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39화 (239/425)

239화

깊은 시간.

북소연은 어둠에 잠긴 혈화전 밖으로 나왔다.

‘어디에 계시지?’

그녀는 정원으로 나온 뒤 누구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구름에 달이 가린 탓인지 암막에 가려진 정원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언니가 분명 정원에 혼자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녀는 마지막으로 정자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소저,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요?”

정자 안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공자님.”

정자에 가까워지자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

구름을 잠시 벗어난 달빛에 고진유의 모습이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외다.”

“알고 있어요. 공자님께선 안 주무시고 여기에서 무엇을 하세요?”

“잠시 생각할 게 있어 나왔소이다.”

“무슨 큰일이 생겼나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신경 쓸 일이 있어 나왔소이다.”

북소연은 그가 무엇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는지 알았다.

천살지인이자 화산제일검 독소응.

남궁세가의 인물과 생사결을 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과연 혈사천에서 남궁세가의 도전을 받을지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걱정되신다면 남궁세가에 가서…….”

“아닙니다. 내가 그를 말릴 수 없습니다. 그 또한 부모의 원수를 갚고자 하지 않습니까.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숙님의 안위입니다.”

“하지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혈사천에서도 아직 명확한 답을 내지 않았으니 비무를 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을까…….”

“혈사천에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검황까지 이겼지 않습니까?”

“도전을 받는다면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이 있다는 말이네요.”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공식적으로 중원 무림 안휘성에서 그들의 힘이 어떠한지 보여주고자 할 것입니다.”

‘음…….’

북소연은 궁금한 게 생겼다.

“저어…… 남궁세가에서는 자신이 있다고 여기는 건가요? 검황도 그분을 이기지 못했잖아요.”

“남궁세가의 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길 자신이 있기에 도전했을 것입니다.”

“남궁세가가 이긴다는 뜻인가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 듯하면서도 정확히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궁세가에서 천살지인에게 도전했다는 남궁무명의 무위가 어떠한지도 몰랐다.

“공자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말리지는 못하겠지만…… 우선 남궁세가에 가서 그를 만나볼까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되지 않나요?”

“가면 되지요. 하지만…… 맹주이기에…….”

고진유는 그녀의 말처럼 남궁세가에 갈 수 있었다.

하나 예전과 달리 그는 무림맹주의 신분.

일개 문파의 수장도 함부로 다닐 수 없거늘, 무림맹의 맹주가 무림맹을 맘대로 비우고 다녀도 될지 망설여졌다.

또한 문파 간의 은원에 맹주의 개인적인 뜻이 반영되는 것도 망설이는 또 다른 부분이었다.

북소연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처음에는 그냥 가면 될 일을 고민하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그는 무림맹주였다.

가만히 고진유를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연관이 없는 듯한 질문을 했다.

“제가 공자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내가 잘나서요?”

“…….”

북소연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맞아요. 잘났죠. 하지만 그건 무공을 잘해서가 아니에요. 남들과 다르기에…… 틀에 박히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에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소?”

“당연하죠. 그 성격이 어디 가겠어요?”

“후후후.”

스윽.

고진유는 그녀의 곁으로 바짝 붙어 섰다.

거의 나란히 붙은 두 사람이었다.

“왜…….”

고진유는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고맙소이다.”

“…….”

“고민할 일도 아니거늘. 고민을 스스로 만든 셈이었군요. 도움을 준 의미로서 감사의 인사를 하겠소이다.”

스르륵.

고진유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마주쳤다.

“……!”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내와 입을 맞추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그동안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하기도 헀고.

고진유는 뒤로 물러났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았다.

“소저, 괜찮소이까?”

“아…… 네에.”

“그만 들어가도록 하죠.”

“……알겠어요.”

북소연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괜히 마주 보는 게 부끄러웠다.

두 사람이 혈화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부드럽게 고진유의 두 팔이 감쌌다.

“소저가 있어서 좋습니다.”

“……저도요.”

두 남녀는 잠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서 있었다.

* * *

형주를 나선 지 이틀.

고진유와 함께 나선 일행은 인양과 녹림야검, 그리고 무혼신녀였다.

북소연도 함께 가고자 했지만 고진유는 당분간 동행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렸다.

