳에서 머물러도 괜찮겠소이까?”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제가 쉴 곳을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 * *
남궁이경은 그들에게 거처를 안내해준 뒤 무호지부를 나서 곧장 현진세가로 향했다. 무호지부에서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일 줄이야.’
남궁무명과 천살지인의 생사결에 중원 전체가 모여든 것 같았다.
마을 사이를 이각 정도 움직이자 현진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문을 선 무사가 남궁이경을 알아보았다.
평소에도 왕래가 잦은 듯했다.
“지부장님, 오셨습니까?”
“세가에서 도착했다고 들었네.”
“네. 안에 계십니다.”
“무림맹주께서 보내셨다네. 안에 전언을 넣어주게나.”
“앗.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잠시 뒤 건물 안에서 남궁후진이 나와 그를 보며 인사했다.
남궁이경이 비록 방계라고 하지만 세가의 어른임은 틀림없었다.
“이경 숙부께서 오셨습니까?”
“특검단주가 왔군요.”
남궁이경 또한 남궁후진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량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능력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맹주가 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지부에 있소이다. 생사결을 할 그를 만나고 싶다는 전언을 보냈소이다.”
“흐음, 맹주가 만나고 싶다면 당연히 만나 봐야지요. 저도 만나 지 오래됐는데 보고 싶습니다.”
“알겠소이다. 돌아가서 만나겠다고…….”
“아닙니다. 저하고 같이 가시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안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겠습니다.”
남궁후진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로 들어가자마자 밖으로 나오며 급하게 말을 했다.
“가시지요.”
* * *
덜컹.
남궁후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자 한 순간.
휘이익!
그의 눈앞으로 무엇인가 날아왔다.
‘엥?’
퍼억!
손으로 막아야 했지만 날아오는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만일 독이라면 막았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었다.
‘으아……? 베개…… 네.’
남궁후진의 얼굴 전체를 때린 것은 베개였다.
그는 발밑에 떨어진 둥근 베개를 보았다.
“어떤 자식이 감히 무례하게 들어오는 거지?”
“……?”
그리고 눈을 부릅뜬 여인을 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저어…… 저는 저기 맹주와…… 아는 사이이외다.”
“이놈이 똑바로 이름을 안 밝히는구나, 진유 동생하고 무슨 사이이냐고 물어봤느냐? 남궁세가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변하지 않았군.”
‘무슨 여인이 이리도 기가 세?’
남궁후진은 말없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돌리며 고진유와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을 둘러보았다.
그중 녹림야검이 얼른 입을 삐죽거리면서 인사를 빨리 하라는 듯 눈치를 주었다.
“남궁후진…… 이외다.”
“남궁세가는 남의 방에 들어올 때 무작정 들어와도 되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 너무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뛰어 들어온 것이지요?”
“다시 들어와. 똑바로 해봐.”
“에엥…….”
무혼신녀의 눈빛을 보며 그는 자꾸 주눅이 들었다.
“후진 형님, 다시 들어오세요.”
“어…… 알았다.”
남궁후진은 여전히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밖에서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크흠, 흠, 맹주는 안에 있소이까? 본인은 남궁세가의 남궁후진이라고 하네.”
“들어오십시오.”
남궁후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그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죽겠네. 왜 이리 눈이 무서워 보여.’
지금까지 살면서 앞에 앉은 여인보다 무서워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차갑게 다가왔다.
“그다음?”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요?”
“안에 들어온 뒤 모르는 분이 있으면 인사를 하는 게 예의이지 않느냐? 똑바로 안 배웠어? 대체 네놈의 부모는 누구냐?”
“……배웠습니다. 남궁후진이라 합니다.”
남궁후진은 그 순간 깨달았다.
거의 이십 대 후반처럼 보이는 그녀는 실제로 훨씬 나이가 많은 인물이었다.
‘이분은 고인이군. 멍청하게…… 얼굴만 보고 상대가 누구인지 똑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남궁후진은 정중하게 자세를 잡은 뒤 다시 인사를 했다.
“말학 후배가 고인을 뵙습니다.”
“어쭈…… 제법이야. 난 진유 동생의 누나다.”
“그럼 저도 큰 누님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큿. 너도 묵경처럼 웃긴 놈이구나. 그 녀석도 나를 보자마자 누님이라고 부르더군.”
“아하, 그렇습니까? 제가 묵경과 친구 사이입니다.”
“옛말이 틀린 게 없군. 같은 놈들끼리 만난다고 하더니.”
“누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오오…… 너어…… 멋진 놈이구나……!”
“누님, 감사합니다.”
남궁후진은 무호지부에 찾아온 이유를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