대신 보고 싶으면 중간중간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했다.

고진유와 일행은 안휘성으로 들어섰다.

우선 황산으로 방향을 잡으며 혈사천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귀를 기울였다.

숙송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날이 어두웠다.

객잔에 들어서자 빈자리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점소이는 바쁜지 사람이 들어와도 다가올 여유도 없어 보였다.

녹림야검은 주위를 살피다가 점소이를 보며 손을 들었다.

점소이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다가왔다.

“어떻게, 하루를 묵을 것입니까요?”

“조용하게 쉴 만한 장소가 있나?”

“있긴 하지만…….”

“금액은 상관없어. 있으면 안내하게.”

점소이는 무턱대고 안내할 수 없었다. 삼 층에 별관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선불이었다.

“송구한 말이지만 선불로 하루에 은자 열 냥입니다.”

“좋아, 여기 받아.”

녹림야검은 그에게 은자 열 냥을 꺼내 줬다.

“식사는 삼 층 객실에서 하시겠습니까?”

“먹고 올라가도록 하지. 술과 식사를 알아서 준비해 주게.”

그들은 점소이에게 주문을 한 뒤 비어 있는 자리를 잡았다.

“훗. 시끄럽기는 해도 사람 사는 맛이 나서 좋구나.”

무혼신녀는 주위 근처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들과 스스로 자랑하는 말들을 듣고 있다 보면 재미있었다.

후다다닥!

그때, 갑자기 한 사내가 객잔으로 들어서더니 자기 일행이 있던 탁자에 가서 빠르게 앉았다.

“떴어!! 방금……!”

“뭐라고 하는 거야?”

사내는 일행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로 말을 하지 않고 술을 잔에 가득 따랐다.

벌컥벌컥.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들릴 만큼 급했다.

타아악!

술잔을 시원하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혈사천에서 남궁세가에 통보를 했어!! 다가오는 오 일 뒤에 무호에서 생사결을 하겠다더군!”

“이런…… 왜 이리 빨리 해? 그럼 당장 무호에 가야겠는걸. 이번 대결로 남궁세가와 혈사천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겠어.”

천살지인과 남궁무명의 생사결에 대한 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생 말대로 혈사천에서 연락이 왔군. 우리도 무호에 가야겠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무호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인양과 녹검 씨는 그렇게 알고 준비 좀 해줘.”

“넵. 알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객잔을 나선 뒤 무호로 들어가는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뱃길이었다.

무호는 양자강의 주요 합류 지점 중 한 곳.

포구에는 이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평소보다 인파가 두세 배 더 많았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일등석의 자리를 구했다.

“하여튼 이때다 싶어 가지고…….”

뱃삯은 평소보다 세 배가 비싼 가격이라 자주 이용하는 객들이 구시렁거렸다.

“녹검 씨, 무슨 일입니까?”

“공자님, 그게, 가격을 세 배나 올려 받습니다.”

“어허, 두 배는 이해하겠는데 세 배씩이나…….”

“어쩔 수 없죠.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해도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우린 다행히 특등석을 구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배에 올라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무호로 떠나는 배에 일행이 승선했다.

특등석은 상층에 겨우 다섯 자리가 놓여 있었다.

녹림야검과 인양이 앞장서며 위로 가는 중이었다.

“이봐요.”

그때, 일행 뒤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진유는 돌아서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백의경장 무복에 붉은색 요대.

중간중간 십장생의 동물들이 금색을 띠며 그려져 있었다.

요대에는 백색 검자루의 검이 걸려 있었다.

“그대는 지금 우리들에게 한 말입니까?”

“여기에 당신들 외에 누가 있나요?”

“그렇군요. 본인들에게 용건이 있소이까?”

그녀는 손에 든 표를 보여주었다. 반대편 손에는 은자가 놓여 있었다.

“이것들을 줄 테니 특등석과 바꾸는 게 어떻겠어요?”

여전히 그녀의 말은 신경질적이면서 강압적으로 들렸다.

“미안하지만 특등석은 본인이 조용히 가기 위해 구매한 것이외다.”

“…….”

그녀는 이마를 찡그렸다.

‘왜…… 내력이 튕겨 나오지?’

고진유를 압박하고자 무형기를 뿜어냈지만 그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뒤로 밀려났다.

‘어떻게 된 사내야?’

무림에 나온 뒤 이와 같은 경우를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우르르-

갑판 아래에서 네 명이 여인들이 다가왔다.

“사형, 어떻게 됐어요? 대사형께서 기다리세요.”

“이자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네에? 우리가 검각의 봉검문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대사형께서 너무 대놓고 본 문을 밝히지 말라고 하셨잖아.”

고진유는 그녀들의 말을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검각 봉검문.

현 문주가 검후이며 중원 최고의 여인 문파였다.

은근히 검각 봉검문이니 알아서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개지랄인고? 안 꺼져?”

무혼신녀가 눈에 살기를 뿜어냈다.

‘허억.’

봉검문의 제자들이라 해도 무혼신녀의 눈빛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그녀들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곧장 뒤에서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님, 그만 올라가시죠.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누구에게 협박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동생만 말리지 않았다면 네년들 오줌을 지리도록 만들어 주는 건데…… 운 좋은 줄 알거라.”

무혼신녀는 돌아서기 전 눈빛으로 한 번 더 제압한 뒤 특등석으로 올라갔다.

다섯 명의 여인들은 얼굴이 붉어졌다. 배에 탄 많은 승객의 시선들이 따가웠다.

그때, 그녀들 옆으로 백의 여인이 다가섰다.

“쯔쯔. 추유미, 내가 분명 말했지? 특등석이 아니면 안 된다고.”

“대사형…… 죄송해요. 특등석을 누가 미리 살 줄은 몰랐어요.”

“됐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더러운 저들과 함께 가야 된다고?”

“……죄송합니다.”

백의 여인은 뒤를 돌아서며 특등석을 올려다보았다.

“쳇.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내가 올라가 봐야겠어.”

“저, 대사형. 그만…… 두시는 게…….”

휘익.

그녀는 눈에 힘을 주며 노려보았다.

“내가 걱정되어 말리는 거야?”

“…….”

추유미는 대답을 못 했다.

특등석으로 올라간 여인의 눈빛에 얼마나 놀랐는가.

두려움을 느꼈다.

그건 마치 검후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특등석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백의 여인은 검후의 제자이자 중원십봉의 검후봉.

봉검문의 차기 문주로 알려진 아진화였다.

‘하아…… 대사형이 고집을 피우면 절대로 말릴 수 없어.’

특등석으로 오르는 그녀를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저들인가?’

특등석으로 아진화가 올라서자 다급히 선원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여기는 일반석의 손님들이 올라올 수 없습니다.”

“알아. 저들과 잠시 이야기할 게 있어.”

“안 됩니다. 저분들이 허락하지 않은 이상 귀찮게 할 수 없습니다.”

선원의 대답에 그녀의 이마에 핏줄이 미세하게 일어났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고 앞을 막은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내기가 함께 나왔다.

일반인이 그녀의 내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잠깐.”

무혼신녀는 푹신한 의자에 누운 채 손을 들어 선원을 불렀다.

“무슨 볼일인지 이야기나 해보게 안으로 보내봐라.”

“아…… 네에…….”

선원은 앞뒤로 반말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힘이 쭉 빠졌다.

‘아…… 진짜 더러워서 이 짓도 못 하겠네.’

아진화는 누워 있는 그녀 옆으로 다가서고자 했다.

하지만 한 걸음씩 걷는 그녀의 발이 점점 무거워졌다.

마지막 한 발을 내딛고자 했지만,

‘대체…… 누구지?’

발을 내릴 수 없었다.

그녀의 등과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온몸에 날카로운 예기가 베고 지나갈 것 같았다.

“흥. 그래도 제법이군. 발 내려놔라.”

“…….”

아진화는 조심스럽게 발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았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넌 누구냐?”

“크흠, 검후봉이라 합니다.”

녹림야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혼신녀의 곁에 다가섰다.

“검후봉이라면 중원십봉입니다. 그녀의 출신은 봉검문의 문주 검후의 제자입니다.”

“호오, 검후의 제자라?”

무혼신녀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얻었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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